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침없이 하이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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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 서른이 되기도 전에 패션계에서 가장 빛나는 별로 떠오른 남자. 그 누구보다 빠르고 거침 없이 질주하는 디자이너 J.W. 앤더슨을 만났다.

J .W. 앤더슨의 스튜디오는 런던 동부 셰클웰 레인의 60년대 느낌이 물씬 풍기는 사무실 밀집 지역에 있다. 미로 같은 통로를 지나 안으로 들어가자 먼저 눈에 띈 건 그의 최신 컬렉션 의상들이었다. 한쪽 벽면에는 스케이트보드가 걸려 있고, 창가에는 화분과 일본식 고양이 장식이 반복적으로 손을 흔들고 있었다. 조너선(그의 이름 JW에서 J는 조너선을 의미한다)이 책상에 앉더니 바로 담배 한 개비를 꺼냈다. 그런데 담배를 꺼내든 이 매력적인 외모의 아일랜드 남자를 ‘그저 잘하는 디자이너’고 표현하기엔 어딘지 아쉽다.

2007년 남성복으로 데뷔하고 2010년 여성복을 론칭한 그는 톱숍과의 성공적인 협업으로 화제에 오르는가 싶더니 작년에는 영국 패션 어워드에서 떠오르는 재능(Emerging talent)상까지 거머쥐었다. 그러고 나서 그는 심지어 도나텔라 베르사체의 총애를 받아, 베르수스를 위한 캡슐 컬렉션의 디자인을 맡기에 이르렀다. 와일드한 프린트의 크롭 톱, 놋쇠 컬러의 안전핀과 골드 메두사를 장식한 미니 드레스를 선보인 컬렉션은 역시나 뜨거운 호평을 받았다. 그런데 이 엄청난 것을 이루고도 여전히 20대인 이 남자는 이미 열혈 추종자를 거느린다. 히트 상품만 해도 여럿이다. 감치기 처리를 한 가죽 셔츠, 버블검 핑크색의 50년대 스타일 합성고무 소재 풀 스커트, 격자 체크 패턴의 스웨터, 그리고 2011 F/W 시즌의 라텍스 트리밍이 들어간 페이즐리 패턴의 컬렉션까지. 그는 이 컬렉션으로 자신의 이미지를 ‘지금 주목해야 할 시선’이 아닌 ‘지금 우리가 원하는 옷’으로 굳히는 데 성공했다.

이쯤에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보자면 J.W. 앤더슨은 북아일랜드 마러펠트의 작은 마을에서 성장기를 보냈다. 그의 아버지는 전 럭비조합의 선수였고, 지금은 럭비 코치이며 어머니는 현지 학교에서 국어 선생님이다. “전 공부를 못했고, 특히 국어 시간에는 늘 간담이 서늘했죠. 지독한 난독증이 있거든요. 특히 글을 쓰는 데 있어서요. 사람들이 제가 쓴 글을 보면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하더라고요.” 그에게는 이메일로 간단한 답변을 하는 일이 복잡하게 주름 잡힌 네크라인을 만드는 일보다도 어려운 일이다. “저에게는 엄청난 시련이죠. 저는 끊임없이 맞춤법이 맞았는지 확인해야만 해요.” 반면 그의 뛰어난 창조성은 그의 할아버지로부터 받은 유산으로 할아버지는 리버티의 프린트를 공급하는 큰 섬유 회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였다. “할아버지가 일하는 모습을 보았어요. 오래되어 삐걱거리는 기계에서 블루 카무플라주 패턴이 찍혀 나오는 모습을 황홀하게 바라보곤 했지요.” 잠시 고개를 흔들더니 이렇게 말했다. “최근에 그곳에 가봤는데 호화로운 아파트로 바뀌어 있더군요.” 조너선의 할아버지는 섬세하고도 날카로운 감식안의 소유자로, 조너선과 그의 여동생에게 완벽해질 때까지 그림을 그리게 했다. “할아버지는 늘 비율에 집착하셨고, 그것을 또 완벽하게 재현하길 바라셨죠.” 어렸을 때부터 미의 기준에 대해 혹독한 훈련을 받은 셈이다.

“저는 옷에 대해 무척 민감했어요.” 그는 어렸을 때부터 보그 잡지의 광고 페이지를 뜯어 벽장에 붙여놓곤 했으며, 프라다의 카탈로그를 보면서 감각을 익혔다. “당시 엄청난 논란을 불러일으킨 톰 포드의 구찌 광고와 테리 리처드슨의 광고가 제일 기억나요.” 그는 부모님에게 옷장 문을 뜯어달라고 해 자신의 옷을 브랜드와 컬러별로 정리하는 데 시간을 보내곤 했다. “저는 거의 모든 옷을 TK Maxx에서 구입했어요.” 그는 어깨에 지퍼 장식이 있는 라임 그린 컬러의 모스키노 티셔츠, 패트릭 콕스의 신발, 장 폴 고티에의 세일러 티셔츠 같은 제품을 사들였다. “제 옷장은 말 그대로 TK Maxx에 버려진 제품들로 가득 차 있었죠.” 웃으면서 그가 말했다. 그는 구찌 진을 사기 위해 원예용품점과 레스토랑에서 돈을 벌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대단했죠.” 평범한 진, 부드러운 캐시미어 소재의 회색 스웨터에 컨버스를 신은 현재의 그를 보면 당시의 모습을 상상하긴 힘들다. 하지만 그건 정말 10년이 넘은 오래전의 이야기다.

