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렉트 숍 블리커가 한남동 꼼데가르송 길에 새 매장을 연다. 새 매장인데, 오래된 건축 자재를 재활용해서 낡은 듯 지었다. 그걸로도 모자라 매장 안에 사용하는 진열용 가구는 리사이클링 콘셉트로 디자이너들에게 의뢰했고, 이처럼 유쾌한 결과물이 탄생했다. 가구들이 부릅니다, ‘환생’.

최근식 + 최정유

‘재활용’이라고 했을 때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정직하고도 거대한 스케일이 이 팀에게서 벌어졌다. 디자이너 최근식과 최정유는, 버려진 침대 매트리스의 구조를 살리고 조명을 연결해 옷걸이와 선반을 만들었다. 피팅 룸으로는 주택에서 아파트로 주거환경이 바뀌면서 버려지는 물탱크의 견고한 스케일을 이용했다.플라스틱 물통의 표면에 자수로 무늬를 입히고, 볼트 위에 실을 감아 니트를 짜듯 패턴을 만들면서 패브릭이라는 소재가 플라스틱에 온기를 불어넣었다.

그리고 피팅룸의 문에 드리우는 커튼에는, 디자이너의 노트에서 옮긴 텍스트를 수놓았다. 서로의 시선에 드러난 의류 매장 안에서 유일하게 개인적인 공간인 피팅룸은, 이렇게 내밀하고 사적인 뉘앙스를 획득했다. 혼자서 옷을 고르고 갈아입는 시간 동안, 이 커튼에서 마주친 몇 개의 단어들이 문득 어떤 울림과 깨달음을 줄지도 모르는 일이다. 피팅룸 안에서 흘려나오는 음악까지, 음대 연습실 복도에서 흘러나오는 조각 소리들을 수집해서 재활용했다.

조은환 + 신태호 (Maezm)

한국에서 빈티지 가구가 제대로 활용되지 않는 까닭은 시대에 따른 미감의 변화 외에도 좌식 생활에서 서구형의 입식 생활로 라이프스타일이 바뀐 데 원인이 있을 것이다. 디자이너 조은환과 신태호의 맺음에서는 이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쓰임새가 사라지고 도태되어버린 한국 고가구에게 생명력을 부여하기로 했다. 지방의 고가구상을 뒤져 오래된 전통 가구를 찾아내고, 좌식 생활에 맞춰진 구조인 이 앉은뱅이 가구들에게 못 쓰는 의자나 식탁에서 떼어낸 다리를 달아준 것.

다소 이질적인 모습의 이 가구들은 마치 다리가 여러 개 자라난 에일리언처럼 보인다. “리사이클이라고 해서 친환경 콘셉트로 접근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우리의 생활 가구가 마치 변이하듯 서구적 문화와 결합해서, 기존에 없던 새로운 종(種)이 탄생한다고 할까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서 진화한 생물종처럼 새로 돋아난 다리를 달고 우뚝 선 자개장과 수납함, 경대들은 블리커 매장에서 쇼케이스로 다시 생명력을 되찾았다.

김동규 + 김성조 (Fabrikr)

맺음의 고가구 리사이클링이 마치 에일리언 같은 변종 생명체를 연상시킨다면, 패브리커의 작업물은 로봇 애니메이션을 떠올리게 하는 구석이 있다. 조명 스탠드, 옷걸이, 식탁 다리 등은 마치 SF 애니메이션에서 망가진 로봇의 팔다리가 교체되거나 연결되듯, 투명한 에폭시 관절로 연결해 재사용한 것이다. 테이블 역시 닳아 무뎌진 모서리는 새로운 조각으로 대체하고 이어져 새로운 전체를 이루게 된다. 오래되고 낡은 조각, 서로 다른 곳에서 사용되던 오브제들을 치유하고 결합하는 에폭시 블럭을, 두 디자이너는 ‘가둠’이라 명명한다.

서로 다른 색과 형태의 블럭들이 가둠에 담기면서 부드럽고 은은하게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이번 블리커 프로젝트에서는 에폭시 소재로 작업을 시도했지만, 패브리커는 이름에서 연상되듯 원래 패브릭, 즉 천 소재를 다양한 방식으로 가공한 가구를 만드는 디자인 팀이다. 천을 다루는 데 익숙한 디자이너들이라서일까, 망가지고 버려진 부속을 조합하고 재사용한 이 가구들은 마치 천 대신에 단단한 나무와 금속을 가지고 완성한 패치워크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