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의 브라운관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신인 작가들의 놀라운 반전 드라마였다. 신선한 화법과 개성으로 진부한 관습을 뒤엎은 신인 작가들의 성공을 짚으며, 드라마의 새로운 흐름을 예측했다.

2013년 드라마의 가장 상징적 순간은 KBS <비밀>과 SBS <상속자들>의 대결이다. 신인 작가 유보라, 최호철이 쓴 장편 데뷔작과 스타 작가 김은숙의 신작 맞대결에서 전자가 승리한 반전의 순간. 둘 다 재벌2세와 가난한 여성의 사랑을 다뤘으나, 전자는 전형성을 깬 이야기, 후자는 기존 신데렐라 로맨스의 답습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시청률, 작품성 모두 <비밀>의 완승이었다. 그해 초에도 비슷한 순간이 있었다. 사극계 스타 이병훈 감독, 김이영 작가 콤비의 MBC <마의>와 신인 작가 이현주, 고정원의 KBS <학교2013>이 의외로 박빙의 승부를 펼친 것이다. 작품성에서도 이병훈 월드 복제 논란에 시달린 전자보다 깊이와 흥미를 다 갖춘 후자가 더 호평받았다. 요컨대 자기 복제에 갇힌 스타 작가들과 대조적으로, 진부한 관습을 탈피한 신인 작가들의 약진은 2013년 드라마의 가장 빛나는 성취였다. 케이블과 종편에서 인정받은 후 지상파 데뷔에 성공한 KBS <직장의 신> 윤난중, KBS <굿닥터> 박재범, SBS <따뜻한 말 한마디> 하명희, 그리고 JTBC <네 이웃의 아내>로 처음 데뷔한 유원, 이준영, 강지연, 민선 작가 등도 여기에 포함된다.

재능 있는 신인 작가들의 대거 등장에는 여러 배경이 작용한다. 종편 개국, 케이블 채널의 자체 제작 증가로 콘텐츠 수요가 늘어났고, 치열해진 시청률 경쟁으로 콘텐츠의 중요성이 커졌다. 한류의 침체, 대작의 부진으로 스타 캐스팅과 스타 제작진의 흥행 신화가 깨진 것도 원인이 됐다. 드라마 시장의 위축 속에서 수십 배 차이가 나는 스타 작가와 신인의 비용 대비 효과도 무시할 수 없다. 이 가운데 2013년을 연 <학교2013>의 눈부신 선전은 신인 작가들이 주목받는 기폭제가 됐다. 실제로 <학교2013>, <비밀>의 책임 프로듀서이자 <직장의 신>을 기획한 황의경 CP는 “<학교2013>의 성공이 <직장의 신>과 <비밀>의 성공 계보를 잇는 데 큰 자신감이 됐다”며 “신인 작가의 강점인 신선함이 발휘된 결과”라고 말했다. 주목할 것은 신인의 활약이 유독 KBS에서 두드러졌다는 점이다.이 뒤에는 지상파 중 KBS가 유일하게 고정 편성해온 단막극의 존재가 있다. 이현주, 윤유보라, 박재범 작가 모두 KBS 단막극을 통해 데뷔하거나 내공을 쌓았다. 재능 있는 신인의 주 산실로서 단막극의 가치가 확실하게 증명된 것이다. KBS의 성공은 다른 지상파에도 영향을 미쳤다.

