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남자는 왜 갈비를 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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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던 버크는 아일랜드 출신 셰프이자 요리 칼럼니스트, 음식 컨설턴트다. 요리 책 <The Guilt-free Gourmet>를 통해 건강하고도 맛있는 음식을 고민하며, 6년 전 한국 여자와 사랑에 빠지는 순간 한식과도 사귀기 시작했다. ‘한식 세계화’라는 관념적인 구호는 내려놓고, 외국인의 눈과 혀로 느낀 한식에 대해 침 고이게 이야기했다.

어떤 일로 서울에 머무르고 있는지 궁금하다.
추석 때 MBC에서 방영될 한식 요리 경쟁 프로그램을 찍었다. 외국인이 한식 경연을 펼치는 ‘K 푸드 월드 페스티벌’이다. 5박 6일 동안 전주에서 촬영했고, 주변의 아름다운 장소를 둘러봤다. 순창에서 장아찌와 고추장, 간장 담그는 과정을 견학하기도 했다. 그 강렬한 냄새가 잊히지 않는다. 매실, 무, 마늘 같은 걸 처음 설탕과 소금물에 담그는 과정과 몇 달이 지나 쪼그라든 모습도 보았다. 템플스테이도 경험했는데, 지금 먹고 있는 것에 집중하는 것을 배우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현대인들은 일하는 중간에 끼니를 때우지만 먹고 있는 것을 찬찬히 보고 음미하며 그 음식에 대해 생각하는 건 미식과 건강의 출발로서 무척 중요하다.

예선 과정은 어땠나?
우선 요리 과정을 동영상으로 보내면, 그걸로 예선 심사를 했다. 나는 여름 시즌에 어울리는 삼계탕을 만들었다. 닭다리도 교차시켜서 묶어주고…(웃음). 내가 영국 대표로 참가한 것이며, 결선에는 10개 나라에서 한 사람씩 참가했다.

모인 사람들은 모두 프로들이었나? 어떤 배경을 갖고 있는 사람들인지 궁금하다.
이집트, 우즈베키스탄, 미국, 영국, 중국, 일본 등 다양한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나와 숙소를 함께 쓴 일본인 친구는 영어를 전혀 못해서 서로 한국어로 소통했을 정도다. 하지만 한식이라는 공통의 관심사가 있었기에 금세 친해졌다. 현지의 한국 식당에서 일하는 참가자들이 5~6명 있었는데, 한식에 대해 굉장히 많이 알고 있어서 배우는 바가 컸다. 일본 셰프는 아무래도 일본 음식처럼 덜 맵게 만드는 등 자기 나라 식으로 변형하는 습관이 재미있었다. 본 경연에서는 갈비찜을 만들었다고 들었다. 장모님께, 압력밥솥을 이용해서 갈비 찌는 법을 배웠다. 하지만 한식의 정통성 재현보다는 세계적인 변용을 장려한다고 들어서, 아주 전통 방식으로 하진 않았다. 그린빈을 곁들이고 비프 스튜 느낌으로 영국적 해석을 가미했다.

아일랜드 태생의 영국인인데, 어떻게 한식에 관심이 높아졌는지 궁금하다.
아내가 한국인 패션 디자이너다. 6년 전 첫 데이트에서 나를 한식당에 데려가더라. ‘한국에서 남자들은 한 번에 마셔’ 하면서 소주를 계속 따라줬다(웃음). 그리고 몇 가지 음식을 시켜 셰어하자고 해서 좀 놀라기도 했다. 물론 지금은 그런 테이블 문화에 익숙하지만.

