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간 국립발레단의 수석 무용수이자 거대한 군무의 소실점이었던 김주원이 프리랜서로서의 첫걸음을 뗐다. 웅장함과 섬세함, 우아함과 강인함까지 발레에 관한 모든 것을 보여줄 그의 새로운 도전은 전설적인 안무가 프레더릭 애슈턴의 작품인 <마그리트와 아르망>이다.

스커트로 연출한 옅은 베이지색의 플리츠 드레스는 Andy & Debb,건축적인 율동감이 느껴지는흰색 베스트는 Giorgio Armani 제품.

스커트로 연출한 옅은 베이지색의 플리츠 드레스는 Andy & Debb,
건축적인 율동감이 느껴지는
흰색 베스트는 Giorgio Armani 제품.

영화에 등장하는 발레에 관한 묘사 가운데 유독 기억에 남는 건 <블랙 스완>이나 <분홍신>보다 <타이타닉>의 한 장면이다. 양갓집 규수인 로즈는 떠돌이 화가인 잭에게 이끌려 삶의 기운이 들끓는 삼등실의 세계를 경험한다. 술에 취해 힘 자랑을 하는 남자들 사이에서 그가 뭔가를 보여주겠다는 듯 외친다. “이런 건 할 수 있어요?” 모두가 주목하는 가운데 크게 숨을 고른 로즈는 발끝으로만 서서 우뚝 균형을 잡는다. 여주인공이 자신의 터프함을 증명하기 위해 택한 게 발레라는 설정은 의아하면서도 당연해 보였다. 멀리서 바라본 풀숏은 더없이 우아하지만 이 춤의 클로즈업은 그 어떤 스포츠 못지않게 거칠고 맹렬하니까. 발레리나는 세차게 움직이는 발을 물 아래 감추고 있는 백조에 비유되곤 한다. 어쩐지 그 발질은 격투기 선수의 니킥만큼이나 강력할 것 같다.

그러니 한국 발레계의 스타인 김주원이라면 일등석부터 삼등석까지의 남자를 모조리 제압하고도 남을지 모르겠다. 스튜디오로 들어서는 붓꽃 같은 몸의 인터뷰이는 무대 위에서보다 더 가늘고 가벼워 보였다. 하지만 문장마다 마침표를 정확히 찍는 다부진 말투와 단단한 표정을 접하니, 쉽게 꺾이는 꽃은 그에게 적절한 비유가 아니라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김주원은 지금 새로운 출발선에 선 상태다. 작년 7월,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자리를 내려놓고 홀로서기의 자유를 택한 아티스트는 오는 4월 5일부터 7일까지 자신의 이름을 건 첫 공연을 LG아트센터 무대에 올린다. 전반전 이상으로 치열한 후반전이 막 시작된 셈이다. <김주원의 마그리트와 아르망>은 기획부터 예술감독까지의 전 과정을 그가 적극적으로 주도한 프로젝트다. 서거 25주년을 맞은 전설적인 안무가 프레더릭 애슈턴의 작품이 한국에서 초연되는 자리이기도 하다. 랩소디 파드되, 어웨이크닝 파드되 등 함께 공연되는 다른 프로그램도 완성도가 높지만 가장 눈길을 끄는 건 역시 표제작인 <마그리트와 아르망>이다. 알렉상드르 뒤마 피스의 소설 <춘희>를 원작으로 한 이 단막 발레는 리스트의 피아노 소나타 B단조에 맞춰 비극적인 로맨스를 격정적으로 표현한다.

