오피의 움직이는 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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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것들은 모두 움직인다. 줄리언 오피의 단순한 그림들이 당신에게 말을 걸어오는 것처럼 느껴진다면, 그 속에 흐르는 리듬과 스텝 때문일 거다.

국내에서 두 번째로 열리는 이번 개인전에서 줄리언 오피는 서울의 거리를 그린 페인팅과 LED 패널, 그리고 대형 레진 조각 등 다양한 형식의 신작을 선보인다. 여전히 가득한 경쾌한 색채, 단순함 가운데 발견되는 움직임의 요소, 고전 미술 기법의 모던한 차용 등은 이 전시의 풍경을 이루는 나무와 숲을 더 즐겁게 살필 수 있는 몇 가지 단서가 될 것이다.

국내에서 두 번째로 열리는 이번 개인전에서 줄리언 오피는 서울의 거리를 그린 페인팅과 LED 패널, 그리고 대형 레진 조각 등 다양한 형식의 신작을 선보인다. 여전히 가득한 경쾌한 색채, 단순함 가운데 발견되는 움직임의 요소, 고전 미술 기법의 모던한 차용 등은 이 전시의 풍경을 이루는 나무와 숲을 더 즐겁게 살필 수 있는 몇 가지 단서가 될 것이다.

“멋지네요. 그녀가 좀 추워 보이긴 하지만”. 늦겨울 서울 하늘에 갑자기 눈발이 날리기 시작하면서 인터뷰는 잠시 경쾌한 훼방을 맞았다. 다들 갤러리 마당을 내다보며 감탄할 때, 줄리언 오피는 뜰에 설치해놓은 LED 패널 속에서 책을 손에 든 채 걷고 있는 여자를 보며 이렇게 말했다. 풍경이라고 하면 우리는 으레 멈춰 있는 걸로 여기지만, 사실 그 속에 정지한 것은 없다. 떨어지는 벚꽃잎의 속도로 평화롭게 날리는 싸락눈, 옅은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 그리고 리드미컬하게 움직이는 LED 속 여자까지.

다들 각자의 속도로 움직이고 있었다. 줄리언 오피의 두 번째 서울 개인전 오픈 전날, 모든 작품의 설치를 마친 직후 가까스로 찾아온 시한부 고요였다. 한국에도 많은 팬을 가진 이 아티스트는 런던으로부터 새로운 볼거리들을 제법 챙겨서 서울에 당도한 참이다. 단순화된 이목구비의 포트레이트, 리듬을 타는 LED 속의 인물들 외에 커다란 사이즈의 채색 두상 두 점, 그리고 서울 거리의 사람들을 그린 새 페인팅 시리즈가 그것이다. 더블유는 지난여름 오피의 쇼디치 아틀리에를 찾아가 이 작품들이 포함된 새로운 시도들의 제작 과정을 미리 확인하는 행운을 누릴 수 있었다(2013년 9월호를 읽은 독자들이라면 온갖 페인팅과 조각으로 가득한 그의 작업실 풍경을 기억할 것이다). 그 반년 동안 보스턴과 로마에서 두 번의 전시를 치르고 온 오피는 반년 전과 마찬가지로 낮고 침착한 목소리로 인터뷰에 충실했으며, 변함없이 사진 촬영을 꺼렸다. “사진을 찍을 때는 영혼을 빼앗긴다고 느껴요. 정말이라니까요. 내가 세상에 보여주고 싶은 건 얼굴이 아니라 그림이니, 나를 찍은 사진이 아니라 내 그림을 싣는 걸로 충분하지 않나요?”

더블유가 직접 찾아가 만났던 지난여름 오피의 런던 아틀리에 전경. 왼쪽 포트레이트 작업은 그가 요즘 새롭게 시도하고 있는 로마 모자이크 스타일이며, 오른쪽은 작업실 오피의 자리다.

더블유가 직접 찾아가 만났던 지난여름 오피의 런던 아틀리에 전경. 왼쪽 포트레이트 작업은 그가 요즘 새롭게 시도하고 있는 로마 모자이크 스타일이며, 오른쪽은 작업실 오피의 자리다.

