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각 분야에서 의미 있는 파장을 일으키며 주목받고 있는 이름들, 혹은 최근의 문화계를 흥미롭게 가속시킨 진짜 에너지들.

SM엔터테인먼트 퍼포먼스 디렉터 황상훈 + 심재원

엑소의 ‘으르렁’은 이른 바 SMP(SM Music Performance)의 기존 공식을 슬쩍 빗겨가는 신선한 시도다. 기존의 퍼포먼스들이 빈틈없는 군무의 합을 강조했다면 이 무대는 멤버들의 분방한 움직임과 역동적인 구성에 힘을 싣는다. 꼼꼼한 시나리오를 가지고 배우들로부터 즉흥 연기처럼 자연스러운 모습을 뽑아낸 영화에 비유할 수 있을까? 황상훈과 심재원은 그 영화의 감독에 해당한다. 2000년대 초 그룹 블랙비트의 일원으로 활동하기도 한 두 사람은 이후 안무가를 거쳐 퍼포먼스 디렉터까지 활동 영역을 넓혔다. SM 엔터테인먼트에만 존재하는 이 직책은 안무부터 스타일링, 뮤직 비디오까지 아티스트의 퍼포먼스에 관련된 모든 것을 총괄하는 자리다. 세련된 긴장감이 돋보인 ‘으르렁’의 원테이크 뮤직 비디오 역시 전적으로 둘의 아이디어에 따른 결과물이다. 보아부터 엑소까지 이르는 수많은 아티스트들의 데뷔를 함께 준비한 황상훈과 심재원은 직접 뮤지션의 삶을 경험해봤기 때문에 무대 위에 선 심정을 누구보다 잘 이해한다고 말한다. 스포트라이트의 짜릿함은 충분히 즐기게 하고, 대기실에서의 불안은 최대한 누그러뜨려주는 것, 그들은 퍼포먼스 디렉터의 진짜 역할을 이렇게 설명했다.

퍼포먼스 디렉터의 목소리가 미치는 범위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가? SM엔터테인먼트에만 있는 예외적인 직함이다 보니 정확한 역할이 궁금하다.
심재원 아티스트에 관한 무대 위의 모든 것에 관여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안무는 물론이고 표정이나 의상, 심지어는 헤어와 메이크업에도 의견을 낼 때가 있다. 물론 디테일은 각 분야의 전문가에게 맡기지만 큰 방향은 함께 의논해 정한다.
황상훈 프로젝트에 따라 우리 둘의 역할이나 비중이 달라지기도 한다. 서로가 갖고 있는 에너지나 크리에이티브 등이 다르니까. 곡과 가수의 느낌에 따라 적절히 분담하고 계획을 세운다.

퍼포먼스 디렉터로서 처음 참여한 무대를 기억하나?
황상훈 안무가로서의 첫 작업은 보아 1집이었다. 슈퍼주니어의 ‘쏘리쏘리’부터 본격적으로 퍼포먼스 디렉팅이라 할 만한 작업을 했다.
심재원 나는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부터다. 형보다 시작이 조금 더 빨랐다. 우리는 안무가로 영역을 옮기기 전에 뮤지션 활동을 했다. 그러다 보니 가수들이 가야할 방향, 무대에 섰을 때의 마음, 효과적인 제스처와 표정, 그리고 퍼포먼스를 망쳤을 때의 기분 등을 너무나 잘 안다. 그런 내용을 생각하면서 일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역할이 커지고, 결국 안무가의 영역을 뛰어넘게 됐다.

뮤지션으로서 무대에 서봤기 때문에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더 보는 부분이 있을 것 같다.
황상훈 외국의 안무가들과 자주 작업을 한다. 그런데 다들 핵심 동작에만 집중할 뿐, 맡은 파트에서 그 멤버가 더 돋보이게 할 방법 같은 건 깊게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좀 더 아티스트 위주로 본다. 어떻게 하면 카메라 앞에서 각각의 캐릭터가 드러나도록 할지 고민한다.
심재원 더 나아가 그 친구의 미래까지 바라보면서 작업을 한다. 한 그룹 안에서도 멤버마다 음악 취향이나 앞으로의 바람은 다 제각각이다. 그래서 이후의 활동까지 염두에 두면서 방향을 제시하려고 한다.

