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프리폴 컬렉션이 발표되었다. 디자이너들의 마음속에는 여름을 보내는 아쉬움과 겨울을 맞이하는 설렘이 교묘하게 중첩되어 있었다.

CHANEL : 로데오 드라이브
샤넬의 칼 라거펠트가 가지 못할 곳이 있을까. 이번 프리폴 컬렉션을 통해 그가 패션 피플을 이끈 곳은 바로 미국 남부의 댈러스. 드라이브 인 극장 안에 빈티지 자동차들을 세워두고 자신이 디렉팅한 영화 <더 리턴>을 상영한 그는 로데오 경기라도 열릴 듯 재현한 무대를 통해 와일드 웨스트의 낭만을 노래했다. 대자연에서 영감 받은 갈색, 회색, 브라운 등의 색감이 화려한 퍼와 풍성한 프린지 장식 재킷과 팬츠에, 손뜨개 느낌의 판초와 맥시 스커트에 담겼고, 깃털과 카우보이 모자, 빈티지한 액세서리가 더해져 씩씩한 카우걸이 완성됐다. 도시로 날아온 인디언의 후예!

VERSACE : 우아한 여성 로커
대담한 프린트와 몸매를 드러내는 베르사체표 섹시 드레스에 우아함이 더해졌다. 몸에 달라붙는 미니 드레스 대신 스커트에 주름을 더해 풍성한 실루엣을 만들고, 라운드 숄더 코트나 핑크 니트 톱, 퍼 장식 블루종 등을 매치해 여성스럽고 스포티한 무드를 가미한 것. 물론 시선을 사로잡는 대담한 프린트는 여전하지만 한없이 부드러운 새틴 소재를 활용한 드레이프 장식의 드레스를 선보인 것만으로도 충분히 신선하고 새롭다. 이만하면 과하지 않으니 서울의 클럽 룩으로 나무랄 데가 없을 듯. 단, 무릎 위로 올라오는 사이하이 부츠와 메탈릭한 액세서리로 글래머러스한 로큰롤 무드를 연출할 것. 그것이 바로 도나텔라가 원하는 가을의 룩이다.

3.1PHILLIP LIM : 내 마음속 그 여자
젊은 뉴욕 여자들의 마음을 옷으로 표현한다면 바로 그의 룩이 언어가 될 거다. 무한한 레이어링 속에 편안하며 실용적인 룩을 선보이는 필립 림의 가을은 예상대로가장 동시대적 무드를 뽐냈으니까. 그가 컬렉션을 통해 전하는 메시지는 4가지. 잘 재단된 재킷이나 코트에 스웨트 셔츠나 티셔츠, 후드 톱 등 아주 캐주얼한 요소를 매치할 것. 주황과 보라, 파랑 등의 대담한 컬러 블록을 즐길 것. 가방은 반드시 짧게, 크로스로 멜 것. 마지막으로 정중한 룩에 스니커즈를 신을 것!

CALVIN KLIEN : 폴링 인 러브
10주년을 맞이한 지난여름 컬렉션부터 프랜시스코 코스타가 ‘사랑에 빠졌나?’ 싶을 정도로 대단히 달콤해진 캘빈 클라인 컬렉션. 프리폴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아니, 더욱 애정 충만한 것들이었다. 솜사탕처럼 부드러운 캐시미어, 알파카, 울 소재가 연핑크와 만나 로맨틱한 룩이 탄생했고, 얇은 슬립 형태의 롱 드레스와 슬리퍼의 매치는 간결하면서도 아름다웠다. 막 잠에서 깬 듯 힘을 뺀 모델들의 워킹 역시 사랑스러운 분위기를 만든 일등공신.

RAG & BON : 또 다른 90년대
꾸임없는 10대들의 자연스러운 포트레이트를 찍은 사진가 나이젤 샤프란의 사진집 <Teenage Precinct Shoppers>와 90년대 영국 음악에서 영감을 받은 랙&본. 물론 지난 시즌을 강타한 90년대 무드는 여전하지만 ‘또?’라는 실망감이 들지 않도록 고심한 흔적이 역력했다. 스웨트 셔츠, 고무줄을 덧댄 쇼츠, 트랙수트 등이 화이트 셔츠나 테일러링 재킷과 매치되었고 견고한 가죽, 핸드메이드 배튼버그 레이스 등의 고급스러운 소재로 표현된 것. 여기에 골드 링 귀고리를 한 스타일링은 그들이 젊고 트렌디한 감각을 제안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의 한 수였다.

