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핑은 남자보다는 여자의 주종목이다. 그 아이템이 자동차라고 해도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더블유의 에디터들이 직접 보고 만지고 경험한 합리적인 가격대의 신차 셋에 대해 꼼꼼한 감상을 적었다.

폭스바겐 더비틀

현재 몰고 있는 차는 사브(SAAB)의 뉴 9-5 실버 컬러다. 어찌어찌하여 결국은 내 손에 키가 쥐여졌지만, 본래는 부모님께서 타실 요량으로 구입한 차. 그러니 당연히 100% 그분들의 취향대로 선택되었다. 그 후로 6년쯤, 열심히 사브를 몰았고, 슬슬 차를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번엔 온전히 내 취향에 맞추어. 꽤나 캐치한 취향을 가졌음에도 사실 ‘뉴비틀(New Beetle)’이 눈에 들어온 적은 없었다. 훌륭한 디자인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지만, 30대 직장인 여성이 타기에는 조금 부담스러웠다. 흡사 머리를 양갈래로 묶고 샤방샤방 플레어스커트 차림으로 출근하는 기분이랄까? 비틀을 다시 본 건 올해 초 파리 컬렉션 출장에서다. 인터컨티넨탈 호텔 앞에서쇼를 기다리고 있는데, 작은 포르쉐가 한 대 와서 섰다. 멀끔한 커플이 내렸고, 곧이어 도어맨이 시트를 젖혀 뒷자리의 아이가 내리는 것을 도와줬다. 그때 다시 보였다. 그 작은 포르쉐가 사실은 까맣고 늠름한 더비틀이었던 것. 근 1년을 기다린 끝에 드디어 국내에서 더 비틀을 영접할 수 있었다.

광택이 반질반질 나는 선명한 딥 블랙 색상의 더비틀은 고유의 둥글둥글한 느낌은 그대로 간직한 채, 남자가 몰아도 절대 민망하지 않도록 다이내믹하고 스포티한 매력이 눈에 띄게 가미됐다. 마치 뉴비틀을 위에서 꾸우우우욱 누른 것처럼 차체는 낮아졌고, 넓어졌다. 오리 엉덩이처럼 봉긋하게 올라간 스포일러를 보고 있으면 피식 웃음도 나온다(이런 소소한 부분까지 포르쉐를 참 많이 닮았다). ‘나 빨라요’라고 말하는 것 같은 유니크한 휠과 18인치의 타이어, 제논 헤드램프는 또 어떻고! 디자인 예쁜 거야 말해봐야 입만 아프고… 일단 타보기로 한다. 어랏? 좌석이 꽤 넓다. 뒷자석에도 어느 정도 여유가 있어 보인다. 키 175cm인 선배 말에 의하면, 1시간 정도는 별 불평 없이 앉을 수 있을 거 같다고 말했다. 시동을 걸어본다(아쉽게도 스마트키는 아니다). 실내 등이 켜지니 내부 인테리어가 눈에 들어왔다. 우왓! 디컷 핸들에 깔끔한 계기반, 카본 색상 마감재, 파노라마 루프는 더비틀이 결코 대충 만든 차가 아님을 보여준다. 여기에 대시보드 중앙에 자리한 유온계, 스톱워치, 터보 압력계 3종 세트는 보너스.

이건 뭐, 곱상한 얼굴 보고 사귀었는데 알고 보니 부잣집 아들을 만난 기분이다. 달릴 때도 엄친아적 면모를 보여줬다. 꼬마자동차답지 않은 파워와 나름 안정적인 핸들링으로 펀 드라이빙이 가능하다. 140 마력 디젤엔진에 6단 듀얼클러치 변속기의 조합이 이뤄낸 쾌거. 달리면 달릴수록 차츰 안정감이 느껴지는 모습이 잘생기고 힘도 좋은 엄친아가 확실했다. 연비는 리터당 15.4km. 도심 주행에서의 실연비는 이보다 더 떨어진다 고 해도, 나쁜 수치는 아니다. 여러 조건을 제쳐두고라도 더비틀을 사야 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세상에는 귀여운 박스카도 많고, 스마트한 해치백도 많다. 하지만 더비틀처럼 생긴 차는 어디에도 없으니까 .

