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레이블에 소속된 뮤지션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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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에서 등지고 앉아 메신저로 상사 험담을 하고 다 함께 몰려가 커피를 마시지는 않지만 한직장 동료들이다. 같은 레이블에 소속된 뮤지션들을 만났다.

왼쪽 부터 | 오지은이입은 메시 소재의 톱은준야 와타나베, 베이지색플레어스커트는 랑방컬렉션, 권순관이 입은크림색 셔츠와 베이지색라인이 들어간 팬츠는프라다 제품.

왼쪽 부터 | 오지은이
입은 메시 소재의 톱은
준야 와타나베, 베이지색
플레어스커트는 랑방
컬렉션, 권순관이 입은
크림색 셔츠와 베이지색
라인이 들어간 팬츠는
프라다 제품.

해피로봇 레코드: 오지은 + 권순관

오지은 투명한 심장에서 뱉어내는 솔직한 사랑 노래, 얼음이었다가 불꽃이었다가 하는 변화무쌍한 온도를 머금은 오지은의 음악은 특히 또래 여자들의 지지와 공감에 보태 ‘인생의 BGM’이라는 평을 받아왔다. 그런 여성 리스너들에게 오지은의 음악이란 내가 나이 먹을 때 함께 성숙해가는 친구인 동시에, 고군분투하던 단짝이 성공해서 더 큰 물에서 놀게 된 모습을 지켜보는 보람도 준다. 제작과 배급까지 스스로 하던 1집에서 밴드 사운드로 스케일을 키운 2집을 거쳐 3집에는 신윤철, 이상순, 이이언, 고찬용, 프렐류드의 고희안 같은 쟁쟁한 뮤지션들이 참여했으니까. 여전히 길들여지지 않는 거친 정수를 담고 있지만 만듦새는 한결 매끈해진 웰메이드 앨범이며, 불을 삼키고 피를 토하던 노랫말들도 사랑의 열병을 한바탕 거친 뒤에 내려 놓고 관조하는 시선으로 유연해졌다.

“20대는 이렇고 30대는 저렇다고 가르는 건 싫었는데, 되고 나서 보니까 차이가 있더라구요. 폭풍 한가운데서는 모르는, 지나가고 나서야만 알 수 있는 정서가 분명히 있는 것 같거든요. 스물대여섯 때 쓴 1, 2 집의 곡들을 좋아한 분들에게는 3집이 뜨뜻미지근하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이런 달고 쓰고 맵고 짠 뒤죽박죽의 감정도 노래로 만들고 표현하는 게 가치 있다고 느꼈어요.” 어쩌면 회색으로 보일지 모르는 3집의 색깔은 그래서 오히려, 선명한 시기를 관통한 이후에 여러 가지 색을 끌어안은 포용에 가깝다. 가볍고 발랄한 걸펑크프로젝트 앨범인 ‘오지은과 늑대들’을 거쳐와서 끈적하고 눅진하거나 건조해진 ‘그렇게 정해진 길 위에서’ ‘I Know’ 같은 노래들은 먼 길 돌아와 거울 앞에 선 사람들이야말로 공감할 만한 이야기다. 노래 속에 담아낸 정서가 담담해지고 편안해기까지, 음악을 만드는 과정 역시 한 번 더 들여다보고 곱씹느라 오래 걸렸을지도 모르겠다고 오지은은 말한다. “ 내 이야기이긴 하지만 다루어본 적 없는 감정을 새로운 화법으로 말하는 법을, 자연스럽게 끌어내고 익히는 과정 같아요. 오지은 음악이라는 성장 드라마는 장르와 화법을 바꾸어가며 계속될 것 같다.

권순관 ‘약간 얄미워 보이기도 하고, 뚱하게 굳어 있고, 쓸데없이 진지해서 농담을 진담으로 받아치는 아이’. 2006년에 함께 유재하 가요제에서 나란히 은상과동상을 차지한 오지은은 권순관을 만났을 때의 첫인상을 이렇게 말한다. 이런 첫인상은 권순관의 음악에도 적용된다. 오지은의 음악이, 대담하게 굵직한 붓터치를 그대로 살려놓은 유화라면 권순관의 음악은 반질반질 윤이 나게 깎고 다듬은 조각에 가깝다. 팝 듀오 노 리플라이에서 그랬던 것처럼, 음악 동료이자 팀의 기타를 맡는 정욱재의 군입대 이후 혼자 내놓은 앨범 역시 매끈하다.

