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래버레이션이라는 말이, 개그콘서트 개편 직전 코너의 철지난 유행어만큼이나 식상해진 요즘이지만 디자이너와 아티스트의 어떤 협업은 확연히 특출하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하는 일이라서 그렇다. 손잡은 두 주인공이 우영미와 권오상이라면, 이야기는 더더욱 흥미진진해진다.

신선함은 금세 빛바래고, 열광의 시기를 지나 급속도로 닳고 낡아가는 낱말들이 있다. 컬래버레이션이라는 단어가 그렇다. 마크 제이콥스가 무라카미 다카시에게 루이 비통을 위한 작업을 제안한 것이 벌써 2002년의 일. 이제 아티스트들에게 손을 내미는 건 패션 하우스들이 마케팅적인 벽에 부딪칠 때마다 으레 하는 빤한 구원 요청의 몸짓처럼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결과물 또한, 감각을 뒤흔드는 신선한 무언가가 제시되는 일은 거의 드물다. 협업이라는 깃발을 들고서 참 많은 짝짓기와 구애 시도들이 있어왔고, 하늘 아래 더 이상 새로울 것은 없어 보인다.

2013 S/S 우영미 의상을입은 모델을 미술가권오상이 사진 조각으로만들었다. 어깨에 얹은표범, 다리를 감은 뱀같은 동물의 요소를조각에 더한 것은 우영미의상의 패턴에서 얻은아이디어다.

2013 S/S 우영미 의상을
입은 모델을 미술가
권오상이 사진 조각으로
만들었다. 어깨에 얹은
표범, 다리를 감은 뱀
같은 동물의 요소를
조각에 더한 것은 우영미
의상의 패턴에서 얻은
아이디어다.

디자이너 우영미의 2012년은 참 분주했다. 파리 컬렉션 진출 10주년을 맞았고, 파리 의상 조합 정회원이 되었으며, 플래그십 스토어이자 복합 문화 공간인 맨메이드 우영미를 도산공원 옆에 지어 그곳에서 자신의 10주년 회고전을 열었으니까. 그리고 해가 바뀌어 조금 쉬어갈 법도 할 연초에 또 한번 이처럼 분명하고 똑부러지는 인사를 건네왔다. 권오상과 우영미, 두 사람의 컬래버레이션 작업은 시각적으로 명쾌한 두 세계가 만나 뚜렷한 결과물을 만들어낸 협업의 사례로 기록될 만하다. 우영미의 2013 S/S 의상을 입은 모델을 권오상은 특유의 사진 조각으로 옮겼다. 의상을 입고 있는 모델을 촬영한 다음 사진 한 컷 한 컷을 압축 스티로폼 위에 붙이는 방식을 통해 실물 사이즈로 구현하는, ‘데오도란트 타입’ 조각으로 만든 것이다. 이를 다시 촬영한 사진이 우영미 2013 S/S 시즌의 광고 캠페인으로 국내외 여러 잡지에 실렸으며, 두 점의 이 사진 조각을 비롯한 권오상의 작품들은 우영미 플래그십 스토어이자 복합 문화공간인 맨메이드 우영미에서 전시 중이다. 패션계와 미술계에서 걸출하게 이름을 알려온, 그보다 자기 스타일을 확고하게 각인해왔다는 점에서 특별한 두 작가의 DNA 공유는 이렇게 이루어졌다. 우영미의 의상을 입은 모델을 가지고 권오상이 만들어낸 조각을 마주한 더블유 카메라 앞에, 두 사람이 나란히 섰다.

우영미 S/S 광고 캠페인에 권오상이 작품을 만들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어떻게 이 일이 성사된 건가?
권오상 프로젝터 큐레이터인 펠리스 박의 주선으로 시작됐다. 2013 S/S 우영미 의상을 입은 모델을 이용해 사진 조각을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정도를 공유하고 작업에 착수했다. 요즘은 데오도란트 타입 조각에 모델 외의 여러가지 요소를 갖다 붙이는 작업을 하고 있기 때문에 뭔가 재밌게 하고 싶어서 표범과 뱀 같은 동물을 등장시켰다. 마침 이번 시즌 우영미 의상 또한 패턴을 많이 활용하기 때문에 동물 무늬와 더불어 흥미로울 거라 생각했다.

