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각 분야에서 의미 있는 파장을 일으키며 주목받고 있는 이름들, 혹은 최근의 문화계를 흥미롭게 가속시킨 진짜 에너지들.

NEW 영화사업부 대표 장경익
한국 영화 투자배급 시장의 양상은 꽤 오랫동안 CJ E&M, 롯데, 쇼박스로 이뤄진 메이저 3사의 삼국지였다. 그런데 최근 들어 한 후발 주자가 공고해 보인 삼각구도를 뒤흔들기 시작했다. 뉴(NEW)는 올해로 만 다섯 살이 된 투자배급사다. 짧다면 짧은 기간 동안 이 작고 날렵한 회사는 빠르게 성장하며 주목할만한 발자국을 여럿 남겼다. 지난 1년 사이 조의석, 김병서의 <감시자들>, 박훈정의 <신세계>, 허정의 <숨바꼭질> 등 장르적 쾌감이 확실한 오락 영화는 물론이거니와 정지영의 <부러진 화살>, 김기덕의 <피에타> 등 작가적 색깔이 확실한 작품까지 모두 성공시켰으며, 특히 이환경의 <7번방의 선물>로는 1천3백만 명에 달하는 관객을 동원했다.이쯤 되면 NEW라는 브랜드가 여느 스타급 감독이나 배우 못지않은 흥행 보증수표로 여겨지는 지금의 분위기도 충분히 수긍할 만하다. 투자배급이란 제작진과 관객이라는 두 개의 공을 동시에 다루는 저글링이다. 어느 한쪽만 눈으로 좇다 다른 하나를 놓치는 순간 쇼는 엉망이 된다. 현재 뉴가 발휘하는 탁월한 균형 감각은 상당히 인상적이다. 이들의 라인업은 걸작들로만 채워져서가 아니라, 새로운 시도를 다양하게 품고 있기 때문에 흥미롭다. 장경익 대표에게 능숙한 저글링의 노하우와 즐거움에 대해 물었다.

영화진흥위원회가 얼마 전 올해 7월까지의 각 배급사별 누적매출액을 발표했다. CJ E&M, 롯데, 쇼박스 등의 대기업을 누르고 뉴가 1위를 차지한 게 큰 화제가 됐다.
우리는 사업 계획도, 매출 목표나 수익 목표도 없다. 물론 기분 좋은 결과지만 1등이 우리의 목표였던 적은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굳이 목표라고 할 게 있다면 한 작품 한 작품의 성공이다. 투자배급사 입장에서는 여러 편 중 하나일 수 있지만 각 제작사들은 그 한 편에 목숨을 건다. 그러니 모든 작품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1등한 기분은 잠시만 즐기고 빨리 잊으려고 한다. 다만 이런 의미는 있다. 한때는 메이저 3사가 선두에 서는 상황이 당연한 거라고들 생각했다. 뉴가 그런 고정 관념을 흔들었다는 데 뿌듯함을 느낀다. 사실 작품 한두 편만 크게 성공하면 몇 개월간의 누적매출액 성적에서는 반짝 두각을 나타낼 수 있다. 그런데 뉴의 1위는 지난 몇 년간 꾸준히 성장을 거듭한 끝에 도달한 정상이라는 점에서 더 의미가 크다. 맞다. 외화 수입부터 시작해서 차근 차근 단계를 밟아왔다. 그래서 올해 좋은 일이 많았음에도 직원들 모두 그다지 흥분하는 분위기는 아니다. 갑작스러운 성공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요즘은 투자배급사의 역할이 점점 적극적으로 바뀌고 있는 눈치다. 전과 비교할 때 어떻게 달라졌나?
제작사가 보내온 시나리오가 90% 이상 입맛에 들어야 투자배급사들이 움직이기 시작하던 시절도 있었다. 지금은 초고 단계의 가능성만 보고도 계약을 맺고 프로젝트를 함께 만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좀 더 제작사 마인드로 작품을 대한다고 해야 할까? 그렇게 프리 프로덕션이 마무리되면 제작사가 촬영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뒤로 물러나 펀딩 및 투자를 책임지다가 편집 단계에서 다시 적극 개입한다. 그리고 마케팅과 배급은 우리가 주도한다. ‘투자배급사’라고 불리기는 하지만 하는 일을 따져보면 이제는 제작 파트너에 더 가깝다.

