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로 간 패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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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사람들은 완벽하게 세련된 동시에 편안하고 기능적인 룩을 원한다. 거대한 조류로 다가온 스트리트 룩과 하이패션의 조우.

1. 꽃무늬 맨투맨 티셔츠는 MSGM by 톰그레이하운드 제품. 36만5천원.

1. 꽃무늬 맨투맨 티셔츠는 MSGM by 톰그레이하운드 제품. 36만5천원.

런던 포토벨로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높은 철조망과 그래피티로 둘러싸인 스케이트보드장 ‘베이 66’이 있다. 여기서는 스케이트 보드를 타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온갖 플라스틱 바퀴 소리 덕분에 그 외의 어떤 소리도 들을 수 없다. 10대 시절, 이곳을 지날 때는 괜스레 쑥스러워 유난히 빠른 걸음으로 그곳을 지나치곤 했다. 스케이트 보드를 타는 젊은이들이 내뿜는 그들만의 자신감과 놀라운 집중력은 당시의 내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엄청난 에너지를 발산했으니까. 하지만 그들의 문신, 반스 운동화, 구부정한 자세와 태평함은 내 안에 내재된 반항 욕구를 은근히 충족시켰다. 30대인 지금도 그 근심 걱정 없는 오만함에 대한 향수는 여전하다. ‘스케이트보드 타는 법 배우기’는 아직도 ‘귓불에 피어싱하기, 디제잉 배우기, 서핑 보드 타는 법 배우기’ 등과 함께 마흔이 되기 전에 해야 할 일 목록 상위권에 올라 있다.

요즘 디자이너들은 에디터의 비평보다 10대들의 무관심을 더 두려워 한다. 그를 증명이라도 하듯, 이번 시즌 젊은이들의 상징이 런웨이를 뒤덮었다. 필립 림은 실크 소재의 바이커 재킷과 찢어진 로웨이스트 데님을 선보였다. 프로엔자 스쿨러는 비단뱀 가죽과 흰색 가죽을 패치워크한 박시한 베스트를 선보였고, 크리스토퍼 케인은 꽃무늬의 후드 달린 트레이닝복을, 피에르 아르디는 기하학적인 컬러 블록 하이톱 운동화를 내놓았다. 반스 운동화의 초현대적, 최고급 버전을 원한다면 지방시가 선보인 기하학적인 프린트의 스니커즈를, 컨버스 운동화의 보다 모던하고 트렌디한 버전을 원한다면 은색 스터드가 장식된 이탈리아 브랜드 젠치의 운동화를 눈여겨보자(다 팔리기 전에 멀티숍 쿤위드어뷰로 가볼 것). 쉽게 말하면, 모든 옷에 운동화를 더하거나 펜슬 스커트 위에 스웨트 셔츠를 입는 것만으로 당신은 우아하고 세련된 스트리트 룩을 터득하게 된 것이다.

항상 보아왔듯, 커다란 트렌드의 조류가 다가오는 방식은 잔물결이 먼저 오고 그다음 엄청난 파도가 치는 식이다. 시작은 슈즈부터였다. 2012 S/S 시즌, (패션 용어로는 수백억 년 전에) 피비 파일로가 조용히 전통적인 반스 운동화를 새롭게 해석해 선보였다. (다리아 워보이가 셀린의 캠페인에서 스케이트보드를 움켜잡고 등장한 것을 기억하는가?) 그녀는 직물 대신 비단뱀 가죽과 부드러운 조랑말 가죽, 그리고 감미로운 빨강, 짙은 노랑, 그리고 짜릿한 주황색을 사용했다. 가격은 1백만원을 호가했지만 너무 잘 팔려, 셀린은 그 이후 시즌마다 새로운 버전을 출시하고 있다. 나이키와 아디다스의 리미티드 에디션에 사로잡힌 이전의 운동화 중독자들이 이제는 수집품에 더 화려하고 어른스러운 운동화를 추가할 수 있게 됐다는 얘기다.

2 보석이 그려진 야구점퍼는 듀엘 제품. 30만원대.3 여러 종류의 컬러풀한 가죽을 패치워크한하이톱 운동화는 피에르 아르디 at 10 꼬르소 꼬모 제품. 98만원.4 크리스털 장식의 스웨트 셔츠는 마쥬 제품. 39만9천원.5 투명한 프레임의 선글라스는 젠틀 몬스터 제품. 26만원.

2 보석이 그려진 야구점퍼는 듀엘 제품. 30만원대.
3 여러 종류의 컬러풀한 가죽을 패치워크한
하이톱 운동화는 피에르 아르디 at 10 꼬르소 꼬모 제품. 98만원.
4 크리스털 장식의 스웨트 셔츠는 마쥬 제품. 39만9천원.
5 투명한 프레임의 선글라스는 젠틀 몬스터 제품. 26만원.