“나의 기본적인 감성이나 편안한 음악을 좋아하는 취향은 크게 바뀌지 않은 것 같아요. 가사도 저는 지은 누나처럼 말하는 식이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읽었을 때 하나의 시처럼 부드럽게 흘러가는 걸 좋아하거든요. 직접적인 내 이야기를 담으면서 더 과감해지고 틀을 깨는 게 어떻게 보면 제 숙제예요.” 이번 앨범까지 노 리플라이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향한 어떤 기조를 유지해왔다면, 결과물을 내놓은 이제는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 있는 후련한 시점인 것 같다고 권순관은 말한다. 앨범의 제목인 ‘문’이 상징하는 바처럼 시작과 끝 사이에서 하나의 중간 단계를 열고 닫은 셈이다.정욱재의 강점이던 거침없는 결단력, 직설적인 에너지 같은 빈자리를 혼자 채워가면서, 이 단정한 청년 스스로의 정돈된 틀을 깨는 과정이 벌어지고 있다. “1차원적으로는 20대에서 30대로 가는 길이겠죠. 20대 시절의 욕망을 많이 버리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지금까지의 나를 만들어준 여러 가지를 내려놓고 새로운 마음으로 나가보자는 생각이 커요. 성공해야겠다 여자를 만나고 싶다 그런 생각들(웃음)?” 에디터 | 황선우

왼쪽부터 | 서영호(원펀치)가 입은 화이트 셔츠는 디올 옴므, 갈색 팬츠는 에르메네질도 제냐, 정바비(가을방학)가 입은 화이트 셔츠는 S.T.듀퐁, 짙은 회색 베스트는 프라다, 회색 쇼츠는 질 스튜어트 뉴욕, 계피(가을방학)가 입은 남색 점프수트는 질 스튜어트, 안에 입은 화이트 셔츠는 꼼데가르송, 박성도(원펀치)가 입은 화이트 셔츠는 디올, 검은색 니트는 프라다 제품.

왼쪽부터 | 서영호(원펀치)가 입은 화이트 셔츠는 디올 옴므, 갈색 팬츠는 에르메네질도 제냐, 정바비(가을방학)가 입은 화이트 셔츠는 S.T.듀퐁, 짙은 회색 베스트는 프라다, 회색 쇼츠는 질 스튜어트 뉴욕, 계피(가을방학)가 입은 남색 점프수트는 질 스튜어트, 안에 입은 화이트 셔츠는 꼼데가르송, 박성도(원펀치)가 입은 화이트 셔츠는 디올, 검은색 니트는 프라다 제품.

루오바 팩토리: 가을방학 + 원펀치

가을방학 “이전에는 여자 보컬과 팀을 이뤄본 적이 없어요. 앞으로도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요.” 작곡과 작사를 전담하는 정바비는 이렇게 잘라 말했다. 그러니까 계피라는 보컬리스트와 함께하는 가을방학은 언니네이발관, 줄리아하트, 바비빌 등 다양한 밴드를 거친 그에게도 예외적인 프로젝트인 셈이다. “정말 좋아 했던 것, 하지만 제 목소리로는 할 수 없었던 것을 한다는 의미가 크죠.” 그는 계피가 평범한 듯하지만 절대로 평범하지 않은, 무척 ‘다른’ 보컬을 지녔다고 평했다. 한편 계피에게는 가을방학이 정바비라는 송라이터의 곡을 부르는 작업이라는 점에서 특별하다. 헤비 리스너가 아닌 그는 노래를 들을 때 가사에 먼저 집중하는 편이다. “문학적인 표현을 녹여낼 때는 그 수위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과하면 부담스럽거나 젠체한다는 느낌이 들죠. 하지만 감정을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해 문학적인 형상화는 반드시 필요하거든요. 바비 씨의 가사는 그 균형을 적절히 유지하는 것 같아요.”