MBC가 6년 만에 단막극을 부활시켰고, SBS 역시 단막극 고정 편성을 발표했다. 신인의 약진이 불러온 방송사의 변화는 이것이 일시적 현상에 그치지 않고 드라마의 새로운 흐름으로 이어지리라는 것을 전망케 한다. 실제로 신인 작가의 성공 작품들을 살펴보면 지난해 드라마의 특징적 경향을 주도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제일 눈에 띄는 건 장르의 하이브리드를 통해 기존 드라마의 전형성을 벗어났다는 것이다. <학교2013>은 ‘가장 리얼한 학원물’이라는 평가를 얻음과 동시에 기존 학원물의 로맨스 대신 미스터리 플롯을 사용해 흥미로운 이야기를 그려냈다. <직장의 신>은 오피스물에 원톱 캐릭터 코미디와 미스터리를, <굿닥터>는 메디컬 드라마에 주인공의 장애 극복기를 결합했으며, <비밀>은 멜로와 미스터리를 섞어 입체적인 복수극을 만들어냈다. <따뜻한 말 한마디>와 <네 이웃의 아내> 역시 불륜 통속극에 각각 미스터리와 풍자 코미디를 결합한 개성적 이야기를 선보였다. 이들 작품은 2013년의 최고 히트작인 법정 로맨스 판타지 SBS <너의 목소리가 들려>, 로맨틱 호러 코미디 <주군의 태양>과 함께 방송가의 복합 장르 열풍을 이끌었다.

이러한 장르의 하이브리드적 성격은 신선한 이야기에 어울리는 영상 감각을 필요로 한다. 신인 성공작들의 또 다른 특징이 이 섬세한 영상 감각이다. 이미 영상 매체의 필수 감각이지만, 복합 장르의 효과적 구현을 위해 더욱 입체적인 묘사가 필요한 것이다. 세연(이다희)의 그림을 통한 복선과 심리 묘사로 미스터리를 더 은유적으로 표현한 <비밀>이 대표적이다. 제작사 측은 “작가가 특별히 대본에 별도의 표시를 할 정도”로 대본 단계에서 이미 영상적 효과가 강조되고 있음을 증명했다. 시온(주원)의 상상 장면이 휴먼 드라마로서의 동화적 분위기를 뒷받침한 <굿닥터>, 미스김(김혜수)의 만화적 캐릭터를 섬세하게 묘사하며 슈퍼 히어로물과 같은 통쾌한 효과를 이끌어낸 <직장의 신>도 마찬가지다. 극 전개와 따로 노는 뮤직 비디오 같다는 비판에 자주 휩싸였던 한국 드라마 고질병의 대안이 여기에 있다.

마지막 특징은 공동 집필이다. 초기엔 부족한 경험을 메우기 위한 방안이었을 수 있으나, 각기 다른 개성과 강점을 지닌 작가들의 공동 창작은 ‘미드식 집단창작 시스템’까지는 아니어도 시너지 효과가 크다는 것이 성공작들을 통해 입증되고 있다. <비밀>은 최호철 작가 원안에 유보라 작가의 디테일이 더해져 전체적 그림이 완성되고, <학교2013>은 고정원 작가의 취재에 바탕한 리얼리티에 이현주 작가의 감성이 결합되어 완성도를 높였다. 부부생활의 현실적 묘사가 돋보이는 <네 이웃의 아내>의 강점도 네 작가의 공동 작업이 뒷받침하고 있다. 최근 가장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tvN의 <응답하라 1994> 역시 여섯 작가가 공동 구상하고 이우정 메인 작가가 집필하는 시스템이다. 드라마의 디테일한 묘사가 점점 중요해지고 복합 장르적 성격이 강해질수록 이러한 공동 창작은 더 각광받을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 한국 드라마의 또 다른 고질병 ‘쪽대본’ 개선에도 일조할 수 있다.

최근 극장가에서도 새로운 시대에 대한 사실적 묘사와 참신한 문법이 돋보이는 신인 감독의 놀라운 데뷔작, 독립영화 <잉투기>가 화제였다. 박찬욱 감독은 “한국 독립영화 역사의 새로운 챕터가 시작됐다”는 찬사를 보냈다. 이 찬사는 진부한 관습을 탈피하고, 장르의 전형성을 탈피하며, 신선한 영상 감각을 선보인 지난해의 신인 드라마 작가들에게도 적용될 수 있을 것 같다. 2013년은 한국 드라마사의 새로운 챕터가 쓰이기 시작한 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