처음 먹어 본 한식의 인상은 어땠나?
음식 문화에 있어 꽤 폐쇄적인 아일랜드에서 자라면서 중식이나 일식, 태국 음식은 먹어봤지만 정통이라 할 수 없었다. 하물며 한식은 전혀 경험이 없었고. 10년 전 처음 런던에 왔을 때 한식당에 가봤는데 중식이나 일식과 비슷하리라 짐작했지만 전혀 달라서 놀랐다. 비빔밥, 잡채 같은 음식을 먹었는데 고추장, 간장, 참기름 같은 양념의 맛이 매력적이었다. 특히 참기름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재료다. 영국에도 ‘세서미 오일’이 있지만 한국 것과 달라서 전혀 고소하지 않다.

당신 스스로도 한식을 자주 요리하나?
물론. 그리고 한식 아닌 요리를 할 때 한국 식재료를 활용하는 것도 즐긴다. 야채를 볶을 때 참기름을 트러플 오일처럼 떨어뜨리기도 하고, 라자냐의 볼로네즈 소스에도 한국에서 가져온 고추장을 넣으면 맛이 아주 좋아진다. 지중해식 음식을 할 때도 소금 대신에 간장이나 마늘, 맛술 같은 한국 시즈닝 재료를 쓰면 잘 어울린다.

영국에서 한국 음식에 대한 반응은 어떤가? 보통의 영국인 사이에서도 인기가 있는 편인가?
한국 요리는 차세대 중식이나 멕시칸 음식의 위상으로 주목받고 있다. 아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가 지금 퍼지고 있는 중이다. ‘김치’라는 체인이 있는데 여러 가지 음식을 조금씩 포장한 한식 도시락 질이 높아서 사람들이 아주 좋아한다. 김치 같은 경우 맛보다 냄새가 다가가기 힘든데, 익숙해지면 샐러드처럼 먹는 사람도 많다.

1년 동안 한식 홍보대사가 됐다. 앞으로 어떤 걸 하고 싶나?
런던에 한식 팝업 레스토랑을 열면 좋을 것 같다. 나는 기본적으로 건강한 음식에 관심이 많기 때문에, 영국 사람이 좋아할 만한 건강한 한식을 소개하고 싶다. 예를 들어 도토리묵 같은 음식은 아주 인기가 있을 것 같다. 재료를 공수하는 게 쉽지 않겠지만.

건강 관점에서라면, 한국 음식이 짜다는 생각은 들지 않나?
된장찌개, 김치찌개 같은 것은 짜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짠 것이 건강에 안 좋다는 통념은 신선한 천일염이 아니라 화학 소금을 쓰기 때문이다. 비타민과 나트륨을 흡수시키기 위해서 소금은 꼭 필요하다. 그리고 사실 건강에 정말 나쁜 건 설탕이다. 한국에서 떡볶이 같은 데 넣는 물엿도 몸에 나쁘니 꿀이나 아가베 시럽으로 바꾸어야 할 것 같다. 아시안 음식에 공통적으로 많이 쓰이는 MSG도 문제고.

한국 음식을 시도해보지 않은 평균의 서양인에게 순차적으로 한국 음식을 권한다면 어떤 것을 소개하고 싶나?
시작은 역시 비빔밥이 좋겠다. 매운맛을 조절할 수 있고, 재료에서 한국의 맛을 느낄 수 있으니까. 다음 단계를 시도한다면 두부김치가 어떨까. 두부의 심심하고 순수한 맛과 김치의 강하고 발효된 맛이 조화되어 어울린다. 찌개류는 아무래도 난도가 높을 것 같다(웃음). 팥빙수나 붕어빵 같은 간식도, 보통 외국에서 디저트에 팥을 사용하지는 않지만 잠재력 있는 아이템이다. 흑임자 소르베 같은 걸 시도해도 좋을 것 같다. 한식의 경우 맛보다는 반찬을 비롯해 음식을 늘어놓고 나눠 먹는 방식 때문에 낯설어하는 외국인도 많은데 이런 상차림에 대한 연구도 필요할 것 같다. 아무튼, 비빔밥은 보기에도 참 아름다운 음식이다.

에디터
황선우
포토그래퍼
박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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