우선 서울에서 다시 만나 반갑다. 당신의 새로운 페인팅들 가운데 사당동, 신사동 같은 서울 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들 모습을 그린 것이 있다. 이 도시를 다루었다고 하니 재료가 된 사진을 촬영하고 고른 과정이 더 궁금하다.
런던에서 혼자 작업할 때부터 나는 인물화 작업을 위한 사진 촬영부터 고르는 과정까지를 하나의 시스템으로 만들어놓았다. 일련의 규칙을 세운 것이다. 그래서 지금은 나의 어시스턴트들이 이 규칙에 따라 사람들을 찍거나 영상 촬영을 해준다. 서울의 사진가와도 마찬가지로 몇 차례 의견을 주고받으며 조정을 거친 다음, 2천~3천 장쯤 되는 사진을 받았다. 2~3주 동안 그걸 추리면서 카메라 앞을 스쳐간 더 좋은 순간, 더 좋은 인물을 찾았다. 거리에는 자연스러운 임의성이 존재한다. 그날 누가 길을 지나갈지, 누가 카메라에 캡처될지 모르는 거다. 주사위를 던지듯 우연에 기대 누군가를 선택하고, 마치 게임을 하듯이 거기에 어울릴 다른 인물을 조합한다. 그림에 그려진 사람들은 같은 시간과 장소 속을 걸어간 게 아니다. 한 사람씩 그려보고 방향을 바꾸고 돌리고 하면서 복잡하게 완성되었다.

서울의 거리 사진을 수천 장 보면서 추릴 때 발견한 특이한 점이 있었나? 사람들의 모습이나 패션, 행동에서 느껴진 이 도시만의 특수성이라면 무엇일까?
동일한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런던이나 인도 뭄바이와 서울은 빛이 다르기 때문에 사진도 달랐고, 다른 드로잉을 필요로 했다. 런던에서는 빛이 낮아서 그림자와 어둠을 만들어낸다. 사람들도 보통 회색과 검은색을 많이 입기 때문에 음영과 명암 대비를 많이 그렸다. 그러나 신사동 페인팅의 경우에는 사람들의 옷차림에 디테일이 많다. 색도 화려하고, 다양한 소재나 무늬를 볼 수 있다.

사진 촬영을 여름에 했기 때문 아닐까?
계절 탓도 있겠지만, 서울의 저 지역이 쇼핑 스트리트이기 때문에 옷 입는 방식이 다른 것 같다. 처음에는 지역에 대한 정보 없이 사진을 받아 보고, 다들 옷을 잘 입어서 깜짝 놀랐다. 모두가 휴대폰을 손에 들고 있다는 공통점은 있지만(웃음). 런던에서는 사무적으로 커피나 신문을 들고 다니는 사람이 많은 편이다. 사당동의 경우에는 비 오는 날을 택했는데, 우산의 높낮이가 그림에 생기와 리듬을 더해 재밌다.

작품 속에 특정 브랜드의 쇼핑백이 들어가 있는데 그것에 대해서는 별 문제를 못 느꼈나?
스무 살인 내 딸도 그림 속에서 컨버스를 보더니 “광고야? 상업적인 작업이었어?” 하고 물었다(웃음). 알다시피 세상은 세상이다. 당신이 만약 아티스트고 세상을 찍는다면, 브랜드에 관련된 것들을 다 포토샵해서 지워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왜 그래야 하는지 모르겠다. 나는 스스로를 그렇게 보호하기보다 위험을 감수하며 일하는 게 좋다. 브랜드 관련된 것도 일종의 위험 요소다. 많은 뮤지션들을 위한 커버 아트 워크 작업을 해온 것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좌) 서울의 풍경을 찍은 사진들을 재료로 작업한 오피의 페인팅 중 한 점은 비오는 사당동을 지나는 사람들을 담았다. 'Walking in Sadang-dong in the rain,2014' (우) '얼굴보다는 그림으로 말하고 싶어서' 사진 찍히는 것을 꺼려하는 작가가 직접 촬영하고 작업해서 제공한 자신의 포트레이트.

