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년간 루이 비통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패션 신에 환상적인 마법을 걸어온 마크 제이콥스가 뜨거운 안녕을 고했다. 하지만 이것은 그에게 창조적인 밀물과 썰물의 과정일 뿐이다. 패션에 대한 애착과 도전 정신을 가진 그는 이미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고 있다.

관중들은 아마도 7분 남짓한 쇼에 쏟아부은 그들의 노력에 경외심과 함께 당혹감을 느꼈을 것이다. 8시 정각(혹은 몇 초 전이었을까?)에 나탈리 웨스틀링을 필두로, 마치 난파된 듯한 해변가 풍경에 마크 제이콥스의 모델들이 속속 들어섰다. 버려진 듯이 나뒹구는 거대한 인명 구조원용 의자와 카트는 이미 대재앙을 거친 듯했다. 선두의 모델들은 어두운 톤의 프릴 장식 블라우스나 스웨트 셔츠 등으로 비교적 차갑고 절제된 룩을 선보인 반면에, 후반으로 갈수록 블라우스는 리본, 보석, 자수 장식의 드레스들로 바뀌었다. 좀 더 화려해진 장식성이 빅토리아 시대의 정교한 분위기를 한층 강조하는 가운데, 잠시 숨죽이고 바라보는 사이 마크 제이콥스의 강렬한 다크 매직은 순식간에 끝나버렸다.

그로부터 19일 후 파리의 아침, 사람들은 루이 비통 쇼를 보러 모여들었다. 서스펜스 영화의 제2부를 보는 듯한, 쇼걸 테마의 장식적이고 피상적이면서도 암울한 아름다움으로 가득 채워진 파리 쇼는 지난 16년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루이 비통을 이끌어온 그의 마지막 무대였다. 우레와 같은 기립 박수 속에서 인사를 마치는 그를 보면서, 루이 비통 가방 브랜드를 패션계에서 가장 파워풀한 하우스로 끌어올린 한 시대가 막을 내렸음을 실감했다. 루이 비통을 떠나기로 결심한 마크 제이콥스는 향후 자신의 브랜드에 더욱 집중하면서 주식 시장에 상장시키는 데 주력하기로 결정했다. 그에겐 제2의 모험과 도전이 놓여 있다. “루이 비통을 떠난다는 것이 가치나 아이디어를 잃는다는 걸 의미하진 않아요.”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난 또 다른 곳으로 향하는 여정을 위해 늘 열린 마음을 유지할 생각입니다.”

함께한 루이 비통과의 이별이 아쉽거나 씁쓸한 생각이 드는가?
마크 제이콥스(이하 M.J) 다들 ‘괜찮은가요? 기분은 어떤가요?’를 물어온다.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든지 혹은 그 상황을 어떻게 설명하든지, 로버트 더피와 난 굉장히 긍정적이다. 만일 괜찮지 않았다면, 처음부터 그렇게 대답했을 것이다. 감정을 숨기는 데도 또 거짓말을 하는 데도 서툴기 때문이다. 난 모든 것에 활짝 열려 있다. 우린 희망에 차 있으며, 아르노 회장을 신뢰한다. LVMH와는 마크 제이콥스 사의 변화에 관련된 계약에 사인했다.

그 방향이 앞으로 어떻게 진행되든지, 디자이너로서의 활동은 계속 이어지는지 궁금하다.
M.J 방향은 일종의 청사진일 뿐, 세부 사항은 언제든지 바뀔 수도 있다. 올해 역시 파리에서 계속 일할 예정인데, 그러는 편이 우리에게 유리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많은 시간을 슈즈와 백 등에 할애할 생각이고, 세포라와 뷰티 라인 역시 별다른 차질 없이 진행될 것이다. 사실 아무것도 달라질 건 없다. 유일하게 달라지는 건 비통 쇼일 뿐이다.

