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스키아파렐리가 일어났다. 패션계에서 가장 매혹적인 ‘잠자는 숲 속의 공주’로 여겨져온 이 전설의 하우스를 깨워 단숨에 미학의 최정점으로 되돌려놓는 왕자의 역할은 이탤리언 디자이너, 마르코 자니니의 몫이었다. 그는 오트 쿠튀르 데뷔 쇼가 끝난 직후 스키아파렐리의 헤드쿼터에 더블유를 초대해 전설을 현실로 일궈낸 감회를 전했다.

한국 톱모델 박지혜와 함께 ‘거울의 방’에서 포즈를 취한 스키아파렐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마르코 자니니. 박지혜가 입은 도트 드레스와 슈즈, 예술적인 소매가 돋보이는 흰색 재킷은 모두 Schiaparelli Haute Couture by Marco Zanini 제품.

한국 톱모델 박지혜와 함께 ‘거울의 방’에서 포즈를 취한 스키아파렐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마르코 자니니. 박지혜가 입은 도트 드레스와 슈즈, 예술적인 소매가 돋보이는 흰색 재킷은 모두 Schiaparelli Haute Couture by Marco Zanini 제품.

거의 60여 년이 걸렸다. 엘자 스키아파렐리가 브랜드의 문을 닫고 디자이너로서의 활동을 중단한 것이 1954년 12월 13일의 일이고, 마르코 자니니가 ‘스키아파렐리’라는 이름으로 다시 오트 쿠튀르 무대에 하우스를 부활시킨 날짜가 2014년 1월 20일이니 말이다. 스키아파렐리는 디자인을 그만둔 후 팔에 살면서 조각 작품을 비롯한 많은 예술품, 산더미 같은 책들, 알록달록한 러그에 둘러싸여 조용히 생활했고, 그녀가 아낀 손녀들-70년대를 풍미한 톱모델 겸 배우 마리사 베렌슨, 베리 베렌슨 자매-을 제외 하고는 외부와의 접촉을 거의 하지 않은 채 노년을 보냈다.

그리고 다시 8년의 시간. 지난 2006년, 토즈 그룹의 디에고 델라 발레 회장이 스키아파렐리를 인수했다고 밝힌 후, 패션 애호가들의 상상 속에서 판타지를 자극했던 이 브랜드를 물려받을 주인공이 누구일지에 거대한 관심이 쏠렸다. 1983년 칼 라거펠트와 샤넬, 1996년 존 갈리아노와 디올, 2001년 알버 엘바즈와 랑방이 그러했듯이 적임자에 대한 숙고를 하는 데만 8년이 걸린 것이다. 지난 시즌, 크리스찬 라크로와가 ‘게스트 디자이너’로 선임되어 스키아파렐리에 대한 헌정 컬렉션을 한 차례 선보인 직후, 하우스는 이탈리아 출신의 디자이너 마르코 자니니를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에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지난 5년간 로샤스를 맡아 패션 인사이더들이 주목하는 브랜드로 성장시킨 자니니는 전에도 도나텔라 베르사체와 함께 지아니가 떠난 브랜드를 되살리는 데 큰 공을 세웠고, 로샤스에 합류하기 전에는 70년대 명가인 할스턴을 현대적인 뉴욕 스타일의 브랜드로 재건했다. 패션계의 부활 전문가로, 이보다 더 적임자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기대 속에 공개된 마르코 자니니의 첫 스키아파렐리 오트 쿠튀르 컬렉션은 그 기대를 빗나가게 한 독특한 아이디어와 오트 쿠튀르에 걸맞은 높은 완성도로 채워졌다. 그는 총 19벌의 의상을 런웨이에 올렸는데, 스키아파렐리가 즐겨 사용하던 ‘쇼킹 핑크(핫 핑크에 가까운 채도 높은 분홍색)’를 쓴다거나, 검정 팬츠 수트를 굽 낮은 신발에 매치해 이브닝 룩으로 선보이고, 센슈얼한 보디수트를 잠옷처럼 보이는 실크 나이트 가운 아래 입혀 내놓는 등 의상에 대한 접근은 하우스 창립자의 정신을 따르면서도 세부 디테일에서는 자신만의 정교하고 절제된 미학을 설파한 점이 인상적이었다. 바닷가재 드레스와 구두 모양의 모자 등 엘자 스키아파렐리를 유명하게 만든 초현실주의적 아이템은 단 하나도 무대 위에 올리지 않았다. 모델들이 광대 모자를 쓰고 등장한 초창기 스키아파렐리의 서커스 컬렉션처럼 극적인 무대 연출도 없었다. 스테판 존스가 고안한 갖가지 모양의 헤드피스와 각기 다른 헤어, 메이크업을 한 19명의 모델들은 오늘날의 여느 패션쇼가 그러하듯 관객과 같은 눈높이의 런웨이를 우아하게 걸어 나왔다. 60년 만에 부활한 하우스의 쇼라기보다는 마치 단절된 시간이 없었다는 듯, 지난 시즌에서 계속 이어지는 느낌의 현대적인 컬렉션이었다. 이틀 후, 더블유는 파리 방돔 광장 21번지에 위치한 스키아파렐리 아틀리에에서 마르코 자니니를 만나 이 기념비적인 부활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엘자 스키아파렐리의 디자인 정신과 그녀의 전성기였던 1930년대의 사조를 담아 새롭게 탄생한 역사적인 공간에 둘러싸여 있자니, 190센티미터에 가까운 큰 키에 안경과 수염으로 맵시를 내고 독특한 문신을 오른 손등에 새긴 검정 데님 팬츠 차림의 마르코 자니니만이 오직 이 모든 것이 현실이라는 사실을 증명해주는 듯했다.

