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의 어떤 것

W

케이블의 눈부신 약진, 그리고 종편의 무서운 추격이 TV 엔터테인먼트의 새로운 시대를 열고 있다. 본방 시청률 숫자만으로는 집계되지 않는 화제와 관심을 받고 있는 케이블 & 종편 프로그램이 만들어지는 현장을 들여다보고, 카메라 앞뒤에 선 사람들을 만났다.

JTBC <썰전> 말들의 전쟁

어깨너머로 넘겨본 <썰전> 대본은 비교적 헐거웠다. 당일의 토크 주제와 이슈를 정리하고 대략의 흐름과 질문을 정리해둔 정도. 이 프로그램은 그야말로 말 좀 한다는 출연자들이 ‘썰’을 푸는 장이고, 대본에 살을 붙이는 건 출연자들 혀의 몫이다. 녹화에 들어가면 거의 끊지 않고 한 호흡으로 진행하며, 방송 시간과의 차이도 별로 없다는 것이 특징. 거의 라이브에 가깝게 쏟아지는 토론 또는 대화 혹은 수다를 최소한의 편집으로 담아내는 탓이다. 출연자들의 순발력과 화학 작용, 무엇보다 말맛에 의존한 토크쇼라는 점에서 아마 <라디오 스타> 정도와 견주지 않을까 싶었지만 20회를 맞은 jtbc <썰전> 제작진이 꼽은 자신들의 라이벌은 뜻밖에 ‘치맥(치킨과 맥주)’이었다. 치맥을 먹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거나 혹은 치맥을 먹으러 가느라 포기할지도 모르는 경쟁 관계라는 점에서.

<썰전>은 그야말로 사회생활 하는 성인이라면 한마디씩 의견을 얹을 수 있는 분야, 커피 시간이나 술자리에서 이야기할 만한 시사와 정치, 드라마와 TV 비평 등의 테마를 아우르며 솔직한 수위와 강도를 넘나드는 토크쇼다. 그리고 이런 주제들이 흩어지지 않게 단단하게 붙들어매는 중심역할을 하는 사람이 바로 진행자 김구라다. “프로그램 자체가 김구라 씨를 MC로 염두에 두고 기획됐어요. 시사나 정치에 대한 기본 지식과 관심이 없이는 진행이 불가능하니까요. 그러면서 정치 이야기를 종편이라는 선입견 없이 같이해줄 수 있는 패널로 강용석 변호사와 정치평론가 이철희 소장을 떠올린 거죠.” 김수아 PD는 사람에 관심이 많아서 어지간한 정치인에 대해 나머지 두 사람이 깜짝 놀랄 정도로 많이 안다는 김구라의 장점을 언급했다. 연예 이야기를 하는 2부의 경우에는 ‘남의 프로그램 이야기를 부담 없이 솔직하게 할 수 있는 사람들’로 아나운서 박지윤, 개그맨 이윤석, 영화평론가 허지웅이 가세한다.

민감한 이슈를 다루는 만큼 구설수에 오르내리는 일도 적지 않다. 지난 방송분에서는 강용석 변호사의 발언이 문제가 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NLL 포기 발언을 했다고 주장한 새누리당 의원들을 강하게 비난한 것. 누구보다 구설수에 많이 휘말려온 강 변호사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서 호감을 받으며 이미지를 ‘세탁’ 했다는 평을 듣는다. 제작진은 ‘대중이 무엇에 관심 있어 하는지 정확하게 파악하며 설득력 있는 말투로 조곤조곤 설명해주는’ 화법을 그의 장점으로 꼽는다. “지난주에 내가 큰 사고 하나쳤잖아요. 민주당 들어오라는 얘기도 하던데요?” 정삼각형 구도로 짜인 세트는 화면으로 보는 것보다 훨씬 가깝고 긴장되는 배치다. 이 세트에서 세 사람 사이의 말이, 썰이 핑퐁처럼 쉴 새 없이 돌아간다.

