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각 분야에서 의미 있는 파장을 일으키며 주목받고 있는 이름들, 혹은 최근의 문화계를 흥미롭게 가속시킨 진짜 에너지들.

소설가, 뮤지션 이석원

어쩌면 사람들은 뮤지션 이석원의 귀환을 더 기다렸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가 지난 4년 간 꼬박 매달린 건 언니네 이발관의 6집이 아니라 자신의 첫 번째 장편 소설이었다. ‘소설가’ 이석원의 데뷔작인 <실내인간>은 어느 베스트셀러 작가의 비밀스러운 정체를 성실하게 추적한다. 실연의 충격 때문에 한동안 폐인처럼 지냈던 용우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이사를 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는 우연히 방세옥이라는 필명의 베스트셀러 작가인 용휘와 가까워지는데, 강박적으로 글을 써대고 판매 순위에 병적으로 집착하는 등 여러모로 수상쩍고 불투명한 인물이다. 오해와 의심과 고백과 이해 끝에 용우는 껍데기 안에 감춰진 진짜 용휘를 만나게 된다. <실내인간>은 삶과 사랑의 관계에 관한 탐색이며 비밀과 거짓말에 대한 이야기다. 이석원은 허가받은 거짓말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소설가라는 직업에 끌렸다고 한다. 사실 그는 누구보다도 거짓말의 힘을 믿는 사람이다.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존재하지도 않는 밴드의 멤버라고 허풍을 떤 뒤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언니네 이발관을 결성한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소설을 하나 쓰고 있다는 말을 흘려 출판사와 계약까지 맺었지만, 실제로 그때까지 완성된 원고는 단 한 줄도 없었다. 거짓이 진실이 되고 그 과정에서 삶의 가능성이 확장되는 경험을 한 이에게 소설은 당연한 목표였을지도 모르겠다. 백지가 뭐든 할 수 있는 공터보다는 어디로도 갈 수 없게 하는 벽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지만 결국 마지막 마침표는 찍혔다. 이석원이 진심을 다한 거짓말이다.

<실내인간>은 소설가로서의 첫 결과물이다. 음반이나 에세이를 발표할 때와는 또 다른, 새삼스러운 감상이 있었을 것 같다.
소설이라서 겪는 두려움이 있었다. 에세이까지는 너그럽게 봐준 사람들도 소설에 대해서는 훨씬 신랄해질 수 있으니까. 게다가 음악 하는 사람이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도 만만치 않다. 여러모로 불안했다.

발표한 뒤에는 어땠나? 불안이 더 심해졌나?
사실 나는 최악의 반응까지 각오하고 있었다. 그래서 피드백을 받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오히려 마음이 좀 편해졌다.

접한 리뷰 중 특히 기억에 남은 내용이 있다면?
얼마 되지는 않겠지만 이미 나를 알고 관심 있게 지켜봐온 사람들의 반응은 후하든 인색하든 그리 객관적이지는 못한 것 같다. 나는 날 모르는 사람들이 내 이야기를 찾는다는 데서 책을 쓴 보람을 느낀다. 이번에도 “이석원이 누군지도 몰랐는데 소설은 재미있더라” 같은 반응이 가장 기쁘다. 글을 쓰면서 딱 한 가지를 바랐다. 재미있다는 평을 듣는 것. 너무나 힘들게 썼지만 독자들은 두어 시간 만에 휙 읽을 수 있었으면 했다.

처음부터 덜컥 장편 소설을 썼다. 단편집이 아닌 장편이어야했던 이유가 있나?
너무 몰라서 그랬다. 이미 소설을 쓰고 있다고 출판사에 거짓말을 해서 덜컥 계약을 했는데 도무지 써지지가 않았다. 몇 달 동안 고민하다 사람들에게 물어봤다. 장편과 단편 중 어느 쪽이 더 폼이 나는 거냐고. 그랬더니 한국은 단편을 잘 안 쳐준다고 하더라. 일이 그렇게 된 거다. 아무튼 나는 뭐든 일이 주어지면 열심히 하는 편이다. 그래서 이것도 달려들면 될 줄 알았다. 시작하고 난 뒤에야 마음처럼 안 되는 일이라는 걸 알았다. 장편은 단편과 완전히 다른 작업이라는 생각이 든다. 음악으로 비유를 하자면 단편집은 5분 길이의 곡을 20개쯤 묶는 앨범이다. 장편은 100분짜리 한곡을 쓰는 일에 가깝다.

