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옷이 뭐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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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상의 옷 잘 입는 여성들에게 그 비결에 대해 물으면 종종 그녀들은 ‘아무것도 입지 않았다!’고 대답한다. 속옷을 과감히 내팽개친 그녀들에게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1. 사이드버트라는 신조어를 탄생시킨 귀네스 팰트로의 파격적인 드레스 룩. 2. 1969년 가슴을 그대로 노출한 제인 버킨. 3. 노브라를 즐기는 제이크루의 제나 라이언스. 4. 1993년 뉴욕에서 19세 생일 파티를 즐기고 있는 케이트 모스의 시스루 룩.

1. 사이드버트라는 신조어를 탄생시킨 귀네스 팰트로의 파격적인 드레스 룩. 2. 1969년 가슴을 그대로 노출한 제인 버킨. 3. 노브라를 즐기는 제이크루의 제나 라이언스. 4. 1993년 뉴욕에서 19세 생일 파티를 즐기고 있는 케이트 모스의 시스루 룩.

귀네스 팰트로의 패션에 쏟아지는 뜨거운 관심은 새삼스러울 것이 없지만, 지난봄부터 그녀의 공적인 행보는 연일 화젯거리를 낳았다. 그녀는 아마도 브라와 팬티를 몽땅 집에 두고 온 듯했으니까! <아이언맨 3>의 LA 시사회 때 팰트로는 안토니오 베라르디 드레스로 트레이너 트레이시 앤더슨과 함께 조율한 몸매를 한껏 뽐냈다. 하지만 문제는 그녀가 노팬티 차림의 힙을 그대로 드러냈다는 것. 덕분에 테일러링 신조어로 옆 엉덩이를 드러내는 ‘사이드버트(Side Butt)’라는 단어까지 생겨났을 정도다. 그리고 며칠 후에도 속옷을 팽개친 귀네스 팰트로의 민망한 노출은 쭉 이어졌는데 2013년 라스베이거스 라이센싱 엑스포에서는, 유두가 그대로 비치는 프라발 구룽의 아이보리 홀터톱 차림이었다. 그동안 이렇게 노골적이고 도발적인 노출은 철없는 젊은 셀렙들의 전유물이었다. 술 취한 상태에서 노팬티 노출(패리스 힐튼)이나 가슴 노출(린지 로한) 등을 비롯해 가십 매체 TMZ엔 이들의 온갖 해프닝이 끊이질 않았다. 하지만 요즘엔 우아하고 패셔너블한 셀렙들이, 그것도 아주 우아한 행사에서 속옷 없이 몸매를 당당하고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부주의하게 실수로 생긴 노출이 아닌, 의도적으로 택한 노출 전략이었다.

칸 영화제에서 에바 롱고리아는 계단을 오르면서 베르사체의 민트 드레스 사이로 공들인 비키니 왁싱을 드러낸 바 있다. 2012년 <레미제라블> 뉴욕 시사회에서 톰 포드 드레스를 입은 앤 해서웨이 역시, 차에서 내리면서 최악의 노팬티 노출 사고를 일으켰다. 하지만 실수이든 의도적이든 속옷을 입지 않았다는 건 공통적이다. 그렇다면 왜? 갑자기 단체로 속옷에 대한 반감이라도 생긴 걸까? 아님 인어공주 시대로 회귀하려는 새로운 패션 페미니즘의 형태인가? 뷰티 블로그 ‘인투 더 글로스(Into the Gloss)’를 운영 중인 에밀리 바이스(Emily Weiss)는 ‘브라 마게팅은 대부분 내가 아닌 다른 몸매로의 변화를 권한다’고 지적한다. “섹시하다고 말하는 건 남자들이 원하는 이미지에 불과해요. 가슴을 모아올리고 세 사이즈 정도 커 보이게 만드는 건 실제의 내 모습과는 다른 것이니까. 예뻐 보인다는 이유로 내 몸에 거짓을 강요하는 것이죠.”

