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구성원을 남자와 여자로만 나누는 건 너무 단순한 분류법이다. 모든 남자가 같은 취향을 공유하지도, 모든 여자가 비슷한 선택을 하지도 않을 테니까. 남자들과 더 많은 대화를 나누는 여자와 여자들에게 더 자주 공감하는 남자, 연하남을 만나는 여자와 연상녀와 결혼한 남자가 각자의 특별하고도 외로운 사정에 대해 밝혔다.

화성에서 온 여자
뭔가 잘못됐다는 걸 처음 느낀 것은 주변 아가씨들이 유희열과 이승열, 윤상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됐을 때다. 그래, 기억을 더듬어보니 문화적으로 섬세하다는 말을 듣는 또래의 여자아이들이 모두 유희열의 심야 라디오 프로나 이승열의 콘서트, 윤상의 전집 수집을 착실히 수행하고 있었다. 그럼 나는 음악을 안 들었느냐 하면 그건 아니고, 폴 사이먼을 좋아했다. 수십 년 전 소녀들이 미모의 가펑클을 좋아했던 것처럼 사이먼 앤 가펑클을 좋아한 게 아니라 그냥 폴 사이먼을, 아메리카를, 니키 홉킨스와 브라이언 윌슨과 호소노 하루오미를 좋아했다. 하긴 포크록 음반을 많이 팔던 옛 단골 CD 가게에 여자들이 하나도 안 보이긴 했어. 주인 아저씨는 내가 처음 갔을 때 “이거 뭔지 알고 사는 거예요? ”라며 수상쩍다는 눈빛으로 쳐다봤지. 아가씨 취향이 아니라는 건 비단 플라워 프린트의 하늘거리는 원피스 몇 장으로 여름을 날 수 없다는 뜻만은 아니다. 술살이든 밥살이든 두둑한 뱃살을 “나 정도면 좀 괜찮지 않아?” 하고 느긋하게 생각하는 아저씨표 자신감을 갖추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고, 만에 하나 경찰이 집을 수색할 일이 생기면 “범죄물을 주로 읽는 수상한 사람”의 반열에 오를 만한 서가의 소유자라는 의미기도 하다. 장르 문화를 전문으로 하는 매체에서 기자로 일하던 당시 “글 재미있게 읽었어요”라고 굳이 연락하는 사람의 8할이 남자이기에 내가 대단한 섹스어필이라도 하는 줄 알았더니(글에서 색기가 잘잘 흐른다든가 말이다), 이렇게 추리와 스릴러를 많이 읽는 인간이 정말 여자란 말인가 하는 동물원 관람객의 호기심이 만남의 이유더라. 남자들이 왜 이렇게 내 앞에서 섹스에 대해 얘기를 많이 하는지 궁금했는데 그건 나를 꼬드기려는 게 아니라 그냥 남자들끼리의 술자리 대화였던 것이야!
아줌마도 아니고 아저씨 취급을 받는다는 사실에 분개하고 보니, 자고로 아가씨란 유희열과 이승열을 좋아하고 이동진의 팟 캐스트를 들어야 하는 생물이었고, 나는 ‘열외’였던 것이다. WBC와 베이징 올림픽으로 프로야구가 지금의 인기를 구가하기 십수 년 전부터 주말엔 아버지와 학교 운동장에서 캐치볼을 하고 아침에 일어나 전날 야구 경기의 기록표를 살피던, 전 구단의 타순을 외우던 꼬맹이였다. 연극반에서 동물을 의인화한 작품을 무대에 올렸을 때 맡은 역할이 무려 사자! 사자였다는 사실도 뒤늦게 떠올랐다. 사슴도 아니고 토끼도 아니고 사자! 선생님 제게 왜 그러셨어요? 이제 와서 한탄해봐야 쓸데없는 노릇. 많은 경우, 남자친구보다 나는 길을 잘 찾고, 무거운 짐을 잘 들고, 야구에 대해 잘 알며, 소와 돼지와 말의 내장 요리를 더 잘 먹는 인간이었다. “저는 생선을 못 먹어요” 하는 까다로운 입맛의 소유자, “공포 영화는 무서워서 절대 못 봐요” 하는 야들거리는 감성의 소유자도 해보고 싶었지만 순순히 된 적은 없었다. 그래서 생기는 장점이 없지는 않다. 여자들에게는 경쟁자가 아니라 취향의 멘토 취급을 받았고, 남자들에게는 아내나 애인보다 속얘기를 더 많이 할 수 있는 든든한 아군 취급을 받았다. 하지만 역시 연애할 때는 피곤한 느낌. 다른 아가씨들처럼 귀염을 떠는 버튼이 어딘가에 있을 텐데, 아직까지 찾지 못하고 있다. 버튼 눌러주시는 분께 크게 사례함. 아무래도 프로필을 그렇게 바꾸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 글 | 이다혜(<씨네21> 기자)

