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각 분야에서 의미 있는 파장을 일으키며 주목받고 있는 이름들, 혹은 최근의 문화계를 흥미롭게 가속시킨 진짜 에너지들.

재즈 보컬리스트 신예원

신예원에게 있어 음악을 한다는 건, 음악 안에서 자신을 찾는 여행을 하고 있다는 의미다. 예쁜 목소리로 사랑을 노래하던 스무 살 여자아이가 미국으로 훌쩍 떠나 재즈를 공부하더니, 브라질 음악으로 꽉 찬 두 번째 음반 <Yeahwon>을 10년 만에 들고 나온 낯선 행보가 그렇게 생각하면 아주 신기한 일만은 아닐 것이다. 새 음반 <루아야> 역시 밖에서 바라보면 미처 예상치 못했던 길목에 서 있을 수 있다. ‘섬집 아기’, ‘달맞이’ 우등리 의 동요를 재해석한 음반을 통해, ECM이라는 세계적인 재즈 레이블에서 음반을 발매한 첫 한국인 뮤지션이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예원은 이 역시 자신에게 잘 맞는, 자신을 자유롭게 하는 음악을 찾아 계속해서 걸어 나가는 여행의 한 과정에 있을 뿐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10년을 넘어선 긴 여정을 통해, 이제야 그녀는 자신에게 가장 가까운 음악에 도착할 준비를 마쳤다.

우리나라의 오랜 동요를 주요 테마로 하는 새 음반 <루아야>는 브라질 음악을 선보인 지난 음반 <Yeahwon>과 확연히 달라진 모습이다.
처음부터 동요를 계획한 건 아니다. 남편이 곧 ECM에서 솔로 음반을 발표하는 피아니스트 아론 파크스의 음반 프로듀서를 맡았다. 보스턴 메커닉스 홀에서 진행된 녹음 현장에 놀러 갔는데, 홀의 소리의 너무 좋아서 목소리가 어떻게 들리는지 녹음해보고 싶었다. 무대에 서서 그저 공간이 주는 영감으로 입에서 나오는 대로 부르니 ‘엄마가 섬그늘에’라는 가사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얼마 후 그날이 아기를 가진 지 얼마 되지 않은 날이라는 걸 알게 됐다. 아기가 전해준 메시지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아이를 가진다는 평생 한 번 해볼 수 있는 경험 속에서 어떤 음악이 나올까 궁금하기도 해서 5개월 후에 정식으로 녹음하게 됐다.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곡을 정하고, 별도의 편곡 없이 두 협연자 아론 파크스, 롭 쿠르토와 함께 자유롭게 노래하고 연주하며 녹음을 진행했다고 들었다.
맨 처음엔 주제를 이야기했다. 예를 들어 고요한 아침에 수목원에서 깨어난 듯 촉촉한 느낌을 상상하자 이런 식으로. 그러면 세 명이 한데를 보고 거기서 나오는 느낌으로 연주를 시작하는 방식이다. 셋이서 한 번에 땅 시작하자 얘기해보기도 하고, 피아노가 먼저 나오고 그 다음에 아코디언이 따라 나오자고 해보기도 했다. 그러다 프로듀서를 맡은 남편이 아무것도 계획하지 말고 30분 동안 공연한다는 생각으로 순간의 느낌으로 연주해보자고 제안했다. 바로 그 30분 동안 가장 좋은 연주가 나왔다. 그런데도 음반에 삽입된 ‘섬집 아기’는 정식 녹음으로부터 5개월 전 사운드를 체크할 때 부른 바로 그 버전이다.

