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다른 곳에서, 서로 다른 이들과, 서로 다른 스타일로 소통하는 8명을 만났다. 그리고 그들이 F/W 시즌 가장 핫한 쇼피스를 입었다. 꿈을 이뤄가고 있는 그들의 일상처럼 런웨이의 판타지도 우리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메시지를 전하며. 치열한 삶 속에서 때론 한 모금의 여유를 즐기는 공간으로 깊숙이 들어온 런웨이 룩 퍼레이드!

어깨에 걸친 펀칭 장식의 검은색 가죽 트렌치코트는 버버리 프로섬, 색색의 줄무늬가 돋보이는 밍크 퍼 톱과 과감한 슬릿의 가죽 스커트는 펜디, 정교한 비즈와 자수 장식의 라이딩 부츠는 랄프 로렌 컬렉션 제품.

성규리 바 루프XXX(Ruf XXX) 퍼포머
남산자락 중턱에 위치한 바 루프XXX. 한적한 한남동 주택가에 위치한 이 공간은 딱 보기에도 숨겨진 흥미로운 아지트 같다. 원래 스튜디오와 바로 나누어진 공간이었지만, 2년 전부터 시작된 독특한 퍼포먼스가 점차 그 형태를 잡아가면서 이젠 종이를 겹겹이 쌓아 올린 특별한 객석이 자리한 어엿한 공연장이 되었다. 삶과 죽음을 큰 줄기로 춤과 노래가 공존하고, 여기에 국악 악기까지 더해진 새로운 장르의 공연. 그리고 그 중심에 선 퍼포머 성규리는 한눈에 보기에도 진한 카리스마를 내뿜으며 루프XXX로 사람들을 끌어모은다. 그런 그녀가 평소 즐기는 건 요지 야마모토의 넉넉한 실루엣과 담담함이 느껴지는 스타일. 그렇게 한남동 거리를 벗어나지 않는 일상에서 한 템포 느린 삶을 즐긴다. 반면 남산 풍경이 어둑해진 시각, 의자에 앉아 과감하게 다리를 벌린 채 공연에 몰입하는 그녀는 이전과 다른 공기로 호흡한다. 와일드한 스터드 장식 코트와 라이딩 부츠가 근사하게 잘 어울리는 파워풀한 모습으로. 그 어느 때보다 열정적으로 생을 느끼며.

파이톤 패턴을 글램하게 연출한 크롭트 재킷은 버버리 프로섬, 파이톤 가죽의 하이넥 톱과 우아한 실루엣의 미디스커트는 구찌 제품.

티파니 수제 맥주 바 맥파이(Magpie) 오너
이태원 경리단길 자락에 위치한 맥파이는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유명한 수제 맥주 바다. 향긋한 시트러스 향과 쌉쌀한 커피 향이 나는 수제 맥주의 끝내주는 맛도 그렇지만 언뜻 지나치기 쉬운, 지상과 지하로 이어지는 맥파이의 공간 또한 이색적이어서 사람들의 발길을 끈다. 이 곳의 안주인은 큰 키에 볼륨감 있는 몸매, 그리고 헤이즐넛 색상의 아름다운 눈을 지닌 티파니. 티셔츠와 편안한 크롭트 팬츠 차림으로 더블유 스태프들을 맞이한 그녀는 집에서도 수제 맥주를 만들어 마실 수 있느냐는 질문에 물론이라며 열심히 효모의 반응에 대해 설명한다. 아리랑 TV의 다큐멘터리에 등장해 사람들에게 수제 맥주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키고, 동업자들과 함께 새 맥주를 개발하며, 수제 맥주에 대해 배울 수 있는 클래스를 열고 있는 그녀에게 수제 맥주는 현재 진행형의 사랑과 같다. 그렇다면 패션은? 맥파이의 안팎 살림을 도맡는 지금은 엄두를 낼 수 없지만 패션에 관심이 많아 온라인 사업을 하기도 한 그녀에게 패션은 마치 옛 애인 같은 아련함과 호기심을 안겨준다. 그리고 자신이 만든 맥주만큼이나 아름다운 빛깔의 옷을 입은 그녀에게 패션과 맥주는 같은 메시지를 전한다. 장인의 손길이 닿은 명품처럼 손맛을 더하고 애정을 쏟을수록 풍미를 더할 수 있다는 사실을.

