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체험 극과 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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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상극이 공존하는 우주 만물의 원리가 이번 시즌 패션계에도 적용되고 있다. 패션 좌표의 양극단에 위치한 상충되는 트렌드의 드라마틱한 간극을 즐겨보길!

1.볼드 VS 심플

주렁주렁
이번 시즌 주얼리에 관해서라면 ‘과유불급’이란 말을 잊어도 좋다. 런웨이를 지배한 대표적 트렌드인 오버사이즈 코트만큼이나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데, 크기는 대담해지고, 디자인은 극도로 과감해졌기 때문. 돌체&가바나, 발맹, 디스퀘어드 걸들은 어깨까지 내려오는 주먹만 한 크기의 코스튬 귀고리를 착용했고, 랑방 레이디들은 굵은 체인 목걸이와 위트 있는 단어가 적힌 묵직한 펜던트 목걸이를 주렁주렁 겹쳤는데, 이쯤 되면 주얼리를 하는 게 아니라 ‘입었다’고 표현해야 할 정도! 목걸이나 귀고리뿐만 아니라 브로치의 활약도 대단한데, 랑방 쇼에는 화려한 목걸이들과 함께 나비와 벌 같은 곤충 브로치가 꽃무늬 톱 위를 정원처럼 날아다녔고, 드리스 반 노튼 쇼에는 투명한 크리스털로 이루어진 도마뱀, 가재, 잠자리 모양의 브로치들이 여기저기 장식되어 재미를 더했다. 올가을에는 집을 나서기 전, 주얼리를 더는 것이 아니라 더하는 것이 스타일링 비법이 될 듯.

단 하나의 아름다움
지구상의 유행을 좌지우지하는 피비 파일로알렉산더 왕, 에디 슬리먼이 미니멀하고 심플한 얼리에 중점을 뒀다는 사실은 앞으로 유행의 무게중심이 이쪽으로 이동할 것임을 시한다. 맥시멀리즘을 쓸어버리고 간결하고 클래식한 옷 입기를 깨우쳐준 피비 파일로가 주얼리에서도 이런 트렌드를 선도하고 있는데, 걸이와 팔찌 모두 구슬 장식만 남기고 은 띠 같은 메탈에 세팅한 미니멀한 주얼리를 만들었다. 알렉산더 왕은 1930년대 발렌시아가 하우스의 아카이브에서 발견한 모티프인 리본 장식을 크롬 소재로 변화시켜 극도로 심플한 주얼리로 둔갑시켰으며, 에디 슬리먼 역시 자신의 몸처럼 가늘고 담백한 액세서리들을 선보였다.

1. 스와로브스키가 장식된 펠트 소재 목걸이는 마르니 제품. 가격미정.
2. 코코 샤넬을 상징하는 심벌들이 얹어진 뱅글은 샤넬 제품. 가격 미정.
3. 위트있는 레터링 펜던트 목걸이는 랑방 제품. 3백95만원.
4. 컬러풀한 스톤이 장식된 독수리 모티프 목걸이는 슈룩 by 반자크 제품. 가격 미정.
5. 도마뱀 모양의 크리스털 브로치는 드리스 반 노튼 제품. 가격 미정.
6. 총알 모양이 장식된 골드 뱅글은 생 로랑제품. 가격 미정.
7. 구조적인 디자인의 메탈 귀고리는 루이비통 제품. 가격 미정.
8. 리본 모양 브레이슬릿은 발렌시아가 제품. 60만원대.
9. 얇은 실버 뱅글은 메종 마틴 마르지엘라 제품. 가격 미정.
10. 스터드가 장식된 반지는 에르메스 제품. 가격 미정.