“정치 코너를 재밌다고 하는 여자분이 많아요. 제가 하는 어떤 프로그램보다 체감으로 느끼는 반응은 크지만 쉬운 프로는 아닌 것 같아요. 비평을 한다는 게 말 한마디로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 수 있으니 고민이 많죠.” 2부 예능편을 진행하는 박지윤 아나운서의 말이다. 한편 김구라에게 썰전은, 자신이 궁극적으로 구상하던 프로그램에 가깝다. “개그맨으로서 내 장점이라면 사고가 논리적이고 딕션이 세다는 거니까요. 토크 프로그램을 많이 했지만 진짜 하고 싶었던 방송은 이런 거였어요. 이런 게 결국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우리 살아가는 이야기잖아요?” 에디터 | 황선우

올리브 TV <마스터 셰프 코리아 2> 맛을 보여드립니다

<마스터 셰프 코리아 2> (이하 <마셰코>) 도전자 세 사람과의 만남은 타르트 세 상자와 함께 시작되었다. 베이킹 미션 우승자였던 김태형의 레시피를 실제 상품화한 ‘단호박 타르트’가 촬영장에 간식으로 지원된 것이다. 달콤하고 촉촉한 타르트를 갈라 먹으며 나눈 이야기는 그러나, 구수한 한편으로 씁쓸하고 눈물 어리기도 했다. 노래나 춤을 겨루는 여타 오디션 쇼와 다르게, 시청자는 물론 출연자들끼리도 음식 맛을 보며 서로의 실력을 확인할 수가 없는 요리 서바이벌의 재미는 상상력에 의존한다. 그리고 상상력은, 요리 하는 사람이 키우고 기대야 할 미덕이기도 하다. 9회까지의 방송이 나간 7월 10일에 더블유의 카메라 앞에 선 세 생존자는 밴드 ‘에덴’을 하는 뮤지션이면서 ‘절대미각’의 별칭을 얻은 노력파 김태형, 새터민 출신으로 이북 요리에 탁월하며 진한 손맛을 인정받은 김하나, 그리고 일본 요리에 강하고 인간미가 돋보인 최강록이었다. 사진 촬영을 위해 세 사람이 다시 목에 건 앞치마는 더러 칼에 구멍이 나고, 식재료의 색이 배어 있어 두 달의 과정을 짐작하게 했다. 인터뷰는 이들 중 누가 언제 탈락하는지, 또 누가 우승하는지 비밀에 부쳐진 채로 진행되어서, 상상하는 맛이 있었다.

각자 잊을 수 없는 미션이 있을 것 같다.
김태형: 아무래도 내가 우승한 베이킹 미션, 단호박 타르트였다.
김하나: 나 역시 베이킹 미션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시즌 1에서 워낙 논란이 많았기 때문에 설마 머랭치기 같은 극단적인 벌칙 만은 다시 안 나올 줄 알았는데, 최하위 두 명이 되어 그걸 하는 데 정말 막막하더라.
최강록: 나는 4회 때 아구 한 마리를 통으로 받은 일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았다.

프로그램의 형식상, 음식 맛을 보는 심사위원들의 평가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심사평에 자존심이 상하거나 수긍하기 어려울 때는 없었나?
최강록: 노희영 심사위원께 음식이 교만하다는 얘기를 들었다. 하지만 그 이유에 대 한 이야기를 들으며 의도를 파악했다. 내 기준보다 대중의 취향을 고려하라는 말씀이었기 때문에 많이 느끼고 배웠다.
김태형: 정식으로 배운 적 없이 요리를 혼자 해왔기 때문에 내 음식을 평가받는 기회가 귀하다. 시작하는 아마추어 입장에서 이분들 입맛에 맞추고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세 분의 미각도 서로 다르다. 김소희 셰프는 간이 세고 매운걸 좋아하고, 노희영 고문은 담백하고 은은한 맛을 좋아한다. 결국 누구에게 맞춘다기보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다.
김하나: 심사위원들이 가끔 음식을 뱉을 때는 ‘그 정도로 맛이 없을까? 내가 한번 저걸 먹어보고 싶다’는 생각은 했다(웃음). 평가받으면서 나에게 부족한 부분을 많이 배웠다.

어느 심사위원으로부터 들은 어떤 코멘트를 잊지 못하나?
최강록: 강레오 심사위원에게 자신감을 가지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가졌더니 다음 회에는 최악의 요리라고(웃음). 심사위원들의 밀땅이 장난이 아니다.
김태형: 역시 강레오 심사위원이 “이런 음식인 줄 알았다면 입에도 넣지 않았을 겁니다”라고 했다. 그 말 듣고 나니까 ‘도대체 내가 뭘 만든 거지?’ 싶더라. 나가사키 짬뽕을 만든 6회 때는 절대미각이라는 과분한 평가를 받고 충격을 받기도 했다.
김하나: 싸구려 음식 같다는 말을 강레오 셰프에게 들었는데 요리하는 사람으로서 충격적이었다. 맛에 대한 감각이 있다, 손맛이 있다, 할머니가 해주신 음식 같다는 말들은 감사했다.

