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멀리 바라보며 다음 발걸음을 내딛기 시작한 차승원의 현재.

검은색 셔츠와 회색 재킷,팬츠는 모두 Corneliani,슈즈는 Cesare Paciotti 제품.

검은색 셔츠와 회색 재킷,
팬츠는 모두 Corneliani,
슈즈는 Cesare Paciotti 제품.

 

베스트와 헨리넥 티셔츠는Dolce & Gabbana,코트는 YSL by Koon 제품.

베스트와 헨리넥 티셔츠는
Dolce & Gabbana,
코트는 YSL by Koon 제품.

카메라 앞에 선 차승원을 보면서 독보적인 모델이었던 배우의 과거를 새삼 떠올렸다. 근사해 보이는 방법을 잘 아는 사람에게 사진 촬영은 구구단을 외우는 것보다도 쉬운 일인 듯했다. 포토그래퍼가 셔터를 누르기 시작하나 싶더니만 순식간에 5~6컷이 완성됐다. 긴 다리로 걸어와 결과물을 확인하던 배우가 얼굴에 난 작은 흉터는 가려야 하지 않을까, 의견을 말한다. 그러고는 한마디를 덧붙였다. “주름은 그냥 둬도 괜찮고요.” 그에게 세월은 그리 불편한 동행이 아니다. 다만 나이를 더해가면서 연기자로서의 다음 걸음에 대한 생각은 깊어진 것 같았다.

1년 남짓한 휴식을 마치며 차승원은 예상 밖의 선택을 했다. 재일교포 극작가 겸 연출자인 정의신의 신작 <나에게 불의 전차를>은 100여 년 전의 경성을 무대로 일본인 교사와 한국인 남사당 꼭두쇠의 우정을 그린다. 그 외에도 구사나기 츠요시, 히로스에 료코, 가가와 데루유키 등 익숙한 일본 배우들이 참여한 이 작품은 도쿄에서 먼저 공개되어 평단과 관객의 열렬한 반응을 얻었다. 오는 1월 30일부터는 서울 국립극장 무대에 오를 연극에 배우는 특별한 애정을 쏟고 있는 듯했다. “당장의 흥행 여부를 떠나 멀리 봤을 때 제게 의미가 될 만한 작품을 하고 싶었어요.” 요즘 차승원은 주름을 어떻게 감출 것인지가 아니라 그 주름에 어떤 표정을 담을 것인지를 고민하는 중이다. 객석에 앉아 그 표정을 궁금해하는 건 꽤 즐거운 기다림이다.

<최고의 사랑> 이후 공백이 1년 이상 이어졌다. 그전까지는 작품 활동이 상당히 꾸준하고 부지런했는데 왜 이번만큼은 선뜻 차기작을 고르지 못한 걸까?
긍정적으로 고려한 몇 편이 있긴 했다. 그런데 시간을 두고 생각하면서 다른 방향의 연기를 해보고 싶어졌다. 매 작품마다 배우는 아주 조금 담겨 있는 물을 바닥이 드러날 때까지 긁어 쓰는 기분이다. 그런데 문득, 쓸 수 있는 게 아예 남지 않은 것 같았다. <최고의 사랑> 때 에너지를 너무 많이 소진했다. 다른 영화나 드라마에서 그 캐릭터를 차용한 무언가를 또 하기는 싫었다. 조급하게 구는 대신 길게 보는 선택을 해야겠구나 싶었다.

그런 고민 끝에 선택한 작품이 연극 <나에게 불의 전차를>이다. 이 프로젝트에 마음이 움직인 이유가 있을 것 같다.
감독님이다. 재일교포로서 어떤 유년 시절을 보내셨는지는 모르겠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이 분이 고통과 아픔에 대해 잘 알고 계신다는 거다. 그런데 그 시간을 아무렇지 않게 돌아보고 웃으며 이야기하신다. 무겁고 슬픈 사건을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다룬다는 점이 신선하게 느껴졌다.

극중 배역인 이순우는 남사당패의 꼭두쇠다. 첫 연극 무대에서 상모를 돌리고 외줄까지 타야 하니 숙제가 겹겹이 쌓인 프로젝트인 셈이다. 외줄 타는 연기를 하다가 무대 위에서 떨어진 적도 있다고 들었다.
스태프들이 거기서 막을 내리려고 했다. 그런데 나는 안 건너면 안 될 것 같았고, 건너고 싶었다. 연골까지 파열됐지만 결과적으로는 내게 굉장히 큰 힘을 준 경험이었다. 작품 안에서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어떤 점에서 그랬다고 생각하나?
건너지 않고 포기했다면 내 자신에게 굉장히 창피했을 거다. 개막한 지 얼마 안 되는 시점이었기 때문에 꼭 해내고 싶었다.

안전 장치도 없이 무대에 오르는 건가?
그렇다. 2미터 높이에서 맨몸으로 외줄을 건넌다. 함께 출연하는 가가와 데루유키가 나를 보며 정말 독한 사람이라고 혀를 찼다. 자기 몸속에도 배우로서의 뜨거운 피가 흐르기 때문에 왜 끝까지 건너려고 했는지 이해한다고 했다. 하지만 다음부터는 그러지 말라더라(웃음).

니트 톱과 재킷, 테일러드 코트, 머플러,팬츠는 모두 Corneliani 제품.

니트 톱과 재킷, 테일러드 코트, 머플러,
팬츠는 모두 Corneliani 제품.