포드 2013 올-뉴 이스케이프

취업과 동시에 빨간색 아우디 TT를 뽑은 대학 동기(남, 증권사, 근육질)가 이렇게 말했다. “차 고르는 취향은 이성을 고르는 취향이랑 비슷해.” 몇 년 후, 결혼식에서 그 동기의 팔짱을 끼고 있던 웨딩드레스의 주인공은 구찌의 슬릭한 스커트 수트가 완벽하게 어울릴 법한 장신의 미녀였다. 이후로 소개팅에서 잘 빠진 중형 세단(특히 유럽산)을 몰고 나오는 남자를 만나면 의례적인 애프터 신청조차 기대하지 않는다. 서글프다기보다 다행인 일이다. 시선 장악력이 대단한 빨간 스포츠카나 기사를 따로 두는 게 더 어울리는 중대형 세단은 내 남자 취향과 거리가 머니까.

‘남자의 무릎에 앉는’ 심정으로 차를 고를 때 내 기준은 탄탄하고 안전하며, 뭐든 다 받아줄 것 같은 넓은 공간, 그리고 운전할 때 잘 나간다는 느낌이다. 이 기준으로 따지면 포드의 올-뉴 이스케이프는 모든 면에서 합격점을 상회한다. 보통 SUV는 높은 차체로 인해 운전하기 편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키가 작은 나로서는 타고 내릴 때마다본의 아니게 ‘쩍벌녀’가 되고 마는 불편함이 있다. 그러나 이 차는 사이드 스텝이 낮기 때문에 세단을 타고 내릴 때 처럼 우아하게 발을 착지할 수 있다. SUV치고는 사이즈도 작은 편이며, 겉모습도 투박하지 않고 날렵하다. 평범해 보이지만 수트 안에 적당히 예쁘게 잡힌 근육을 가진 남자랄까. 사실 올-뉴 이스케이프의 매력은 겉모습보다 드라이브 자체에 있다. 집이 산 중턱에 위치한 터에 퇴근길에는 2번의 급경사를 거쳐야 하는데, 소음 하나 없이 가뿐히 넘어서는 에코부스트 엔진의 능력은 2.0L 모델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다.

힘만 좋은 게 아니다. 실내에 장착된 갖가지 편의 장치는 시승하는 동안 다 체험하지 못할 만큼 많았다. 온갖 기능의 버튼이 부착되어 거의 게임기 컨트롤러 수준인 핸들, 4분할 화면으로 내비게이션과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을 동시 구동할 수 있는 터치스크린, 똑똑한 음성 명령 기능 등을 시험해보고 있자면, 슈퍼카도 아닌 실용적인 SUV 모델에 이런 기능을 탑재시킨 포드의 의도가 궁금할 정도다. 단점이라면… 영어만 알아듣는다는 것 정도? 역시, 미제다.

너무 똑똑한 나머지 한국 여성 운전자 정서에서는 자주 사용할 것 같지 않은 기능도 있다. 자동으로 주차를 하는 액티브 파크 어시스트 버튼은 빽빽한 주차장에서 시승 차량으로 남의 차 긁을까 봐 차마 누르지 못했고, 너무 빠르게 코너를 돌면 알아서 속도를 낮춰준다는 커브 컨트롤 기능은 막히는 도로만 다니는 도시의 독신녀가 미처 느낄 겨를이 없었다. 기능 면에서 이 차의 하이라이트는 뒷면 범퍼 아래를 발로 차면 트렁크의 문이 열린다는 것. 양손 가득 들린 촬영용 짐을 싣기 위해 가볍게 ‘킥’ 하는 순간, 깨달아버렸다. 짐 들어주고, 차 문 열어주는 남자 없이도 잘살 수 있다는 것을. 남자 고르듯이 차를 고를 게 아니라, 남자를 대신할 이렇게 명민하고 실용적인 차를 고르면 되니까.