(좌) 서울의 풍경을 찍은 사진들을 재료로 작업한 오피의 페인팅 중 한 점은 비오는 사당동을 지나는 사람들을 담았다. ‘Walking in Sadang-dong in the rain,2014’ (우) ‘얼굴보다는 그림으로 말하고 싶어서’ 사진 찍히는 것을 꺼려하는 작가가 직접 촬영하고 작업해서 제공한 자신의 포트레이트.

당신이 블러의 네 멤버를 그린 베스트 앨범은 서로를 더 유명하게 만들었다.
블러는 가장 잘 알려진 경우고, 그 밖에도 많은 뮤지션을 위해 일했다. 티셔츠, 쇼핑백, 의상을 위한 작업도 많이 했다. 하지만 브랜드와 직접 관련된 광고 프로젝트는 수락한 적이 없다. 상업적인 작업을 한다고 해서 예술로부터 선을 긋고 멀어지는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예술은 여기에만 존재하고, 다른 것들과는 접촉할 수 없어’라는 고고한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어떤 방식이 아트를 위해서만 적절하고, 정보나 오락은 적절하지 않다는 태도를 이해하기 어렵다.

이렇게 갤러리 실내에서 볼 수 있는 작은 크기의 패널과 서울 스퀘어처럼 한 빌딩의 벽면 전체를 차지할 만큼 거대한 사이즈의 패널을 위해 작업할 때 다르게 고려하는 점이 있나?
아티스트들은 원하는 것과 가능한 것 사이에 일종의 저글링을 하는 사람들이다. 다양한 가능성을 가지고 놀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새로운 일에 착수할 때는 가능성의 범위부터 생각한다. 어떤 가능성은 제법 완고하고, 어떤 가능성은 좀 더 유연하다. 이치에 닿고 논리적이어야 하지만, 동시에 너무 융통성이 없다면 세상의 기회들을 거절만 하다 끝날 것이다. 나는 심지어 카펫이 깔린 갤러리로부터 전시 제안을 받은 적이 있는데 수락했다. 아티스트들이 싫어하는 대표적인 장소다(웃음).

아티스트들이 카펫이 깔린 전시장을 싫어하는 건 왜인가? 무늬나 색상이 작품과 충돌하기 때문에?
현대미술을 보여주기에는 공간이 충분히 추상적이지 않아서다. 하지만 나는 그 점이 재미있다고 생각했으며, 거기서 뭔가 새로운 가능성이 생기리라고 봤다.

지난 여름 당신의 아틀리에에 갔을 때, 기술적으로 새롭게 시도하고 있는 몇몇 스타일의 작업 과정을 볼 수 있었다.
이번 전시에 선보이지는 않지만, 최근에 로마식 모자이크 방식으로 포트레이트 작업을 시작했다. 이 오래되고 견고한 미술 기법의 형식을 가지고 다이내믹하고 모던하고 젊은 내용과 결합할 생각으로 들떠 있다. 돌을 붙여 만드는 모자이크 포트레이트는, 마치 초기 컴퓨터 게임의 매끄럽지 못한 디자인을 보는 것처럼 울퉁불퉁한 부분이 있다. 디지털 픽셀과 흥미로운 유사점이다. 그런 울퉁불퉁함에 시적인 데가 있다고 생각한다. 예술은 현실을 재현하려고 하지만 결코 완전하지 못하다. 예술가들은 다만 현실로 다가가는 과정의 어떤 단계를 성취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런 지점이 바로 시적이고 마술적인 영역이라고 본다.

3월 23일까지 줄리언 오피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국제갤러리 2관.

3월 23일까지 줄리언 오피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국제갤러리 2관.

지난여름에 봤던 작업 과정의 두상들은 실물 스케일이었는데, 전시에는 대형 작품이 왔다.
로마나 보스턴 전시에서는 작은 조각들이 대부분이었고, 큰 조각은 서울에서 본격적으로 처음 보여준다. 그러니 어떻게 보면 지금의 작업은 거대한 선언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이 조각들을 숲처럼 가득 채우는 환상을 갖고 있다. 그리고 이 커다란 두상들 사이를 걸으면 재미있을 것 같다. 늘 평면으로 작업해오던 나에게 완전히 3D로 뭔가 제작한다는 건 무척 야심 찬 프로젝트로 여겨졌는데 조금씩 더 밀어붙이면서 상당히 이루어온 것 같다.