배우 생활 15년 만의 첫 연극이다. 왜 지금 연극을 선택했느냐보다 왜 그동안은 하지 않았을까를 물어보고 싶다.
뭐든 계기가 있어야 하니까. 연극이라는 새로운 경험을 통해서 기존에 내가 갖고 있던 패턴을 깨고 싶다는 생각이 이제야 들었다. 사실 연극 한 편 한다고 해서 연기력이 폭발적으로 늘진 않는다. 다만 자세는 바뀔 수 있다고 본다. 배우로서 고질적인 습관을 갖게 되고 자꾸 쉬운 쪽으로 흐르는 게 싫었다. 예전에는 이런 고민을 별로 안 했다. 그러다 문득 이렇게 계속하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쿄에서의 공연 일정은 마무리가 됐다. 나름의 중간 결산이 있었을 것 같다.
기분이 무척 좋다. 처음에는 과연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싶었다. 내가 열두발 상모를 돌리는 모습이 그냥 말이 안 되는 것 같았다. 솔직히 요즘도 돌리면서 ‘야, 이거 정말 나하고 안 어울리는구나’ 생각한다. 어떻게 보면 화법이 투박하고 촌스러운 작품이다. 하지만 가장촌스럽고 정직한 방식으로 사람들을 울리고 웃긴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요즘 들어 새삼 느끼고 있다.

작품마다 완전히 달라 보이는 배우는 아닌 것 같다. 늘어난 티셔츠를 걸쳐도 평범해지기는 어려운 외모다.
2~3년 전부터 그런 생각은 벗어난 것 같다. 내게 어울리는 걸 더욱 완숙하게 할 방법을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내 욕심뿐만 아니라 대중이 바라보는 차승원의 모습도 존중할 필요가 있다. 그걸 무리하게 바꾸는 게 과연 정답일까?

잘생기고 예쁜 연기자가 칭찬을 들을 수 있는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방법은 외모를 망가뜨리는 것이다. 그런데 차승원은 그런 시도를 하지 않았다.
고민은 해봤다. 착한 역도 맡았고. 그런데 못됐다가 착해지는 건 괜찮은데 기승전결이 죄다 착한 차승원은 관객이 용납을 안 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점은, 나부터가 그런 걸 굳이 하고 싶지도 않다.

남자들이 30대의 자신을 좋아하는 건 비교적 쉬운 일이다. 직업적으로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를 수 있고 외모적으로도 남성다운 매력이 최고조에 오르는 시기다. 하지만 40대가 된 자신을 좋아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특히 배우는 마흔을 넘기면서부터 절제와 자제를 몸에 익혀야 한다. 함부로 실수를 해서는 안 되는 나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지금까지쌓아온 노하우가 있겠지만 그 또한 100% 정확하지 않다는 걸 알아야 한다. 사람들은 새로운 선택의 순간이 닥칠 때마다 지난 경험에서 답을 찾곤 한다. 그런데 고작 한 사람의 경험을 어느 정도까지 믿을 수 있을까? 그래서 뜻이 맞는 좋은 사람들의 조언이 필요하다. 자신과 주변에 귀를 기울이고 옳은 선택을 해나가다 보면 50대쯤에는 정말 존경받는 남자가 되지 않을까.

30대였던 시절보다 40대가 된 모습에 더 만족하는 편인가?
내게 30대는 굉장히 공격적이었던 나이다. 그것마저 없으면 무너질 것 같았다. 그러니 사실은 겁이 많았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런데 40대부터는 상황과 사람에 대한 이해의 폭이 좀 더 넓어진 것 같다. 물론 지금의 모든 게 다 좋다고는 말 못한다. 다만 30대 때 이런 걸 알았더라면 얼마나 선택의 폭이 넓었을까 싶다. 그나마 지금이라도 깨달았으니 다행이란 생각도 들고. 엄청난 작품보다는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뿌듯한 결과를 남겼으면 한다. 그리고 애들과 와이프에게 든든한 존재가 되고 싶다. 솔직히 예전에는 막연한 의무감이 더 컸다. 그런데 지금은 가족을 지켜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를 깊게, 그리고 자주 생각하게 됐다.

나이 들어가는 자신의 모습에 편안한 모양이다.
시간을 막을 수는 없으니까. 나이 드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까? 난 없다고 본다. 청춘이라는 단어가 괜히 생기진 않았을 거다. 그만큼 좋은 시절이다. 그런데 그 못지않게 좋은 시간을 살려면 일단 탐욕은 버려야 한다.

<나에게 불의 전차를>이 1월 말부터 서울에서 공연된다. 2013년을 연극으로 열게 된 셈이다.
그래서 좋다. 한 해의 끝과 시작이 좋은 작품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게 됐다.

곧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만날 수 있을까?
영화를 하게 될 것 같다. 막 막연한 말이지만 좋은 작품, 지금의 내게 잘 어울리는 작품을 하고 싶다. 전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욕심도 없다. 지금 갖고 있는 여러 생각에 적합한 이야기와 인물을 만났으면 한다.

차기작이 발표되면 차승원이 지금의 자신에게 가장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이야기와 작품이 어떤 건지 가늠할 수 있겠다.
아마도. 그런데 그런 걸 다 떠나 그냥 같이 일할 사람이 마음에 들어서 덜컥 결정할지도 모른다.

흰색 셔츠와 타이, 행커치프는모두 Tom Ford, 재킷과 팬츠는모두 Hermes 제품.

흰색 셔츠와 타이, 행커치프는
모두 Tom Ford, 재킷과 팬츠는
모두 Hermes 제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