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백화점, 편집매장, 패션 브랜드의 플래그십 스토어가 우리 동네 작은 맛집에 러브콜을 보내기 시작했다. 그들의 낯선 동거는 영원히 지속될 수 있을까.

‘고메이 494’로 새롭게 단장한 갤러리아 명품관의 식품관은 마치 우리 동네 맛집 전시회를 방불케 한다. 이태원의 ‘부자 피자’와 ‘바토스’, ‘니시키’를 거쳐, 홍대 앞의 ‘펠앤콜’과 서래마을의 ‘브루클린 더 버거 조인트’까지, 서울 구석구석을 뒤져 맛집을 섭외한 고생이 한눈에 읽힐 정도의 라인업이다. 이 지역 식품관 전쟁에서 전통의 강호로 불리는 현대백화점 압구정점의 식품관, 청담동의 신흥 세력으로 떠오른 신세계백화점의 SSG 푸드마켓에 맞설 강력한 최종 병기가 필요했던 갤러리아의 심정이 읽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주목할 만한 건 갤러리아가 ‘삼고초려’해서 모셔왔다는 입점 브랜드들의 면면이다. 물론 “유치할 브랜드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바토스’ 음식을 맛보고 싶었는데, 줄이 너무 길어서 결국 들어가지 못하고 사다 먹었다”는 갤러리아 박세훈 대표이사의 말은 괜한 엄살이 아니다. 하지만 여전히 ‘강남 사모님들의 놀이터’라는 인식이 남아 있는 유명 백화점의 식품관에서 만나기에는, 동네에서 잘나가는 식당이나 카페는 아직 ‘작고 소박한 우리 동네 맛집’에 가까운 것이 사실이다. 비단 ‘고메이 494’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얼마 전 현대백화점 압구정점엔 필운동 토스트집 ‘키오스크’와 청담동 뒷골목의 동네 빵집 ‘메종 드 조에’, 세로수길의 케이크 카페 ‘듀자미’ 등 작은 가게들이 2호점을 차렸다. LG 패션이 가로수길에 오픈한 편집매장 ‘어라운드 더 코너’엔 상수동의 작은 빵집 ‘퍼블리크’가 자리를 잡았고, ‘부자 피자’는 한남동에 문을 연 제일모직의 르베이지 플래그십 스토어에서도 만날 수 있다. 대기업 브랜드이거나 대형 프랜차이즈 브랜드가 아닌 그야말로 소규모 자영업자들의 식음 브랜드가 백화점과 패션숍의 열렬한 구애 대상으로 떠오른 것이다.

그렇다면 왜 그들은 작은 동네 맛집을 찾아 헤매게 된 걸까? ‘어라운드 더 코너’의 송지명 마케터는 ‘처음부터 프랜차이즈 브랜드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우리가 선택한 모든 브랜드가 비록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독창성과 진정성 있는 브랜드이길 원했습니다. 개별 브랜드의 특성은 드러나지 않은 채 매장만 보이기보다는, 브랜드 저마다의 확실한 개성이 서로 잘 어우러질 수 있는 매장을 바랐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어라운드 더 코너’에서 ‘퍼블리크’는 쇼핑을 하다 출출하면 잠시 들러 먹고 마실 수 있는 휴게소가 아니라, 편집매장의 성격을 구성하는 하나의 브랜드라는 설명이다. 먹고 마시는 것이 패션 그 이상으로 라이프스타일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로 떠오른 만큼, 라이프스타일을 다루는 편집매장의 필연적인 선택인 셈이다.

다만 규모보다는 자신의 색깔을 유지하는 것을 중요시하는 우리 동네 맛집들의 결정은 다소 의외인 측면이 있다. 다양한 천연 재료를 이용해 소량의 아이스크림을 수제로 만드는 ‘펠앤콜’의 최호준 대표 역시 고민이 컸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들의 정체성을 따라 하는 숍이 하나둘 늘어나는 것이, 백화점과의 동거를 결정하는 데 큰 영향을 끼쳤다고 밝혔다. 백화점이라는 큰 시장에서 다수의 대중과 만나는 것은 ‘이 아이스크림은 우리 것’이라는 상표 등록과 같은 의미를 가지기 때문이다. ‘나만 아는 동네 작은 아이스크림 집으로 남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소비자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계속해서 작게만 머물 수 없는 브랜드 입장에서야 큰 시장을 만나고 대중의 반응을 살피는 교두보로서 백화점만큼 안전한 선택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부작용 역시 없을 수 없다. 비슷한 이유로 타 백화점 식품관에 입점한 또 하나의 작은 가게 대표는 잘한 선택인지 여전히 확신이 없다고 털어놓았다. 막상 입점해보니 음식을 만드는 주방이나 식재료를 보관하는 창고 등의 환경이 열악했기 때문이다. 백화점 식품관 고객들의 취향에 맞는 신메뉴를 만들어달라는 요구로 인해, 브랜드의 원래 색깔이 훼손되는 건 아닌지 고민도 컸다. 그런 측면에서 베이커리 외에 마실 거리를 가지고 있지 않던 ‘퍼블리크’가 ‘어라운드 더 코너’와의 수많은 회의를 통해 연남동의 커피 로스팅 브랜드인 ‘커피 리브레’, 맥주를 집적 만드는 이태원의 바 ‘맥파이 브루 숍’과의 컬래버레이션을 통해 ‘퍼블리크 프렌즈’라는 새로운 형태를 만들어낸 것은 조금 더 창조적인 형태의 결합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이 모든 것은 어떤 옷을 입고, 어떤 가방을 들고, 어떤 신발을 신는지에서 더 나아가 무엇을 먹고 마시는지가 그 사람을 규정하는 시대상을 반영한다. 중요한 건 이제 얼마나 비싼 음식을 먹는지가 아니라, 어떤 취향의 음식을 먹는지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는 시대로 들어섰다는 것이다. 소비자에게 더 좋은 취향을 소개해 더 큰 사랑을 받아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백화점과 편집매장이 단순히 최고급 식당이 아니라, 자기만의 정체성과 독창성을 지닌 맛집을 찾아 헤매는 것이 그 증거다. 하지만 좋은 맛집을 골라 동거를 제안하는 것 이상으로, 각각의 입점 브랜드가 고유의 색깔을 잃지 않도록 함께 고민하는 자세 또한 필요하다. 굳이 그들이 이야기하는 ‘상생’이란 거창한 단어를 떠올리지 않아도, 입점되어 있는 동네 맛집이 그렇고 그런, 뻔한, 별 다를 것 없는 푸드코트로 전락하는 순간, 해당 백화점이나 편집매장 역시 그렇고 그런, 뻔한, 별다를 것 없는 곳이라는 사실이 드러나게 될 테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