“단 35분이었어요.” 관객으로 <마그리트와 아르망>을 처음 접했을 때의 기억을 김주원이 되새겼다. 2000년대 초, 영국 로열 발레단에서 단기 체류를 하던 무렵이었다. “혼자 극장에 찾아갔었죠. 오케스트라 편성에 무용수도 100명 가까이 출연하는 <불새>처럼 화려한 작품들이 먼저 무대에 오르더라고요. 마지막으로 아주 심플한 세트가 세워지고 두 명의 주연 무용수와 몇 명의 조연, 피아노 한 대가 등장했어요. 리스트의 피아노 소나타가 35분간 흐르고 공연이 끝났는데 관객들이 아무 소리도 내질 못했어요. 어떤 느낌인지 아시겠어요? 앞의 작품들은 머리에서 다 지워지고 그 음악과 그 이야기밖에 남질 않았어요.”

애초에 <마그리트와 아르망>은 20세기 발레의 독보적인 아이콘인 마고트 폰테인과 루돌프 누레예프를 위한 헌정작이었다. 폰테인 사망 이후 20년 이상 무대에 오르지 못했던 작품의 봉인을 푼 게 당대의 스타인 실비 길렘과 니콜라 르 리쉬였다. 김주원이 처음 본 것도 바로 이들의 공연이었다. 너무 압도적인 경험이었기 때문에 그때는 감히 마그리트가 된 자신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결국 10여 년 만에 그는 자신이 꿈꾸는 것조차 과분하다고 생각했던 꿈을 실현하게 됐다. 애슈턴의 안무를 추기 위해서는 먼저 까다로운 심사를 거쳐야 한다. 김주원 이전에 마그리트를 연기하는 특권을 누린 발레리나는 전 세계에서 4명 정도에 불과하다. “굉장히 많은 컴퍼니와 발레리나가 의뢰했다가 거절당한 걸로 알고 있어요. 애슈턴 작품의 전수자인 그랜트 코일의 말에 따르면 아무리 유명한 무용수라도 재단이 의미나 명분을 찾지 못하면 이 작품을 주지 않으신대요. 제 자랑 같지만(웃음), 정말 선택된 발레리나만 할 수 있는 역할이라고 하시더라고요. 저에 관한 영상과 자료, 추천의 말 등 모든 것을 검토해서 내린 결정이었어요.”

현재 김주원의 행보는 여러모로 예외적이다. 발레리나가 안전한 소속 없이 홀로서기를 한다는 것 자체부터가 한국에서는 드문 일이다. 따라서 이제부터 내딛는 모든 발자국이 중요한 선례로 남게 될 것이다. 큰 결정이었던 만큼 나름의 분명한 이유가 있었으리라 짐작했다. “외국의 경우, 발레단 말고도 스타 무용수들이 예술적 경험을 할 기회가 너무나 다양해요. 아티스트로서 도태되지 않으려면 깊이 있는 경험을 가능한 한 풍부하게 쌓아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전 발레단에 있을 때도 휴가를 이용해서 외부 작업을 많이 했던 무용수예요. 앞으로는 더 다양하고 많은 걸 하고 싶어서 독립한 거죠.”

그렇다고 국립발레단과의 연결고리가 완전히 끊어진 것은 아니다. 이제 객원 수석 무용수의 신분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그에게 이곳은 애틋한 고향이며 각별한 일터다. 그래도 자신을 둘러싼 상황이 크게 달라졌다는 사실은 수시로 실감한다고 했다. “그런데 전보다 훨씬 행복한 걸 보면 제가 열심히 살아온 모양이에요. 순간순간에 최선을 다하기 때문에 제가 계획한 대로만 흘러가지 않더라도 행복할 수 있어요. 예전에는 주어지는 일만 묵묵히 하면 충분했거든요. 지금은 제가 먼저 찾아요. 무얼할 수 있는지 찾게 되고, 어디에 있어야 할지를 결정해요. 크게 열려 있는 현재의 가능성이 너무 좋아요.”