거의 막바지에 결별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비통 쇼의 세팅을 구상할 때만 하더라도 피날레가 확정적인 건 아니었다.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나?
M.J 그건 재밌는 과정이었다. 영감을 떠올리고 있을 때 미우치아 프라다가 생각이 났는데, 그녀와 직접적으로 얘기를 나눠보진 않았지만 나는 늘 경외심을 갖고 있었다. 내가 상상 속에서 존경하는 디자이너들은(그게 팩트일지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다들 극단적인 굴곡을 거쳤다. 하지만 그걸 입 밖으로 내는 법은 거의 없었다. 재능과 창조성 그리고 본능과 두려움 없는 도전 정신이 그들이 헤쳐나가는 방식이었다.

1. 모델들을 바니걸로 변신시킨 2009 F/W 루이 비통 쇼의 백스테이지. 2. 루이 비통에서 그의 마지막 쇼였던 2014 F/W 시즌 백스테이지에서 슈퍼모델 에바 헤르치고바의 룩을 살피는 마크 제이콥스.

1. 모델들을 바니걸로 변신시킨 2009 F/W 루이 비통 쇼의 백스테이지. 2. 루이 비통에서 그의 마지막 쇼였던 2014 F/W 시즌 백스테이지에서 슈퍼모델 에바 헤르치고바의 룩을 살피는 마크 제이콥스.

당신도 두려움이 없는가?
M.J 마우치아 프라다처럼 존경하는 다른 디자이너에 대해 한 말이다. 내 머릿속에선 감수성이 예민하고 창조적이며 재능 넘치는 또 다른 사람들이 떠올랐다. 그들에게 본능과 직감은 커다란 일부이지만, 그 본능이 늘 사람들을 만족시키거나 감동시킬 수는 없다. 하지만 그건 원동력이어서 미우치아를 성공시킨 것도 그런 본능이었을 것이다. 남들이 터득하지 못하는 것, 남들이 계산하지 못하는 것을 밀어붙이는 것이 바로 본능이다. 그리고 이 본능에 호기심과 지루함을 견뎌내는 인내가 더해졌을 때 두려움 없는 도전 정신이 생겨난다고 믿는다. 이 모든 것은 감수성이 풍부하고 창조적인 사람들 내부에 늘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스스로 창조적 본능을 의심해본 적이 있는지?
M.J 항상 그렇다. 직감이나 본능은 모든 과정의 일부기 때문. 질문을 던지거나 의문을 품는다는 것, 자신의 선택에 자신감을 가졌다가 어느 순간 또다시 그 선택을 의심하는 건 건강한 사고의 한 과정이다. 그 덕분에 궁극적으로 유기적인 변화와 성장이 이뤄질 수 있다. 게다가 디자이너에게는 6개월간의 본능적인 고민을 거친 후에도, 쇼 직전에 결정을 바꿔야 하는 즉흥성까지 더해진다.

루이 비통 세트는 다양한 영감을 보여주었다.
M.J 처음 세트 미팅을 할 때 아이콘적인 장치들인 회전목마, 분수대, 열차, 에스컬레이터 등이 논의되었다. 레퍼런스를 통해 리처드 프린스와 다카시 무라카미를 고민했으며, 그러다가 모든 걸 백지화한 채 다시 다니엘 뷔랭을 고려하기도 했다. 실제로 이러한 아티스트와의 협업이 없었더라면 쇼는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리처드의 경우엔 쇼 그 자체였다. 대부분의 선택이 그의 작품으로부터 영감을 얻은 것이었다. 반면 스테판 스프라우스와의 차이점은, 그는 루이 비통을 위한 독자적인 프린트를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난 스테판에게 ‘뒤샹이 모나리자에게 수염을 그려 넣었듯이 혹은 세르주 갱스부르가 모노그램 여행 가방을 블랙으로 페인팅했듯이, LV 로고의 틀을 깨길 원한다’고 말했다. 스테판은 아이콘적인 모노그램의 틀을 깨고 한층 젊어진 루이 비통을 만들어냈는데, 난 그의 그래피티가 정말 마음에 든다.

