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의 초심이 반듯하게 재단된 요지 야마모토의 롱 블랙 재킷.

요지 야마모토의 롱 블랙 재킷은 내게 또 다른 이름으로 불린다. 바로 내 생애 첫 퇴직금으로 산 재킷. 그리고 더블유의 패션 에디터가 된 직후, 하이 패션을 열망하던 나의 자화상을 담은 재킷.

때는 2008년 2월, 당시 난 첫 직장이던 다른 잡지를 떠나 더블유에 합류하는 커리어의 큰 전환기를 맞이했다. 머리 속에 ‘하이패션이란? 그렇다면 하이패션을 다루는 더블유 에디터로서의 애티튜트란?’ 하는 물음표가 쿠사마 야요이의 도트처럼 증식한 채로. 그러던 중 내게 주어진 첫 미션은 당시 핫하게 떠오른 디자이너 리차드 채와의 인터뷰였다. 지금 생각하면 피식 웃음이 나지만 그 땐 정말 심각하게 그에게 더블유 에디터로서 어떤 면모를 보이고, 그러려면 어떤 옷을 입고 나가야 할까를 고민했다. 마치 소개팅에 나가는 여대생처럼 걱정과 흥분, 그리고 설렘을 가득 안고서. 그러던 중 청담동의 한 멀티숍에서 고민에 마침표, 아니 느낌표를 찍어 줄 완벽한 테일러링의 재킷을 만났다.

연미복을 연상케 하는 독창적인 디자인, 무엇보다 옷걸이에 걸어놓았을 때 여느 재킷처럼 소매가 툭 떨어지지 않고 부드럽고 유연하게 능선을 그리는 매력적인 재킷 말이다. 결국 인터뷰는 순조롭게 마무리 되었고, 지금도 난 이 재킷을 보면 타임머신을 탄 듯 그 때의 나를 되돌아본다. 능숙하고 익숙해져 지금은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지는 일들이 하나하나 또렷한 감흥으로 다가왔던 순간을. 그래서 지금보다 한 뼘은 더 치열하게 고민하고 열망했던 그 때의 순수함을. 그리고 재킷 하나가 불러 일으킨 이 아스라한 감정이 어느새 생활에 단련되어버린 내 머리와 몸과 가슴을 다시금 열정으로 뜨겁게 지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