2.맥시 VS 모던

화려한 비상
오늘날 패션 피플들은 화려한 날개를 활짝 편 공작새를 연상시키는 아름답고 풍성한 맥시멀리즘에 열광한다. 밤하늘에 쏘아 올린 폭죽처럼 형형색색의 불빛이 반짝이듯 온갖 색상과 크리스털, 비즈 장식이 어우러졌는데, 어둠을 밝히는 이 아이템들과 함께라면 ‘밤의 지배자’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화려함의 정점을 찍은 쇼는 바로 톰 포드. 이 멋진 신사는 온갖 모피와 프린트, 색상을 조합한 극강의 맥시멀리즘을 선보였고, 타조 깃털에 비즈를 장식한 구찌의 탐미적인 레이스 드레스, 시칠리아 대성당의 장엄하고 웅장한 모자이크에서 영감을 얻은 돌체&가바나의 금빛 향연, 마치 우주 대폭발처럼 호화롭게 빛나는 발맹의 스톤 장식 룩은 황홀함 그 자체!

모던 패밀리
이번 시즌 런웨이에서는 극도로 정제되고 세련된 룩이 주목을 끌었다. 이런 트렌드에 불을 지핀 주자들은 바로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를 찬양하는 디자이너들이었다. ‘전례를 찾을 수 없는 완벽한 건축 같은 구조와 재단, 모방이 불가능한 단순함’이라고 극찬받은 발렌시아가의 유산은 새로운 후계자 알렉산더 왕의 손끝에서 시적인 아름다움을 발하는 피스들로 부활했는데, 우아한 흑백의 팔레트 안에서 건축적인 볼륨이 돋보이는 코쿤 코트, 어깨가 둥그스름하게 굴려진 재킷은 검은 팬츠, 화이트 셔츠와 모던하게 어우러진 것은 물론 동시대적 감성으로 충만한 쿨한 모습이었다. 그런가 하면 프로엔자 스쿨러 듀오는 둥글게 부풀린 재킷과 스커트의 앙상블로 건축적인 레이디라이크 룩을 선사했고, 빅토리아 베컴은 날카로운 커팅이 돋보이는 어깨가 둥근 원피스로 교양미 넘치는 우아한 무드를 완성했다.

3. 크림 VS 네이비

부드러운 우유 거품처럼
한때 패션계 사람들이 까마귀라고 불리던 시절이 있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은색으로 치장하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쿨하다고 믿었기 때문. 반대로 (특히 가을/겨울 시즌의) 올 화이트 룩은 왠지 부담스럽고 촌스럽다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이번 시즌 그 고정관념은 완벽히 깨졌다. 셀린 쇼에서는 휘핑크림을 연상시키는 색감의 부클레 소재로 만든 피트 & 플레어 라인의 원피스 위로 양팔을 살포시 감싸는 오프숄더 케이프가 겹쳐졌고, 프로엔자 스쿨러는 따뜻한 우유처럼 부드러운 색감의 코트를 내보냈으며, 니나리치는 테디베어같이 보드라운 알파카 소재의 스커트를 동일한 색감의 니트 톱과 매치시키는 등 스산한 추위를 단번에 날려줄 따끈한 크림 컬러에 푹 빠져버렸으니까. 이번 시즌을 계기로 패션 피플들은 까마귀보단 우아하고 고고한 ‘백조’라고 불리게 될 듯!

진중하고 숭고한
이번 시즌 크림색과 함께 새로운 블랙으로 떠오른 색이 바로 네이비다. 다양한 남색 계열 중에서도 단아하고 고상한 성품을 가진, 어둡고 깊은 채도의 남색이 키 컬러. 남성적인 테일러링을 관통하는 트렌드 색상으로 매니시 무드를 우아하고 모던하게 승화시키는 데 일등 공신 역할을 했다. 샤넬, 셀린, 끌로에 등 수많은 컬렉션에서 제시한 것처럼 머리부터 발끝까지 네이비로 무장하는 것이 명민한 스타일링 법인데, 단조롭고 지루한 느낌이 든다면 톤온톤 아이템을 이용해 변화를 주는 것 또한 좋은 방법. 짙은 남색은 차분하고 도회적인 느낌을 줄 뿐만 아니라, 언제 입어도 실패할 확률이 낮고 그 어떤 옷과도 무난하게 잘 어울리는 마법 같은 색상이다. 이 수많은 장점 중에서도 가장 매력적인 것은 몸매 보정 효과가 뛰어나다는 것이 아닐까?