스테판 존스와 협업한 독특한 헤드피스, 보 장식이 특징인 톱, 보석 공방 그리푸아가 제작한 브로치가 부착된 실크 쇼츠, 큼직한 하늘색 가운은 모두 Schiaparelli Haute Couture by Marco Zanini 제품.

스테판 존스와 협업한 독특한 헤드피스, 보 장식이 특징인 톱, 보석 공방 그리푸아가 제작한 브로치가 부착된 실크 쇼츠, 큼직한 하늘색 가운은 모두 Schiaparelli Haute Couture by Marco Zanini 제품.

스키아파렐리가 다시 패션으로 돌아오기까지 60년이 걸렸다. 그만큼 주목도가 남다른 쇼였다. 첫 컬렉션을 시작하기 직전, 백스테이지에서 어떤 감회가 들었나?
마르코 자니니 쇼가 잘 끝나서 기쁘다. 무대 뒤에서는 늘 각각의 모델들이 입고 있는 옷뿐만 아니라 세부적인 의도와 내용까지 완벽하게 보이도록 확인에 확인을 거듭하곤 한다. 나뿐만 아니라 모든 디자이너들이 그럴 것이다. 이번에도 완벽을 기하는 작업에 집중했다.

쇼 직후 미디어는 물론이고 SNS 등 대중의 반응도 대단했다. 쇼가 끝나면 리뷰를 바로 찾아서 다 읽어 보는 타입인가?
나는 컬렉션이 어떤 평가를 받는지 관심이 큰 편이어서 모든 리뷰를 다 읽는다. 그중에 건설적인 내용이 있다면 크리에이티브적 관점에서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대중들이 어떤 것을 실수라고 생각하고 반면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이해하는 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우스의 디렉터로 발탁된 이후, 당신이 10대 중반에 엘자 스키아파렐리의 자서전 <쇼킹 라이프>에 감명을 받았다는 일화가 기사를 통해 알려졌다. 그렇다 해도 어떤 이유에서 스키아파렐리의 디렉터 자리를 맡게 되었는지 구체적인 대답을 듣고 싶다.
전에 있었던 로샤스에서의 작품 역시 훌륭했고, 앞으로 보여줄 것이 많았는데 말이다. 내게는 이 기회를 잡게 된 것이 매우 영광이고 행운이다. 스키아파렐리는 그저 유명 패션 하우스가 아니라 패션의 역사에서 한 획을 그은 ‘아이콘’이기 때문이다. 60년 동안 닫혔던 문을 여는 첫 주자라는 자리는 아주 큰 책임이 수반되는 일이기는 하지만, 한편으로 창의적 측면에서 매우 흥분되는 기회라고 할 수 있다. 질문에서 말한 것처럼 나는 젊은 시절부터 엘자 스키아파렐리를 사랑해왔다. 여기, 파리 방돔 광장에 있는 자체만으로 황홀하며, 특히 디자이너로서 오트 쿠튀르 컬렉션에 선다는 건 실력이 뛰어난 디자이너들도 쉽게 가질 수 있는 기회가 아니라는 점에서 매우 영광스럽게 생각한다.

스키아파렐리의 아카이브에 등장한 무늬를 정교한 금색 자수로 표현한 재킷과 팬츠 앙상블은 모두 Schiaparelli Haute Couture by Marco Zanini 제품.

스키아파렐리의 아카이브에 등장한 무늬를 정교한 금색 자수로 표현한 재킷과 팬츠 앙상블은 모두 Schiaparelli Haute Couture by Marco Zanini 제품.