물론 4월의 공연은 프레더릭 애슈턴 측에서 김주원을 선택했기 때문에 비로소 가능해진 프로젝트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김주원 역시 애슈턴을 선택했다고 볼 수 있다. 그는 <백조의 호수>나 <호두까기 인형>만큼 유명하지는 않더라도 그에 못지않게 훌륭한 작품을 다양하게 소개하고 싶다고 했다. “발레는 화려하게 준비된 곳에서만 즐길 수 있다는 인식을 바꾸고 싶어요.” 일반적인 발레 공연장보다 규모가 작은 LG아트센터를 선택한 것도 관객과 더 가깝게 호흡할 수 있는 장소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대규모 오케스트라와 거창한 세트, 압도적인 군무를 죄다 걷어낸 채 작품과 무용수의 힘만으로 청중을 움직이려 한다는 데서 그의 도전적인 기질이 다시 한 번 드러난다. 가련한 마그리트와 이 캐릭터를 연기하는 김주원은 어떤 면에서는 완전히 다른 인물이다.

김주원의 마그리트와 함께 관객 앞에 설 아르망은 현재 미국 워싱턴 발레단의 수석무용수로 활약 중인 김현웅이다. 두 사람은 국립발레단에 몸담고 있던 시절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수차례 호흡을 맞춰온 파트너다. “인생에 걸쳐 제 허리를 가장 많이 만진 남자가 김현웅이에요.” 김주원이 웃음으로 농담을 맺는다. “국립발레단에서 일한 15년 중 6년 가까운 시간을 같이 춤추며 보냈으니까요. 메인 롤은 거의 둘이 맡아 했어요.” 그가 중요한 무대를 준비하며 바다 건너의 후배를 떠올린 건 당연한 일인 듯했다. “제가 연습에 돌입하기 전에는 (다른 무용수들의) 동영상을 안 봐요. 괜한 영향을 받게 될까 싶어서요. 이번 작품도 3일 전에야 처음으로 봤어요. 그런데 너무 멋지더라고요. 이런 기회가 주어졌다는 게 새삼 기뻤지요.” 춤을 추기 위한 몸을 타고났다고 평가받는 발레리노는 새로운 도전에 대한 기대를 이렇게 표현했다.

엘렌 그리모가 연주하는 리스트의 피아노 소나타 B단조가 스튜디오 안에 가득 차 올랐다. 카메라 앞에 선 김주원과 김현웅은 이미 마그리트와 아르망이었다. 겹쳐졌다 흩어지는 목과 팔의 선이며 순식간에 타올랐다가 다음 순간 꺼져버리는 표정을 지켜보며 스태프들이 숨을 죽였다. 그때만큼은 두 사람이 더없이 로맨틱한 한 쌍처럼 보였다. 하지만 춤을 멈추고 나자 장르는 금세 시트콤이 됐다. 다정한 면박과 짓궂은 농담이 스크루볼 코미디 수준으로 오갔는데 확실히 연인보다는 큰누나와 막내동생 사이의 대화였다. “제가 언니 오빠 여동생은 다 있는데 남동생만 없거든요. 웅이는 그냥 피붙이 같아요. 얘가 힘들어하면 저도 마음이 아프고, 얘한테 좋은 일이 생기면 진심으로 기뻐요.” 김주원이 살갑게 덧붙였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났을 무렵에 대해 물었다. “고3 때 발레단 아카데미를 찾아갔어요. 그때 누나는 이미 주역이었고요. 당시에는 나중에 누나와 춤을 추게 될 거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어요.” (김현웅) “현웅 씨가 처음 오디션 보러 왔을 때를 아직 기억해요. 무슨 순정만화에서 튀어나온 것 같았다니까요? 지금은 좀 험악해졌는데 그 무렵만 해도 곱상했어요. 단원 모두 저런 애가 한국에 있었느냐면서 놀랐죠. 발레를 위한 조건을 완벽하게 갖춘 아이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거예요. 충격이었어요. 심지어 관심도 없던 아카데미 오디션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봤죠.” (김주원) 그런데, 하고 쉼표를 찍더니 김주원이 계속 말을 잇는다. “진짜 못하더라고요(웃음). 그때가 처음이었으니까. 웅이는 시작이 많이 늦은 편이었어요.” 하지만 김현웅의 성장 속도는 늦은 시작을 만회하고도 남았다. 국립발레단의 주역 생활을 거쳐 지난 9월에 입단한 워싱턴 발레단에서도 단번에 스타로 자리매김했을 정도다. “너무 놀랐어요. 그렇게 큰 발레단에서 몇 개월 만에 메인 롤이 된다는 게 쉽지 않거든요. 한국 팬들은 아직 잘 모를 수도 있잖아요. 굉장히 잘하고 있다는 걸 저라도 알려주고 싶어요.”