4. 스몰 VS 빅

내 손안에
세상이 편리해질수록 여성의 가방은 점차 작아졌다. 수백 명의 연락처, 스케줄이 담긴 다이어리 같은 개인적인 정보는 물론 회사 업무와 연관된 이메일부터 공인인증서에 이르기까지 가방을 무겁게 했던 많은 요소들이 자그마한 스마트폰 하나에 다 들어갔기 때문. 덕분에 레드 카펫을 우아하게 걷는 여배우의 전유물이었던 클러치가 여성들의 일상으로 침투해 오피스 룩에 화룡점정이 되어주고 있다. 진주가 박힌 발렌티노의 새틴 클러치나 보테가 베네타의 놋 클러치, 마이크로 사이즈의 레이디 디올 백처럼 한 손으로 가볍게 쥘 수 있는 미니미 사이즈의 클러치가 대세. 이 아이템들과 함께라면 회사로 향할 때, 파티장에 가는 기분을 만끽할 수 있지 않을까?

미친 존재감
오버사이즈 코트, 커다란 코스튬 주얼리처럼 가방도 거대한 사이즈의 위용을 자랑한다. 커다란 가방은 오랜만에 런웨이로 돌아온 만큼 미친 존재감을 발휘하는 아이템. 프라다의 반달 모양 토트백과 몸집만큼 커다란 마르니의 토트백은 트렁크처럼 큰 크기 덕분에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 충동이 일 정도! 이 큼지막한 백을 드는 가장 쿨한 방법은 할리우드 스타들이 아이를 안 듯 백의 하단을 움켜쥐고 끌어안 듯 골반에 밀착시키기. 이렇게 근사한 포즈를 위해선 무엇보다 운동이 필수가 될지도 모르겠다. 돌덩이처럼 무거운 빅 백을 한 손으로 가볍게 들어올려야 하니까.

1. 지구본 모양의 클러치는 샤넬 제품. 가격 미정.
2. 덮개 부분이 접힌 듯한 디자인의 백은 생로랑 제품. 가격 미정.
3. 레오퍼드 패턴으로 비즈가 장식된 클러치는 톰 포드 제품. 가격 미정.
4. 악어가죽 패턴이 담긴 토트백은 발렌시아가 제품. 가격 미정.
5. 앙증맞은 사이즈의 토트백은 디올 제품. 가격 미정.
6. 나뭇결이 살아 있는 자연 친화적인 클러치는 스텔라 매카트니 제품. 가격 미정.
7. 깅엄 체크 패턴의 볼링백은 프라다 제품. 1백만원대.
8. 연보라색이 돋보이는 가죽 클러치는 스텔라 매카트니 제품. 1백만원대.
9. 화사한 형광 노랑빛의 쇼퍼백은 루이 비통 제품. 가격 미정.
10. 컬러풀한 모피가 장식된 백은 펜디 제품. 가격 미정.
11. 북슬북슬한 모피로 덮인 토트백은 루이비통 제품. 가격 미정.

5. 매스큘린 VS 페미닌

남자의 향기
‘남성의 옷을 입은 여성’은 여전히 매력적이다. 몇 시즌째 지속되고 있는, 그러나 여전히 지칠 줄 모르고 인기를 얻고 있는 스테디셀러 트렌드다. 이러한 유행을 선도하고 있는 디자이너로 스텔라 매카트니라프 시몬스, 드리스 반 노튼 등이 있는데, 스텔라 매카트니는 90년대 초 새빌로 시절을 재조명해 영국의 전통적인 테일러링 스타일에 기반한 섬세하고 완벽한 재단 기술을 뽐냈다. 남성성과 여성성을 절묘하게 교차시켰는데, 핀 스트라이프를 응용한 오버사이즈 코트는 당장이라도 입고 싶을 정도로 매력적이었고, 동양적인 자수를 더해 여성성을 강조한 드리스 반 노튼의 핀 스트라이프 스커트 팬츠 수트 역시 관객들의 눈빛을 반짝이게 했다. 추운 겨울에는 밴드 오브 아웃사이더 쇼에서 제시한 것처럼 핀 스트라이프 수트 위에 풍성한 모피 코트를 걸치는 것 또한 위트 넘치는 스타일링 법이 될 듯!