루이 비통 쇼에서 시계를 거꾸로 돌린 이유는 무엇인가?
M.J 비비안 웨스트우드와 월드스 엔즈를 떠올리면서 막바지에 내린 결정이다. 킹스로드의 펑크 매장인 월드스엔즈에는 거꾸로 돌아가는 시계가 매달려 있다. 캐시 호린을 비롯해 ‘무엇이 새로운 것인가?’라는 사람들의 평가에 대한 시니컬한 코멘트기도 하다. 새로운 것과 모던한 것에 대한 소리들을 싫증나도록 들어왔기 때문에, 과연 새로운 것이란 무엇인지를 규정할 필요가 있었다. 만일 접착 패브릭이 새로운 것이라면 이 역시 수년은 지난 것 이다. 또 합성 패브릭이 새로운 것이라면 180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야만 한다. 더욱이 레이저 컷이라면 이미 아제딘이 오래전에 만들어냈다. 정확히 무엇이 새롭다는 말인가? 그 디자이너에게는 새로운 시도인가? 나에게 새로운 건 갓 구입한 것이거나 방금 만들어낸 것을 뜻한다. 그게 내게는 새롭다. 창의적인가? 독창적인가? 이 개념들은 또 다른 문제다. 샤넬은 ‘기억력이 없는 사람들만이 자신만의 독창성을 주장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런 의미에서 과거를 돌아보는 것도 새로움을 창조해내는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나에겐 루이 비통의 역사를 돌아보고 재해석하는 컬렉션을 만들어내는 것 자체가 ‘새로움’이었다.

미우치아에 대해 언급했는데 여성 디자이너들을 굉장히 존경하는 것 같다.
M.J 미우치아 프라다, 레이 가와쿠보, 마들렌 비오네, 엘자 스키아파렐리, 마담 그레, 샤넬, 비비안 웨스트우드 등을 비롯해, 역사상 최고의 차별성을 이끌어낸 디자이너들은 다 여성들이었다. 생로랑 역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패션은 만들어내는 것이 아닌 ‘스타일을 창조해낸다’는 것. 패션은 트렌드일 뿐이다.

샤넬은 오늘날까지도 이어지는 파격을 만들어냈다.
M.J 비오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오래 지속되는 스타일 언어를 만들어냈다. 새로운 실루엣은 특정 맥락에서 만 유효할 뿐이지만, 스타일의 창조는 많은 것을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드레싱의 방식에서부터 옷을 바라보는 방식에 이르기까지, (내 생각에) 이건 여성의 본능적 감각에 관련된 것이다. 남자들은 여자와는 달리 머릿속으로 옷을 입히려는 경향이 있다. 이것 또한 드레싱의 한 방식 이지만, 일상 속에서 직접 입지 않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 갑작스럽게 재킷의 숄더 패더를 뺀 채 포켓 달린 카디건 처럼 입는 걸 쉽게 이해하기란 어렵다.

오랫동안 가장 영향력 있는 디자이너들이 여성인 데 비해, 왜 주류 디자이너들은 남성이 많은지 의문이 생긴다.
M.J 글쎄, 그건 나도 잘 모르겠다. 여성들이 가장 빛나는 예술을 만들어낼 때도 남자 아티스트들이 더 추앙받기도 했다. 좀 더 큰 철학적 맥락에서 논의할 문제라는 생각이다. 사회가 남자들의 역할을 더 강조하는가? 남자들이 더 파워풀하고 창조적이라고 여기는가? 사회가 실수하는 것 일까? 남녀평등은 수없이 강조되지만, 대다수 사회가 여전히 그녀들에게 부수적인 역할을 떠넘기는 것일까? 왜 사람들은 생로랑, 디올, 발렌시아가(물론 샤넬은 예외지만) 등의 이름엔 익숙하면서도, 비오네, 마담 그레, 스키아파렐리는 잘 기억하지 못하는지 의문이다.

다시 마크 제이콥스 이야기를 해보자. 모두들 10,000달러 짜리 빅토리언 드레스를 입고 싶어 할 것 같다.
M.J 패션 피플은 매 시즌마다 흥미로운 초점을 만들어내야 한다. 레이 가와쿠보는 ‘올 시즌에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고 털어놓은 적이 있는데, 정말로 아름답고 정직한 발언이었다고 생각한다. 리얼리티는 이런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도, 디자이너로서 반드시 무언가를 해야만 한다! 우린 빅토리언 드레스를 입은 제이미로부터 영감을 얻었다.