해외 안무가의 작업이 무대에 오르기까지는 많은 변형과 편집이 필요한가?
심재원 외국 안무가들은 보통 댄서의 느낌이 강한 춤을 제시한다. 한국 정서에 맞지 않는 부분도 종종 눈에 띈다. 그렇기 때문에 가수와 곡에 맞게 재해석하는 과정이 꼭 필요하다.

내피탭스, 닉 베스, 토니 테스타 등 여러 유명 안무가들과 작업했다. 퍼포먼스 디렉터로서 함께 작업할 때 특히 호흡이 잘맞는다고 생각한 팀이 있나?
심재원 지금 언급된 분들과는 다 잘 맞는다. 다만 스타일이라든지 퍼포먼스를 바라보는 시각은 각각 다르다.
황상훈 토니는 진지한 완벽주의자다. 함께 일할 때도 재미있다기보다는 진지한 에너지에 감탄할 때가 많다. 그래서 힘든 순간도 있는데, 항상 마치고 나면 작업에 흠잡을 곳이 없는 느낌이다. 그리고 내피탭스는 재원 씨와 좀 더 가깝게 일을 했는데…
심재원 패밀리십이 무척 강하다. 사랑이 넘치는 분들이다. 어쨌든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이지 않나. 표현 방식이 다를 수밖에 없는데 그 부분에 대한 배려를 많이 해준다. 편하게 대화하면서 함께 더 나은 방향을 모색할 수 있는 파트너다. 그리고 닉 베스는 그 자체로 춤을 너무 잘 추는 사람이다.
황상훈 닉은 천재다. 생각을 많이 하거나 연구를 많이 하는 것도 아니다. 음악 듣고 곧장 움직이면 그게 그렇게 멋있다. 타고난 것 같다.
심재원 그래서 문제가 되기도 한다. 닉이 너무 춤을 잘 추고 신체 조건이 우월하다 보니 그 동작을 아티스트들이 따라 해도 느낌이 확연히 다르다. 이걸 어떻게 멋있게 무대용으로 손볼까 하는 고민이 커진다.
황상훈 그런 이유 때문에 닉과 함께 작업할 경우, 우리가 할 일이 많아지는 편이다.

엑소의 ‘으르렁’은 뮤직 비디오의 전체 콘셉트까지 설계를 했다. 비디오에 이렇게 적극적으로 관여하는 경우가 일반적인가?
심재원 춤에 대해서는 항상 깊게 관여해왔고, 특히 군무 장면에서는 거의 연출자처럼 지휘를 했다. 춤을 잘 알고 애들과 편하게 대화하는 게 우리다 보니 뮤직 비디오 감독님도 그 쪽을 편하게 생각하신다. 원하는 좋은 그림을 뽑는 데만 집중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드리는 거다.
황상훈 ‘으르렁’ 때처럼 아예 촬영 감독님을 붙잡고 찍는 경우도 있다. 전부터 늘 생각하던 신이었기 때문에 제대로 구현하고 싶은 욕심이 컸다. 최종 뮤직 비디오와 크게 다르지 않은 시안 영상을 먼저 찍어서 회사에 보여드렸더니 그 콘셉트를 지지해주셨다.
심재원 새로운 것, 평면적이지 않은 것에 대한 욕심이 늘 있다. 무대를 다양하게 활용해보고 싶었고 그런 바람을 ‘으르렁’ 에서 어느 정도 해소한 것 같다.

고난도의 칼군무로 대표되는 SM의 퍼포먼스는 SMP라는 별도의 용어로 불릴 만큼 개성이 뚜렷하다. 하지만 그 안에서의 새로운 시도는 꾸준히 이어져오지 않았나 싶다. 요즘의 SMP에서 특히 강조하고 있는 부분이 있나?
심재원 ‘으르렁’에서 보여준 것 같은 입체감에 대해 많이 생각한다. 새로운 것에 대한 고민은 늘 있다.
황상훈 둘 다 이 점에서만큼은 성향이 비슷하다. 매너리즘에 빠지는 걸 싫어하고 시스템 파괴는 무척 좋아한다. 왜 꼭 이걸 이렇게 해야 하나, 에서부터 출발할 때가 많다.