바이스 역시 노브라를 선호한다고 한다. 바이스의 란제리 철학은 개인적인 것이긴 하지만, 뉴욕 FIT 박물관의 총괄 큐레이터인 발레리 스틸(Valerie Steele)은 “이러한 트렌드는 60년대와 70년대의 시대정신과도 맞아떨어지는 것” 이라 말한다. 당시 여성들은 보다 반항적이고 자연스러운 룩을 위해 브라를 착용하지 않은 채 그대로 스웨터를 입었다. 또 1968년에는 미스 아메리카를 뽑는 미인대회에 반발해 브라를 벗어 던지는 시위까지 벌였다. “말하자면 신체의 자유로움에 관한 것이에요. 자연스러운 아름다움, 그리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주자는 것이죠.” 하지만 바이스처럼 맥심 잡지 스타일을 거부한다고 해서, 이들이 매력적으로 보이는 데 전혀 관심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브라가 없는 편이 훨씬 더 섹시할 수 있어요.” 쿠신 잇 오치스(Cushnie Et Ochs)의 칼리 쿠신이 말한다. “단 섹시함의 완전히 다른 방식이죠. 조형물처럼 강조되지 않은, 아주 자연스럽고 느긋한 방식이에요.” 사실 하이패션 제국에서 이 속옷 없는 스타일은 그다지 새로운 것은 아니다. 70년대 이미 이브 생 로랑은 투명하게 비치는 톱 차림의 노브라 모델을 런웨이로 내보냈고, 오늘날 패션위크 캣워크에서도 언더웨어 프리는 기본이고 오히려 브라가 겉옷처럼 여겨질 정도다. 소니아 리키엘의 손녀딸인 롤라 리키엘도 “할머니의 시그너처 룩은 60년대 노브라 스트라이프 스웨터” 라 말한다. “할머닌 ‘브라를 태우라!’고 말하는 게 아니에요. 정교하고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스웨터를 입는 법을 보여주었을 뿐이죠.” 롤라는 ‘몸에 꼭 맞는 드레스일 경우, 오히려 조여지는 속옷 끈 때문에 발생하는 울퉁불퉁한 실루엣이 룩을 망칠 수도 있다’고 말한다. 노팬티 트렌드 역시 브라와 유사한 맥락에서 판단할 수 있다. 주얼리 디자이너인 주느비에브 존스(Genevieve Jones)는 ‘패션 꼴불견을 피하고자 종종 팬티를 집에 두고 나온다’고 한다. “따지고 보면 아주 작고 얇은 천조각일 뿐이에요. 이 팬티 라인 때문에 겉옷의 실루엣을 포기할 순 없으니까요.”

팬티 라인이 드러나는 걸 피하기 위해 스팽스 보정 속옷이나 거들 등으로 압착하는 것 역시, 레드 카펫에선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아무리 얇은 팬티일지라도 라인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건, 브라끈 자국이 선명한 선탠만큼이나 매력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물론 자유로움을 추구하거나 옷태를 위해서, 혹은 불편한 움직임을 피하기 위해서 등등의 이유 외에도, 노력만큼 조율된 내 몸매를 과시하고 싶은 욕구도 빠뜨릴 수는 없다. 특히 여배우들은 운동선수만큼이나 열심히 트레이닝해 체지방 8%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하지만 동기가 그 어떤 것이든지, 아무리 열혈 속옷 프리 마니아일지라도 반드시 갖춰 입어야 할 때가 있다. “옷차림도 때와 장소를 가리듯이, 노브라와 노팬티 트렌드도 아무렇게나 적용되는 건 아니에요. 공식적인 미팅 장소나 신성한 곳에서는 적당히 갖춰주는 예의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반면에 존스는 “몇몇 상황을 제외하고는 자유로운 스타일링은 늘 존중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유두가 돌출되어 보이든지 혹은 노팬티든지, 여성들은 보여주는 것과 보여지는 것에 스스로 당당해질 필요가 있어요. 셀렙들의 트렌드에 당황할 이유도 전혀 없고요. 언더웨어 프리나 노출보다도 더 신경 쓰이는 건 얼굴에 난 뾰루지이니까요.” 바이스는 종종 흉골이 드러나게 버튼을 풀어헤친 빈티지 셔츠를 즐겨 입는다. 하지만 카탈로그의 한 장면이 아니라면, 일반 여성은 의도하지 않았던 트러블을 일으킬 위험이 큰 것도 사실이다. “낯선 이들의 훔쳐보기나 시선에 당당해지세요. 어쨌든 우린 모두 가슴을 갖고 있으니까요. 늘 보는 자연스러운 신체의 일부일 따름이고, 결국 가슴은 가슴일 뿐이죠!”

에디터
패션 에디터 / 정진아
포토그래퍼
CNP MONTROSE, GETTY IMAGES/MULTIBI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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