과거의 유명했던 브랜드가 부활하는 과정에서 때로는 ‘이름’만 남은 채 새 디렉터의 성향에 따라 브랜드 고유의 의미가 변하는 경우를 보곤 한다. 당신이 스키아파렐리를 부활시키면서 가장 지키고 싶었던 것은 무엇인가?
스키아파렐리의 과거 명성을 현재와 미래에 맞게 재건하는 것. 현재까지 이어져온 이 브랜드의 유산 중 가장 핵심적인 헤리티지는 마담 엘자의 정신이다. 즉, 순응에 대한 거부, 용기, 무모함. 이것이야말로 이 브랜드에서 보전하고 발전시켜야 할 가치다. 그녀가 과거에 했던 디자인을 다시 읊는 것만으론 충분하지 않으며, 그 개성을 현재, 미래의 시점으로 불러오는 것이 내 역할이다.

로샤스에서의 마지막 컬렉션과 이번 오트 쿠튀르 사이에는 거의 시간이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한된 시간 속에서 이번 컬렉션의 실마리를 어떻게 풀어갔나?
사실 시간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10대 때부터 스키아파렐리와 그녀의 작품에 익숙하기 때문에, ‘스키아파렐리’ 스타일을 훤히 꿰고 있었다. 이번에는 어떤 특정 스타일을 만들어야지, 라는 기준을 세우지도 않았고 유별나게 집중하지 않았어도 단기간에 컬렉션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스키아파렐리를 기억하는 사람들, 혹은 이름조차 모르는 어린 소녀들을 통틀어 당신이 스키아파렐리의 첫 컬렉션을 통해 가장 전하고 싶었던 주제는 무엇인가?
이것은 사실 긴 여정의 첫발에 불과하다. 한 걸음으로 모든 메시지를 다 전할 수는 없겠지만, 새로운 시도를 시작하는 데 의미를 두고 싶다. 내가 이번에표현하고자 한 것, 그리고 향후에도 다루어야 할 세 가지 주제가 있다. 바로 개성, 환경적 순응에 대한 거부, 우아함에 대한 스키아파렐리의 갈망이 그것이다.

첫 컬렉션에 무엇이 나올지 모두가 궁금해했다. 결과는 매우 의외였고, 그 점에 허를 찔린 듯했다. 특히 바닷가재 드레스나 구두 모양의 모자 등이 등장하지 않았다. 의도한 것인가?
그게 바로 포인트다. 나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사람들이 스키아파렐리를 지나치게 많이 인용해왔다고 본다. 그간 스키아파렐리는 ‘쇼킹’이라는 단어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왔는데, 지금은 더 이상 ‘쇼킹’할 만한 거리가 없지 않은가. 그래서 나는 이를 ‘놀라움(Surprise)’으로 치환했고, 이 말은 컬렉션의 핵심 단어가 되었다. 내가 보기에 너무 명백하게, 그리고 상투적으로, 인용하고 지시되던 것들을 피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추진한 거다.

그렇다면 우리는 첫 컬렉션의 어느 부분에서 ‘스키아파렐리답다’는 점을 느낄 수 있을까?
명백한 기준이나 특정한 요소를 사용하지 않은 부분, 그 자체가 지극히 스키아파렐리다운 점이다. 이 브랜드를 특별하게 만드는 핵심은 마담 엘자의 개성으로, 그녀는 용감하며 두려움이 없고, 때로는 불손하기까지 하지만 항상 우아하고 세련된 태도를 잃지 않았다. 이 독특한 개성의 조합이 내 첫 컬렉션을 창조한 원동력이 되었다. 또 다른 부분으로는 마담 엘자가 지켜온 독특한 장인 정신에 대한 경외심이다. 우리 아틀리에에 있는 재봉사들의 기막한 솜씨를 통해 오트 쿠튀르 컬렉션이 왜 그렇게 소중한 것인지, 사람의 손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왜 무한대에 가까운지 겸허하게, 감동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자수와 깃털 장식 전문인 르사주, 유렐, 르마리에, 보석 장식을 하는 그리푸아 등 협력 관계의 공방을 비롯해 헤드피스를 만든 스티븐 존스 등의 크리에이터들도 여기에 포함된다.

색색의 시퀸을 가로로 세밀하게 배치하여 마치 스트라이프 같은 느낌을 주는 큼직한 셔츠형 롱 드레스와 원석을 세팅한 금색 커프스는 모두 Schiaparelli Haute Couture by Marco Zanini 제품.

색색의 시퀸을 가로로 세밀하게 배치하여 마치 스트라이프 같은 느낌을 주는 큼직한 셔츠형 롱 드레스와 원석을 세팅한 금색 커프스는 모두 Schiaparelli Haute Couture by Marco Zanini 제품.