프리 프로덕션 단계부터 제작사와 함께 영화의 방향을 의논 한다고 했다. 뉴를 파트너로 만났기 때문에 성공한 작품이라고 자부하는 사례도 있나?
우리 덕분에 영화가 성공했다고 말하는 건 제작사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다만 의견을 교환하면서 많은 부분이 달라졌고, 다수의 노력이 더해져 좋은 결과를 거둔 작품이 있기는 하다. <헬로우 고스트>가 대표적인 예다. 차태현 씨를 비롯한 대부분의 캐스팅을 뉴가 진행했는데 일반적인 경우는 아니었다. 아무튼 지금껏 작품만 골라 놓고 다 만들어질 때까지 손을 놓은 채 지낸 적은 없다. 10%가 됐든 50%가 됐든 늘 프로젝트의 방향에 관여한다. 하지만 우리 때문에 특정 작품이 성공했다고는 감히 말을 못하겠다. 경쟁사들과 달리 뉴는 극장 체인을 보유하고 있지 않은 투자 배급사다.

경쟁의 조건이 불리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나?
어떤 회사든 장점과 단점을 모두 갖고 있다. 그런데 나는 단점을 보완하는 것보다 장점을 극대화하는 쪽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극장 체인의 부재는 치명적일 것까지는 없는, 그냥 우리가 지닌 여러 단점 중 하나다. 상영관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콘텐츠 자체의 완성도에 집중한 선택이 주효했다고 본다. 조건에 기대는 순간 오히려 더 중요한 걸 잃을 수도 있다. 인터뷰에서 작품 선택의 기준은 시나리오라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시나리오의 어떤 점을 특히 중점적으로 보게 되나?
뉴가 내놓은 여러 흥행작 중에는 관객과 평단의 반응이 확연하게 갈린 영화들도 있다. <7번방의 선물>을 예로 들 수 있겠다. 기본적으로 우리는 영화를 파는 사람들이다. 셀링 포인트가 있는, 그리고 우리가 만들 수 있겠다 싶은 작품을 중점적으로 고른다. 예술 영화라 해도 팔 수 있겠다는 확신이서면 한다. 상업적인 코드를 갖고 있어도 효력을 상실한 이야기를 하는 시나리오는 당연히 건너뛴다. <7번 방의 선물> 같은 경우, 회사 내부적으로는 처음부터 5백만 명 이상을 기대했다. 평론가의 평과 관객의 반응, 그리고 흥행은 제각각의 지표라 일치하는 경우가 드물다. 실제로 이 작품에 대한 관객들의 포털 사이트 평점은 꽤 오랫동안 9.5점 이상을 유지했다. 우리는 일단 관객의 입장에서 시나리오를 본다. 그 기준에서는 늘 높은 점수를 줄 만한 영화를 해왔다고 생각한다.

소위 ‘한국적인’ 흥행 코드를 관습적으로 좇지 않는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최근의 흥행작인 <숨바꼭질>은 국내 팬 층이 그리 두텁지 않은 스릴러 장르다. 게다가 막강한 티켓 파워의 스타가 등장하는 것도 아니다.
시나리오를 읽었는데 짜릿할 정도로 무서웠다. 직원들의 만장일치로 빨리 결정을 짓고 제작에 들어간 작품이다. 손현주 씨의 캐스팅에도 처음부터 확신이 있었다. <추적자> 이후의 그는 충분히 작품을 커 보이게 해줄 만한 스타라고 생각했고 그 생각이 맞았다. 마케팅에서는 이야기의 괴담적인 면을 강조해서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하기로 했다. 입소문이 퍼지면서 서서히 주목받은 것도 아니고 개봉과 함께 단숨에 터지니까 놀라는 분이 많았는데, 내부적으로 판단하기에는 이미 대기 수요가 충분한 프로젝트였다. 물론 기대를 훨씬 웃도는 성공을 거둔 건 맞다. 대략 2백만 명 정도를 예상했다가 결과적으로 5백만 명 이상을 동원했다. 결과적으로 우리의 선택에 더욱 확신이 생겼다.