사생활이 없는 합숙 기간과 빠듯한 촬영을 거치면서 무엇이 변화했나?
김태형: 백지 상태로 들어가서 너무 많이 배웠다. 취미로만 하던 요리였는데, 핸드폰도 티비도 없이 요리 생각, 요리얘기, 요리만 하니까 실력이 올라가고 자신감도 생긴 것 같다.
최강록: 재밌고도 고된 시간이었다. 없던 수전증이 생겼다(웃음). 이번 시즌 세트가 유독 더 어두웠다. 촬영 들어가기 전에는 출연자들끼리, 오늘 당당하게 잘해보자고 ‘파이팅’ 하지만 세트장 들어가면 바로 한 없이 작아진다. 쥐며느리처럼 몸이 움츠러들고… (웃음) 핀조명을 받으며 서 있으면 머릿속이 하얘진다. 칼을 쥔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혀에서 맛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긴장될 때도 있었다. 물론 그런 긴장과 압박 덕분에 한정된 시간 안에 계획해서 요리하는 면에서 크게 향상됐다. 칭찬받으면 짜릿할 때도 있지만, 오늘 잘한다고 내일이 보장되지 않는 하루살이 같은 느낌이었다.

다른 서바이벌 오디션 쇼와 <마셰코>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일까?
김태형: 다들 우승을 꿈꾸며 지원하겠지만, 나중에는 내가 어디까지 가는지가 중요하지 않아진다. 경쟁하고 있다는 인식보다 동료 의식이 커진다. 저 사람보다 잘해야 한다보다는, 내가 주어진 재료로 잘해서 평가를 듣는 의미가 강하니까 서바이벌이지만 자기 자신과 싸웠다고 할 수 있다. 아니면 심사위원과의 싸움? 동료들은 차라리 같은 편이었다(웃음).
최강록: 출연자들이 받는 스트레스는 다른 서바이벌 프로그램도 비슷할 거 같은데, 마셰코는 스태프들이 힘들다. 재료를 준비하고 팬트리를 정리하고 세트를 배열하고 치우고 하는 업무가 정말 많다. 칼과 불이 막 날아다니니까 예민한 구석도 많고.

요리 외적인 부분에서 가장 힘든 건 무엇이었나?
최강록: 같이 지내던 사람들이 한두 명씩 떠나가는 허전함과 나도 저렇게 될 수 있다는 중압감. 오늘은 괜찮은데 내일은 어떻게 될까 하는 걱정, 잠은 자야겠는데 다른 도전자는 안 자고 있는 상황. 마치 중학생 시험 기간 같았다.
김하나: 요리가 1시간이면 대기는 10시간 해야 하는 게 힘들었다. 연예인들이 화려해 보이지만 이런 걸 매일 하다니 진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태형: 오늘 나 때문에 떨어진 사람이 있다는 게 힘들었다. 사실 외부와 연락을 단절하고 요리에만 집중해야 하는 합숙 생활은 나랑 잘 맞는 부분이 있었다.

앞으로 3시즌에 도전할 누군가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나?
김하나: 자기가 잘할 수 있는 걸 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심사평을 받다 보면 눈치를 보게 되고,처음의 결심만큼 과감하게 못하게 된다. 할까 말까 고민하니까 요리가 엉망이 되는 것 같다. 내 경우 북한 음식으로만 캐릭터가 굳어지는 것 같아서 일부러 배제했는데, 심사위원이 뭘 좋아할까 생각하는 것보다 자기가 잘하는 걸 하는 게 자신감을 펼칠 수 있는 것 같다.
김태형: ‘3억은 내꺼야!’보다는 후회 없이 몰입하면서 자기 삶이 달라지는 걸 느껴봤으면 좋겠다. 나 역시 성격이 변하고, 누군가를 대하는 태도도 좋은 쪽으로 달라졌다.
최강록: 쉽지 않다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편집되어 보여지는 이면의 어려움이 많다. 긴장을 많이 해야 한다.