제이미가 누구인가?
M.J 제이미 보체트. 우리에게 영감을 주는 피팅 모델이자 뮤즈다. 한여름에 칠흑 같은 검은 헤어를 휘날리며 빈티지 빅토리언 드레스 차림으로 들어서는 그녀는 진짜 쿨해 보였다. 우린 당장 빅토리언 시대를 탐구하기 시작했고 빅토리언 블라우스에 서핑 쇼츠를 매치해보았다. 난 아름다운 빅토리언 블라우스에 남자친구의 서핑 쇼츠를 입은 채 거리를 활보하는 광경이 정말 근사할 거라 생각했다. 이 밖에도 빅토리언 시대를 택한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피핀, Pippin>의 마지막 장면에선 빅토리언 블라우스에 열대의 퀼트 프린트를 매치한 타히티 여성들이 나오는데, 프라다의 남성복 쇼와 유사한 점이 보인다. 제이미가 우연히 빅토리언 드레스를 입고 들어선 탓도 있지만, 나름대로 이 모든 것 사이의 논리적 연결성을 찾으려 애썼다. 하지만 옳거나 그른 잣대는 없다.

‘논리적 연결성’이란 정확히 무엇을 뜻하나?
M.J ‘논리적’이란 표현은 거창하게 오인될 수도 있지만, ‘클래식’과 ‘새로움’을 잇는 연결고리로 이해해주길 바란다. 지금껏 경험한 것들의 무작위 나열이 아니라 일종의 ‘실’로 연결했다는 뜻이다. 어쩌면 ‘논리적’이란 표현보다는 ‘가닥으로 이은’ 연결성이라는 말이 더 낫겠다.

그렇다면 그 연결성을 어떻게 찾아낼 수 있는가?
M.J 그건 ‘2+2=4’가 되는 논리가 아니다. 과학이나 수학이 아니기 때문에, 한여름에 온통 블랙으로 치장할지라도 그다지 기괴한 아이디어로 보이진 않는다. 만일 프라다가 봄에 밍크 코트를 내놓았다면? 한여름에 빅토리언 브레이드의 울 재킷을 선보였다면? 3,000달러짜리 울 재킷을 구입해 폭염 속에서 거리를 활보한다면? 이때 소재의 선택은 기후나 기온의 문제가 아닌, 패션의 문제다. 내가 원하고 어필하고 싶은 것에 관련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꼼데 가르송이나 프라다 재킷을 가을까지 기다릴 수 없다면, 더위 속에서 땀을 뻘뻘 흘릴지라도 괘념치 않을 것이다. 나 역시 이 겨울 코트를 석 달 전에 구입했는데, 당장 입으려는 의도에서는 아니었다. 하지만 내가 갖고 싶어서 사들인 것이다.

어떤 코트인가?
M.J 퀼트 라이닝의 프라다 가죽 코트다. 적어도 3~5달 사이는 입지 못할지라도 신경 쓰지 않았다. 내가 원한 것이기 때문이다. 패션을 사들일 때 매번 굳이 이유를 붙일 필요는 없다. 옷은 때론 욕망과 갈망에 관한 것이다.

얼핏 이해가 가지 않는 이분법처럼 들린다. 우린 모두 패션이 실용적인 필요성 때문만은 아니라는 점에 동의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런웨이를 평가할 때 내게 필요한 것인지를 판단하지 않는가?
M.J 상황과 감정에 따라 절대적인 법칙은 없다. 실용적인 이유에서라면 난 함께 일하는 닉에게 ‘아메리칸 어패럴에서 새로 나온 티셔츠 세 장을 주문해달라’고 부탁할 수도 있다. 하지만 프라다나 꼼데가르송에선 ‘퍼로 된 꽃무늬 코트가 필요하다’며 손쉽게 얘길 꺼내긴 어렵다. 단순히 식사를 하고 싶을 때도 있고, 또 때론 꽃으로 장식된 식탁에서 코스 요리를 즐기고 싶을 때도 있다. 이건 실속과 영양이 아닌, 내가 추구하고 싶은 것과 분위기의 차이다.

