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의 빛

W

청춘의 가장 빛나는 순간을 포착하는 라이언 맥긴리.

라이언 맥긴리는 일주일 중 사흘 저녁을 콘서트 장에서 보낼 때가 있을 정도로 열성적인 음악 팬이다. 그리고 록스타처럼 수많은 추종자를 거느리는 사진가이기도 하다. 20대 중반의 이른 나이에 휘트니 미술관과 MOMA PS1에서 열었던 개인전은 플래티넘 레코드급의 성공을 거뒀다. 인상적인 등장 이후로도 그는 원 히트 원더에 머무르지 않고 순수 예술과 상업 사진의 경계를 유연하게 넘나들며 성실히 작품 세계를 넓혀왔다. 초기작은 명백히 래리 클락과 낸 골딘의 영향 아래에 있는 다큐멘터리에 가까웠다. 하지만 이 아티스트가 그들의 그림자 밖으로 걸어 나와 자신만의 좌표를 찾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찬란한 젊음과 완전한 자유가 교차하는 찰나에 초점을 맞추는 맥긴리의 사진은, 날것의 생생한 현실보다는 몇 번이고 되풀이해 꾸고 싶은 꿈에 가깝다. 그 도피적인 판타지의 매력은 결코 쉽게 떨쳐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대림미술관은 오는 11월 7일부터 내년 2월 23일까지 그의 첫 번째 한국 개인전인 <라이언 맥긴리 – 청춘, 그 찬란한 기록>을 개최한다. 일상을 집착적으로 기록한 초기 스냅과 근작인 흑백 포트레이트 연작을 포함한 대부분의 주요 작업이 관객과 만날 예정이다. 개막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을 무렵, 뉴욕의 작업실에 들러 바쁜 사진가의 시간을 훔쳤다. 맥긴리는 지난여름 동안 카메라를 든 채로 미국을 가로질렀다고 말했다. 그리고 가을이 가기 전에는 반드시 서울의 지하철을 타볼 거라고 했다.

1. Dakota (Hair), 20042. Coco's Cliff, 2008~093. Jonas Barn Snow Disco, 20094. Fawn(Fuchsia), 20125. Jerilyn, 20106. Highway, 20077. Fireworks, 2002

1. Dakota (Hair), 2004
2. Coco’s Cliff, 2008~09
3. Jonas Barn Snow Disco, 2009
4. Fawn(Fuchsia), 2012
5. Jerilyn, 2010
6. Highway, 2007
7. Fireworks, 2002

지난여름은 어떻게 보냈나? 여름의 라이언 맥긴리는 늘 여행 중일 것 같다. 미국 횡단 여행을 기록한 전시의 제목이었던 ‘I Know Where the Summer Goes’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또다시 미국을 가로질렀다. 4~5명의 모델, 프로듀서, 비디오그래퍼, 어시스턴트 등 총 12명의 팀원들과 휴일 없이 70일을 연이어 촬영한 대장정이었다. 내게 여름은 늘 일하는 기간이었던 것 같다. 좋아하는 계절이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조금 여유를 가질 수 있는 가을을 기다리게 된다.

올가을에는 대림미술관 전시도 예정되어 있다. 한국에서도 당신은 록스타 같은 인기를 누리는 사진가다. 그래서 이제야 첫 개인전이 열린다는 게 다소 의아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한국의 갤러리로부터 공식 초청을 받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정말 믿기지 않는다. 하하, 농담이다. 전 세계 어디에서든 아티스트로서 자신의 이름을 널리 알린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아무튼 그곳에도 팬들이 있다고 하니 무척 기쁘다. 가끔 인스타그램을 통해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지는 일을 알게 되곤 하는데, 이미 전시 포스터도 완성된 것 같더라. 오프닝에 맞춰 서울을 방문할 계획도 갖고 있다. 다른 도시에 가면 항상 대중교통을 이용해보는데 지금까지는 도쿄의 지하철이 최고였다. 서울의 지하철에도 기대가 크다.

한국 방문은 이번이 처음인가?
경유하며 인천공항에만 들러봤다. 뛰어난 시설이 인상적이었고, 특히 흡연실이 마음에 들었다(웃음). 열대 지방처럼 이국적으로 꾸민 라운지가 기억난다. 밖으로 통하는 파이프가 연기를 다 빨아들여 내보내고 있었는데, 그래서인지 거기서 담배를 태우는 동안에는 흡연이 몸에 좋을 수도 있겠다는 이상한 착각이 들었다.