독특한 실루엣의 벨 슬리브가 돋보이는 붉은색 원피스와 섬세한 패턴의 사각 토트백은 돌체&가바나, 레이어드해 연출한 금빛 목걸이와 진주 장식 팔찌는 엘리오나 제품.

크리스틴 리 레스토랑 세컨드키친(Second Kitchen) 수석 셰프
기분 좋은 음악과 친근한 말소리가 울려퍼지는 레스토랑 테이블이 에덴이라면 키친은 그야말로 지옥에 비교될 수 있다. 뜨거운 불과 기름이 가득하고, 주문이 들어오는 대로 목청껏 메뉴를 외친 뒤 초싸움을 벌이며 음식을 만들어내야 하는 곳이니까. 사실 국내 유수의 레스토랑에서 여자 셰프를 만나기란 쉽지 않다. 부엌이 주부의 일상적인 공간으로 여겨지는 반면, 레스토랑의 키친은 대부분 남자가 장악해온 세계다. 그래서 요즘 한남동에서 가장 잘나간다는 세컨드 키친의 수석 셰프인 크리스틴 리에게 매거진의 러브콜이 이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손님들이 빠져나간 야심한 시각의 키친에서 셰프에게 스파이시한 향이 날 것 같은 붉디붉은 드레스를 입히자 이곳은 완전한 여자의 공간으로 거듭났다. 그리고 이 드레스를 보며 그녀는 부드럽게 익힌 삼겹살과 가지, 여기에 탐스러운 토마토가 어우러진 요리가 떠오른다고 했다. 부풀린 소매 라인과 허리를 꼭 죄는 실루엣에 기분 좋은 긴장감이 느껴진다고 덧붙이면서. 조리복을 벗고 여자라면 누구나 버킷리스트에 올릴 법한 드레스를 입은 셰프, 그 특별한 광경은 내면의 또 다른 자신을 만나게 하는 패션의 마법을 선보였다.

집업 패딩 코트, 도트 패턴의 롱스커트와 노란색 스카프, 유선형의 실루엣이 돋보이는 가죽 백, 투 톤의 스웨이드 슈즈는 모두 미우미우, 경쾌한 도트 패턴의 양말은 아이 헤이트 먼데이 제품.

홍정미 양말 브랜드 아이 헤이트 먼데이(I Hate Monday) 디자이너 겸 오너
감각적이고 위트 있는 양말을 디자인하는 홍정미는 월요일엔 되도록 출근을 하지 않는다. 양말 디자인을 시작하기 전, 한 패션 의류 브랜드의 디자이너로 일하며 혹독한 월요병을 앓았기 때문이다. 독립 후 그런 마음을 담아 2011년 6월에 ‘아이 헤이트 먼데이’라는 양말 브랜드를 시작했고, 어느새 제법 그 규모가 커졌다. 매체 협찬 문의가 오기 전에 그 제품이 금세 솔드아웃되어 난감한 적도 있으니까. 사실 지금의 아이 헤이트 먼데이를 알리게 한 일등 공신은 양말 자판기다. 소담한 컵에 둘둘 말린 양말이 담겨 또르르 굴러 나오는 이 자판기를 공수하기 위해 그녀는 방방곡곡 제조업자를 수소문했다. 그리고 그녀가 보유한 자판기 중 하나는 바로 여기 홍대 인근의 로우로우(RawRow) 매장 앞에 위치한다. 거리에서 만나는 숱한 음료 자판기가 당장의 갈증을 해소해준다면? 이 위트 있는 양말 자판기는 곁에 두고 오래 신을 수 있는 스타일리시한 양말을 제공한다. 그리고 여기 도트 패턴 스카프와 그녀의 양말은 서로 닮아 있다. 핫한 컬렉션 룩에 생기를 불어넣으며 스타일의 방점을 찍는 동시에 누군가의 일상에 활력을 불어넣어주는 점에서 말이다.