피붙이 같은 동생인 것과는 별개로 김주원은 그를 프로페셔널 댄서로서 인정하고 존중한다. “아무리 가깝게 지낸다 해도 친분으로 춤을 출 수는 없어요. 무용수로 봤을 때도 저를 가장 아름답게 만들어줄 수 있는 파트너가 김현웅이에요. 현웅 씨 옆에 섰을 때 너무나 아름다워 보인다는 평을 많이 들어요. 그만큼 상대를 배려하는 파트너라는 거죠. 그리고 무척 다양한 색깔을 지닌 아티스트예요. 안무가가 달라질 때마다 아예 다른 무용수가 되는 것 같아요.” 파드되(2인무)를 출 때처럼 김현웅이 자연스럽게 흐름을 이어받는다. “감히 제가 누나에 대해 평가를 할 입장은 못 돼요. 다만 본받고 싶은 부분은 말할 수 있겠죠. 가끔 사람들이 저에게 김주원은 어떤 무용수인지 물어봐요. 그러면 한결같이 이렇게 대답을 해요. 그만큼 노력하는 사람을 못 본 것 같다고요. 언젠가 누나가 저한테 그러더라고요. ‘누나는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안돼.’ 순간 움찔했어요. 아무리 동생이라지만 프로가 프로에게 그런 이야기를 하기가 쉽지는 않거든요. 그때 저를 많이 돌아본 것 같아요. 나도 그만큼 열심히 하고 있나 싶더라고요.”

가족 못지않게 김주원을 잘 알고 있을 김현웅은 그가 완벽주의자라고 설명한다. “함께 작업할 때는 화도 많이 내요. 당연한 거라고 생각해요. 자기 것을 만들고 끊임없이 최고를 추구하다 보면 매사에 부드럽게만 넘어갈 수가 없어요. 예민하긴 하지만 그만큼 깊이 몰두한다는 뜻인 것 같아요. 사실 저는 완벽주의와는 거리가 있는 사람이거든요. 그런데 누나 만난 뒤로 후배들에게 완벽주의자 같다는 말을 들어요. 파트너의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해요. 귓등으로 듣던 엄마 잔소리를 아들이 자신도 모르게 따르게 되는 그런 느낌이랄까?” “야, 뭐? 엄마? 얘가 이래요. 네 살 차이밖에 안나는데.” 김현웅이 못 들었다는 척 말을 잇는다. “누나에게 닮고 싶은 면이 또 있어요. 늘 자기 이미지를 유지하고…” “그건 내가 가식적이라는 뜻이야?” “아니, 가식적이지는 않고 굉장히 솔직한데, 그러면서도 자신을 무척 잘 지킨다는 느낌을 받아요.” “자기 관리라는 뜻이네. 자기 관리를 잘한다, 그렇게 써주세요.” 이렇게 또다시 시트콤이다.

상체에 흰색이 배색된 검정 드레스는 Demin 제품.

상체에 흰색이 배색된 검정 드레스는 Demin 제품.

