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가게와 새로운 가게가 공존하며 지금에 이른 동네, 연희동과 연남동. 서로를 밀쳐내는 대신 앞서거니 뒤서거니 함께 걷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연희동-OLD

목란 • 이연복
처음 목란의 문을 연 건 99년 즈음이었습니다. 연희동으로 이사온 지는 이제 두 달 정도 됐어요. 지금까지 여러 번 옮겨 다녔는데, 이곳이라면 오래 할 수 있겠다는 감이 왔죠. 예정보다 이사가 늦어지면서, 한 달 남짓 400통이 넘는 전화를 받았어요. 언제 다시 오픈하느냐고. 참 고마워서 ‘연락요망1, 연락요망2’ 이렇게 적어두었습니다. 다 이름을 받아 적을 순 없어서요. 그리고 다시 오픈할 때다 연락을 드렸습니다. 자리를 옮겼지만 음식은 그대로입니다. 중국 본토의 음식을 한국 사람 입맛에 맞게 변화를 준 한국식 중화요리라고 하면 맞겠네요. 물론 미리 주문해주신다면, 동파육처럼 정통에 가까운 요리도 가능합니다.

하루종일 불 앞에 서서 음식을 만드는 게 힘들기는 합니다. 쉰을 넘기면 다른 사람한테 맡겨놓고 즐기자 그랬죠. 그런데 워낙 오래된 단골이 많다 보니, 내가 주방을 비우면 딱 알아요. 한 번은 방송 촬영을 하러 갔다 들어왔더니, 아내가 손님에게 혼나고 난리가 났더군요. 그 이후 식당이 열려 있을 땐 절대 자리를 비우지 않습니다. 목표도 다시 잡았습니다. 앞으로 10년, 예순다섯으로요. 그때 즈음이면 믿고 맡길 만한 친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사실 우리 식당이 유난히 힘들거든요. 요즈음엔 캔과 같은 완제품이 많이 나오지만, 우리는 최대한 원 재료를 사서 손질하니까요. 재료의 본래 맛을 살리기 위해서죠. 남들은 미련하다 할지 모 르겠지만, 요리는 언제나 처음 마음으로, 겸손한 마음으로 해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피터팬1978 • 박지원
“시작은 1978년 사러가쇼핑 근처의 아주 작은 점포였습니다. 그땐 ‘큰 사장님’인 아버지가 영화처럼 자전거에 빵 싣고 돌아다니며 배달하셨어요. 이 동네에서 오래 산 분들은 아직도 그 자전거 사장님의 빵을 기억하죠. 전 어릴 때부터 절대 빵집은 안 할 거라고 했습니다.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아니까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피터팬이 예전 같지 못하다는 이야기가 들려오더군요. 난 우리 빵집이 정말 최고라고 생각했는데, 아쉬운 마음에 회사를 관두고 합류했습니다.

11년 만에 인테리어도 새롭게 했고, 젊은 분들 입맛에 맞는 빵도 만들죠. 물론 팥과 떡은 여전히 아버지가 책임지고 계세요. 우리집 팥빵, 빙수, 찹쌀떡 정말 유명하거든요. 주로 연희동 토박이 손님들이 찾아오시는 빵집이라, 옛날 빵도 지켜가고 있습니다. 그분들이 딸도 데려오고, 손자 손녀도 데려오실 때가 제일 기쁘거든요. 그런데 아이나 어르신들은 요즘 유행하는 거친 건강빵을 드시기 힘들잖아요. 다행히 요즈음 손님이 다시 많이 찾아주셔서 기쁜데, 그게 또 걱정입니다. 장사 잘되는 것도 좋지만 원래 동네 분들이 우리 빵을 식사 대신 드시곤 했는데, 그분들이 오래 기다리셔야 하거나 빵이 다 떨어지면 죄송한 마음이 들어서요. 제가 그분들 덕분에 이 동네에서 공부하고, 학교 다니고, 이렇게 자랐으니까요. 그래서 우리 빵을 드시는 분들이 피터팬처럼 늙지도 죽지도 않으셨으면 하는 마음으로. 건강한 빵을 만들어야겠다고 늘 다짐합니다. 얼마 전엔 이름도 피터팬1978로 바꾸었습니다. 툭하면 생기고 툭하면 사라지는 시대에, 아버지가 한자리에서 이토록 오랫동안 빵을 만들어오셨다는 데 자부심이 있거든요. 전 이제 겨우 3년 넘었는데도 죽을 만큼 힘들지만, 제가 과연 몇 년까지 이어갈 수 있는지 두고 봐야죠.”