3. 2011 S/S 루이 비통 쇼를 끝낸 직후 슈퍼모델들과 함께 기념 촬영을 하는 마크 제이콥스. 4. 루이 비통의 고별쇼에서 기립박수를 받은 그의 피날레 모습. 5. 루이비통 2011 F/W 시즌 호텔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은 마크. 쇼 직전 런웨이로 나가기 전 모델의 모습을 꼼꼼하게 점검하고 있다.

3. 2011 S/S 루이 비통 쇼를 끝낸 직후 슈퍼모델들과 함께 기념 촬영을 하는 마크 제이콥스. 4. 루이 비통의 고별쇼에서 기립박수를 받은 그의 피날레 모습. 5. 루이비통 2011 F/W 시즌 호텔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은 마크. 쇼 직전 런웨이로 나가기 전 모델의 모습을 꼼꼼하게 점검하고 있다.

마크 제이콥스 컬렉션의 세트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M.J 몇 년 전 스티븐 마이젤이 촬영할 때는 호화로운 마서즈 비니어드 섬이나 햄프턴 비치 등이 어울렸지만, 이 어두운 옷들에는 잿빛 해변가가 어울린다. 미드리프에 컷오프 진 차림으로 비치 발리볼을 즐기는 소녀들도 없기 때문이다. 음산하고 멜랑콜리한 이 해변가 분위기는 버닝맨 페스티벌에 더 가깝다. 또 내가 좋아하는 폴 매카트니 전시회에서 ‘WS’(스노 화이트를 화이트 스노로 뒤집은 것)라 불리는 설치예술로부터 힌트를 얻은 것이기도 하다.

쇼장 내부의 무더위도 의도한 것인가?
M.J 무더운 열기는 의도한 것이 아니다. 아모리 홀은 에어컨디셔닝 규정이 엄격한 데다가 그 주 내내 습도가 높고 뜨거웠다. 모두에게 불편을 끼치려는 의도는 아니었다.

마크 제이콥스의 주식 상장을 준비 중이라고 들었다. 파리에서 아르노 회장이 ‘더 많은 제품 라인의 확대가 필요하다’고 언급한 적이 있는데, 무엇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가?
M.J 제품 확대에 관해선 확실히 정해지진 않았다. ‘다음에 무엇을 할까? 애완견 스웨터를 만들어 바크 제이콥스(Bark Jacobs)라는 이름을 붙일까?’라는 농담을 던지다가도, 만일 이 아이디어가 쓸모 있다는 판단이 든다면 일단 시도해본다. 반면 아이디어가 효과적이지 못하다면, 우린 중도에서 포기하고 다른 걸 다시 시작한다.실제로 10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우리가 코즈메틱 라인을 만들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첫 향수를 만들 때도 그랬는데, 우리가 향수를 만들었다는 것 자체가 진짜 놀라운 일이었다. 지금도 향후 몇 년간의 제품이 무엇이 될지는 모르지만, 난 그 어떤 가능성에도 열려 있다. 물론 회사가 투자자들의 관심을 끌려면 흥미로운 계획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좀더 대규모의 리테일 확대가 이뤄져야 한다는 사실도. 하지만 비즈니스적인 DNA라든가 혹은 향후 라이프스타일 등은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단어이다.

DNA라는 말에는 거부 반응이 느껴진다.
M.J 어느 날 갑자기 패션 피플들이 과학자나 경제학자처럼 말하기 시작했다. 그런 말들을 들으면 내 속이 뒤집힌다. 미시적 혹은 거시적인 관점이라든가 지속 가능한 개발성 등등은 머릿속을 뒤엉키게 만든다. 게다가 라이프스타일은? 도대체 무엇이 이상적인 라이프스타일인가? 스포츠를 즐기고 보디가드를 이끌면서 전용기로 전 세계를 여행하는 것? 아님 금박을 입힌 백을 들고 다니는 것? 그렇다면 이 얼마나 진부한 라이프스타일인가! 내 삶의 스타일을 창조해내는 데 전용기나 근사한 백은 필요치 않다. 그건 한여름에 남들 다 입지 않는 블랙을 택한다거나 혹은 특별한 타투나 피어싱이 될 수도 있다. 아니면 뻔한 아이디어에서 벗어나 미학적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또 다른 형태가 될 수도 있다.