2007년에도 지금의 이 작업실에서 <W Korea>와 인터뷰를 했다. 지난 6년 사이의 중요한 변화라면 어떤 걸 들 수 있을까?
(한참 생각에 잠기더니) 2007년이라, 뭔가 좋은 답을 주고 싶은데…. 그냥 좀 다른 사람이 된 것 같다. 사실 6년 전에도 꽤 성공한 아티스트의 길을 걷고 있었으며, 전시 일정으로 매우 바쁘긴 했다. 하지만 그렇게 바쁜 와중에도 꾸준히 새로운 무언가를 경험하던 때다. 지난 6년은 예술가로서의 삶에 더 익숙해지고 더 깊게 생각할 수 있었던 시간 같다. 사진 외의 비즈니스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도 알게 됐는데, 사실 내겐 정말 지루한 일이다. 2007년에는 내 작업밖에 몰랐지만 지금은 좋은 아티스트로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배우고 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전보다 훨씬 더 창의적인 작가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고용하고, 그들의 적절한 도움을 받고, 작업에 온전히 집중하면서 내 비전을 펼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가고 있다.

여전히 디지털보다는 필름 사용을 선호하나? 아니면 이제는 디지털 카메라로 작업하는 경우가 훨씬 많아졌나?
이제는 디지털로만 작업을 한다. 대신 필름 같은 느낌이 나도록 손을 보는데 필름 특유의 거친 질감을 워낙 좋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날 디지털 카메라가 갖는 가능성이란 정말 라운 수준이고, 원하는 만큼 얼마든지 셔터를 누를 수 있다는 점에서도 명백하게 경제적이다. 그리고 그 외에도 여러 근사한 장점이 많다. 상당히 오랫동안 내 사진에서는 필름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생각을 바꾸게 됐다. 물론 난 여전히 필름을 사랑해서 거의 페티시즘을 느낄 지경이다. 셔터를 누르기만 하면 자동적으로 멋진 사진이 완성되니까. 그 이미지는 신비롭게 예측을 뛰어넘고 살아 있는 듯 생생한 느낌을 지닌다. 디지털로 촬영하면 오히려 품은 더든다. 모순처럼 들리겠지만 사진의 일관성을 흐트러뜨리기 위해 어떤 수학적인 결정을 내려야 한다. 일련의 1과 0으로 이루어진 데이터 사이에서 질서 밖에 있는 듯 보이는, 그래서 필름처럼 생생한 어떤 순간을 찾아야 한다는 뜻이다. 정말 끔찍하게 힘든 작업이다.

작업 중 누드의 비중이 상당이 크다. 벗은 몸을 찍는 데 특히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을까?
어릴 적부터 누드에 관심이 많았다. 그리고 학창 시절 드로잉 수업을 들으며 사람의 나체를 표현하는 일에 익숙해진 것 같다. 내셔널 지오그래픽 채널에서 본 아프리카 원주민 여성들의 몸은 신경을 온통 집중시킬 만큼 매력적이었다. 또 침대 밑에 몰래 <플레이보이>잡지를 숨겨두곤 했는데, 그 은밀함이 때로는 성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런 관심을 예술적으로 표현할 방법을 찾아온 게 아닐까? 작업실 한쪽에 함께 일하는 직원들의 어린 시절 사진을 붙여둔 곳이 있다. 거기서 내 사진을 보면 깜짝 놀랄거다. 다섯 살밖에 되지 않은 내 뒤로 플레이보이 스티커가 두 장이나 붙어 있다! 그렇게 어린 꼬마 방에 토끼 스티커가 있다는 게 웃기지 않나? 누드에 대한 관심은 내 DNA 어딘가에 이미 입력돼 있었던 게 분명하다.