연희동-NEW

봉쥬르밥상 • 서종금
제가 사실 잘할 줄 아는 음식이 별로 없어요. 그런데 내 설렁탕만큼은 딸들이 참 좋아했어요. 다른 건 모르겠고 조미료 안 쓰고, 좋은 재료로, 정직하게 만들 자신은 있었죠. 그래서 저 앞에 ‘봉쥬르밥상은 정직입니다’라고 써두었잖아요. 특히 사골, 도가니, 스지로 국물을 우려낸 뽀얀봉밥탕은 저의 자부심이에요. 핏물 빼고, 솥에서 팔팔 끓이고, 불순물 제거하고, 정말 고된 과정이거든요. 불은 출근해서 퇴근할 때까지 끄지를 않아요. 심지어 쉬는 날에도 나와서 불을 켜놓을 정도죠. 그런데 사실 국물 빼놓곤 거의 다 우리 큰딸 윤지가 합니다. 이곳을 준비할 즈음, 회사를 그만두고는 자기를 끼워주면 안 되겠느냐고 하더군요. 얼떨결에 작은딸까지 함께하게 돼서 나와 27세, 24세의 두 딸까지 셋이서 하고 있습니다.

제가 어제도 그랬어요. 엄마가 뽀얀봉밥탕을 만들 때 너네는 이 재료로 10그릇을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8그릇을 만들고 싶다고. 좀 더 진한 국물을 만들고, 그래서 정말 이 맛이다라는 생각이 들게 하고 싶다, 그러니까 나를 좀 이해해다오. 아직 어려서 그런지 제가 볼 땐 쟤들이 인색할 때가 있거든요(웃음). 그래도 이렇게 하는 건 다 딸들 덕분이에요. 제가 거짓으로 할 수 있는 게 없거든요. 난리가 나요. 사실 전 집에서도 도마를 두 개 써본 적이 없어요. 그런데 딸들이 누가 그렇게 하느냐고, 도마를 용도별로 몇 개나 사두었는지 몰라요. 재료 역시 딸 앞에서 꼼수를 부릴 수는 없잖아요. 무엇보다 지난 몇 달 소신껏 해도 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어요. 처음에 날씨 따뜻할 땐 하루에 한 그릇 판 적도 있거든요. 그런데 얼마 전엔 어떤 여자 손님이 소고기부추비빔밥을 정말 부추 한 조각 남기지 않고 싹싹 드셨더라고요. 너무 좋아서 사진으로 찍어두었다니까요.

제나나 • 최현숙
“하던 일을 그만 두고 스물 여섯이 되었을 때, 평생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음식에 관심이 많아 커피, 케이크, 빵 등을 차례로 배웠어요. 그런데 진짜 시작은 삿포로 여행에서 찾아왔죠. 당근이 유명하다는 훗카이도의 어떤 지역에서 당근으로 만든 잼을 맛보았는데 정말 맛있는 거예요. 레시피를 물었더니 ‘우리는 설탕을 과일이나 채소 같은 본 재료 양의 20%만 넣고 만든다’고 하더군요. 우리나라엔 왜 이런 잼이 없지? 하면서 한국에 돌아와 그대로 만들어봤더니, 이게 참 좋은거예요. 그러면서 나는 설탕을 더 적게 15%만 넣어야겠다, 재료도 유기농 제철 과일만 사용해야겠다, 설탕도 유기농 비정제 설탕만 사용해야겠다 이렇게 하나 하나 업그레이드시키면서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먹고 탈 나는 음식을 만들고 싶진 않았거든요.

권리금 없는 곳, 월세 싼 곳을 찾다 보니 연희동 가운데서도 이렇게 구석에 자리 잡게 됐어요. 그래도 내가 맛있는 걸 팔면 언젠가 사람들이 찾아오지 않을까 이런 말도 안 되는 객기가 있죠. 사실 한창 빵에 관심 가지고 있을 때 홍대 ‘폴앤폴리나’ 오픈 멤버로 일했거든요. 당시 폴앤폴리나도 문을 닫아야 하나 고민할 정도로 힘겨운 시간을 보냈지만, 좋은 빵을 만드니까 결국은 잘되는 과정을 목격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지도 몰라요. 그래도 얼마 전부턴 돈을 벌진 못해도, 월세 낸다고 남편한테 돈 달라고 하지 않을 정도는 되어가고 있어요. 나중에 정말 잼으로 돈을 벌게 된다면, 여기 딱 두 배만 한 공간에서 잼을 만들고, 체험하고, 계절별 잼을 소개하는 작은 박물관을 만들고 싶습니다.”