혹시 당신에게 흥미롭지 못한 걸 억지로 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은 들지 않는가?
M.J 난 다음 쇼를 걱정할 따름이다. 너무 앞질러서 걱정할 필요는 없으며, 막연한 걱정이나 불안
역시 대화를 통해 얼마든지 구체화할 수 있다. 대화를 통해 에너지를 얻고 머리도 얻는다. ‘다음에 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무언가를 해내거나 시작해야 할 때 난 두 가지 방식을 적용시키고 한다. 하나는 비평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고, 그런 다음에는 이를 타협이 아닌 창조적인 도전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미래의 결정은 무엇이 될지는 모르지만, 지금까지의 내 모습이 아닌 ‘앞으로의 나’가 되어줄 것이다. 그 어떤 예민하고 날카로운 문제들을 논의하든지, 이는 새로운 출발이자 제 2의 기회이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곳에 있더라도, 그게 가치나 아이디어를 잃는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난 또 다른 곳으로 향하는 여정을 위해 늘 열린 마음을 유지할 생각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꼼데가르송 컬렉션은 모르지만, 티셔츠에 새겨진 두 눈과 심장 모양의 로고에는 익숙하다. 일상 속에서 쉽게 판매되는 아이템은 나에게도 중요한 문제다.

지난 몇 년간 당신의 미학은 어떻게 바뀌어왔나?
M.J 내 생각엔 거의 변화가 없는 것 같다. 난 수많은 것에 흥미가 많고 시각적인 자극을 많이 받는다. 내가 보는 것에 쉽게 매혹당하기 때문에 아티스트들로부터 많은 걸 배운다. 또 뮤지션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도 흥미롭기 때문에 그들의 음악에 귀를 기울이곤 한다. 뉴욕에서 펑크 밴드의 음악을 듣기 시작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펑크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 아주 마음에 든다!

당신은 펜디의 칼 라거펠트와 샤넬의 칼 라거펠트에 이어 세 번째로 가장 오래 고용된 디자이너였다. 현재는 짧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직도 고려하고 있는가?
M.J 패션의 모든 것은 사이클을 지니며, 지금이 한 주기가 끝나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톰 포드가 구찌로 갔을 때 새로운 사이클과 활기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구시대적 하우스를 소생시키는 일’이라든가 ‘잇’ 백이라 말은 이제 옛말이 되었다. 이러한 주제는 영원히 지속되진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샤넬의 칼을 대체할 만한 누군가를 상상조차 할 수 없지만, 언젠가는 모든 것이 바뀌어버린다. 이는 개별적인 상황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의 반복을 말하는 것이다. 만일 역사가 반복된다면 지금이 절정에 이르렀다는 생각이다. ‘잇’ 백에 대한 대화 역시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핸드백이 잘 팔리지 않을 거라는 얘기는 아니다.

수년 전 ‘나에게 중요한 건 오직 패션이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이 생각에는 여전히 변함이 없는가?
M.J 맞다. ‘이건 할 수 없고, 이건 원치 않는 것이야!’를 반복하면서 감정적 기복과 변화들을 거쳐왔지만, 다음 날에는 또 똑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 이건 창조적인 밀물과 썰물의 과정이어서, 당시엔 고통스럽지만 지나보면 애착이 느껴지는 것이다. 난 일하기를 좋아하고 결정을 내리기도 좋아한다. 불가능하거나 어렵다고 느껴질 때 헤쳐나가는 것도 좋아하고. 난 좌절한 뮤지션이나 배우가 아니다. 늘 패션을 사랑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패션은 내 자신을 표현하는 본능적인 형태이기 때문이다. 글 / Bridget Fol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