벗은 몸을 적나라하게 표현하는데도 당신의 사진에 섹슈얼한 느낌은 거의 없다. 프레임 속의 모델들은 자신들이 누드라는 걸 별로 의식하지 않는 듯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피사체들을 편안하고 대담하게 만들어주는 나름의 방법이 있나?
섹슈얼한 표현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그건 나 말고도 할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어색한 분위기가 있지만 5분 정도 지나고 나면 모델들도 자연스러워지면서 자신이 옷을 벗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린다. 촬영 중 나누는 대화가 다양하고 몸을 움직이는 동작이 많아서 다들 금세 편해지는 듯하다. 옷을 벗고 카메라 앞에 있다는 걸 의식하지 않도록 모델들의 주의를 최대한 분산시키는 편이다. 누드가 터부시 되는 건 사람들이 이를 습관적으로 포르노 등의 섹스 산업과 연결짓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작업은 오히려 인간의 몸에 대한 연구(Investigation)에 가깝다. 마치 드로잉 수업에서 그림을 그리는 훈련처럼 매우 해부학적인 접근이다. 물론 벌거벗은 채 포즈를 취하는 피사체에 인간적인 감정을 느끼기는 하지만 섹슈얼한 욕구와는 거리가 멀다.

프로페셔널한 모델보다는 아마추어와의 촬영을 더 선호한다. 캐스팅 때는 후보자들의 어떤 면을 주로 보나? 그러니까, 라이언 맥긴리의 피사체가 되려면 어떤 조건을 갖춰야 하나?
예술적인 사람을 찾는다. 또한 서로 쉽게 통하는 사람이좋다. 흥미로운 인물들은 내게 좋은 자극이 되는데, 상대가 누구든 새로운 만남에서 무언가를 배운다는 건 근사한 일이다. 내 촬영장 분위기는 마치 심리 치료 세션 같다. 사진가가 되지 않았다면 괜찮은 심리 치료사가 됐을지도 모르겠다.

캐스팅 과정은 어떤 식으로 진행되나?
캐스팅 디렉터가 따로 있다. 예술 학교, 콘서트장(특히 록 콘서트) 등을 뒤지고 가끔은 지인의 소개도 받는다. 페이스북 같은 SNS를 통해서도 꽤 괜찮은 친구들을 만났다. 사진을 보내며 함께 작업하고 싶다고 적극적으로 자신을 알리는 사람도 있다. 한 달에 한 번 열리는 캐스팅 세션에 찾아오면 인터뷰를 한 뒤 가부를 결정하는데 모든 선택은 100% 나의 직감에 따른다. 사람뿐 아니라 동물도 스튜디오의 카메라 앞에 세운 적이 있다. 한국 전시에서도 소개될 ‘Animals’ 시리즈 이야기다. 모델들의 몸에 남은 다양한 발톱 자국만 봐도 짐작이 가는데, 촬영 과정이 만만치 않았을 것 같다. 동물과의 작업은 한 치앞을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더욱 매력적이다. 말 그대로 혼돈이며 그래서 정말 신나는 촬영이다. 가만히 관찰해보면 동물들은 한순간도 가만있지를 않는다. 그 와중에 문득 목격하게 되는 그들의 미묘한 표정이나 행동이 무척 ‘인간적으로’느껴진다. ‘Animals’ 시리즈를 통해 동물의 그런 모습을 담고 싶었다. 매우 재미있지만(Fun) 마냥 우습기만(Funny)한 건 아닌, 그런 유머가 느껴졌으면 한다. 아무튼 덕분에 뱀, 여우, 라마, 아기 사슴 등을 직접 만져볼 수 있어서 너무 행복했다. 동물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매우 즐거운 시간이었지만 어찌 보면 내 이기심 때문에 벌인 작업 같기도 하다.

아마추어와의 작업을 더 선호한다고는 하지만 카메라에 담은 유명인도 여럿이다. M.I.A.는 당신과의 촬영을 위해 아찔하게 높은 맨해튼의 OHM 빌딩 위에서 그네를 탔다. 틸다 스윈턴은 무릎 걸음으로 좁은 동굴을 기어갔고, 시에나 밀러 역시 맨몸으로 새떼에 둘러싸였다. 라이언 맥긴리의 피사체가 된다는 건 약간의 모험을 감수해야 하는 경험 같다.
촬영은 매번 험난하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어렵지 않은 적이 없었다. 유명인 중에서도 나와의 작업을 통해 세상의 일부가 되고, 더 깊게 소통하고 싶어 하는 이들이 있다. 비장한 각오까지야 아니겠지만, 나와 함께 촬영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그들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인상적인 작품을 남긴다는 것은 그 사람들에게도 중요한 일이다.