투자배급사는 편협한 기준을 고집하기보다는 다양한 작품의 가능성을 유연하게 살필 필요가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뜻이 잘 맞는 사람들이 모인 작은 조직이니만큼 그 안에 나름의 취향은 존재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뉴의 취향은 과연 어떤 것일까?
원래는 그런 게 무척 강했다. 이를테면 휴먼 코미디 같은 착하고 따뜻한 영화를 무척 좋아한다. 물론 그것만 할 수는 없으니까 스릴러부터 호러, 액션까지 다양한 장르에 손대고 있기는 하지만. 그런데 유심히 보면 같은 19금 스릴러 중에서도 우리 영화는 덜 잔인하다. 아무리 흥행에 도움이 될 것 같다 해도 이야기 자체에 배제하고 싶은 부분이 있으면 최대한 걸러낸다. 장르를 가리진 않지만 그 장르들 안에서 어떤 것에 집중하는가를 보면 뉴의 취향에 대한 답이 나올 거다. 꼬집어 말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흥행에는 작품의 완성도만큼이나 마케팅의 힘이 크게 작용한다. 뉴가 영화 마케팅에서 특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내용이 있나?
영화를 잘 포장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작품을 이렇게 봤으면 좋겠다 하는 가이드라인까지 숨겨놓는다. <몽타주>는 스릴러의 범주에 둘 만한 영화지만 마케팅에서는 끝까지 드라마라고 우겼다. 스릴러라고 하기에는 다소 자극이 부족해 보일 수 있는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성애 드라마로 접근을 했더니 스릴러적인 장치가 오히려 극의 정서를 강화해줬다. 작품의 콘셉트를 명확하게 정리하고 재미있게 볼 수 있는 포인트를 짚어주면 마케팅 자체가 일종의 가이드가 된다.

현재 준비 중인 라인업이 궁금하다.
<방자전>의 김대우 감독이 연출을 맡은 <인간 중독>이라는 작품이 있다. 치명적인 19금 멜로가 될 테고 무엇보다도 시나리오가 무척 좋다. 주연인송승헌이 지금까지와는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게 될 것 같다. 봉준호 감독이 제작하고 <살인의 추억> 시나리오 작가였던 심성보 감독이 연출하는 <해무> 역시 곧 촬영에 돌입한다. 그리고 하정우가 직접 감독과 주연을 맡을 <허삼관 매혈기>는 내년 제작을 목표로 하고 있다. 위화의 세계적 베스트셀러를 스크린에 옮기는 프로젝트다.

물론 하정우는 현재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는 배우지만 감독으로서는 신인이다. 돌이켜보면 뉴의 지난 프로젝트 중 상당수가 신인 연출자와의 작업이기도 했다. 단순한 우연일까? 아니면 특별한 이유가 있나?
설립 초기에는 유명 감독들이 우리와 일할 이유를 못 느꼈을 거다. 더 좋은 조건의 메이저 투자배급사들도 함께 작업하길 원했을 테니까. 당시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런 측면이 없지 않아 있었다(웃음). 신인 감독과의 작업에 염려나 두려움은 없다. 경험 부족은 숙련된 스태프들의 역량으로 충분히 보완할 수가 있다. 오히려 개인적으로는 새로운 연출자들과 함께 일하는 게 즐겁다. 미처 생각지 못한 참신한 시각을 발견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