몇 달 전 가을방학은 2집 <선명>을 발표했다. 정바비는 이번 음반이 1집 때와는 또 다른 경험이었다고 밝힌다.프로듀서의 청사진에 성실하게 따랐던 첫 앨범과 달리, <선명>은 뮤지션이 훨씬 적극적으로 방향을 주도한 결과물이다. 정바비가 쓰고 계피가 부른 노랫말에도 그간의 변화가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1집 때는 화자의 성별을 정하거나 정하지 않는 것에서 ‘일부러’가 강했어요. 이번 앨범은 아예 구분 자체를 안 했죠. 제시된 상황은 특별하되, 내용은 여자든 남자든 노인이든 어린이든 그 상황에서 공통적으로 떠올릴 수 있을 만한 것으로 채웠거든요.” 정바비의 말을 계피는 다음과 같이 잇는다. “<선명>에서는 평범하면서도 보편적인 주제를 전달하고 싶었어요.” 평범함이야말로 비범함만큼이나 어려운 목표가 아닐까? “맞아요. 평범하게 잘하는 게 정말 어렵죠.”

본격적인 음악 교육을 받은 적이 없는 두 뮤지션은 원펀치의 연주에서 자신들은 할 수 없는 것들을 읽는다고 했다. “아카데믹한 바탕이 있고, 그걸 제대로 표현할 실력도 갖췄어요. 작업이 막힐 때면 가끔 그런 생각을 해요. 제대로 배웠다면 달랐을까?”(정바비) 혹시 배우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 생각되는 바는 없는지 묻고 싶어졌다. “굳이 꼽자면 쉽게 부러워하지 않는다는 점이요. 누군가의 음악 세계를 가져오고 싶은 생각도 없어요. 몰라서 용감한 거죠.”(계피)

원펀치 박성도와 서영호의 인연은 1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음악 덕분에 가까워진 고교 동창은 대학교에 진학한 뒤 팀을 꾸렸고, 본격적으로 연주를 함께하기 시작했고, 몇 장의 EP를 거쳐 2012년에 첫 번째 정규 앨범을 내놓게 된다. 두 사람은 일련의 과정이 특별한 계획이나 뚜렷한 다짐 없이 물 흐르듯 이어져왔다고 입을 모은다. “운이 좋았어요. 1집도 지금의 회사가 먼저 제안을 해와서 진행된 거예요. 중요한 순간마다 주위 사람들이 놓아준 다리를 건너온 느낌이 있어요.” 프로 뮤지션이라는 인식 역시 음반 발매 후에야 비로소 선명해졌다고 박성도가 털어놓는다. “활동을 계속하려면 좀 더 작업에 책임감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 거죠.”

1집 는 원펀치가 할 수 있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을 성실하게 이야기한 앨범이었다. 둘이 낼 수 있는 단출한 소리부터 그 이상의 입체적인 편성까지 다양한 결과물을 14개의 트랙에 골고루 담았다. “일본에서 들은 평 중에 송라이팅이 독보적이라는 이야기가 있었어요. 그게 가장 마음에 들더라고요. 스스로도 차별성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인데 국내에서는 지적이 덜 됐던 것 같거든요.”(서영호) 말이 나온 김에 가을방학의 새 앨범에 대해 물었더니 ‘더운 피’ ‘소금 기둥’ ‘삼아일산’ 같은 곡을 언급한다. “이 사람들이 달라지고 싶어 하는구나, 예상 밖으로 가려고 하는구나 그런 게 읽혔어요. 덕분에 저희도 새로운 자극을 받았고요.”(박성도)

현재 원펀치는 7월 6일에 있을 단독 콘서트 <계절 학기>를 준비 중이다. 한참 흥미를 느끼고 있는 스트링 편곡에 집중한 무대가 될 것이다. 17년이라는 시간을 보낸 뒤에도 두 사람에게는 여전히 함께하고 싶은 것이 많이 남은 눈치였다. “취향의 여집합도 분명 있어요. 그런데 공통분모가 작지 않아서 뭔가를 같이하는 게 쉽다고 할까요? 다른 팀과 견주어보면 확실히 교집합 자체가 큰 편이에요.”(서영호) 에디터 | 정준화

에디터
피처 에디터 / 정준화, 김신(Kim Shin), 황선우
포토그래퍼
유영규
스탭
헤어 / 조영재, 메이크업 / 이준성, 어시스턴트 / 김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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