우리의 동요를 알지 못하는 두 연주자와 어떻게 교감했는지 궁금하다.
내가 이 노래들을 어린 시절 엄마가 불러줘서 배웠던 것처럼, 그들 역시 귀로 익힐 수 있도록 악보 없이 들려주거나 불러주었다. 그 과정이 참 좋았다. 나는 아무리 노력해도 평생 내 안에 새겨진 그 동요의 화성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없지 않나. 그런데 두 연주자는 나보다 훨씬 자유로웠기 때문에, 이 다음엔 또 어떤 멜로디가 나올까를 기대하면서 짜릿하게 즐길 수 있었다. 무엇보다 동심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이란 없어서, 동요라는 새로운 맛을 경험하고 그 맛을 다시 요리하는 사람들과의 교감이 충분히 좋았고, 즐거웠고, 재밌었다.

세계적인 레이블에서 발매한 음반을 우리말로 노래한 이유가 있다면?
내가 음악을 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건, 나에게 가장 솔직하고 정직할 수 있는 음악이다. 나는 내 음악을 다른 사람에게 들려주는 사람이고, 그렇기 때문에 그 음악이 나의 본모습이 아니라면 거짓이라고 생각한다. 굳이 한국말로 녹음하겠다고 마음먹은 건 아니지만, 하다 보니까 나에게 가장 자유로운 소리가 모국어 아니었을까 싶다.

이틀 전 <ECM 뮤직 페스티벌>의 첫 공연을 마쳤다. 새 음반을 처음으로 들려주는 자리기도 했다.
이번 음반에 실린 곡들을 무대에서 부른다는 건 태생적으로 위험성이 크다. 정해진 바 없이, 순간순간의 느낌에 음악을 맡긴다는 건 그러다 망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웃음). 그런데 공연을 마친 이후 ECM의 만프레드 아이허 대표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늘 안전한 배를 타는 것보다 위험한 배에 몸을 맡기는 것이 훨씬 더 좋다,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게 중요하다”고 말이다. 늘 냉정했던 남편 역시, 무엇보다 연주를 하는 세 명 모두 음악 안에 충실히 있었다며 처음으로 칭찬을 해줬다. 사실은 리허설을 진행하면서 생각처럼 잘 풀리지 않아서 두려웠다. 그저 음악에 맡기자는 결심과 달리, 계획을 짜서 해보는 건 어떨까 하는 유혹이 자꾸만 찾아와 스스로를 다스려야 했다. 느끼는 대로 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하면서도, 내가 무언가를 느낄 때 머릿속에서 ‘아니야 그건 이렇게 해야 해’라는 계산된 소리가 들리면 그 소리에 흔들리지 않기 위해 굉장히 큰 용기가 필요하니까.

사실 <루아야>에 수록된 곡들을 녹음했을 당시엔, ECM 발매가 예정되지 않았다. 맨 처음 만프레드 아이허의 제안을 들었을 때의 기분은 어땠나?
루아가 태어난 지 4~5개월 즈음이었다. 이례적으로 ECM의 첫 어시스턴트 프로듀서가 된 남편이 ‘만프레드 아이허가 너의 노래를 정말 좋아했다’고 말하는데, ‘그래?’ 그러고 나선 바로 아이에게 갔다. 이제 돌을 지나서 걸을 수라도 있지만, 당시엔 정말 엄마만 찾을 때라 정신이 없었다. 믹싱 역시 남편에게 다 맡겼다. 그래서 만프레드 아이허도 그저 친한 할아버지처럼 느껴졌다. 이제야 이렇게 ECM 페스티벌을 하며 기자 회견도 하고 그러니까, 내가 정말 엄청나게 많은 음악인들이 꿈꾼 ECM에서 음반을 냈구나, 현실감을 느낀다.