몸과 마음 모두를 혹사시켜야 하는 무용수에게 자기 관리는 종교에 가깝다. 그리고 김주원은 그 종교의 유난스러운 신도다. 웬만하면 다른 무용수들과 술자리를 갖는 일도 삼가는 편이라고 했다. “원래 술을 안 하기도 하지만 사실 조심스러웠어요. 무용수 사이에서 나름 프리마 발레리나로서 극을 끌어가려면 약간의 거리를 지킬 필요도 있다고 봤거든요. 춤을 출 때는 서로를 존중하고 존경해야 하니까요. 물론 나이가 들면서 사람들과의 관계에 좀 더 여유가 생기기는 했어요. 미술이나 음악과 달리 발레는 절대로 혼자 할 수가 없는 작업이에요. 1백 명 가까운 무리가 한 무대에 서고, 그 사람들과 계속 부대껴야 해요. 그래서 감정의 교류가 중요하죠.” 스스럼없이 농담을 나누면서도 아티스트로서 서로가 갖는 권위는 깍듯이 인정하는 김주원과 김현웅은 이상적인 예술적 동지처럼 보였다. “너 이제 가도 된대.” 선배가 촬영과 인터뷰를 먼저 마친 후배에게 짐짓 퉁명스러운 투로 한마디를 던진다. “전 누나한테 촛불이거든요. 훅, 불면 꺼져야죠.” 서글서글하게 웃으며 김현웅이 자리를 떴다.

김주원에게는 이야기를 좀 더 청했다. 이 발레리나를 설명할 때 가장 자주 언급되는 작품은 아무래도 <지젤>이다. 외모부터 테크닉까지 이 캐릭터를 표현하기 위한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다는 평이 늘 따라붙곤 한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마그리트와 아르망>도 <지젤>만큼이나 애절한 로맨스다. “제가 유독 비극 취향이에요. 즐겁고 아름다운 작품도 물론 많죠. 행복하게 춤을 추긴 하지만 비극을 할 때만큼 빠져들지는 못해요. 감성이 그쪽인가 봐요.” 언급된 것 외에 특별하게 여기는 작품이 또 있는지 물었다. “<로미오와 줄리엣>을 굉장히 좋아해요. 그러고 보니 여기서도 죽네요.” 음악 취향도 크게 다르지 않아서 쇼팽의 발라드나 피아노 협주곡, 혹은 리스트의 피아노 소나타 B단조처럼 애조 띤 선율에 주로 끌린다고도 했다. 소위 ‘춤추는’ 노래들을 들으면 오히려 스트레스를 받는 편이다. 클럽에는 단원들과 딱 한 번 갔는데 너무 시끄러워서 애를 먹었다. 결국 오래 버티질 못하고 뛰쳐나와야 했다. “전 춤을 진짜 못 춰요.” 브누아 드 라 당스 최고 여성 무용수상 수상 경력의 발레리나는 납득하기 힘든 말을 불쑥 뱉었다. “(허우적대는 시늉을 하며) 그냥 막 이런다니까요? 다들 저보고 움직이지 마라고 하던데요.” 아마도 플로어보다는 무대 체질인 모양이다.

그렇다고 김주원이 클래식 발레 외의 춤에 무관심한 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다. 아직 국립발레단 소속이던 2009년에는 오디션까지 자청해가며 뮤지컬 <컨택트>의 배역을 따냈다. ‘노래하지 않는 뮤지컬’을 표방한 이 작품에서 그는 토슈즈 대신 7센티미터 높이의 구두를 신고 등장해 스윙부터 자이브, 탭까지 다양한 장르의 춤을 선보였다. 전부 작품을 위해 처음 배운 동작들이었다. “일종의 언어라고 생각 했어요. 몸의 언어죠. 여러 나라의 말을 배우듯 새로운 언어를 익힌 몸은 더 깊이 있고 설득력 있는 춤을 출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제게는 꼭 필요한 경험이었던 셈이에요.” 문득 그보다 앞서 마그리트를 연기했으며 클래식 발레와 현대 무용 사이의 벽을 수시로 넘었던 실비 길렘이 떠올랐다. 프리랜서가 된 이후로 김주원의 시도는 좀 더 과감해질 듯하다. 당장 5월에도 또 다른 무대를 계획 중인데 온갖 장르가 융합된 독특한 결과물이 될 거라고 귀띔한다.