금성에서 온 남자
얼마 전 동네에서 오랜만에 중학교 동창 모임이 있었다. 시간은 8시. 드물게도 술집이 아니라 카페였다. 아프리카에서 일하는 친구의 귀국에 맞춰 오랜만에 얘기나 할 겸 카페에서 먼저 보자는 의미였다. 퇴근길에 아프리카 친구에게 줄 미스트를 사서 일찍 약속 장소에 도착한 나는 잡지를 뒤적이며 녀석들을 기다리기로 했다. 증권사에 근무하는 친구 녀석이 이미 거나하게 취한 상태로 대리 운전기사의 도움을 받아 내리는 모습이 창 밖에서 목격되었고, 잠시 후 역시 만취한 채 어깨동무를 하고 카페 문을 열고 들어서는 투실투실한 양복 아저씨 둘도 시야에 잡혔다. 고작 8시인데. 오랜만에 만나는 녀석들은 마치 유니폼과도 같은 검정 혹은 남색의 수트를 입고 넥타이를 주머니에 넣거나 대충 풀어서 목에 건 상태였다. 그리고 블러셔를 곱게 먹인 유분감 충만한 피부 톤(개기름이 흐르는 불쾌한 얼굴이었다는 뜻이다)으로 나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하지만 내 눈에는 녀석들의 기름진 얼굴보다 양복 바지 밑단의 발목 양말이 먼저 들어왔다. 반가운 인사도 나누기 전, 나는 “양복을 입었을 때는 발목 양말은 신지 말아야 한다”고 폭염 같은 폭언을 퍼붓기 시작했고, 그중 한 명은 허허 웃으며 내 앞에서 발목 양말을 벗어서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녀석들은 이어서 주식과 새 차와 젊은데 예쁜 여자, 혹은 예쁘고 젊은 여자라는 단조로운 주제로 열변을 토하기 시작했고 결론은 ‘이번 여름엔 주식으로 한탕해서 새 차를 뽑아서 젊고 예쁜 여자’와 함께 여행을 가자는 것으로 정리가 되었다. 한참 나를 등한시하던 나의 20년 지기 중 한 명이 “야, 너 영화 일 한다면서 전지현 봤냐?”라는 난데없는 질문을 했고, 나는 “아니”라는 대답과 함께 그들의 대화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다. 결국 룸살롱에 갈 것이냐 말 것이냐를 두고 불붙은 친구의 대화를 들으며 혼자 이런 생각을 했다. ‘올리브영 영업 종료 전에 빨리 가서 수분 크림을 사고 소금 사우나나 가야지. 아, 오늘은 운동을 못했네. 저 녀석들 배를 보니까 괜히 나도 배 나오는 거 같아. 살쪄.’ 그리고 거대한 초콜릿 케이크를 거의 두 번에 걸쳐 다 먹어버리는 친구에게 어떤 식으로 훈계를 해줄까를 잠시 궁리했다. 하지만 이내 ‘연봉 많은 놈이 지 돈으로 사 먹겠다는 걸 내가 왜 말려’ 하는 은근히 자조적인 기분에 휩싸이고 말았다. 슬며시 기름종이를 꺼내서 천천히 스스로를 다독이기 시작했다. 하긴 친구들이 나와 룸살롱에 가고 싶을 리가 없다. 나는 룸살롱 종업원들에게 걸그룹 댄스 동작이 미진하다며 핀잔과 교습을 일삼을 뿐만 아니라 술을 마시는 와중에도 미스트와 기름종이를 번갈아 사용하는, 동창들의 여자친구보다 더 놀라운 존재인 것이다. 물론 모임이 있을 때마다 바뀌는 옷의 소재와 색감의 미묘한 차이야 놈들은 영원히 알아채지 못할 것이다. 나는 룸살롱보다는 인적 드문 카페와 헬스클럽과 사우나와 백화점을 좋아한다. 그러고 보니 내가 좋아하는 공간의 사람들은 나에게 말을 걸지 않는다. 아니 걸 이유가 없다. 서른 중반의 나의 취향은 그러니까 누구와도 대화하지 않는 지점에 머물러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취향은 그렇게 점점 더 나를 외로움에 익숙해지도록 만들고 있는 걸까? – 글 | 진명현(영화 프로그래머)

-아래 두 글은 자세한 개인 정보 공개를 원하지 않은, 두 남녀의 고백을 토대로 작성하였습니다.