앞으로 요리를 통해서 가고 싶은 길은?
김하나: 나는 좋아해서 요리를 하는 건 맞지만, 좋든 싫든 어차피 요리를 할 사람이다. 마스터셰프를 통해 다양한 재료를 공부하되 내 것을 확실히 발전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한식과 북한 요리의 조화, 북한요리를 세계화하는 일에 관심이 있다.
김태형: 지금은 가수를 하고 있고 일본에서도 활동하게 되어 준비 중이다. 마셰코에 도전하면서 내가 이 정도로 요리를 좋아하고 빠질 수 있음을 알게 됐다. 나중에 30대 중반쯤 내 음악과 음식을 여러 사람과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내고 싶다.
최강록: 이전에는 내가 하고 싶은 요리만 했다. 장사를 해도 대중적인 걸 생각하기보다 내가 좋아하는 걸 하다 보면 알아주겠지 하는 식이었다. 마셰코에서 배운 건 소통하는 요리다. 에디터 | 황선우

종편의 드라마가 중장년층을공략하며 몸집을키워나간다면, tvN은 음악,90년대, 시간 여행과 같은젊은 층을 타깃으로 한신선한 소재로 제 영역을공고히 해나가는 케이블채널이다. 7월 29일 첫방송되는 드라마 역시 영혼, 유실물센터 등의독특한 소재를 전면에내세운다.

종편의 드라마가 중장년층을
공략하며 몸집을
키워나간다면, tvN은 음악,
90년대, 시간 여행과 같은
젊은 층을 타깃으로 한
신선한 소재로 제 영역을
공고히 해나가는 케이블
채널이다. 7월 29일 첫
방송되는 드라마 <후아유>
역시 영혼, 유실물센터 등의
독특한 소재를 전면에
내세운다.

tvN <후아유>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드라마 <후아유>의 첫 세트 촬영은 고사로 시작됐다. “천지신명이시여. 스케줄 펑크 귀신, 궂은 날씨 귀신, NG 귀신은 물러가게 하시고, 한 번에 OK 귀신, 경이적인 시청률 귀신을 내려주시옵소서.” 옆에 있던 홍보 담당자가 귀뜸한다. “스태프들이 이번 드라마는 꼭 고사를 지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우리 드라마가 영혼을 보는 드라마잖아요” .

사건 현장에서 의식 불명 상태로 발견된 이후 6년을 식물인간으로 지내던 경찰 양시온이 기적적으로 깨어난 이후, 갑자기 그녀의 눈에 죽은 사람의 영혼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후아유>의 모든 이야기가 시작된다. 시온의 곁엔 사건 현장에서 사망한 후에도 그녀의 곁을 떠날 수 없는 연인 이형준(김재욱)과, 유실물 속 영혼들의 이야기를 읽어 나가는 시온의 현재를 함께하는 남자 차건우(옥택연)가 있다. “꼭 연인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경험을 하지 않나요? 독특한 소재에 비해,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뻔할지도 모릅니다. 결국 사랑에 관한 이야기니까요.” 맨 처음 <후아유>의 아이디어를 다듬은 이민진 프로듀서의 설명이다. 이후 크리에이터를 맡은 장항준 감독, 문지영 작가, 그리고 연출을 맡은 조현탁 PD가 합류하면서, 지금의 모습이 완성되었다.

<후아유>가 영혼이 등장하는 고스트 멜로를 표방하듯, 최근 케이블TV 드라마의 약진은 음악, 아이돌 문화로 상징되는 90년대, 시간 여행 등 젊은 층을 타깃으로 하는 독특한 소재에서 기인하는 바가 크다. 이민진 프로듀서는 케이블TV 드라마의 경우 전략을 짜고 기획을 하는 과정에서, 젊은 타깃층에 집중하는 특징을 지닌다고 말한다. “여성 중장년층 시청자들이 시청률에 큰 영향을 미치는 지상파 드라마와 다른 측면이 있죠. 실제로 젊은 구성원들이 적극적으로 제작에 참여하고, 조직 또한 그들의 상상력을 받아들이고요. 하지만 케이블TV 드라마 역시, 극장이 아니라 텔레비전이라는 플랫폼을 통해 방영되는 만큼, 너무 어렵지 않게 가는 것 또한 중요합니다” .