우아한 치맛바람
이번 시즌, 스커트가 돌아왔다. 여성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최고의 수단인 스커트를 향해 찬사를 보낸다는 것은 극도로 우아하고 아름다운 ‘뉴 뉴룩’의 시대가 열리고 있음을 방증하는 단적인 예다. 특히 잘록한 허리 밑으로 은방울 꽃처럼 펼쳐진 풀 스커트의 나풀거림과 가늘고 긴 여체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미디스커트는 여자들의 욕망을 극대화하는 최고의 유행 아이템으로 떠올랐다. 이런 실루엣의 스커트는 50년대 룩의 2013년도 버전이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로 완벽히 세련된 모습으로 고전미와 현대적 매력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우아한 치맛바람과 함께 고상하고 온화하며 기품이 흐르는 숙녀로 여성성을 발휘해보는 건 어떨까?

6. 걸 VS 우먼

무서운 십대
이번 시즌 패션계는 ‘피터팬 증후군’에 빠진 걸까? 90년대를 풍미한 그런지 트렌드와 함께 십대 시절 즐겨 입던 추억의 룩이 런웨이에 등장했으니 말이다. 가장 대표적인 아이템은 어린아이처럼 순진하고 순수한 소녀들의 전유물인 베이비돌 드레스, 더플 코트와 교복, 그리고 사랑스러운 만화 프린트가 담긴 스웨트 셔츠다. 이 옷들을 대하는 태도는 저마다 다른데, 에디 슬리먼은 앙증맞은 베이비돌 드레스와 더플 코트를 반항기 줄줄 흐르고 껄렁한 눈빛을 가진 생로랑 모델에게 피시넷 스타킹, 투박한 워커와 함께 입힌 반면, 정숙한 기숙사에서 갓 나온 듯한 발렌티노 소녀들은 베이비돌 원피스를 단아하게 차려입은 소공녀 같았다. 끌로에 역시 자칫 유치하다고 느낄 수 있는 걸리시한 룩을 쿨하게 입을 수 있는 방법론을 제시했는데, 소녀에서 여성이 되는 과도기를 거치고 있는 모델들은 피나포어 드레스에 달랑이는 피어싱 귀고리로 멋을 냈고, 디즈니 밤비에 푹 빠진 리카르도 티시는 밤비 프린트 스웨트 셔츠에 보헤미안풍의 스커트를 매치해 기괴하면서도 로맨틱한 룩을 완성했다.

원숙미를 더하다
올 가을/겨울은 도발적이고 관능적인 요소를 지닌 여자들의 세상이다. ‘패션의 어떤 측면이 여성의 욕망에 도화선이 되어주는가?’라는 질문에 미우치아 프라다는 ‘가공되지 않은 우아함’이라는 답변을 남기며 젖은 머리, 한쪽 어깨를 과감하게 끌어내린 상의, 피트 & 플레어 실루엣의 풀 스커트 조합으로 탐미적인 여성성을 드러냈고, 루이 비통니나리치에는 슬립과 드레스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란제리 룩이 등장했다. 또한 어깨의 곡선과 쇄골을 드러내며 섹시미를 폭발시킨 조너선 선더스구찌의 숙녀는 히치콕 영화의 여주인공처럼 보였을 정도. 즉, 우아하고 품격 있는 외모에 어딘지 음산하고 미스터리한 표정을 감추고 있는 농염한 베티 블루 스타일의 여인이 이번 시즌의 헤로인이라고 할 수 있다.

에디터
패션 에디터 / 정진아
아트 디자이너
표기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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