하트 프린트의 송치 소재 트렌치코트는 버버리 프로섬, 파이톤 소재의 사이하이 부츠는 구찌 제품.

김진아 바이닐&펍 골목 오너
바이닐이란 LP판을 부르는 또 하나의 용어다. 김진아 대표를 만나 LP판이 빼곡히 차 있는 바이닐&펍 ‘골목’에 대한 오해 두 가지를 풀었다. 얼핏 LP판을 떠올리면 소수의 마니아적인, 그리고 아날로그적 공간을 떠올리게 되니까. 하지만 20년간 월급을 쏟아부으며 1만 장이 넘는 엘피판을 모았다는 황세헌 대표와 함께 최근 이태원 경리단길에 오픈한 이 공간은 맥주 한 잔을 놓고 LP에 담긴 과거부터 최신에 이르는 다양한 음악을 들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젊은이들도 함께 즐기는 캐주얼한 펍이다. 몇 해 전부터 인기를 얻은 밤과 음악 사이처럼 사람들의 추억이 깃든, 불과 10여 년 전의 콘텐츠를 상업적으로 소진하는 그런 곳 말고, 자연스레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곳. 구획 정리된 길보다는 유일무이한 구불구불 골목길처럼 나 스스로 오롯이 존재할 수 있는 휴식을 안겨주는 공간을 추구한다고 했다. 이러한 철학은 그녀의 패션에도 적용된다. 누구나 원하고 유행처럼 드는 명품 백보다는 독특한 내면을 담아낼 수 있는 개성 넘치는 물건을 찾는다는 것. 그리고 강렬한 실루엣에 사랑스런 하트 패턴이 어우러진 트렌치를 입은 그녀는 얼핏 기 센 여자로 보이지만 알고 보면 여린 내면을 지닌 자신과 닮은것 같다고 귀띔했다.

검은색 슬리브리스 톱과 풍성한 볼륨감의 스커트는 디올, 화이트 핑크의 가죽 클러치는 보테가 베네타, 이어커프와 커프, 그리고 반지는 모두 엘리오나 제품. 목걸이는 에디터 소장품.

권정민 대림미술관 수석 큐레이터
통의동에 위치한 대림미술관은 ‘슈타이들’ 전시를 찾은 이들로 활기가 넘쳤다. 독특한 타이포그라피가 담긴 액자와 책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담은 사진들이 벽면을 채운 미술관 안. 그 중앙에 풍성한 풀 스커트를 입은 수석 큐레이터 권정민이 우아한 애티튜드로 촬영에 임했다. 슈타이들 전시를 비롯해 2년 전 큰 이슈를 모은 칼 라거펠트의 사진전을 기획하고 현실화한 그녀. 한 전시를 위해 보통 2년이 넘는 시간을 투자하는 큐레이터의 삶에 대해 들으며 그 면면이 에디터의 일상과 그리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흥미로운 전시 대상을 찾으면 먼저 끈질긴 섭외가 이어지고, 전시 기획이 잡힌 뒤에는 방대한 자료와의 씨름을 통해 입체적 전시 형태에 대한 논의를 진행한다. 그러고 나서 특정 주제의 전시를 위해 대림미술관의 공간을 탈바꿈시키는 체력전이 펼쳐지는 것. 마지막으로 멋지게 차려입고 전시의 오프닝을 열며 긴 프로젝트는 일단락된다. 이처럼 갤러리엔 숱한 액자들이 빼곡히 들어섰지만 여기에 보이지 않는 큐레이터의 손이 작용했다는 것을 유추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상기된 수줍은 말투로 이 드레스가 자신을 전시 공간의 주인공처럼 느끼게 해준다는 그녀를 떠올리며 큐레이터야말로 갤러리의 보이지 않는 진짜 주인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아름이 입은 강렬한 독수리 패턴의 톱은 스텔라 매카트니, 자주색 팬츠는 푸시버튼, 퍼 장식의 펌프스는 펜디, 목걸이와 반지는 꼴레뜨 말루프 제품. 김현희가 입은 흰색 톱과 자수 장식의 남색 원피스와 코트, 검은색 앵클부츠는 모두 스텔라 매카트니, 뱅글은 꼴레뜨 말루프 제품.

