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여행자는 쇼핑할 때조차 현명해야 한다. 연말이 되면 세계에서 가장 뜨거워지는 도시 홍콩을 여행할 예정이라면, 미션은 다음과 같다. 일명 코즈웨이 베이 지역의 쇼핑 삼각지대 ‘리 가든스 쇼핑 에어리어’ 부터 공략할 것.

노는 데 주어진 시간은 언제나 부족하다. 이번 홍콩 여행에 주어진 시간 역시 단 사흘. 관광 명소 투어로 빼곡히 채워 수백 장의 ‘엽서 사진’ 만을 남긴 채 ‘쇼핑의 도시 홍콩에서 아무것도 건지지를 못하다니!’라고 절망하며 돌아올 수도 없었지만, 온갖 대형 쇼핑몰을 무작정 휘젓고 다니느라 홍콩의 밤거리에 별들이 소곤대는지조차 확인 못하고 돌아오는 건 더욱 참혹할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호텔에 짐을 풀자마자 MTR 코즈웨이 베이 역 2번 출구로 직진했다. 바로 그곳에 짧은 시간에 꼭 필요한 쇼핑 미션만 콕콕 집어 완수할 수 있는 운명의 트라이앵글, ‘리 가든스 쇼핑 에어리어’가 있기 때문이다. 2번 출구로 나가자마자 보이는 17층 규모의 하이산 플레이스는 그야말로 홍콩의 대형 쇼핑몰 중에서도 ‘신상’으로, 그 트라이앵글의 꼭짓점에 위치한다. 지난 8월 문을 연 이 쇼핑몰의 1층엔 대표적인 면세점 DFS의 ‘T갤러리아’가 있는데, 50개 이상의 뷰티 브랜드 중 어느 브랜드의 물건을 집어 들든, 계산은 T갤러리아 내 어디에서도 가능할 만큼 친절하다.

프리미엄 슈퍼마켓 ‘제이슨 푸드 앤 리빙’이 차지한 지하 2층, 일본 패션 브랜드들이 점령한 4층, 란제리부터 달콤한 케이크에 이르기까지 오직 여자의 욕망을 위해 존재하는 듯한 6층 ‘에덴의 정원’ 중 한 층이라도 빼놓으면 분명 후회하겠지만, 반드시 한 곳만 골라야 한다면 8층부터 10층까지 총 1만2천5백 스퀘어피트를 충만하게 채운 청핀서점(eslite)이 좋겠다. 처음으로 해외에 진출한 대만 최대의 서점이자 문구 브랜드인 청핀서점이 책은 물론 문구, 음반, 차(茶), 비누, 미술 작품, 그리고 포럼과 공연에 이르기까지 감성을 말랑하게 해줄 수 있는 것을 전부 모아놓으려는 욕심을 부렸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그 욕심 덕분에 금요일 밤에는 새벽 2시까지 문을 열어놓는다니, 술로 지새운 그 수많은 낯선 도시의 밤을 책으로 치환해도 꽤나 짜릿한 경험일 것이다.

그렇게 하이산 플레이스에서 홍콩의 입고, 읽고, 먹고, 마실 것들을 촘촘히 총정리하고 나서야, 동남쪽 방향으로 걸어가 리 가든스 1&2로 입장했다. 전 세계 매장 중 오직 5곳만이 제공하는 맞춤형 주문 제작 서비스를 경험할 수 있는 루이 비통 매장, 홍콩에선 유일하게 메종 에르메스 퍼니처 라인을 보유하고 있으며 VIP에겐 커튼으로 구획을 나눠 혼자만의 쇼핑 공간을 만들어주는 에르메스 매장, 그리고 2층 전부를 오직 신부를 위한 섹션으로 구성한 반 클리프&아펠 매장 등, 들어가는 순간 대형몰 안에 서 있다는 사실을 잊을 만큼 우아하고 사적인 공간들이 펼쳐지는 곳이다. 특히 최근 레노베이션을 마친 샤넬 매장의 경우 총 3층의 통 유리 건물로 새롭게 태어났는데, 그 반짝이는 통유리를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철없이 가슴이 두근거렸다.

마치 최고급 브랜드 매장을 홀로 전세 낸 듯한 리 가든스 1&2에서 나가고 싶지 않다는 욕망을 단호히 이겨낸 건, 젊음이 북적대는 코즈웨이 베이 특유의 생생함을 건져 올릴 수 있는 레이튼 로드를 놓칠 수 없어서였다. 알렉산더 매퀸, 빅터&롤프, 준야 와타나베 등의 뜨거운 브랜드들이 집결한 홍콩의 대표적 편집숍인 I.T의 4층 규모 플래그십 스토어는 유니클로의 인테리어를 총괄한 디자이너 카타야마 마사미치가 디자인했는데, 그 자체로 길 한복판의 갤러리가 될 만큼 개성이 반짝인다. 특히 레이튼 로드에는 네덜란드 프리미어 진 브랜드인 지스타 로우의 세계에서 가장 큰 플래그십 스토어, 영국 브랜드 잭 윌스의 아시아 유일의 플래그십 스토어, 자동차 쇼룸과 카페를 한 공간에 모아놓은 홍콩 최초의 피아트 카페처럼 레이튼 로드를 벗어나는 순간 내 것이 아닌 것들이 소유욕을 자극하니, 간판에 불이 꺼질 때까지 붙잡고 늘어지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하이산 플레이스, 리 가든스 1&2, 그리고 레이튼 로드로 이어지는 삼각지대에서의 쇼핑은 딱 하루 만에 현명하게 종료됐다. 이제 뿌듯한 만큼의 쇼핑백을 호텔 방에 내려놓고, 홍콩의 관광 명소들을 차례로 돌며 ‘엽서 사진’을 남길 수 있는 이틀이 온전히 남았다. 물론 버뮤다 삼각지대에 빠져 사라진 사람들처럼, 리 가든스 쇼핑 에어리어의 삼각지대에 홀려 허우적대지 않아야 가능한 일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