BMW 뉴 1시리즈 해치백

007<스카이폴>에서 제임스 본드가 짐승의 눈빛으로 ‘확 도는’ 걸 보았다. 자신의 애스턴 마틴이 폭발하는 순간이었다. 각별히 여기는 만큼 남자들은 자동차에 많은 걸 기대하는 것 같다. 여자에게라고 차가 각별하지 않을 이유는 없지만 내 경우 기대하는 내용은 단순하다. ‘작고 힘있고 예쁠 것’. 운전하거나 주차하기 편하게 날렵한 사이즈가 좋고, 몰고 다닐 때 운전하는 재미가 있는 차가 좋다. 거기에 솔직한 욕심을 더하자면, 남들 눈에 좋은 방식으로 띄고 싶다는 정도? 이런 기준을 가진 운전자에게 BMW 1시리즈가 새로 출시된다는 소식은 3위일체 여부를 어서 확인하고 싶은 욕망을 부추겼다.

이 차에 관해 가장 취향이 엇갈릴 요소는 세 번째, ‘예쁜가’ 일 것 같다. 비슷한 카테고리에서 경쟁 상대가 될 것 같은 골프의 경우, 세대를 거듭해도 변하지 않는 무난한 디자인이 뿔테 안경 쓴 모범생 같다면, BMW 1시리즈 해치백은 개성이 도드라지고 멋도 부린 나쁜 남자 스타일이랄까. 해치백이라는 특성도 있거니와 후륜구동차답게 엔진을 최대한 뒤로 배치한 프로포션 탓에 앞이 충분히 길게 뻗고 뒤는 짧게 느껴지는 비율 배분은 기기기기승승승전결 정도 호흡으로 느껴졌다. 당당한 페이스 디자인 때문인지 보기에는 제법 크게 느껴졌지만, 작은 편인 체구로도 파묻혀 조작하기 버겁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실내 공간이 넓은 편은 아니라 뒷자리에 앉는 사람들은 하는 말이 다를지 모른다. 가족 모두를 위한 전천후 패밀리카라기보다 드라이버를 위한, 드라이버에 의한 차라는 편이 맞을 것이다. 하지만 (에디터가 모는 미니처럼) 이기적이라며 가족의 비난을 받을 선택도 아니다. 적어도 문은 4개 달렸고, 리터당 약 18.5km라는 매력적인 연비의 디젤엔진이니까. 게다가 체구는 작아도 BMW, 즉 달리기 위해 만들어진 차다. 페달을 밟으며 쭉 뻗어나가는 맛은 부드럽지만 절대 물컹대지 않는다.

팽팽하게 바람이 가득 찬 농구공처럼 단단하고 묵직하게, 하지만 도로를 안정감 있게 꽉 붙잡고 달려나가는 이 차는 스포츠 모드 버튼을 켰을 때 진짜 매력을 발산한다. 농구공이 열기구가 되어 아예 날아오르는 느낌이랄까. 동급의 국산 차만 몰아보던 친구는 스포츠 모드로 160km 속도를 찍으며 말했다. “알아서는 안 될 세계를 알아버렸어. ”

주차가 자동으로 되고, 크루즈 기능이 있고, 쇼핑백을 둘 공간이 넓고… 이렇게 편리한 차를 원하는 여성 운전자도 많다. 그들에게는BMW 1시리즈 해치백이 맞지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달리는 맛을 ‘알아버린’ 여자, 그러면서도 실용성을 생각하는 여자에게는 썩 매력적인 차일 것이다.

단도직입적으로 골프와 비교하면? 누구도 나무라지 않을 모범생이냐, 매력과 장점이 뚜렷해서 나머지 단점까지 잊어버리게 만드는 남자냐…. 내 경우 대체로 전자는 따져 보고 계산하지만, 후자는 그냥 끌려가고 반하는 거였다. BWM 1시리즈는 수컷의 냄새가 나는 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