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백민석이 돌아왔다. 10년 만이다.

“당시 나는, 작가로서의 나를 죽였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나의 나머지를 살게 했던 것이었다. 나를 계속 살게 했던 것이다.” 백민석은 10년 만에 펴낸 소설집 <혀끝의 남자>에 수록된 ‘사랑과 증오의 이모티콘’에 이렇게 썼다. “글도 쓰지 않았고 연락도 끊어버렸으며 내 전직에 대해 어떤 이야기도 입에 올리지 않았다. 그 뒤로 서울로 올라와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이력서에서 내 작가로서의 모든 이력을 빼버렸다”.라고 쓰기도 했다. 무정하게 소설에 등돌린 이유를 듣는 데, 그리고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듣는 데 꼬박 10년이 걸린 셈이다. 그렇게 고스란히 ‘절필의 변’이라 할 수 있는 소설 한 편, 기존에 발표했으나 완전히 고쳐 쓴 소설 일곱 편, 그리고 인간이 왜 종교를 믿는가를 탐구하는 표제작 한 편까지 총 9편의 소설을 담은 <혀끝의 남자>를 들고 돌아온 소설가 백민석과 마주 앉았다. 절필한 이유를 묻지 않았다. 다만 왜 돌아왔느냐고 물었다.

10년 만이다. 다시 돌아온 소감은?
무덤덤하다. 설레일까 봐? 별로 안 그렇다. 그렇게 예민한 사람이 아니다.

새 소설집 <혀끝의 남자>에 수록된 ‘사랑과 증오의 이모티콘’을 읽고, 걱정하면서 이 자리에 왔다. “나는 언론에 기사가 나는 것에서 아무런 의미도 발견하지 못하고 있었다”라고 쓰여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마찬가지인가?
그렇다. 하지만 책을 내고 인터뷰를 하는 건, 나만을 위한 게 아니라 사실은 출판사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책이 많이 팔리면 나한테만 좋은 게 아니라, 출판사에도 좋은 거고. 책을 내느라 돈을 많이 썼는데, 어떻게든 손해를 덜 보게 해줘야 하지 않겠나.

의무감이란 뜻으로 들린다.
맞다. 그런데 예전엔 이런 의무감조차도 없었다. 그땐 너무 어렸으니까.

‘사랑과 증오의 이모티콘’은 절필 당시의 작가 자신에 대한 이야기다. 그렇게 소설로 쓰기로 마음먹은 이유가 있다면?
자꾸 물어봐서 그랬다. 만약 그러지 않았더라면, 지금도 질문했을 거 아닌가. 왜 그만두었냐, 그만둘 때 심정이 어땠냐 하고. 처음부터 쓸 생각은 아니었는데, 어느 술자리에서 평론가 한 분이 자꾸만 물어보기에 소설로 써서 책으로 만든 거다. 그리고 사람이 어떤 행동을 했으면 다른 사람들이 납득할 만한 이유가 있어야 하기도 하고. 그래서 겸사겸사 썼다.

정말 지난 10년간 아무것도 쓰지 않았나? 일기라도? 끼적거리는 메모라도?
전혀. 그사이에 방송통신대학교를 졸업했는데, 그때 졸업 논문 쓴 게 전부다.

그래도 ‘도서관 소년’답게 “책은 계속 읽었다”고 말했다.
책은 많이 읽었다. 소설보다는 주로 인문학 책을 읽었다.

소설을 일부러 멀리한 건가?
소설엔 관심을 끊은 시기였으니까. 그런데 그사이에 우리나라 문학 시장이 워낙 줄어들었지 않나. 굳이 뒤져서 찾아보지 않는 이상 눈에 띄지가 않았다. 검색사이트 메인 화면에 문학에 대해선 뜨지 않으니까. 일부러 검색해서 찾아보지 않고는, 정말 10년 동안 문학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살 수 있더라.

지난 10년 사이 부쩍 침체된 출판 시장을 체감하고 있나?
나의 경우 신간을 내면 1년 동안 4천 권 정도를 팔았다. 내 또래 소설가 중에 내 책이 가장 잘 안 팔렸는데도 그 정도였다. 그런데 요즈음은 초판을 1천 권 찍는데도 그마저 다 못 팔고, 재판을 찍어봤자 5백 권이라도 하더라. 이게 말이 되나? 아무리 사람들이 트위터 같은 SNS만 한다고 해도, 어떻게 10년 만에 시장이 3분의 1로 줄어드나?

직장도 그만두고 전업 작가로 돌아왔는데 걱정되겠다.
또 한두 권 발표하고 직장 구해서 살아야지. 지금은 그동안 벌어놓은 거 까먹으면서 살고 있다. 글 써가지곤 생활이 안 된다.

그런데도 왜 돌아왔나?
당시 우울증이 심했는데 많이 나았다. 글 쓰는 데 별로 지장이 없을 것 같았다. 그것밖에 없다.

사람들은 백민석이 절필한 데에도, 다시 쓰게 된 데에도 엄청난 뜻이 숨어 있으리라 예상한다.
그게 언론의 마법이다. 사람이 신문에 좀 나면 뭔가 대단한 사람인 것 같지만, 사실은 아니다. 별거 없다. 지난여름 문학과지성사 주일우 대표로부터 전화가 왔고, 계속 쓰라 그러고, 나도 좀 쓸 만하게 됐고, 모아놓은 돈도 있고, 그냥 그렇게 된 거다.