연남동-OLD

홍복 • 손선빈 & 유국명
“98년 즈음, 홍복이란 이름의 만두 가게를 처음 열었습니다. 그러다 근처에 양꼬치와 중화요리를 하는 식당을 하나 더 열었고요. 지금의 홍복으로 하나로 합친 지는 7~8년 되었네요. 우리 동네에서 중화요리 집을 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그렇듯, 우리도 화교 2세 혹은 3세예요. 근처 연희동에서 학교에 다니고, 기숙사에서 살고, 그리고 이렇게 장사를 하게 된 거죠. 이 동네 중화요리를 보고 어딘 산둥 지방 스타일이고, 또 어딘 대만 스타일이라고 하기도 하지만, 사실은 그냥 우리집 스타일이에요. 집에서 먹던 대로 하는 거지, 하나로 결정된 스타일이 있겠어요.

요리 역시 어깨너머로 배웠습니다. 집에서 만두를 해먹을 때 만두 찜기로 옮겨라, 반죽 치대라, 만두피 밀어라, 만두 속 넣어라 그렇게 하나하나 따라하다 시작한 거죠. 우리집 왕만두가 유난히 크잖아요. 한국 손님들은 반만 먹어도 깜짝 놀라고, 다 먹으면 배부르다고 난리예요. 그런데 중국 사람들한텐 만두가 주식이거든요. 생일날 먹고, 아침에 심심하면 먹고, 밥하기 싫으면 먹죠. 처음엔 한국 사람에게 팔기보다는 중국 사람들이 많이 먹는 만두를 만든 거라, 그렇게 큰 만두를 만든 거예요. 그런데 최근 젊은 손님들이 부쩍 늘어난 걸 느낍니다. 요즈음 이 동네에 대해 신문에 많이 나와서 젊은 사람들이 많이 온다고 손님이 그러시더라고요. 좋죠, 젊은 사람들이 많아지면 활기가 넘치니까요. 우리집은 메뉴판에 없는 요리도 많이 해드리고 있어요. 메뉴판에 써놓으면 그 재료를 항상 준비해야해서 힘들거든요. 새벽 시장에 갔다가 생선이 좋은 날엔 생선찜도, 탕수어도 해드리곤 하죠. 그러니까 무언가 드시고 싶을 땐 전날 미리 전화해서
말씀해주세요. 그러면 손님은 맛있는 거 먹어서 좋고, 우린 아침에 새벽 시장 한 바퀴 도니까 좋죠”.

이품 분식 • 손덕인
“올해 나이는 여든셋입니다. 중국에서 와서 거의 50년 가까이 중화요리를 해왔습니다. 옛날엔 방송국에서 촬영도 하러 오고 그랬어요. 그러다 10년 전 즈음, 연희동의 이품을 딸에게 물려주었죠. 그런데 가만히 있어서 뭐하겠어요? 그렇다고 옛날처럼 모든 중화요리를 하기엔 벅차서 만두집을 차렸습니다. 10명 정도 앉을 수 있는 작은 만두집이고, 메뉴는 버섯왕만두, 통만두, 군만두, 찐빵이 전부 입니다. 한국에선 두부를 많이 넣던데, 우리 만두는 버섯이나 야채를 많이 넣어 만듭니다. 아내와 며느리와 함께 하루 종일 만두를 반죽하고, 빚고, 찌고, 굽습니다. 아내는 허리도 아프다고 하고 조금 힘들어하기도 하는데, 저는 하나도 힘들지 않습니다. 평생 해온 일인데, 이게 뭐가 힘들겠습니까. 다른 요리도 안 하고 만두만 하는데요. 재미있죠. 그래서 쉬는 날도 없이, 아침 9시부터 밤 9시 혹은 10시까지 꼬박 하기로 했습니다.

아, 이품 분식과 이품 만두 중에 어떤 이름이 맞냐고요? 요리나 식사 메뉴 없이 간단한 음식을 만드니까 이품 분식도 맞고, 만두를 만드니까 이품 만두도 맞죠 뭐.”

