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디자이너들은 새로운 소재와 장식에 대한 집념을 활활 불태우고 있다. 즉 듣도 보도 못한 소재와 장식이 실루엣과 스타일링을 대체할 패션의 새로운 승부수로 떠오른 것. 때론 보는 이의 허를 찌르는 반전을 연출하는 패션 위의 진풍경.

착각하지 마세요
관능적인 파마자 룩으로 트렌드의 중심에 선 루이 비통은 궁극의 장인 정신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언뜻 레이스로 보이는 장식은 이번 컬렉션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다. 염색한 깃털을 도안에 맞춰 일일이 손으로 자르고 시폰 위에 하나하나 붙여서 환상적인 꽃을 드레스 위에 피운 것. 레이스 위에 깃털을 더하는 작업은 쿠튀르에 가까운 난도와 정성을 요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언뜻 보기엔 염색이나 프린트 같지만 울 소재 위에 신비로운 그러데이션 효과를 연출하기 위해 크기와 색상이 다른 시퀸을 정교하게 배치한 작업 역시 루이 비통의 장인 정신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나, 말리지 마
웬만한 브랜드에선 좀처럼 상상도 시도도 하기 힘든 걸 현실화하는 점이 메종 마틴 마르지엘라의 매력이자 특징. 이번엔 아티스트 이브 클랭에 빙의해, 소맷단과 바지 라인에 두꺼운 붓 자국을 거침없이 그려 넣는가 하면 마치 색상이 회오리치듯 털실이 불규칙하게 얽히고설킨 니트 웨어를 선보이며 ‘상식의 파괴’를 몸소 실천했다.

이 정도쯤이야
펜디의 수장, 칼 라거펠트의 폭발하는 창조성이 낳은 소재와 장식. 정말이지 그의 머릿속에서 태어나 아틀리에 장인들이 완성한 결과물은 그저 경이로울 뿐이다. 잘게 자른 수천 개의 가죽을 말아서 퍼즐을 맞추듯 하나의 패턴을 장식하는가 하면, 튤과 울 소재, 종이처럼 표현한 패브릭 등을 단단히 겹친 후 이를 점퍼에 장식, 아름다운 새의 이미지를 패션으로 형상화했다.

불가능은 없다
샤넬의 소재와 장식에 대한 열정은 두말하면 잔소리. 매 시즌 ‘안 되는 게 어딨어? ” 정신으로 완성한 패션의 성찬을 상다리가 부러지게 차려놓으니 말이다. 메인 코스는 역시나 트위드의 기기묘묘한 변신. 검정, 흰색, 골드로 직조한 트위드 위로 구슬 체인이 금빛 광휘를 드리우며 출렁이는 일명 ‘판타지 트위드’는 ‘역시 샤넬’이라는 감탄을 불러일으킨다. 또한 카방이라 칭하는 트위드는 일부러 보풀 효과를 가미했는데, 이번엔 이 카방 트위드에 지구의 대륙을 형상화한 무늬를 더하면서 시즌 테마를 미학적으로 드러냈다. 압권은 피카소의 입체주의를 연상시키는 3D 장식. 이는 시폰, 트위드, 와이어 등 갖가지 소재로 이루어진 꽃 모양을 반복적으로 겹치고 이어 붙여서 거대한 꽃봉오리 같은 형태의 코트를 완성한 것이다.

예술이시네요
보테가 베네타의 토마스 마이어는 새로운 실루엣이나 스타일링을 제시하는 부류의 디자이너는 아니다. 대신 예술성과 기술성이 조화를 이룬 소재와 장식을 개발하는데 특출한 감각을 지녔다. 이번 컬렉션에선 실크 오간자, 플란넬 등의 패브릭을 소재 위에 배치한 장식이 눈에 띄었는데, 이는 마치 패브릭이 소용돌이가 되어 드레스 위에서 휘몰아치는 듯한 이미지를 연출한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균열
알렉산더 왕의 첫 번째 발렌시아가 쇼는 전반적으로 하우스의 아카이브에 충실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꽤나 혁신적임을 알아챌 수 있다. 대리석의 이미지를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한 이번 컬렉션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갈라진 니트 소재. 가뭄에 쩍쩍 갈라진 논바닥이나 깨진 대리석을 연상시키는 이 소재는 얼핏 가죽 같지만 알고 보면 니트 소재다. 이는 니트에 페인트를 두껍게 바르고 굳힌 후에 당겨서 자연스러운 균열을 표현한 것.

이런 느낌 처음이야
미우치아 여사는 소재를 통해 진보적인 패션 성향을 드러내곤 한다. 그런데 이번 시즌엔 단번에 눈길을 사로잡는, 현란한 소재 대신 언뜻 평범해 보이지만 은은하고 미묘하게 브랜드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소재를 주인공으로 삼았다. 기존의 트위드보다 광택 없이 매트하고 빈티지한 느낌이 두드러진 ‘펠티드 트위드’ 소재가 그것. 프라다의 새로운 ‘펠티드 트위드’ 소재는 그 탄생 과정이 꽤 흥미롭다. 우선 트위드를 220cm 크기로 느슨하게 직조한 후 130cm 길이로 잘라낸다. 그리고 소재를 비눗물에 넣고 짜고 높은 열과 힘을 가하면 촘촘하고도 매트한 펠티드 트위드가 탄생하는 것. 즉 펠트 가공 방식과 비슷하게 완성한 트위드인 셈. 이번 시즌 의상은 물론 가방에까지 이 소재가 사용되었다.

장기 자랑
꽃무늬와 얌전한 레이디라이크 룩은 에르뎀의 상징과도 같다. 그리고 또 하나를 추가하자면 바로 혁신적인 소재인데, 이번 시즌엔흩날리는 타조 깃털을 적극 활용했다.이를테면 네온 색상의 PVC 소재로 격자무늬를 표현하고 타조 깃털을 입체적으로 장식한 트위드, PVC 소재 꽃잎과 타조 깃털로 이루어진 장식과 하나 된 시폰 소재 등을 꼽을 수 있다.

상상 극장
크리스토퍼 케인은 이번 시즌, 형형색색으로 물든 백조와 고슴도치의 만남을 주선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신비로운 색상으로 염색한 깃털을 간결한 디자인의 톱과 스커트 등에 1mm의 여백도 없이 장식한 톱은 이색적인 백조를, 반짝이는 비즈 장식이 아지랑이처럼 피어나는 듯한 드레스는 고슴도치를 연상시키기 때문. 이토록 유쾌한 상상력이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