한편 ‘스트리트 패션’의 달인이라 할 만한 움베르토 레온과 캐롤 림은 겐조 하우스에 자신들의 젊은 에너지를 수혈하는 데 성공했다. 그들의 첫 협업이 반스와 이루어졌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그들은 클래식 반스 에라 운동화에 그 시즌의 망사무늬와 강렬한 색깔을 더한 아이템을 선보였고, 그다음 시즌에는 호랑이 얼굴 자수 장식의 스웨트 셔츠로 이전 시즌을 가뿐히 뛰어넘었다. 두 디자인 모두 빠르게 큰 인기를 얻었고, 멋 좀 안다는 사람들은 이제 겐조 로고가 있는 모자를 살짝 왼쪽으로 쓰고 새로 산 나이키 신발을 신는다. (경고: 서른다섯 살이 넘었고 사무직에 종사하고 있다면 이 스타일을 시도하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 그건 젊은이들에게 맡기고 로고가 박힌 스웨트 셔츠에 하이힐을 고수해라.)

야구 점퍼의 부활은 쉽게 이 스타일에 접근할 수 있는 또 다른 아이템이다. 작년 가을에 의기양양하게 신고식을 치른 이 아이템은 이번 시즌에도 여전히 당신의 어깨에 걸쳐 있을 것이다(로에베는 윤기가 흐르는 보머 재킷에 단추를 달았고, 스텔라 매카트니는 진한 자주색의 트위드 야구 점퍼를 선보였다. 그리고 질 샌더는 밝은 파랑의 새틴 야구 점퍼를 내놓았다). 개인적으로 이번 시즌 가장 마음에 드는 아이템은 조너선 선더스의 눈부신 감청색 실크 재킷이다.

“사람들은 이제 정말 편안하게 입고 싶어 해요.” 브라운스 포커스의 바이어 대표인 로라 라바레스티에가 말한다. “디자이너들은 리한나와 같은 스타들의 영향을 받고, 텀블러 세대에게 어필하기 위해 고심 중이에요. 20만원대인 로다테 스웨트 셔츠와 10만원대인 지방시 오버사이즈 티셔츠는 럭셔리 아이템치고는 감당할 만한 가격이죠. 고객들은 브랜드 그 자체가 갖는 이미지와 보장된 품질을 정말 중요하게 생각해요”라고 덧붙였다. 로다테는 캐시미어만큼 부드러운 촉감의 스웨트 셔츠를 그레이와 레드 색상으로 선보였다. “셀린 팬츠를 사는 여성은 알렉산더 왕의 스웨트 셔츠를 함께 사서 매치해 입을 가능성이 높죠.”

브라운스 맞은편에 있는 포커스에서는 아크네의 로 라이즈 배기 데님, 알렉산더 왕의 통 넓은 가죽 바지, 그리고 MSGM의 화이트 레이스가 달린 보머 재킷을 볼 수 있다. “편안한 옷은 이제 열풍이 됐어요.” 라바레스티에가 리한나가 좋아하는 또 다른 디자이너인 브라이언 리히텐버그의 야구 모자와 로고 티셔츠를 가리키며 말한다. 이 모자는 에르메스가 디자인한 상징적인 오렌지색을 차용해 디자인했다. “상당히 유니섹스한 스타일이에요”라며 “여성 고객을 위해 아크네의 남성 스웨트 셔츠도 갖춰두고 있죠.”

“여성이 일상의 옷을 바라보는 시선을 바꾼 것 같아요.” 디자이너 로웰 드레이니가 말한다. “세련되고 완벽한 룩을 좋아하는 동시에 캐주얼한 룩의 활동성도 필요로 하죠. 마음껏 뛰어다닐 수 있는 운동화나 파티를 위한 ‘적당한’ 힐과도 어울리는 옷이 필요하게 된 거예요.” 그물 천 조각 장식을 더해 스포티한 느낌을 주는 박시한 드레스라든지, 소매 끝에 단추가 없고 발목 위에서 잘린 길이의 배기한 팬츠 수트 같은 것 말이다. 중요한 사실은 이 스타일은 ‘적당히’ 즐길 때 멋지다는 것이다. 너무 빠지지 않도록 자제력을 발휘할 것!

에디터
패션 에디터 / 이지은(Lee Ji Eun)
포토그래퍼
JASON LLOYD EVANS, KIM WESTON ARNOLD, 박종원
기타
글 / Emily Sheffie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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