연남동-NEW

크래프트원 • 정현철
“홍대에서 ‘펍원’을 운영하며 갈증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맥주 마니아들을 위해 본격적인 크래프트 맥주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는데,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었죠. 점점 번화하고 상업적으로 변해가는 홍대 앞과 달리 이 동네는 아직 천천히 흘러가는 느낌이 좋아서 왔습니다. 사실 월세가 싸기도 했어요. 월세를 비롯한 고정 지출이 부담될 경우, 다양한 맥주를 자유롭게 시도할 수 없으니까요. 근처 식당이나 카페 사장님들도 홍대 앞처럼 경쟁적인 분위기가 아니라, 천천히 흘러가며 서로 돕는 분위기인 것도 좋았습니다. 최근엔 수십 가지의 생맥주를 즐길 수 있는 탭하우스도 늘어나고 있지만, 우린 크래프트 맥주를 IPA, 페일에일 등 종류별로 나누어 5~6가지 준비해두었습니다. 너무 많은 맥주 탭을 준비할 경우 생맥주의 기본 덕목인 신선함을 담보하기 어렵거든요.

대신 맥주의 종류를 자주 바꿔서, 오실 때마다 새로운 맥주를 맛볼 수 있도록 했죠. 우리만의 레시피로 ‘밍글’이란 크래프트 맥주도 만들었습니다. 사실 최근의 맥주 시장이 급변하고 있지만, 대부분 외국인이 그 흐름을 주도한다는 게 아쉬웠어요. 우리 입맛에 맞는 맥주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지난 1년간 펍원에서 다양한 맥주를 손님에게 드리며 반응을 공부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홉의 풍부한 맛과 향은 좋아하지만 쓴맛은 싫어하고, 밀맥주의 부드러운 목넘김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아냈죠. 수없이 홈브루잉을 하면서 레시피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고, 그렇게 밍글이 탄생했습니다. 실제로 손님들에게 선보이면서 반응에 따라 미세하게 바꿔가고 있기도 하고요. 요즘도 저와 함께 일하는 친구들 모두 열심히 맥주 공부 중입니다. 언젠가 우리가 만든 맥주가 맥주 라인업의 대부분을 차지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요,”

프랑스포차 • 지찬웅
“지금의 프랑스포차 근처에서 2년 정도 이자카야를 운영했습니다. 이 근처가 생태숲길이라 유동인구가 많아질 거란 조언 때문이었는데, 제 귀가 너무 팔랑귀였어요. 일찍 와도 너무 일찍 연남동에 온 바람에, 2년 동안 너무 힘들었어요. 무언가 새롭게 시작하려고 준비하고 있을 즈음, 지금의 셰프가 프랑스에서 요리 공부를 마치고 돌아와 그런 말을 하더군요. 프랑스로 유학 다녀온 걸 후회한다, 이렇게 프랑스 요리가 한국에서 찬밥 대우인지 몰랐다, 다시 이탈리아로 유학을 가든지 해야겠다고요. 그래서 네 나이에 또 무슨 유학이냐며 함께 고민하다가, 프랑스 요리를 편안하게 선보이는 와인포차를 해보고 싶다는 셰프의 말을 듣고 떠올렸어요. 포차 하면 소주지! 그래서 소주를 마시며 프랑스 요리를 먹는 프랑스포차를 열었습니다.

엄숙하게 코스로, 비싸게 먹는 프랑스 요리 말고, 편하게 즐기는 프랑스 요리를 선보이자고 했죠. 처음엔 시행 착오가 없지 않았습니다. 맨 처음 꼬꼬뱅은 정석대로 와인으로만 만들었는데, 반응이 좋지 않으니까 점점 와인을 줄이고 다른 재료를 쓰게 되더군요. 그러다 아무리 그래도 꼬꼬가 닭이고 뱅이 와인인데 와인보다 다른 소스가 더 많이 들어간 게 무슨 꼬꼬뱅이냐 하면서 다시 지금으로 돌아왔습니다. 사실 포차라는 콘셉트상, 프랑스에서 제대로 배워온 셰프들에게 정통 프랑스 요리를 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주지 못해서 너네 자존심 팔아서 먹고산다고 농담도 합니다. 그런데 무엇이 퓨전이고 무엇이 정통인지 정의 내리는 게 가능할까요? 저희로선 기본에서 벗어나지 않으려고, 우리만의 요리를 만들려고 노력하는 과정에 있습니다. 무엇보다 저도 술 참 좋아하는데요, 소주가 세계의 어떤 요리에도 잘 어울리는 술이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