원래 2시로 예정되어 있던 이날의 첫 촬영은 저녁 8시가 되어서야 시작되었다. “빨리빨리 찍는 현장, 신속하고 정확한 현장을 만들겠습니다!” 촬영 전 소이현이 그토록 당찬 포부를 밝힌 건, 드라마란 사실 화려하기보다는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가운데 완성되는 지난한 작업이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지난 이틀간 비 때문에 당일 새벽 취소되곤 했던 야외 촬영은 원래의 계획대로 다음 날 진행되었을까? 시온이 궂은 날씨 귀신, 스케줄 펑크 귀신의 마음까지 어루만져줄 수 있다면 참 좋을 텐데 말이다. 에디터|김슬기

채널 A <먹거리 X파일> <논리로 풀다> 이영돈 PD 미스터리 해결사

동아미디어센터를 방문했을 때, 이영돈 피디는 앞선 스케줄을 처리 중이라고 했다. 사무실 문 밖으로 흘러나오는 고함을 들으며 후배 직원이라도 호통치고 있는 건 아닐까 짐작했다. 인터뷰이와 마주 앉고 나서야 그 스케줄이 <논리로 풀다>를 위한 음치탈출 훈련 촬영이었음을 알게 됐다. “제가 한번 먹어보겠습니다”라는 멘트로 유명해진 <먹거리 X파일>과 간헐적 단식, 프로포폴 투약 등 화제의 이슈를 다루는 <논리로 풀다>는 프로듀서이자 진행자인 이영돈의 존재를 전면에 내세운 프로그램들이다. 아예 제목에 자신의 이름을 나란히 표기했으며(정식 타이틀은 각각 <이영돈 PD의 먹거리 X파일>과 <이영돈 PD, 논리로 풀다>다), 대부분의 아이템을 본인이 직접 체험하면서 관련된 궁금증을 꼼꼼히 밝힌다. 몸으로 부딪쳐 일상의 미스터리를 추적하는, 어찌 보면 무모하기까지 한 해결사인 셈이다. 그는 얼굴이 알려진 뒤로 지인들이 함께 식사하는 걸 꺼린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방송을 시청한 식당 주인들이 자꾸 조미료를 뺀 밋밋한 음식을 내오는 모양이었다. “김구라 씨가 TV에서 그러더라고요. 제가 얼굴 내밀기 좋아하는 게 장차 정치에 욕심이 있어서라고요. 절대 그렇지는 않아요(웃음).” 이영돈은 단지 다른 누군가에게 탐정의 역할을 맡긴 채 묵묵히 기다리기에는 호기심이 지나치게 왕성할 뿐이다.

음치 탈출 트레이닝을 받고 있다고 했다. 진행은 잘되고 있나?
<논리로 풀다>에서 왜 음치가 생기는지, 그리고 과연 극복은 가능한지를 알아보고 있다. 내가 노래 못한다는 생각을 별로 안 하고 살았는데 전문가 의견은 다른 모양이다. 요즘은 ‘마법의 성’을 연습 중이다.

프로젝트별 체험 기간은 보통 얼마나 되나?
원래 6주는 해야한다. 그런데 내가 늘 일정에 쫓기다 보니 과정을 축약해서 효율적으로 진행할 필요가 있다. 프로포폴 체험 같은 거야 몇 시간이면 해결이 되지만 그건 예외적인 경우고.

<먹거리 X파일>과 <논리로 풀다>를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수많은 아이템을 체험해봤을 거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게 있나?
<논리로 풀다>에서 최면을 다룬 적이 있는데 그 경험이 인상적이었다. <먹거리 X파일>에서는 병든 어린 돼지로 만든 통돼지 바비큐를 시식하려다가 결국 포기했다. 찢어서 입까지 가져는 갔는데 아무래도 못하겠더라. 방송이라는 이유만으로 정말 싫은 것까지 강행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 편이 더 신뢰감을 주는 것 같기도 해서.

간헐적 단식부터 착한 치킨 시식, 프로포폴 투약까지 진행자가 ‘한번 직접’ 해보는 게 두 프로그램의 특징이다. 베어 그릴스의 <맨 VS. 와일드> 같은 일인칭 모험물을 보는 듯한 재미도 있다.
제대로 하려면 마이클 무어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뛰어들어야 한다. 현실적인 조건상 그렇게는 못하니까 여러모로 아쉽고 미진한 부분이 남는다. 아직 한국에서는 새로운 영역이라는 생각은 든다. 위험하기도 한데 그만큼 소구력은 크다.