누나의 꿈
무수한 연애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하며 ‛남자는 나이와 상관없이 애고, 개고, 동물이다’라는 깨달음을 얻은 지 오래. 아무리 그래도 열두 살 차이라니, 미칠 것 같았다. 그럼에도 또 한 번의 연애를 시작하고 만 건, 유난히 숫기 없고 부끄럼 많이 타는 이 남자아이가 미친 듯한 열정을 보여준 적이 딱 두 번이었기 때문이다.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날, 그리고 나에게 불같이 달려들던 그때. 연하의 남자를 만나기 때문에 짊어져야 할 몫이 없지는 않다. 세 살 어린 남자만 만난다고 해도 “우와 능력 있는데? 누구야?”라고 호기심을 보이는 사람들 앞에서, 열두 살 어린 남자와 연애 중이라고 말할 용기는 없다. 남자친구의 친구들 모임에 다녀온 날엔 처음으로 싸우기도 했다. 나를 제수씨라고 부르는 열두 살 어린 남자들 사이에서, 듬직하던 내 남자가 순식간에 조카로 변하는 걸 바라보자니 지옥에 떨어진 듯한 심정이었다. 무엇보다 특히 일에 대해선 괜스레 조언하거나 잔소리를 하지 않기 위한 노력도 필요했다. 내가 여자친구가 아니라, 그의 회사에 근무하는 다른 여자 과장님처럼 비치는 건 싫었으니까. 결혼 적령기를 이미 지난 서른여섯의 여자와 아직 한참 더 가야 하는 스물넷의 남자. 결혼에 대한 조바심이 들지 않느냐고 묻기도 하지만, 결혼 이야기가 나오면 불안해지는 남자를 바라보는 마음고생은 이미 옛날이야기다. 나 역시 독신주의자는 아니지만, 여전히 결혼이 필수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나이에 대한 부담에 밀려, 지옥행 열차를 타고 싶지는 않다. 조금 늦더라도, 사람 자체가 중요하니까. 다만 이 사람과의 미래를 그려볼 때 가장 두려운 건 출산이다. 자기 또래의 여자를 만났더라면 큰 어려움 없이 아이를 낳고, 아빠가 되고, 가족을 만들 수 있었을 텐데 재수 없게 나를 만난 건 아닐까. 내가 정말 아이를 낳고 키울 수 있을까. 유난히 아이와 가족에 대한 로망이 큰 남자친구 앞에서 문득 미안하고 겁이 나고 두려워지곤 한다. 특히 남자친구의 부모님 연세를 듣고 나이라는 숫자가 너무 크게 다가왔을 땐, 결국 며칠 동안 연락을 끊고 말았다. 하지만 왜 이 여자여야만 하는지가 아니라 이 여자가 안 될 이유가 무엇인지를 고민했다고, 그리고 자기 기준에서는 안 될 이유가 없었다고 말하는 남자 앞에선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널 좋아하지 않아가 아니라, 넌 어려서 안 돼라고 말할 수는 없었으니까. 우리가 아닌 나만을 이기적으로 생각한다면, 이 연애에서 가장 두려운 건 50대가 된 이후의 나 자신일 것이다. 연애가 결국 여자로서의 내 매력이 먹히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게임이라면, 40대까지는 자신이 있다. 그런데 50 이후의 삶은 물음표다. 그때까지 일은 계속할 수 있을까, 여자로서 살 수 있을까. 나에겐 그토록 불안하고 겁이 나는 시기에, 이 남자는 여전히 매력적인 어쩌면 오히려 원숙한 매력을 가진 30대의 남자라는 사실이 겁이 난다. 하지만 이 남자가 편찮으신 우리 아버지를 위해 내 이름으로 약을 지어 부모님 댁에 보낸 걸 알게 됐을 때, 나이 때문에 이 남자를 놓쳐선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토록 막연한 두려움과 걱정까지도 이 연애의 일부분이라면, 잘 앓고 또한 견뎌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이 남자가 제대로 된 남자라면, 나이 같은 건 상관없이 끝까지 잘해볼 수 있을 거라는 동화 같은 믿음은 아직 버리지 않았으므로.