조각이라는 방식의 컬래버레이션이 신선하기는 하지만, 옷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최적의 선택이 아니지 않나? 조각으로 한 번 옮기면서 소재나 디테일의 표현이 바뀌고, 이를 다시 사진으로 찍어 지면 광고로 싣게 되니까.
우영미 나는 옷을 만드는 사람이지만 옷만 잘 보여준다고 해서 사람들이 주목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옷은 매장에서 보면 되지 않나(웃음). 내가 집중했던 건 ‘우리가 보여주고 싶은 남자는 어떤 사람인가?’라는 질문이었다. 우영미를 입는 남자는 갤러리에 가서 그림도 보고 아트를 좋아하고 문화를 아는 사람이라 여긴다. 그런 남자를 표현한다면, 아티스트랑 같이 협업을 하면 어떨까 하고 이야기가 됐다. 조각을 촬영한 광고가 지금 국내외 매체에 여러 군데 실렸는데 반응이 굉장히 좋다(웃음).
권오상 옷의 색깔이라든가 형태 같은 걸 표현하면서 우영미 선생님 작품에 누가 안 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사진 조각조각을 붙이는 작업 특성상 실제 옷이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을 그대로 재현하지 못하더라도 패턴이 정교하게 맞지 않으면서 어긋나 더 재밌는 효과가 나왔다고 본다.

훈훈한 미담은 이 정도로 해두고, 작업 과정에서 서로 부딪치고 의견이 갈렸던 부분을 들어보고 싶다.
우영미 문제가 있긴 했는데, 바로 뱀이었다(웃음). 나는 막연하게 뱀을 싫어해서 권 작가가 작품에 넣는다고 했을 때 거부감이 심했다. 이 문제로 파리에 있는 우리 아트 디렉터 케이티와 10분 이상 다투기도 했다. 그 친구는 사석에서 나를 엄마라고 부르기도 하는데(웃음), 아티스트가 만들고 싶은 이미지를 왜 이해하지 못하냐며 나를 강하게 설득했다. 뱀을 뱀으로만 보지 말고, 거기에서 상상할 수 있는걸 보라고 하면서 이렇게 덧붙이더라. “엄마 옷에 꼭 금속단추를 달고 싶은데 플라스틱단추로 바꾸라고 하면 좋아, 싫어? 금속 단추를 달 때는 엄마만 아는 이유가 있는 거 아니야?” 그 대목에서 내가 단박에 설득당했다. 막상 작품이 나온 걸 보고는 깊이 반성했다. 모델이 옷을 입은 모습은 이미 내가 알고 있던 이미지인데, 뱀이 들어가면서 또 다른 이야기가 생겨나더라. 패션과 아트와 이래서 다르구나 하는 본질적인 차이를 느꼈다.

단순히 우영미 의상을 입은 모델의 재현이 아니라 뱀이나 표범 같은 동물을 더하자는 건 누구의 아이디어였나?
권오상 고전 조각의 형태를 빌려서 현대적인 얘기를 하는게 내 작업이다. 신화나 성경에 나오는 장면을 재현한 고전 조각들에서 사람의 몸과 닿아 있는 동물, 천사, 나무, 옷자락 같은 것은 대부분 전체 조각의 구조를 튼튼하게 하기 위해 힘을 더해주는 장치다. 물론 이야기를 만들기 위한 내용적 역할도 있지만. 조각 역사에서는 뱀을 밟고 선다는 것이 사회악, 부조리, 속박에 대항하는 의미를 상징한다. 이런 형식과 내용이 합쳐졌을 때 시너지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넣은 것이다. 뱀을 극도로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는 건 이 컬래버레이션 작업 직후 레지던스 프로그램 때문에 싱가포르에 가서 알게 됐다. 큐레이터 한 명이 뱀이라는 글자만 봐도 소스라치게 놀랄 정도로 심각한 공포를 갖고 있었다. 나중에는 뱀을 넣어도 좋다는 통보를 들었지만 혹시 마음이 바뀌면 다시 알려달라고 말했다(웃음). 표범을 어깨에 얹은 조각의 경우, 양을 사용하는 것이 보편적이지만 무늬가 더 어울릴 것 같아서 맹수를 선택했다.

권오상의 사진 조각'데오도란트 타입' 시리즈를제작하는 과정. 작가는무겁고 단단한 소재를사용하는 고전조각의 개념을 파괴하는대신 가벼운 물성의 사진을이용하면서 현대적인이야기를 담는다. 1. 실물 사이즈로 모델의셰이프를 잡고2, 3. 압축 스티로폼인아이소핑크로 실제 사람크기로 조각한다.4. 실제 모델의 머리 끝에서발끝까지를 세세하게 찍은 사진을붙여 전체를 완성한다.

권오상의 사진 조각
‘데오도란트 타입’ 시리즈를
제작하는 과정. 작가는
무겁고 단단한 소재를
사용하는 고전
조각의 개념을 파괴하는
대신 가벼운 물성의 사진을
이용하면서 현대적인
이야기를 담는다.

1. 실물 사이즈로 모델의
셰이프를 잡고
2, 3. 압축 스티로폼인
아이소핑크로 실제 사람
크기로 조각한다.
4. 실제 모델의 머리 끝에서
발끝까지를 세세하게 찍은 사진을
붙여 전체를 완성한다.