PRABAL GURUNG : 네가 원하는 게 뭔지 알아
프라발 구룽은 드디어 자신의 브랜드를 사랑하는 여자들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한 모양이다. 여성스러움을 살짝 물고 있는 듯한 느낌이랄까. 이브닝 행사에 어울리는 드레스여야 하고 정교하고 날렵하게 재단된 느낌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수 장식 셔츠나 패턴이 충돌하는 슬릿 장식 드레스, 비대칭 스타일의 드레이프 드레스, 케이프 형태의 꼬리가 달린 벌룬 드레스, 볼륨감 넘치는 롱 드레스로 이어지는 드라마틱한 그의 프리폴 컬렉션은 바로 그 두 개의 요구사항을 완벽하게 충족시켰다.

GUCCI : 기본으로 돌아가라
구찌의 프리다 지아니니가 가을을 대하는 태도는 명확했다. 요란하게 이것저것 두를 생각 말고 단순하게 입으라는 것. 단, 화사한 색감을 선택하라는 것. 푸크시아 핑크, 오렌지, 노랑 등의 봄 색상과 브라운, 베이지, 회색 등 차분한 색감을 섞어 조화를 이룬 것이 바로 그 예다. 팬츠는 발목에 딱 맞춰 입어야 하며, 여기에 헌팅캡과 큼직한 클러치, 또는 박시한 남성용 토트백을 매치해 매스큘린한 무드를 더욱 극적으로 만들 것.

VERA WANG : 겨울의 길목에서
검정, 회색, 남색 등 겨울을 대표하는 색감을 선택해 겨울의 길목에 집중한 베라 왕은 풍성한 퍼와 누빔 장식, 데님 소재나 블루종 형태 재킷 등을 활용해 스포티한 요소를 조금씩 가미했다. 결과는? 아주 여성스러우면서도 젊은 룩 탄생! 또한 롱&린 실루엣의 롱 드레스에 길게 드리워진 퍼 스툴은 컬렉션을 이끄는 핵심 스타일링이었다. 큼직한 코르사주 장식의 샌들 대신 조형적인 스트랩 샌들이나 부츠도 잘 어울릴 듯.

VIONNET : 원색 미학
고가 아슈케나지가 이끄는 비오네의 프리폴 키워드는 두 가지다. ‘핑크 팬더’ 그리고 ‘시그너처’. 상큼한 핫 핑크 색감과 브랜드를 대표하는 주름 장식을 활용해 드라마틱한 룩을 완성한 그는 드레이프 드레스에는 깊은 슬릿을 넣었고, 앞치마처럼 주름 장식을 덧대거나 조형적인 모자, 화려한 퍼 스툴을 매치해 활력을 더했다. 특히 견고한 가죽으로 완성한 촘촘한 주름 스커트 룩은 컬렉션의 하이라이트라 할 만큼 멋졌다. 여기에 과감하고 역동적인 태도를 겸비하면 완성.

DKNY : 가을이 뭐예요
25주년을 대대적으로 자축한 DKNY에서는 25라는 숫자를 활용한 로고 프린트는 물론 한여름을 떠오르게 하는 서퍼들의 룩과 트로피컬 프린트, 네오프렌 소재를 적극 활용한 생동감 넘치는 룩을 준비했다. 스포티한 후드 티, 발랄한 플리츠스커트, 운동복 스타일의 탱크톱, 슬리브리스 블루종 등 새로운 것은 아니었지만 하나하나가 탐날 만큼 근사했고, 다채로운 레이어링이 가능하다는 매력이 있었다. 바로 그것이 뉴욕 걸을 대표하는 DKNY의 힘이다.

BOTTEGA VENETA : 봄을 품은 가을
구조와 해체, 복원에 대해 생각했다는 보테가 베네타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토머스 마이어. 다소 학문적인 메시지를 전해왔지만 실제로 마주한 프리폴 컬렉션의 느낌은 그것보다 훨씬 봄내음 가득한 산뜻한 느낌이었다. 그래픽 패턴은 모던한 꽃봉오리처럼 보였고, 시어링, 울, 캐시미어 등의 부드러운 소재들이 불에 탄 듯한 붉은색, 태양빛, 쇼크 핑크 등의 밝은 색감과 어우러져 드라마틱한 무드를 냈다. 꽃이 피고 새가 날아드는 봄의 기운을 겨울에도 간직하고픈 그의 마음이 전해진 컬렉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