총 19벌로 구성된 이번 쇼는 가짓수는 많지 않은 대신 룩의 세부적인 내용에 집중할 수 있었다. 모델마다 전혀 다른 헤어, 메이크업을 하고 있거나, 이번에 박지혜가 입고 촬영한 스트라이프 드레스에 매치된 보석 장식 커프스처럼.
패션이란 결국 팀워크다. 우리 아틀리에의 장인들은 명실상부 최고의 전문가들이다. 하지만 내부에서 할 수 없는 보석 장식이 필요해서 파리 전통의 전문 공방인 그리푸아의 협조를 구했다. 지금 질문한 커프스를 비롯한 주얼리는 그리푸아에서 만든 것인데, 마담 엘자 역시 30년대 당시 그들과 함께 일했다. 헤어와 메이크업은 내가 진심으로 믿고 존경하는 루치아 피에로니, 유진 슐레이먼에게 맡겼다. 그들은 모두 다르지만 ‘스키아파렐리’다운 헤어, 메이크업 디자인으로 쇼의 완성도를 높여주었다. 모든 룩에 어우러지는 각기 다른 디자인의 헤드피스를 만들어준 시대의 장인, 스티븐 존스는 말할 것도 없다.

워킹을 하던 모델들이 사진가 앞에서 블레이저를 벗고 포즈를 취해 옷의 내부를 충분히 감상할 수 있도록 쇼를 진행한 점도 인상적이었다.
쇼의 전체적 구상은 내가 어릴 적에 본 오트 쿠튀르 패션쇼에 대한 기억에 앞서 설명한 ‘놀라움’이라는 요소-‘쇼킹’ 대신-를 추가한 것이다. 의상의 내부는 당연히 외부와 다르다. 뒤집어 입을 수 있는 양면 재킷의 안쪽에 자리한 깃털, 혹은 정교한 주름 장식을 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놀라움’인 것이다. 겉면에서 볼 때는 그저 남성적인 블레이저였는데, 안쪽에는 가녀리고 여성적인 소재로 채워졌다는 것, 그리고 그 상반되는 양쪽 면이 모두 우아하고 아름답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었다. 어린 시절 오트 쿠튀르의 기억을 떠올려보면, 아름다운 모델들이 아주 세련되고 우아한 몸짓으로 재킷을 벗거나 장갑을 벗으며 컬렉션을 보여주었다. 오늘날에는 이런 방식이 구식으로 치부된다. 하지만 바로 그런 이유로 오늘날의 패션쇼에서 이런 동작을 다시 보여 주는 것도 흥미롭다고 본다. 어떤 면에서는 선과 악의 경계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꼭 한번 시도해보고 싶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묻겠다. 앞으로 마르코 자니니의 스키아파렐리 쇼에서 바닷가재 드레스나 표범 머리 모자로 대표되는 초현실주의적 모티프를 볼 수 있을까?
말할 수 없다. 다만, ‘놀라움’을 모토로 작업하기 때문에 어떤 것이라도 기대할 수 있다.

스키아파렐리는 과거에 ‘쇼킹’ ‘슬리핑’ 등 아이코닉한 향수로도 유명했다. 앞으로 향수, 액세서리, 장기적으로 쿠튀르가 아닌 레디투웨어를 진행할 계획이 있나?
그렇게까지 구체적인 계획은 아직이다. 일단 얘기할 수 있는 것은, 현재 가을/겨울 시즌을 위한 첫 ‘프레타 쿠튀르’ 컬렉션을 준비하고 있다. 프레타 쿠튀르는 몇몇 액세서리를 포함한, 쿠튀르에 가깝게 극도로 정교한 기성복 컬렉션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빠를 것 같다. 이 컬렉션은 방돔 광장의 쿠튀르 하우스에서만 엄선해서 선보일 것이다.

로렌스 스틸에서부터 베르사체, 할스턴과 로샤스에 이르기까지, 당신은 주로 유명 하우스의 부활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수행했고 높은 평가를 받았다. 혹시본인의 시그너처 브랜드를 열 계획은 없는지.
계획은 특별히 없지만, 사실 어떻게 될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나는 무언가를 추구하고 이루는 과정에서 그에 대해 숙고할 만한 시간을 가진 적이 거의 없는 것 같다.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 파리의 방돔 광장에서 스키아파렐리를 부활시키는 기회가 생겨, 진정한 오트 쿠튀르 컬렉션을 만든다는 꿈이 드디어 실현되었다는 사실이다.

스키아파렐리가 다시 세상과 만나는 데 60년이 걸렸다. 사람의 운명은 결코 예측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60년 후, 당신은 어떤 디자이너로 기억되길 원하나?
진지하고 솔직한 열정에 이끌려 매우 열심히 일했던 전문가로 기억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