소설의 시작점에 대해 물어보려고 했는데, 그럼 계약이 계기였던 모양이다.
그렇게 봐도 무방하다.

소설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이야기 자체보다 먼저였던 건가?
계속 글을 쓰면서 살아가고 싶은 마음이 있다. 하지만 이번에 또 에세이를 쓰는 건 피했으면 했다. 거짓말은 내 인생에서 여러 차례 중요한 계기를 만들어줬다. 허가받은 거짓말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게 무척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그래서 소설을 쓰고 싶었던 것 같다.

소설을 쓰게 된 계기는 계약이라 치고, 그래도 이야기 자체의 착점은 따로 있을 것 같다.
첫 장인 ‘워리의 사형식’은 내가 어느 날 낮잠을 자다 꾼 꿈이다. 일어나자마자 그 내용을 텍스트로 옮겼다. 그러고 나니까 다른 이야기도 파편적으로 떠오르면서 조금씩 글을 써나갈 수 있었다. ‘나’, 즉 용우의 시점으로 전개되는 이야기지만 실제 주인공은 소설가인 용휘다. 용우가 용휘의 비밀을 조금씩 밝혀가는, 일종의 추리물 같은 전개 방식을 택했다. 무척 큰 결함을 갖고 있지만 그 결함을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 사람에게 매력을 느낀다. 전기 읽는 걸 특히 좋아하는데 로버트 드니로부터 버지니아 울프까지, 거의 완벽해 보이는 각 분야 슈퍼스타들의 속좁고 파렴치한 면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게는 그런 모습이 무척 인간적으로 느껴진다. 세속적인 성공을 마음껏 누리고, 매사에 자신감이 넘치는 것 같은 용휘의 결함이 관찰자에 의해 천천히 드러났으면 했다.

용휘와는 하는 일도, 나잇대도 비슷하다. 이 캐릭터에 대한 묘사 중 본인에게서 가져온 것도 있나?
기본적인 디테일을 많이 가져왔다. 예를 들어 빵을 좋아한다거나… 나를 아는 사람이라면 “이거 네 이야기네?”라고 말할 여지가 충분하다. 일부러 바꿔볼까 생각도 해봤지만 결국 그러지 않기로 했다. 일단 이 책의 독자 중 내 지인은 일부에 불과할 게 분명하다. 결국 내 이야기인가 아닌가보다는 소설로 쓸 만한 이야기인가, 사람들이 사서 볼 만한 이야기인가가 더 중요하다고 봤다. 항상 말하는 건데 글은 글일 뿐이다.

거칠게 정리하자면 <실내인간>은 연인을 잃어버린 남자의 이야기다. 지나간 사랑에 대한 용휘의 미련은 거의 집착에 가까울 만큼 절실하다. 이런 생각을 많이 했다. 누군가를 열렬히 사랑하다 헤어지면 그 사랑은 끝나는 걸까?
솔직히 사람들이 이 소설을 연애 이야기로 받아들이는 게 난 다소 뜻밖이다. 어느 정도는 의견이 갈릴 줄 알았다. 용휘가 죽도록 사랑하는 여자가 아예 등장도 하지 않는 소설이니까. 나름의 이유가 있는 설정이다. 헤어졌든 그렇지 않든 사랑이란 본질적으로 자기 자신의 문제가 아닐까 싶다. 사랑의 방식이란 그 사람이 삶을 사랑하는 방식과 맞닿아 있으며 삶과 사랑은 결코 다르지 않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용휘의 집념이 왜곡된 것이라면 그 원인은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한 채로 살아온 그의 40 평생에 있을 거다. 그러니까 잊지 못하는 애절함이 이야기의 포인트는 아니다. 삶으로서의 사랑을 그리고 싶었다.