지금껏 거쳐온 프로그램의 목록에서도 눈에 띄는 점인데, ‘재미있는’ 시사 교양 프로그램에 대한 관심이 특히 높은 듯 보인다.
어쩌면 소재 자체보다 재미있고 흥미로운 표현 방법이 더 중요할 수도 있다. 어떤 주제든 사람들이 몰입해서 볼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직접 체험을 시도하는 것도 그 방법 중 하나다. 내 기준에는 다큐, 드라마, 예능이 큰 차이가 없다. 단지 최종 목표가 팩트 전달과 오락 중에 어느 쪽으로 치우치느냐의 차이다.

말처럼 쉽지만은 않은 과제라는 생각이 든다.
재미있게 표현하는 것 자체에 거부감을 갖는 제작진도 많다. 그런데 내가 말하는 재미는 웃음이 아닌 몰입감이다. 딱딱한 소재를 딱딱하게 푸는 건 오히려 시청자를 무시하는 처사라고 생각한다. 보는 사람을 집중시키는 게 만드는 사람의 책무이자 능력이 아닐까? 정통적인 방식으로 권위 있게 담아야 소재의 무게감이 더 강조된다고 하는 이들은 나와는 생각이 다른 거다.

재미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화제가 된 의 패러디는 득이 됐다고 보나, 실이 됐다고 보나?
내가 가타부타 이야기할 수는 없다. 솔직히 내가 피디라도 재미있어 보이는 누군가가 눈에 띄면 어떻게든 활용했을 것 같다. 내 말과 행동이 이런 식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겠구나 새삼 깨닫기는 했다. “제가 한번 먹어보겠습니다” 했을 때 나는 물론 음식을 먹지만 먹는 것에도 워낙 종류는 많으니까….

<먹거리 X파일>이나 <논리로 풀다> 모두 추리물에 가깝다는 점도 눈에 띈다. <추적 60분> <그것이 알고 싶다> 등 기존 프로그램들과도 연결 지어 생각해볼 수 있는 특징이다.
팩트나 현상을 풀어가는 방법 중 하나다. 문제를 제기하고 풀고, 또 제기하고 풀고, 이렇게 범인을 추적하는 방법을 차용하는 거다. 누구나 다 그렇겠지만 어렸을 때부터 추리소설을 좋아하고 많이 읽었기 때문에 그 독서 경험이 사고 방식에 큰 영향을 끼쳤다.

<먹거리 X파일>을 보고 있으면 솔직히 외식하기가 무서워진다. 방송 이후 식생활에 변화된 바는 없나?
일주일에 집에서 밥 먹는 게 고작 두세 끼다. 어차피 외식을 피할 수는 없다. 그래서 식당이 변해야 한다. 사람들의 사고나 기술은 첨단으로 치닫는데 제일 안 변하는 게 먹거리 문화다. 포장은 발전했지만 내용이나 철학에는 여전히 후진적인 부분이 많고, 그에 대한 교육도 부족하다. 미디어의 문제도 크다. 맛있는 곳 알려주는 프로그램은 많지만 제대로 된 먹거리를 말하는 프로그램은 드물다. 그 비정상적인 균형을 바꿔보자는 게 우리의 의도다.

<먹거리 X파일>과 <논리로 풀다>, 두 프로그램의 성과는 어느정도로 자평하나?
<먹거리 X파일>은 이미 자리를 잡았고 영향력도 생겼다. 다만 새로운 시도로 프로그램이 한 단계 진화해야 하는데 현재는 답보 상태인 듯해 안타깝다. 아직까지 <논리로 풀다>는 시청률이 나올 것 같은 아이템을 따라가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내가 최종적으로 하고 싶은 프로그램은 <그것이 알고 싶다>처럼, 해결이 안 되는 미스터리를 논리적으로 해부하는 거다. 사회적인 문제까지 범위를 넓혀서. 앞으로 시간을 두고 추진해볼 생각이다. 에디터 | 정준화

에디터
황선우, 피처 에디터 / 김슬기, 피처 에디터 / 정준화
포토그래퍼
KIM S. GON, KIM BUM KYUNG, CHOI SEUNG HYEON

SNS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