유튜브에서 검색하면 ‘줄리언 오피 스타일의 포트레이트 만드는 법’ 가이드가 나온다. 3D 프린터가 대중화되고 있는 만큼 이제 조각도 모방하는 사람이 생길지 모르겠다. 대중이 당신의 스타일을 따라 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모방은 가장 훌륭한 칭찬 아닌가? 사람들이 예술에 원하는 건 아주 자연스럽고 명백한 어떤 것이다. 내 작업을 따라 할 수 있다고 느낀다면 어떤 명백함을 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어릴 때 거울에다 대고 얼굴을 따라 그리는 놀이를 했던 것처럼. 이런 행동이 진짜 예술은 아니지만 사람들에게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다양한 학교에서 이메일을 많이 받는다. 어린 학생들이, 내 스타일로 주변인물들을 그린다는 내용이다. 그건 단순한 모방이 아니라, 내가 그림 그리는 방식에서 그들이 뭔가 자신의 가능성을 발견했다는 얘기다.

당신은 하나의 전시가 어떤 테스트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작품 설치를 마치고, 오프닝을 앞두고 있는 지금은 어떤가? 시험을 다 치른 듯 홀가분한가, 아니면 아직 답안을 작성하는 중인가?
처음 설치를 시작할 때는 무척 걱정이 들고, 주변 모든 것을 다 옮겨야 할 거 같다. 그림 그릴 때도 하나둘 시도해보지만 잘 안 돼서 절대 완성을 못할 거 같을 때가 있는데 마치 그런 기분이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이만하면 됐어’ 하는 시점이 오게 마련이다. 처음엔 마음에 안 들었지만 밀어붙이고 바꾸고 해서 어느 정도는 스스로 용납하게 되는 단계가 있는 것이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할 만큼 했어, 하는. 그 시점으로부터 오프닝까지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다. 스튜디오에 전화해서 이런저런 거 좀 바꿔라 지시하기도 하고 다음 전시에는 무얼 해야 할지 구상도 한다. 전시에 사람들이 오기 시작하면 이런 건 다 잊어버리지만. 관람객들이 보러 오기 시작하면 늘 뭔가 잃어버린 것같이 이상한 기분이 든다.

다음 전시도 벌써 구상하고 있나?
5월 베를린, 2개의 갤러리에서 동시에 진행한다. 사람이 아니라 말, 숲, 보트 같은 것을 담은 새로운 LED 작품을 보여줄 것이다. 그다음 전시는 폴란드의 크라쿠프. 아까 얘기한 카펫이 깔린 미술관이 바로 여기다. 공항만큼이나 넓고 창문은 없는 공간을 어떻게 전원적으로 사용해서 공원을 걷는 듯한 느낌을 갖게 할 수 있을지 고민 중이다. 풍경을 담은 LED 패널을 많이 걸 거다.

당신은 ‘한동안 지속되는 풍경(a Period of Landscape)’ 이라는 개념에 대해 이야기해왔다.
어떤 이미지를 만들건, 나에게는 움직임이 가장 중요한 것이었다. 움직임을 없앤다는 건 종종 필요하지만 이상한 일이다. 숨만 쉬어도 모두들 움직인다. 그림 속에서 움직임의 요소를 찾으려는 일이 무척 자연스럽게 느껴지며, 반복되는 움직임을 볼 때 매력을 느낀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 하늘을 나는 새의 몸짓, 보트가 흔들리는 움직임… 이렇게 고요하고 조용한 움직임은 우리에게 충만함을 준다. 그림에서 의미를 찾으려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다. 그런 건 불필요하고, 죽었다. 앤디 워홀은 스토리와 내러티브 없이 무브먼트만 있는 그림의 시대를 열었다. 아마 그 끝없는 움직임만으로도 우리에겐 충분할 거다.

에디터
황선우
포토그래퍼
엄삼철, RA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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