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요, 모든 걸 훌훌 버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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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호를 만드는 이맘때에 이렇게 여행이 떠나고 싶은 적이 있었나 싶다. 한여름처럼 유난히 빠르고 급하게 찾아온 더위 때문이기도 하지만 결정적 이유는 바로 이토록 아름다운 2014 리조트 컬렉션 때문이다. 바다로 도시로 어디든 떠나자. 그러라고 있는 여름이지 않나.

1 1913년의 여름 CHANEL
1913년 도빌에서 숍을 운영하던 시절의 가브리엘 샤넬의 모습을 그리며 시간 여행을 떠난샤 넬. 평소 그녀가 옷을 통해 표명해온 것, 즉 몸의 어떤 부분도 제약하지 않는 자유로운 움직임에 집중한 칼 라거펠트는 둥근 어깨선의 튜닉, 넉넉한 크기의 팬츠, 크리켓 복을 연상시키는 니트 스웨터, 바람에 흩날리는 부드러운 새틴 소재 드레스로 샤넬의 꿈을 재현했다. 여기에 가브리엘 여사를 상징하는 진주 목걸이와 카멜리아 브로치를 더하고 단정한 투톤 펌프스를 매치하면 아주 편안하고 고급스러운 샤넬식 크루즈 룩이 완성된다. 단, 진주 목걸이는 여러 겹으로 주렁주렁, 귀고리는 한쪽에만 길게 늘어지는 드롭형으로, 시원한 푸른색 아이섀도를 듬뿍 더해야 현대적인 버전이 된다는 것을 명심할 것.

2 수학여행 ERDEM
“엄마가 어린 시절 여행에서 찍은 사진을 봤어요”라고 말하는 에르뎀 모랄리오글루는 수학 여행을 간 십대 소녀의 감성을 살렸다고 전한다. 오간자, 면, 하이브리드 소재의 파자마 등 시원하고 편안해 보이는 아이템들이 그의 장기인 사랑스러운 꽃무늬 풀 스커트나 저지 소재의 보머 재킷, 팬츠로 탄생했다. 좋은 풍경 앞에서 사랑하는 연인과 살랑거리는 바람을 맞으며 데이트하기에 제격인 로맨틱 리조트 룩의 탄생.

3 레이스와 에너지 DIOR
편안함, 역동성, 휴가. 글자 그대로 크루즈의 의미를 생각하며 디자인했다는 디올의 라프 시몬스는 느긋하고 편안하며 활기찬 느낌을 주기 위해 그간 사용한 적 없는 레이스 소재를 선택했다. 여기에 자신의 장기인 대담한 색 배합으로 사랑스러운 풀 스커트 드레스, 대담한 색상의 비치웨어, 리조트의 이브닝 파티에 제격일 드레스를 선보였다. 이는 클래식한 디올 하우스의 무드를 이어갈 뿐 아니라 보기만 해도 시원하고 건강한 느낌. 쇼가 열린 드라마틱한 바다 풍경의 몬테카를로 해변에 더할 나위 없이 어울렸고 말이다.

4 마네가 떠난 모로코 TORY BURCH
토리 버치는 이번 컬렉션을 위해 두 개의 키워드를 조합했다. 모로칸, 그리고 에두아르 마네. 마네의 그림에서 영감 받은 잔잔한 프린트들이 빛이 바랜 듯한 색감을 통해 튜닉과 편안한 맥시 드레스 등으로 나타났고 스트로, 라피아 소재의 백과 슈즈에도 곁들여졌다. 이런 것들이 모두 더해지니 모로코 여행을 위한 24시간 지침서가 만들어졌다.포인트는 메이크업은 하지 않고 굽이 낮은 슈즈를 신는 것.

5 고, 브라질 GUCCI
리우데자네이루로 여행을 떠난 구찌의 프리다 지아니니는 리드미컬하고 활기찬 해변가의 물살을 옷에 담았다. 나이트 가운을 연상시키는 편안하고 매끄러운 재킷, 통 넓은 팬츠, 남성적인 느낌의 튜닉, 롱 셔츠 드레스 등을 선보이며“ 제리 홀의 고혹적인 바캉스 룩”을 표현했다고 덧붙였다. 모래와 진주, 지는 태양을 보는 듯한 구릿빛 톤으로 고급스러움을 더했고 크리스털 장식과 화려한 자수로 이브닝을 위한 드레스까지 준비했다. 편안하고 럭셔리한 휴가를 원한다면 프리다의 이 패키지 하나로 완벽하다.

