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잔의 추억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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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나긴 겨울밤 술 집에 들어서니 노랫말이 절로 음악이 되어 나온다. ‘마시자 한 잔의 추억, 마시자 한 잔의 술, 마시자 마셔버리자’.

마론 키친 앤 바
잔디가 깔려 있는 테라스를 바라보며 물었다.“ 날씨가 풀리면 테라스에도 자리 만드실 거죠?” 자분자분한 음성이 돌아왔다. “아뇨. 휴식 공간으로 두려고 해요. 흡연자를 위한 공간이기도 하고요”. 어쩐지 요즘 최고로 분주한 이태원 한복판에 위치해 있는데도, 마론 키친 앤 바에 들어서자 마음이 노곤해진다 싶었다. 그 마음에 유자청, 복분자액 등을 넣어 청량하게 즐기는 샴페인 칵테일, 한라산 소주, 에스트렐라 담 바르셀로나 생맥주까지 모든 맛있는 술을 붓는다. 그런데도 치즈와 우니소스로 진하게 맛을 낸 산마 그라탕, 상큼한 흰 살 생선 카르파치오 같은 음식들이 들어갈 자리가 남았다. 누구는 요즘 퓨전을 무시하기도 하지만, 온갖 좋은 것들이 좋게 어울려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었다

산체스 막걸리
“멕시코 가봤냐고요? 못 가봤어요. 으흐흐흐흐.” 산체스 막걸리의 주인장은 이상하게, 그러나 기분 좋게 웃는다. 그는 어딘지 ‘산체스’를 닮았다. 메뉴판엔 ‘전반적으로 요리사 손이 느립니다. 좀 봐주세요!’ 라고 적혀 있지만, 진짜로 감자만 넣은 감자전, 매콤한 홍합찜을 먹다 보면 그렇게 써 있지 않아도 다 봐줄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면 요리의 비결은? “정말이에요. 정말로 미원 안 넣어요. 사 오는 제품에 이미 들어가 있는 조미료는 어쩔 수 없지만요.” 영화 미술팀으로 일하던 그는 영화와 영화 사이의 긴 기다림을 어떻게 채울까 고심하다가 막걸리집을 택했다. 식탁마다 소담스러운 꽃이 놓여 있고, 어디를 둘러봐도 화려한 조명이 빛나는 걸 보면 막걸리집이 아닌 것 같아도, 영광 대마 할머니 막걸리부터 정읍 송명섭 막걸리, 부산 토마토 막걸리, 오리지널 항공 직송 제주 막걸리까지 막걸리만 가득인 걸 보면 막걸리집이 확실하다. 알고 보니 무림의 막걸리 고수인 거 아닐까 하는 마음에 막걸리에 관한 온갖 질문을 늘어놓았더니, 아까 그 이상한 웃음소리가 또 들려온다. “아유, 저 막걸리 전문가 아니라니까요. 으흐흐흐.”

에디터
피처 에디터 / 김슬기
포토그래퍼
엄삼철, 박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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