좋은 퍼포먼스에 대한 평가 기준도 보통의 안무가와는 다를 것 같다. 물론 기술도 중요하겠지만 뮤지션의 춤은 그게 다가 아니다.
심재원 내가 생각할 때는 무대를 즐기는 정도다. 대표적인 예가 보아다. 거의 넘사벽 수준이다. 독하고 절박하게 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이 무대를 즐긴다는 걸 충분히 보여주면서 관객과 호흡한다.
황상훈 같은 맥락이긴 한데 음악을 보여줄 수 있는 아티스트를 높이 평가한다. 그냥 들을 때와 무대를 보면서 들을 때, 그 느낌이 확 달라지도록 만드는 사람이 있다. 몸의 표현을 통해 그 음악의 맛까지 더하는 거다. 음악을 본다는 표현이 모순처럼 들릴 수 있겠지만 우리 눈에는 정말 그게 보인다. 그 차이를 만드는 게 꼭 춤은 아니다. 어쩌면 강렬한 눈빛일 수도 있다. 아마 관객이나 시청자도 느낄거다. 전문가가 아니라 짚어 설명을 못할 뿐이다.

지금껏 선보인 것 중 만드는 과정에서 특히 고민이 컸던 무대가 있나?
심재원 모든 무대가 특별하고 기억에 남는다. 그러면서도 항상 아쉽고. 무대가 우리 손에 달려 있다 보니 부담이 크다. 잘 짜고 못 짜고의 문제가 아니라 아티스트에게 잘 맞는 걸 줘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다. 보는 사람에게는 그냥 한 번의 무대겠지만 애들한테는 그게 다다. 과정상의 어려움은 이런 책임감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황상훈 우리 둘이 무대에서 춤을 추는 경우는 드물다. 맡고 있는 역할이 있고 더 훌륭한 댄서도 많으니까. 보아가 ‘온리 원’으로 활동할 때 댄서로 참여한 건 예외적인 경우다. 오래전부터 함께 활동한 사이라 힘을 실어주고 싶었다. 한편으로는 편하기도 했다. 아티스트들만 올려보내고 아래서 마음 졸이며 지켜보느니 내가 같이하는 게 낫구나 싶었다. 그래도 이제는 그만하려고 한다(웃음).

어린 아티스트들의 데뷔 무대를 지켜보는 기분은 특히 남다를 것 같다.
심재원 첫 무대 하면서 안 우는 애들을 못 봤다. 트레이닝을 거치며 가장 원했던 순간일 테니까. 소녀시대는 아예 리허설 때부터 울더라.
황상훈 엑소는 안 그랬는데. 다 남자들이라 그랬을 수도 있다. 첫 무대도 비교적 침착하게 치렀다. 사실 내가 그런 이야기를 많이 하기도 했다. 무대 위에서는 최대한 냉정해야 한다고. 무대에서 자기 컨트롤을 잃어버리는 것을 개인적으로 좋아하지 않는다. 혼자만 취하면 보는 이들은 저 사람이 왜 저러는 걸까 납득 못할 수 있다.
심재원 형이 억제하는 편이라면 반대로 저는 뿜어내는 스타일이다. 성격부터 좋아하는 음악까지 우리 둘이 좀 다르다. 전 오히려 마음껏 뽐내라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비트버거라는 이름으로 본인들의 DJ 퍼포먼스 활동 또한 병행한다. 다른 뮤지션들의 것뿐만이 아닌, 본인들의 무대에 대한 욕심을 여전히 갖고 있는 듯하다.
심재원 비트버거라는 이름으로는 퍼포먼스 디렉팅부터 음악과 춤까지 여러 활동을 하고 있다. 그래서 감을 잃지 않는 것 같다. 무대도 직접 서면서 아이디어도 더 많이 얻는다. 뇌와 열정이 굳지 않는 기분이랄까?
황상훈 비트버거로서 뭔가를 잘해보고 싶은 욕심은 크지 않다. 다만 이것저것 많은 걸 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