6 팜 스프링 전천후 패키지 MICHAEL KORS
캘리포니아 팜스프링에서 90일이라는 시간을 보낸 마이클 코어스는 지난 정규 컬렉션에 이어 계속해서 괴상하고 예측 불허가 된 요즘 날씨에 대해 깊이 생각했다고 전했다. 무덥다가 건조하기도 하고 갑자기 싸늘하기도 한 날씨에 대비해 어떤 것에도 구애받지 않도록 가죽 원피스와 코트를 준비했고, 여기에 그의 장기인 테일러드 수트 시리즈와 생동감 넘치는 지브라, 레오퍼드 프린트의 비치웨어를 더한 것. 현실을 고려한 그의 고심 덕분에 어느 룩 하나 버릴 것 없는 리조트 스타일이 완성되었다.

7 양성의 미학 RAG & BONE
처음으로 리조트 컬렉션을 선보인 랙&본은 다음 시즌을 미리 엿볼 수 있는 힌트와도 같다고 이야기했다. 느긋한 기분을 내기 위해 실크 블라우스는 단추를 풀어 슬립처럼 연출하고 오버사이즈 아우터와 챙 넓은 모자, 남성적인 부티 아이템으로 보이시한 무드를 연출하는 식인데 이처럼 자신들의 아이덴티티를 압축한 듯한 한낮과 밤을 아우르는 실용적인 아이템 구성은 역시나 여자들의 구매욕을 자극한다.

8 실용의 신 FENDI
사무실을 연상시키는 공간에서 의자와 함께 연출한 사진에서 느껴지듯 일상생활에서 부담 없이 입을 수 있는 실용적인 룩을 선보인펜 디의 칼 라거펠트. 스포티한 무드로 생동감을 불어넣고 정교한 공예 기법을 활용해 프린트와 가죽, 모피 소재를 돋보이도록 하고 여기에 시퀸이나 자수 장식으로 쿠튀르적 면모까지 더했다. 그래픽적인 패치워크의 가죽 재킷과 트레이닝 팬츠의 매치, 그래픽 프린트에 주름을 촘촘히 잡은 미디 드레스, 케이프 형태의 코트와 팬츠를 매치하는 식. 고급 소재의 무난한 디자인이 가진 실용적이고 경제적인 힘을 이길 자가 있을까.

9 터프 걸 VERSUS VERSACE
현재 런던의 가장 핫한 디자이너인 J.W. 앤더슨과 협업한 컬렉션으로 화제를 일으킨 베르수스 베르사체의 캡슐 컬렉션. 90년대 펑크의 귀환과 맥락을 같이한 그는 스터드 장식, 옵틱 프린트, 과감한 커팅, 현란한 핀 장식, 밀리터리 부츠 등 보이시한 것들을 한데 버무린 매우 터프한 컬렉션을 선보였다. 실시간으로 쇼를 즐기고 쇼핑을 하고 기분이 내키면 당장 클럽으로 뛰어가는 세대를 위한 것이라 도나텔라 베르사체가 선언했듯 브랜드 고유의 글래머러스함을 젊고 신선하게 번역한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이 전하는 메시지는 간단하다. 과감해져라.

10 봄의 제전 MAXMARA
러시아 발레 안무가 세르게이 디아글레브가 선보인 공연 ‘봄의 제전’ 100주년을 맞아 이를 기념하는 리조트 룩을 선보인 막스마라. 레인코트, 오버사이즈 아우터, 편안한 톱, 슬라우치 팬츠 등의 현대적인 아이템에 대담한 색의 배합과 대비를 통해 작품 속에 담긴 원시적인 리듬, 강렬한 음색을 표현했다. 여기에 간결한 디자인의 퍼 소재 머플러, 스포티한 캡을 매치하는 것으로 이상 기후에 대처하는 아주 현실적인 감각을 살렸다. 그 결과는? 도시적이고 세련되며 활기찬 룩의 탄생.

11 밤에 핀 도시의 장미 DKNY
뉴욕 대표 걸, DKNY가 떠난 이번 휴가는 바로 밤에 즐기는 스포츠. 스트리트 무드와 스포티한 요소, 달빛에 반사되어 반짝거릴 시퀸 장식이 훌륭하게 믹스된 젊고 활기차며 화려한 룩들이었다. 스웨트 셔츠에는 시스루 레이스 팬츠를 매치하고 스포츠 브라 위에 테일러드 재킷과 실버 스팽글 스커트와 캡을 더하는 식으로 말이다. 이처럼 안 어울릴 것 같은 것들의 황홀한 조합은 멀리 떠나지 않더라도 즐거운 휴가를 선사해줄 것만 같다.

에디터
패션 에디터 / 김한슬
아트 디자이너
표기식
기타
PHOTOS|COURTESY OF CHANEL, DIOR, DKNY, ERDEM, FENDI,GUCCI, MAX MARA, MICHAEL KORS, RAG&BONE, TORY BURCH, VERS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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