ECM의 소리를 다루는 방식을 직접 경험할 수 있었겠다.
오슬로에 위치한 레인보 스튜디오에서 믹싱 작업을 했다. 가장 자연스러운 소리가 살아나게 하기 위해, 직감과 육감을 중요시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남편이 프로듀싱을 하고 아내가 노래를 하는 모습이 로맨틱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남편으로부터 냉정한 평가를 받으면 섭섭할 것도 같다.
물론이다. 그 순간엔 ‘꼭 그렇게 말을 해야해?’ 하며 삐친다. 하지만 대부분 1시간도 안 돼 당신 말이 맞았다고 인정하게 된다. 남편은 거짓말을 안 하는 사람이다. 그 순간엔 기분 나쁠 수 있지만, 날 위해 그렇게 솔직하게 이야기해주는 사람이 남편 외에는 없지 않을까? 사실 좋게좋게 일하는 우리나라에서 공연을 기획할 때면, 남편 때문에 힘든 분도 계실 것이다. 언뜻 무서울 수도 있지만, 남편은 바로 그게 상대방에게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 여긴다. 난 남편이 바로 그 솔직함을 간직할 수 있다는 게 고맙다. 무엇보다 마음이 참 따뜻한 사람이다. 이름이 ‘선’이지 않나. 착할 선(웃음).

시아버지인 정명훈, 아들인 정선, 며느리인 신예원. 세 사람이 함께 있으면 음악 이야기를 할 것만 같다.
아니다. 오늘 점심에 뭐 먹었니, 요즘에 뭐 해먹고 사니 그런 이야기를 나눈다. 하지만 일어나는 순간부터 자기 몸을 부셔가면서 음악 하는 분은 아버님이 처음이었다. 이렇게 살아야 해, 이렇게 음악 해야 해, 이렇게 연습해야 해라고 말 한 마디 안 하셔도, 그저 아버님의 하루를 옆에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큰 배움이 있다. 사실 지금껏 유학 생활을 하고 외국에서 음반을 내면서 만프레드 아이허를 포함해 전설적인 음악인을 많이 만났다. 하지만 단 한 번도 우리 아버님 같은 분을 본 적이 없다. 아버님은 그 됨됨이에 있어서 정말 특별하신 분이다. 음악은 결국 내면에서 나오기 때문에, 뜨거울 정도로 따뜻한 그의 음악은 결국 아무도 따라갈 수 없는 거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발매한 데뷔 음반은 가요 음반이었다. 그러다 갑자기 유학을 떠나 재즈 보컬을 공부한 계기가 있을까?
갑자기는 아니었다. 지금 난 음악 안에서 나를 찾아가는 여행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실용음악과에 입학해 다양한 음악을 공부하면서 이미 브라질 음악을 찾았지만, 처음 음악 하는 사람이 누구나 그렇듯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음반을 내자는 제의를 받았고, 가요는 그 여행을 막 시작하는 길목에 위치해 있었던 셈이다. 겉에서 보기엔 가요를 하다가 갑자기 사라진 것처럼 보이겠지만, 나는 계속 걸어가고 있었다.

그 다양한 길에서도 특히 브라질 음악에 심취한 이유가 있다면?
그러게 말이다. 나도 모르겠다 그저 나에게 가장 자연스럽고, 나에게 가장 가까운 음악이었다. 지금도 브라질 음악을 부를 때면, 긴 해외 여행 끝에 김치찌개를 먹었을 때처럼, ‘아, 살 것 같아’ 하는 그런 느낌이 든다.

그렇게 음악 안에서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을 통해, 처음 데뷔한 12년 전의 신예원과 지금의 신예원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내가 좋고 잘해서가 아니라, 그저 내 자신을 더욱 인정하고 나의 직감을 확신할 수 있게 됐다. 이제 남이 내 음악을 어떻게 생각할까보다는, 나에게 솔직하고 정직했는지가 중요하다.

그 여행의 다음 행선지는 어디일까?
공연을 앞두고도 같은 질문을 받았다. 그때 모르겠다고 답했다. 정말 몰랐기 때문이다. 그런데 공연을 하고 나서, 내가 음악 안에서 다른 연주자들과 더욱 자유롭게 대화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말로 하는 대화에서도 내 자신을 잘 가꿔야만 다른 사람과 깊은 대화를 할 수 있지 않나. 음악 역시 마찬가지다. 단순히 노래를 열심히 하는 게 아니라 무대에 섰을 때 부끄럽지 않을 수 있도록 사는 것. 음악은 바로 그러한 경험에서 나온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