<컨택트>가 좋은 결과만 남긴 건 아니다. 공연 일정이 거의 마무리되어가고 있을 무렵, 그만 무대 위에서 부상을 당했다. 왼쪽 허벅지 근막 파열이었다. “굉장히 추운 날이었거든요. 제가 추위에 약해서 항상 겨울에 부상을 당해요.” 2000년대 중반, 그가 족저근막염 때문에 길고 힘겨운 재활 기간을 거쳐야 했다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몸에 지닌 흉터의 수를 겨루는 용병들처럼 한 무리의 발레리나가 차례로 부상의 연대기를 읊는 장면을 잠시 상상해봤다. 국립발레단의 평균 연령은 20대 중반 정도지만 다들 기상청 직원처럼 비 올 때를 정확히 맞춘다고 한다. 흐린 날이면 벽을 붙잡고 걷거나 아예 바닥에 드러눕는 사람까지 생긴다. 디스크를 앓고 인대가 늘어나고 구석구석이 삐는 정도는 익숙한 일상이다.

이렇다 보니 발레리나들이 무대에 설 수 있는 기간은 그리 길지 않다. 혹사에 가깝게 몸을 사용하는 직업이라서 체력이 쇠하기 시작하면 표현도 예전 같을 수 없다. “그래서 전설적인 안무가 유리 그리고로비치는 발레가 ‘젊음의 예술’이라고 했어요. 파리 오페라 발레단 같은 메이저급 컴퍼니에서는 정년이 겨우 마흔이에요. 관객이 좀 더 보고 싶어 하는 주역에게만 마흔셋이나 마흔다섯 정도까지 예외를 허락하고요.” 물론 나이가 든다는 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달갑지 않은 일이지만 무용수에게는 특히 예민한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한 살 한 살 세월을 더해가며 젊음의 예술을 추구해야 한다는 건 어찌 보면 잔인한 일이다.

“사람마다 개인차는 있죠. 자기 몸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춤을 출 수 없는 날이 훨씬 빨리 다가올 수도, 아니면 늦춰질 수도 있어요. 그런데 이미 무대에서 나이가 느껴지기 시작한다면 그때가 곧 내려와야 할 순간일지도 모르겠어요. 열여섯 소녀를 표현해야 하는데 주름이 보인다면, 날아다니는 요정 같아야 하는데 뛰지를 못한다면 곤란하잖아요. 가끔 무용수들끼리 우린 불나방이라고 이야기하면서 웃기도 해요. 순간을 불태우고 사그라지는 것 같다는 느낌을 자주 받아요. 그래서 모든 공연에 최선을 다하고, 전부를 담으려고 해요. 후회할 수가 없으니까요. 무대에서 내려올 시기는 누구보다도 냉정하게 제가 먼저 알 것 같아요. 최상의 움직임과 절정의 표현을 할 수 없는 날이 오면 저부터가 견디지 못할 거예요.”

김주원이 입은 꽃잎 모양의 소매가 달린 흰색의 브이넥 드레스는 Gucci 제품,김현웅이 입은 흰색 티셔츠는 Alexander Wang, 검정 팬츠는 Kwonohsoo Classic 제품.

김주원이 입은 꽃잎 모양의 소매가 달린 흰색의 브이넥 드레스는 Gucci 제품,
김현웅이 입은 흰색 티셔츠는 Alexander Wang, 검정 팬츠는 Kwonohsoo Classic 제품.