한때 그는 연기에도 열정을 보였다. 18세에는 워싱턴 DC에 있는 셰익스피어 극단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때, 저는 정상이 아니었던 것 같아요. 또래의 아이들처럼 파티에 가지도, 나가 놀지도 않았어요. 그래도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가 제 인생의 전성기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18개월을 극단에서 보내면서 연기를 익히고 제임스 딘과 50년대의 문화에 심취하기도 했다. 그러다 뉴욕의 유명 공연 예술 학교인 줄리어드에 지원했다. “인터뷰를 보러 갔는데, 완전히 망쳤어요.” 그가 말했다. “필립 리들리의 <피치콕 디즈니>의 한 부분을 연기했는데 게이 역할이었어요. 연기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내가 뭐하고 있는 거지? 이 학교에 다니게 된다면 부모님 허리가 휘어질 게 뻔한데. 아마 장기를 팔아야 할지도 몰라.’ 그래서 저는 오디션을 중간에 멈추고 시험장에서 나왔습니다.” 그는 아일랜드로 돌아가서 다시 패션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리고 더블린에 있는 백화점의 남성복 파트에서 판매직을 시작했다. 그곳에서 프라다의 스타일리스트인 마누엘라 파베시를 소개받았지만, 그는 센트럴 세인트 마틴에 지원했다. 결국 세인트 마틴에 떨어지고 6개월 후 브로슈어를 얻기 위해 프라다 숍에 들렀다가 우연치 않게 파베시와 맞닥뜨리게 되었다. 그는 즉석에서 비주얼 머천다이저의 능력을 테스트받았고, 그 자리에서 직장을 얻었다. 그에게 학교는 더 이상 우선순위가 아니었다. “저는 제 보스가 엄청난 솜씨로 마네킹에 옷을 입히는 걸 바라만 보았죠. 그녀는 저에게 많은 걸 가르쳐주었는데 그중 하나가 절대로 남과 협상하지 말라는 거였어요.”

J.W. 앤더슨은 소재에 심하게 집착한다. “제겐 옷감을 다른 차원으로 끌어올리고 싶은 욕망이 있었어요. 저는 전통 소재를 좋아하지만 한편으로는 그걸 확 바꿔버리곤 하죠.” 그 좋은 예로는 양털처럼 만든 끓인 캐시미어(2010 F/W), 가짜 백조 털(2012 S/S), 빛나는 비닐(2012 F/W), 열을 가해 패턴을 가미한 새틴(2013 S/S), 광택 처리한 나일론(2014 F/W)에 이르기까지. 신기한 소재 중에서도 또 다른 ‘잠깐, 그걸, 무슨, 소재라고, 부른다고요?’라 말할 정도로 독특하면서도 중요한 소재가 있으니 바로 날개 돋친 듯이 팔리고 있는 메리노 울 스웨터다. Matchesfashion.com의 설립자 루스 챕먼은 그의 니트 웨어는 연일 매진 행진이라고 말한다. “즉각적으로 유행이 되어서 그 누구라도 탐내는 제품이 되었습니다. J.W. 앤더슨의 옷은 매장에 입고되자마자 패션 피플뿐 아니라 뜨겁게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습니다.” 이번 F/W 시즌 역시 주목할 만하다. 그중에서도 팔 부분을 밴딩 장식한 몸에 밀착되는 터틀넥은 반응이 너무 좋아서 리조트 컬렉션에서도 선보였을 정도였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조너선이 긴장을 풀고 쉴 때는 서점에 가거나 걷거나, 여러 카페를 순례하기도 한다. 그는 커피광이다. 하루에 십수 잔을 마실 정도다. “그는 잠을 거의 자지 않아요. 그의 에너지는 커피와 말보로 라이트에서 나옵니다.” 조너선의 친구이자 LN-CC의 공동 설립자인 샬롯 홀이 말했다. “그는 늘 심사숙고하고 남과 타협하지 않아요. 생각이 많고, 남들보다 앞서서 생각하려고 애쓰죠. 옆에 있다 보면 그의 머리가 팽팽 도는 소리가 들릴 정도라니까요. 그의 작업을 보면 그 누구도 흥분하지 않을 수 없죠.” 그리고 조너선은 자신의 목표를 숨기지 않는다. “전 이 브랜드가 저보다 오래 살아남길 바라요. 그게 제 최종 목표죠.” 그의 말은 그리 놀랍지 않다. 이 아일랜드인은 겨우 두 시즌 만에 자신의 로고 JWA를 만들어낸 인물이 아닌가!
인터뷰를 마치기 직전에 나는 아직 미완성처럼 보이는 컬러 프린트의 J.W. 앤더슨 광고 비주얼을 보게 되었다. 이를 두고 그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늘 광고를 기억하잖아요? 그렇지 않나요? 저에게는 광고가 제일 오래가는 것 같아요. 광고란 건 가방과 옷을 파는 도구지만 그걸 넘어서 누군가는 뜯어서 벽에 붙여놓는 그런 존재가 되길 바라요.” 불현듯 북아일랜드 너머 어딘가에서 한 십대 소년이 J.W. 앤더슨의 광고 페이지를 뜯어서 침실 벽에 붙이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10여 년 전 그가 그러했듯이

에디터
글 / Sarah Harris
포토그래퍼
SCOTT TRINDLE, COURTESY OF VERS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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