종종 패션 촬영을 병행한다. ‘패션’을 찍는 작업은 어떤 점에서 흥미롭나? 누드를 촬영하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은 사진가이다 보니 더욱 그 답이 궁금하다.
소위 파인 아트로 분류되는 작업을 할 때는 100% 나의 예술적인 비전을 투영한다. 어느 누구와도 아이디어를 나누거나 의견을 물을 필요조차 없다. 하지만 대부분의 패션 작업은 알다시피 일종의 공동 작업이다. 광고주든 아트 디렉터든 그들이 원하는 확실한 아이디어가 있고 나는 그 울타리 안에서 가능성을 탐색해야 한다. 나만의 스타일이나 사진가로서의 전문성, 예술적 영감을 최대한 살리면서 다른 누군가의 아이디어를 이미지로 실현시키는 과정이다. 사실 꽤 재미있는 경험이다. 재능 있는 아트 디렉터, 스타일리스트, 디자이너들과 함께 일하는 기회를 무척 즐긴다. 그 과정에서 배우는 것도 많다.

더 큰 흥미를 느끼는 건 패션보다는 음악이 아닐까? 시규어 로스의 ‘Varuð’ 뮤직 비디오를 포함해 뮤지션과 관련된 작업을 자주, 그리고 꾸준히 선보인다. 요즘은 어떤 음악을 자주듣나?
드레이크, 악틱 몽키스, 피닉스의 새 앨범을 이번 주 내내 반복해서 듣고 있다. 좋아하는 뮤지션은 모리씨, 벨 앤 세바스찬, 조니 미첼, 닐 영, 스트록스, 롤링 스톤즈, 마그네틱 필즈… 뭐 일일이 꼽기 힘들 만큼 많다.

라이브 무대도 자주 보러 다니나?
콘서트장을 정말 자주 찾는다. 지난주에만 악틱 몽키스, 예예예스, 디어헌터, 이렇게 세 개의 공연을 봤다. 열세 살부터 꾸준히 콘서트에 다녔으니 20년 이상의 세월 동안 나름의 역사를 쌓아왔다고 할 수 있다. 라이브 연주와 함께하는 순간 특별한 행복을 느낀다. 열광하는 사람들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 무대 위 뮤지션을 향한 동경과 애정… 모든 것이 매력적이다.

무대 위의 뮤지션보다는 객석에 더 관심이 많은 듯하다.
아예 관중의 표정만을 클로즈업해서 전시를 연 적도 있다.

그들의 무엇이 그토록 당신을 자극하나?
뮤지션은 언제 어디서나 주목을 받는 존재라 이미 많은 이들이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있다. 피사체로서도 무대 위의 아티스트보다는 연주에 홀린 듯한 청중의 표정이 훨씬 나를 집중시킨다.

젊음을 포착하는 데 탁월한 사진가이기 때문에 더욱 궁금하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건 라이언 맥긴리에게 어떤 의미인가?
지혜다. 나이가 들수록 나를 편안하게 하는 것과 내게 어울리는 것이 무엇인지 점점 더 분명히 알아가고 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버틸 수 있는 지구력과 무엇을 희생하고 또 무엇을 취할 것인지 결정하게 해줄 지혜도 배우게 됐다. 이 둘은 창작욕을 펼치는데 중요한 조건이다.

홀딱 벗은 사람들을 예사로 촬영하고 다섯 살 때부터 벽에 플레이보이 스티커를 붙여둔 당신이 섹시하다고 생각하는 이미지는 어떤 걸까?
내 생각에 사람들은 옷을 입고 있을 때 가 훨씬 섹시한 것 같다(웃음). 매일 누드만 찍다가 제대로 옷을 갖춰 입은 사람을 보면 그 모습이 무척 섹시하게 느껴진다. 매우 독특한 스타일을 가진, 또한 자신에게 어울리는 것을 잘 알고 그걸 표현해낼 줄 아는 사람은 정말 근사하다. 일단 당장 떠오르는 한 명은 패션 스타일리스트인 카밀라 니커슨이다. 인터뷰 / 이치윤

에디터
피처 에디터 / 정준화
포토그래퍼
COURTESY OF TEAM GALLERY, NEW Y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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