하지만 젊음의 예술에도 성숙할 시간은 필요하다. 어떤 깊이는 나이가 든 뒤에야 비로소 도달할 수 있다. 무용수로서 30대는 20대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김주원에게 값진 시절이다. “춤추는 일이 너무 감사하다고 생각하게 된 게 불과 4~5년이에요. 비로소 주위가 보이기 시작했어요. 무대에 함께 서 있는 동료들이 보이고, 그들의 감정이 느껴지고, 오케스트라 악기의 선율 하나하나가 제 몸에 입혀지는 것 같아요.” 그전까지도 무대 위에서 행복하기는 했지만 어떻게 보면 너무 이기적인 춤을 춘 것 같다고 그는 말한다. “이제는 훨씬 더, 정말로 춤을 추고 있거든요. 쉽게 표현을 하자면 신 내림이 이런 느낌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기도 해요.” 김주원은 지금 이 순간 무용수로서의 절정을 경험하고 있는 듯했다. 오래전부터 최상의 시기에 국립 발레단을 나올 수 있기를 바랐고 결국 그 다짐을 지켰다. “패잔병처럼 몸도 마음도 다 망가진 상태에서 나오는 건 저와 맞지 않아요. 그런 건 인생 계획에 없거든요. 감정적, 육체적으로 가장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고, 다양한 경험에 가장 목말라 있는 시기가 지금이라고 생각해요.”

김주원은 내리 세 시즌째 <댄싱 위드 더 스타>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어록이 따로 묶여 회자될 만큼 차분한 말솜씨를 인정받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지나칠 정도로 점수가 후하다는 평가도 듣는다. “전문가를 뽑는 자리였다면 심한 이야기도 하고, 지적도 신랄하게 했을 거예요. 하지만 이건 그냥 소중한 도전이잖아요. 사람마다 시작점도 달라요. 어떻게 댄스 가수와 스포츠 선수를 일대일로 비교하겠어요. 새로운 도전을 자주 하는 사람이다 보니 도전 자체에 굉장히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는걸 전 너무나 잘 알아요. 평생 춤을 모르고 살았던 분이 스텝 밟는 걸 가까이서 보면 눈물이 날 때도 있거든요. 그래서 격려해주고 싶어요. 저 역시 뭔가 도전할 때는 비판보다 격려를 받고 싶은 사람이고요.” 그렇기 때문에 기가 죽어 있는 출연자에게는 오히려 점수를 더 주게 된다는 설명이다. “욕먹어도 할 수 없어요. 전 계속 그렇게 할거예요(웃음).” 새로운 시즌에도 김주원의 독설을 듣기는 힘들 것 같다.

우연히 사진에 대한 이야기로 대화가 흘렀다. 큰 관심도 없고 실력도 형편없다고 털어놓긴 했지만 그래도 동료 무용수들을 찍어보려고 시도한 적은 있었던 모양이다. “무대 아래서 보는 사람과 발레리나의 시선은 다른 것 같아요. 다들 익숙하게 떠올리는 것과는 다른 발레의 순간을 담게 될 때가 있더라고요. 잘 찍은 사진은 아니지만 새롭고 흥미롭다는 이야기는 종종 들었어요.” 어떤 장면들을 예로 들 수 있을까? “군무라 하면 관객들은 한 줄로 길게 서 있는 전체 라인을 떠올리시잖아요. 그런데 무대 위에서는 무용수가 위치를 잡기 위해 앞에 선 사람의 어깨 어딘가에 시선을 맞추는 순간 같은 게 보여요. 동료들이 그 사진을 보더니 ‘맞아, 우리 다들 여기 보잖아. 그런데 이런 걸 누가 알겠어?’라고 끄덕끄덕하더라고요. 그런 장면을 짚어 드리면 무용수가 아닌 분들도 재미있어 하시는 것 같아요.”

지금 김주원이 계획하고 있는 활동도 같은 맥락에서 살필 수 있다. 사람들이 모르던 발레의 생생하고 흥미로운 표정을 포착해 알리는 게 프리랜서 무용수가 된 그의 바람이니까. 우아한 수면 위의 자태부터 세차고 치열한 물 아래의 발질까지, 이 예술가는 춤에 관한 모든 것을 말할 준비를 마쳤다. 그 꿋꿋한 도전은 긴장감이 넘치는 스포츠만큼이나 역동적이고 짜릿하며 또 아름다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