한아름, 김현희 라이프스타일 디자인 브랜드 오첵 디자인 그라픽스(O-Check Design Graphics) 디자이너
서교동 골목길에 위치한 아늑한 스프링컴레인 폴 카페는 오첵 디자인 그라픽스의 문구 디자인 사무실을 겸한 특별한 공간이다. 이곳에서 20대의 풋풋한 젊음이 느껴지는 디자이너 한아름과 김현희를 만났다. 오첵의 문구가 좋아 관심을 갖고, 꿈의 첫 직장을 시작한 두 디자이너에게 이곳은 특별하다. 사무실에서 계단을 따라 몇 발자국만 옮기면 자신이 디자인한 문구를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이들을 만날 수 있으니까. 그리고 그들이 디자인한 아날로그적인 감성이 묻어나는 소담한 문구 제품이 진열된 카페 내부. 이 공간은 크리에이티브함을 강요하는 대신 아날로그 시대가 주었던 편안함을 되돌아보게 했다. 이런 감수성 어린 공간에서 그저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는 그들을 위한 쇼피스는 아름다운 패턴이 시선을 사로잡는 룩들. 그 모습은 때론 런웨이의 화려한 조명보다 일상의 따사로운 햇살이 패션을 더욱 돋보이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안겨주었다.

섬세한 깃털 장식 톱과 스커트는 드리스 반 노튼, 손에 든 깃털 장식의 가죽 장갑은 샤넬, 크리스털 장식 목걸이, 진주 장식의 이어커프, 금빛 뱅글과 반지, 헤드피스로 연출한 사슴 모티프의 진주 목걸이는 모두 엘리오나 제품.

이송희 주얼리 브랜드 엘리오나(Elyona) 디자이너 겸 오너
주얼리도 옷과 마찬가지다. 디자이너가 경험한 문화와 자신만의 독특한 색상이 내비쳐야 하는 법. 그런 면에서 엘리오나는 서울과 런던을 잇는 문화적 배경 아래 디자이너의 강렬한 아이덴티티가 반영된, 가장 기대되는 신진 디자이너 주얼리 중의 하나다. 얼마 전 청담동의 한 건물 루프톱으로 작업실을 옮긴 엘리오나 디자이너 이송희는 재미있는 초대장을 보내왔다. 이번 시즌, <나니아 연대기>에서 영감을 받은 사슴과 곰 등을 모티프로 한 ‘The Beasts’ 컬렉션을 소개하면서 색색의 동물 모양 젤리를 동봉한 것. 그 초대장을 받고 찾아간 공간엔 지금까지 다섯시즌에 걸쳐 선보인 주얼리들이쇼케이스에 가지런히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장인들의 손길이 닿았을 깃털 장식의 스커트 룩을 입고, 엘리오나의 페미닌한 동시에 로킹한 매력을 지닌 주얼리를 착용한 그녀. 마치 로열 패밀리가 된 것 같다고 흥분된 어조로 말하는 그 모습은 엘리오나의 황금빛 주얼리가 지향하는 클래식하면서도 이중적인 매력과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