권 작가는 고양이와 같이 살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혹시 그 영향은 아닐까? 표범은 마치 거대한 고양이처럼 보이기도 하니까.
권오상 진짜 그런 이유도 있었는지 모르겠다(웃음). 요즘 온통 빠져 있는 관심사 중 하나다.
우영미 그러고 보니 나도 검은 고양이를 한 마리 키우고있다. 고양이는 시각적으로 참 아름다운 동물이다.

권오상 작가의 데오도란트 타입은 실물을 놓고 수천 장의 사진을 찍어서 붙이는 방식으로 만들어지는 것으로 아는데, 뱀이나 표범의 실사 사진을 찍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동물 부분은 어떻게 작업했나?
뱀과 표범 부분은 사진 찍는 대신 검색한 결과를 선택해서 조합한 거다. 어떤 부분은 남미의, 다른 부분은 미국에 있는 뱀 이미지를 합쳤다. 그래서 표범의 무늬도 어떤 부분은 정교하고, 또 다른 부분은 픽셀이 깨져 있다. 공중에 떠다니는 정보를 조합해서 하나의 덩어리를 만든 셈이다. 우영미 선생님의 작업도 전 세계 여러 가지 패턴을 조합해서 새로운 무늬를 만들어내는데, 그런 의미에서 멀티 컬처적으로 맞물리는 재미가 있을 것 같았다.

완성된 작품을 봤을 때 디자이너로서 감상이 어땠나?
우영미 내가 잘 알고 있는 옷을 입은, 내가 친숙한 모델의 모습이 전혀 새로운 이미지가 되어 있었다. 권오상 작가 작품의 장점은 직관적으로 와 닿는 점이다. 왜 그런지 과정이나 작가의 의도를 더듬기보다는 머리와 마음이 한꺼번에 인지할 수 있는 비주얼이고, 다른 아트보다 이해하기가 쉽다. 나뿐 아니라 보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거라 생각한다.

요청의 목적과 시기가 뚜렷한 작업을 하는 건 작업 과정에서 어떤 압박이 되지는 않았나?
권오상 의뢰받아 작업하는 걸 더 좋아한다. 시간이나 물리적 제약이 있어 언제까지 해야 하고 뭔가가 꼭 들어가야하고, 이런 한계가 있을 때 더 재미있다. 나는 작업실에서 작품이 매일 생산되기를 바라는 사람이고, 작업실이 쉬지 않고 돌아가는 걸 보면서 흐뭇해하고 좋아한다. 그런 제한과 제약이 있을 때 뭔가 해결할 수 있는 답이 나오게 마련이라서 더 스릴이 있는 것 같다. 데드라인을 정해두었을때 파이팅 넘치는 느낌도 좋아한다. 물론 마감에 임박해서 더 생산성이 높아지기도 한다(웃음).
우영미 작품에서 노동의 흔적이 보였다. 컬렉션을 앞두고 옷 만드는 것도 마찬가지로 시간이나 경제적 제한을 두고 집중해서 일하게 된다. 그런 괴로움과 고통을 충분히 짐작하는데, 근사하게 표현이 돼서 권 작가께 수고하셨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다.

광고 캠페인을 위한 작업에 그치지 않고 플래그십 스토어이자 카페이기도 한 맨메이드 우영미 공간에서 4월 7일까지 전시가 이루어진다.
우영미 우리 공간이 만약 갤러리라면 미술에 관심 있는 사람, 전시 관람이 목적인 사람들만 방문할 거다. 하지만 옷을 보러 왔다가, 사람을 만나거나 커피를 마시러 왔다가 미술 작품을 발견하게 되는 즐거움을 느끼길 기대한다. 삶 속에 가까이 들어가 있는 아트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이 공간이 자기 역할을 하는 것 같다. 매장의 옷 사이사이로 작품이 배치되어 있기도 한데, 호기심으로 바라보다가 친숙하게 다가가면서 남자들이 아트를 가깝게 느끼면 좋겠다.

패션과 미술, 서로 다른 분야를 엿보면서 함께 일하는 과정에서 주고받은 자극이 있을 것 같다.
우영미 파리에서는 특히 이 결과물에 관심을 많이 갖고 있다. 다음은 어떤 아티스트가 될까 주목하고 소개한다. 젊은 현대 미술가들의 참신한 아트에 묻어가려고 노력을 많이 한다(웃음).
권오상 현대 미술가들 역시 패션과 컬래버레이션하는 것을 대단한 영광으로 생각하고 자신을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라 여긴다. 우영미 선생님이 젊은 현대 미술 작가의 작업을 열린 마음으로 바라보고 받아들이셔서 즐겁게 작업할 수 있었다. 다른 문화에서 모티프를 가져다가 재구성하는 면이라든가 창조적인 도전의 과정에서 공통점을 많이 느꼈다. 광고와 전시까지 좋은 시너지를 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