기존의 발표작 가운데 7편을 ‘첫 문장부터 끝 문장까지 지금 여기의 시점으로 모두 고쳐’ 쓰기 위해 다시 읽었을 것이다.
부끄럽기만 했다. 우울증이 심한 상태에서 글을 썼기 때문에 글도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래서 많이 후회했다.

더 열심히, 제대로 쓸 걸 하고?
아니, 좀 일찍 그만둘 걸 하고. 더 망가지기 전에.

가난한 유년의 경험에서 기인하는 증오와 분노는 백민석의 소설을 규정하는 큰 부분이었다. 과거의 백민석과 지금의 백민석이 그러한 무자비한 자본이나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에 차이가 있다고 느끼나?
예전엔 송곳처럼 뾰족뾰족했다. 지금은 나이가 들어서 구부러지고, 무뎌졌다. 좋게 표현하면 부드러워지고 너그러워진 거지만, 그게 걱정되기도 한다.

90년대엔 본인의 의도와 상관없이 ‘신세대’를 상징하는 작가였다. 그런데 이제 마흔이 넘었다. 지금은 독자들과 무엇을 나눌 수 있을까.
중년의 이야기. ‘사랑과 증오의 이모티콘’과 같은 글도 내 나이 때나 쓸 수 있는 거지, 어렸을 때 쓸 수 있을 것같나? 못 쓴다, 어린 나이엔. 그런 통찰력이 안 생길걸? 나처럼 중년이나 돼야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눈이 생긴다.

다시 쓴 7편의 소설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믿거나말거나박물지사’가 사라졌다는 점이다. <믿거나말거나박물지> 연작에 등장하는 이 벤처 기업은 세상에 없을 법한 모든 일이 일어나는 배후에 존재하는 거대한 시스템이었다.
음식도 유통기한이 있지 않나. 10년이란 공백이 있었기 때문에, 과거의 연작이 먹힐 만한 시효가 끝났다고 여겼다. 그리고 세상은 그렇게 하나의 힘있는 존재에 의해 움직이는 게 아닌 것 같다. 어릴 땐 그렇게 의심하기도 했지만, 나이를 먹고 세상을 알아가다 보니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다. 그러기엔 세상이 너무 복잡하고, 산만하고, 사람들이 말을 안 듣는다.

표제작 <혀끝의 남자>는 15년 전의 인도 여행으로부터 시작된 것으로 안다. 소설이 되어 나오는 데 15년이나 걸린 셈이다.
어느 책인가 작가 후기에 썼다. 인도 여행에 관해 쓰다가 망쳐서 딴 이야기를 썼다고. 당시엔 인도에서의 경험을 어떻게 쓰면 좋을지 몰랐다. 그런데 15년 동안 생각도 하고, 나이도 먹고, 책도 읽다 보니 이제는 좀 소설이 돼서 나오더라.

그 이야기의 주제는 결국 ‘종교’였다. 현재 준비하고 있는 장편 소설 역시 종교에 관한 이야기인 것으로 안다.
종교에 대해 품은 의문이 있다. 왜 사람들은 종교에 끌릴까, 왜 교회에 가고 사찰에 갈까, 왜 신을 믿고, 왜 신을 위해 폭탄을 들고 테러를 할까. 나도 그 이유를 모르겠어서, 궁금해서, 소설을 쓰면서 알아가는 과정에 있다.

현재까지 내린 답은 무언가?
사람이 엉터리라 그런 것 같다. 사람은 워낙 엉터리고, 삶이란 건 원래 비참하니까, 자신보다 더 나은 존재에 의지하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으니까.

10년 만에 다시 소설을 쓰기 시작한 작가가 만들어내고 의지하고 싶은 신은 결국 혀끝에 있었다.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고, 말을 쓰는 사람이니까.

작가의 말 마지막에 “가장 소중한 독자는 나 자신이다”라고 썼다. <혀끝의 남자>는 가장 소중한 독자를 만족시켰나?
최소한 부끄러운 짓은 안 했다.

부끄러운 짓?
남을 위해 쓰는 것. 이를테면 잘 팔리는 소설을 쓰고자 한다던가, 문단의 힘 있는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이야기를 쓰는 것. 내 실력이 부족해서 이것밖에 안 나온 건 할 수 없다고 해도 최소한 부끄러운 마음은 없다.

10년 전엔 소설을 쓰는 게 자신의 나머지를 죽일 만큼 고통스러운 일이었다면, 지금은 달라졌나? 10년이나 쉬지 않았나.
다들 놀라긴 하더라. 어떻게 하루아침에 그만 둘 수 있는지, 또 10년간 전혀 쓰지 않다가 갑자기 쓰고 발표할 수 있는지. 하지만 나는 그냥 아침에 일어나서 밥 먹는 것처럼 쓰고 있다.

도대체 글 쓰는 재미란 무언가?
아이들이 조립식 장난감 다 만들고 나면 기뻐하고 좋아하지 않나. 똑같다. 없던 걸 만들어내는 쾌감이 마약 같다. 그게 없으면 못 사니까 글을 못 끊지. 힘들면서도, 그게 좋아서, 거기에 취해서.

10년이나 글을 끊었지만, 그 마약의 맛을 알고 있나 보다.
그럼. 이 세상에 없던 어떤 게 만들어지는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