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경아를 톱모델이 아니라 인생의 멘토로 보아야 하는 이유에 대하여.

막역한 사이의 스태프들이 모여 있던 촬영장에 모델 송경아가 커다란 쇼핑백을 들고 나타났다. 그리고 그 안에서 근사한 갈색 가죽 가방을 꺼낸 순간, 평화로운 스튜디오 안에 계급의 장벽이 솟아올랐다. 취향의 장벽, 재능의 장벽, 그리고 추진력의 장벽. 송경아는 지난 1월 초, 퍼스트루머(1st Rumor)라는 가방 브랜드를 열었다.

디자인은 물론이고 소재 선정에서 제작 공정, 바이어와의 입점 회의에 이르기까지의 지난한 과정을 거쳐 직접 일궈낸 결과물이다. 퍼스트루머의 가방은 딱 송경아 그 자체다. 보도자료 스타일로 설명하자면 ‘1920년대 아르누보 양식을 비롯한 과거의 요소들이 현대적인 디자인에 버무려져 있는 가방’이지만, 사실 이 표현도 그리 올바른 답은 아니다. ‘옛날 것 같기도 하고 요즘 것 같기도 한, 어디에서 본 듯도 한데 막상 사려고 하면 절대 찾을 수 없는’ 가방이라고 하는 편이 더 가까울 것이다. 일을 하다 보면 톱모델들이 유명 브랜드의 최신 가방을 들고 촬영장에 오는 경우를 흔히 보곤 한다. 하지만 송경아는 한 번도 그런 가방을 들고 나타난 적이 없었다. “잇백이 너무 싫어요. 흔한데 비싸잖아요. 나만 드는 가방을 갖고 싶은데, 없더라고요. 그래서 만들었죠.”

이런 그의 취향은 앞으로 세컨드(2nd), 서드(3rd)라는 이름을 달고 라이프스타일 전반을 보여주는 라인으로 확장될 예정이다. 이미 나이트 가운, 트렁크와 같은 홈 웨어나 여행 스타일을 제안하겠다는 계획도 세워두었다. 같은 업계에서 일하지만, 송경아의 취향은 늘 내 취향을 부끄럽게 만들고, 트렌드를 해석하는 예리한 시각은 등골을 오싹하게 만든다. 무언가를 선택하는 그의 감식안을 훔칠 기회가 생긴다면, 나는 기꺼이 도둑의 탈을 쓸 것이다. 나와 비슷한 마음을 가진 독자들에게 비록 가방은 훔쳐다 주지 못하지만, 대신 장물이자 선물을 제공하겠다. 퍼스트루머의 블로그(1strumor.com)에 가면 그가 요즘 보고, 듣고, 먹고, 즐기고 느끼는 방식을 훔쳐볼 수 있다. 바쁜 톱모델이 일일이 사진을 올리고 글을 쓰는 건 사실 귀찮은 일이다. 돈 버는 것도 좋지만, 퍼스트루머를 통해 어떤 방식으로든 여자들의 인생에 좋은 영향을 미치고 싶다는 소망에 송경아는 귀찮음을 이미 지웠다. 그 감각을 자신의 것으로 체득하는 건, 온전히 당신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