누난 내 여자니까
그녀는 서른셋의 대표이사, 나는 스물다섯의 말단 직원이었다. 누군가 “밥 먹을 사람?”이라 외치고 몇 명이 “저요!” 손을 들면 그게 곧 회식이 되는 작은 회사에서, 자신의 일에 열정적인 사장님과 어느새 연애를 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처음엔 물론 절대 비밀이었다. 여자친구는 이미 업계에 정평이 나 있는 사람이었고, 나는 신입사원 아닌가.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입을 빌리면, 우리는 소파 승진을 하고 싶은 남자와 어린 놈 데리고 장난치는 여자였으니까. 하지만 여자친구가 대표인 회사에서 말단 사원으로 일하는 건 사람들이 예상하는 것처럼 자존심 상하는 일은 아니었다. 이 여자에 기대 성공할 마음도 없었고, 나 자신에 대한 자신감도 있었다. 회사 안에서는 단둘이 메일을 주고받을 때조차도 존댓말을 사용했지만, 회사 밖을 나서는 순간 나는 남자 그녀는 여자일 뿐이었다. 생일이나 기념일이 되면 ‘이 사람은 좋은 물건 많을 텐데 뭘 선물하지?’와 같은 고민을 안 해 봤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오히려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일수록 대범한 남자가 될 수 있었다. 그러니까 나는 원래 와인을 안 마시는데 여자친구가 와인을 마시자고 하면 이렇게 말하면 되는 거다. “그래? 그럼 네가 내. 나는 와인 안 마시니까.” 그런데 연애를 시작하고 1년 즈음 지났을 때, 이 여자를 계속 만나도 될까 고민할 수밖에 없는 순간이 찾아왔다. 솔직한 심정으로 나는 이제 막 꽃을 피울 나이, 여자친구는 결혼 적령기. 내가 이렇게 여자친구의 시간을 뺏고 있다가 우리가 결국 헤어지면, 적령기를 놓친 여자친구는 어떡하지, 그러니까 놓아줘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우린 참 잘 맞았다. 나는 유독 일에만 승부욕을 부리는 남자였고, 그녀는 ‘왜 전화 안 해? 우린 왜 일주일에 한 번밖에 안 만나? 오늘 백일인데 뭐 안 해?’라고 다그치는 여자가 아니었다. 대신 타고나길 다혈질이라 식당에서도, 운전을 하다가도 싸우기 일쑤인 나를 가끔은 산신령처럼, 때로는 대인배처럼 달래던 여자였다. 누군가는 남자에게 간섭하지 않고 포용하는 게 연상녀의 특징이라고 하지만, 그렇게 사람을 이분법으로 나누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 만약 그게 맞다면 어떤 남자가 연하를 사귈까? 그저 내 여자가 그런 사람이었을 뿐이다. 어쨌든 그렇게 우린 결혼했고, 연애와 결혼을 합쳐 9년 반, 단 한 번도 언성 높여 싸운 적 없이 이렇게 살고 있다. 우여곡절이 많아야 우리 얘기가 재미있을 거라는 걸 안다. 아쉽지만 그렇지 않았다. 맨 처음 어머니께 여덟 살 많은 여자와 결혼하겠다고 했을 때 어머니가 ‘에구에구’ 하시긴 했다. 그나마 아내를 실제로 본 이후에는, 그 소리가 쏙 들어갔다. 결혼 후 다시 아내의 회사에서 1~2년 정도 함께 일하게 됐을 땐, 그저 연인이던 시절과 달리 내가 남편이라는 마지막 자존심이 남아 있었는지 마음이 괴로운 적도 있었다. 하지만 괜한 자격지심을 버리고 나자, 자신의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에게 이렇게 가까이에서 조언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어서 오히려 고마워졌다. 자기 관리를 꾸준히 하는 아내의 노력 덕분일지도 모르지만, 남들의 괜한 걱정처럼 나이 차이를 느끼며 살아본 적 또한 없다. 여전히 밖에서 보기에만 신기한 연상연하 부부의 별거 없는 다짐은 이게 전부다. 너는 72년생, 나는 80년생, 그러면 우리는 그 중간 지점에서 76년생의 삶을 살면 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