사랑과 삶이 맞닿아 있고, 사랑 때문에 삶이 바뀔 수 있음을 실제 경험에서 실감한 적이 있나?
많다. 내게는 사랑이 삶에서 무척 중요한 가치다. <웰컴>이라는 영화가 있다. 쿠르드족 청년이 런던으로 떠난 여자친구를 만나기 위해 도버 해협을 헤엄쳐 건넌다는 내용이다. 당시 여자친구가 나는 절대 저러지 못할 거라고 하더라. 그런데 사실 나는 사랑하면 뭐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건 충분히 인생을 뒤 흔들어놓을 만한 일이다.

개인적으로는 용휘에게 자신의 작품을 도둑맞았다고 주장하는 무명 소설가 권순원의 캐릭터가 인상적이었다.
바람이 너무 절실한 나머지 그걸 현실로 믿어버리는, 어떻게 보면 가장 애처로운 인물이다. 둘은 일종의 도플갱어다. 베스트셀러 작가라는 껍데기를 벗기고 나면 용휘는 권순원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결국 권순원은 용휘를 독자에게 더 잘 보여주기 위해 필요했던 캐릭터다.

작가 입장에서 특히 마음이 가는 캐릭터가 있나?
권순원이다. 가장 소외되고 외로운 인물이다. 심지어 이름조차 가명이고 본명은 끝까지 언급되질 않는다. 그렇게 아무것도 되지 못한 존재에 늘 연민을 갖는다.

사람들에게 더 익숙한 건 뮤지션 이석원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글을 쓰는 일에 더 집중하고 있는 눈치다.
뮤지션은 창작자로서의 정년이 무척 짧은 직업이다. 음악은 의지만으로 안되는 일이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30대 후반 무렵, 40대가 되면 곡이 안 나올 수도 있겠다는 공포를 내내 앓던 와중에 우연히 출간 제의를 받았다. 어떤 분이 글은 늙어서까지도 쓸 수 있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그게 나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음악의 경우, 노래나 연주는 몰라도 곡을 쓰는 건 나이가 들수록 어려워지니까. 내가 뮤지션으로서 글을 쓴 게 아니라는 걸 병적으로 강조하기는 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글이나 음악이나 나를 표현하는 도구라는 점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고 본다. 글에 대단한 가치를 부여하거나 음악보다 우월한 작업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늙어서도 유효한 표현 수단이라는 점에서는 매력적이다.

소설가 이석원뿐만 아니라 뮤지션 이석원을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도 많을 거다. 언니네 이발관의 앨범 구상은 없나?
앨범이 지연되는 건 곡이 나오질 않아서다. 3년째 붙들고 있는데 한 곡도 완성이 안 됐다. 사람들이 물어보면 무조건 2020년 안에 발표하는 게 목표라고 답한다. 그때까지는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싶어서다. 안 되면 어쩔 수 없는 거고. 나는 음악을 기계적으로 만드는 타입이 못 된다. 살면서 다양한 경험을 해야 비로소 노래가 나온다. 솔직히 나도 빨리 내고 싶다.

벌써 다음 소설을 구상 중이라고 들었다. 심지어 제목도 결정됐다던데.
맞다. 여덟 자인데 제목이 절반 이상인 소설이라 미리 말하기가 곤란하다.

쓰기 전과 쓰고 난 후, 소설이라는 작업에 대한 생각은 어떻게 달라졌나?
쓰는 동안은 잘 쓰는 것도 바라지 않고, 그저 끝낼 수 있기만 기도했다. 혼자서 건물을 짓겠다고 나선 형국이 아닌가 싶었다. 첫 소설을 마쳤으니 자신감이 느껴져야 하는데 오히려 지금은 많이 위축된 상황이다. 약간 알고 나니까 두려움이 더 커졌다. 앞으로도 한동안은 더 두려울 것 같다. 그런데 두 번째 작품도 또 장편으로 계획하고 있다. 워낙 어려운 걸 하고 싶어 하는 습성이 있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