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잖아 보이지만 놀 땐 노는 사나이, 근육보다 사상이 울퉁불퉁한 그런 사나이들은 요즘 강남이 아니라 강북에서 논다. 뭘 좀 아는 오빠들을 따라 갈 데까지 가보는 강북의 숨은 명소 39곳.

김영혁 공연기획자
상수동 ‘미래광산’
SBS 라디오 프로듀서와 CBS의 ‘FM팝스’를 진행한 디제이 두 사람이 주축이 되어 운영하는 카페. 생긴 지 얼마 안 되기도 했지만, 골목 안에 있어서 맘먹고 찾아가지 않으면 쉽게 마주치기 어려운 곳이다. 하지만 작은 전시회나 이벤트가 열리는 아기자기한 공간인데다, 아직은 한적해서 여유롭게 책을 읽거나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주인장들의 전공을 살려 블로그에서 팟캐스트 방송을 하기도 한다.

동교동 ‘재팬 레코드’
회현동 지하상가에도 많은 LP 매장이 있지만 대부분 일찍 문을 닫는다. 그래서 저녁 10시 정도까지 문을 여는 LP 매장이 있는 홍대 쪽으로 가게 되는데, 재팬 레코드는 특이하게 일본에서 수입한 중고 LP를 취급하는 매장이다. 상태가 좋은 레코드들이 자주 입고되고, 일본을 벗어나면 구하기 어려운 특유의 엘피들을 만날 수 있다. 단, LP 상태에 대한 표기가 별도로 없어서 턴테이블에서 한 번 재생해보면서 음악도 듣고, 레코드 상태도 확인하는 과정을 거치면 좋다.

김종관 영화감독
누하동 ‘일일’
누하동의 조용한 벚꽃길 2층에 위치한 술집. 맥주와 다양한 위스키, 그리고 위스키를 베이스로 한 칵테일이 주요 메뉴다. 심야에 아늑한 바에 앉아서 비 내리는 조용한 골목을 내려다보며 위스키 하이볼을 마시는 맛이 좋다. 두셋 정도의 점잖은 친구끼리 어울리기 좋은 장소.

충무로 ‘더 올드’
연탄에 굽는 닭꼬치 냄새와 치킨집이 즐비한 충무로 골목 사이에 극동호프와 붙어 있는 바. 흔하고 그럭저럭한 종류의 술과, 바를 가득 채운 오랜 구색의 LP 음악이 있다. 근처에서 닭꼬치에 소주를 마시고 거나하게 취한 다음, 음악에 묻히러 가기 좋은 곳이다.

을지로 ‘만텐보시’
소공동의 카페에서 친구와 만나 번잡스러운 명동을 피해 을지로로 흘러나온다. 해 질 무렵 페럼타워 지하의 경양식집 만텐보시를 찾으면, ‘미드나잇 인 경성’을 만나는 기분이다. 30대의 데이트에 어울리는 장소다. 특히 이곳의 매력이 배가되는 시기는 연말연시.

김용현 <슈어> 피처 에디터
이태원 ‘화합’
기지개 한 번 시원하게 펼 수 있는 여유 공간이 있는 것도, 미슐랭 스타가 아까울 정도로 특출한 안주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화합을 찾는 이유는 있다. 열 개도 채 안 되는 테이블이 좁은 공간 안에 모인 덕에, 소주 한 잔만 있으면 혼자 가도 10명이 함께 온 듯 새로운 친구를 부담 없이 사귈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태원 ‘미스틱’
요즘 이태원에서 가장 뜨는 골목을 고르라면 단연 해밀톤호텔 뒷길이다. 수많은 라운지가 우후죽순 간판을 내걸고 있지만, 아직 어느 곳도 미스틱의 아성을 무너뜨리지 못했다. 비결은 음악이다. 펑크나 솔 음악을 바탕으로 한 묵직한 비트가 자연스레 어깨를 흔들게 한다. 물론 물도 좋다.

이태원 ‘오구작작’
누가 지날까 싶은 용산구청 옆 좁은 골목에 막걸리 집이 문을 열었다. 대충 주워 맞춘 것 같은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모둠전과 차돌박이로 만든 얼큰들깨탕을 안주 삼아 팔도의 유명 막걸리를 차례로 꺼내 마시다 보면 춤이 절로 나온다.

부창조 ‘스티키몬스터랩’ 디자이너
문래동 ‘로라이즈’
문래동의 철공소 밀집 지역에 자리 잡은 로라이즈는 생긴 지 1년이 조금 넘은 작은 규모의 공연장이다. 오랫동안 공장으로 사용하던 공간을 그대로 살려낸 공연장의 모습처럼, 거칠고 날 선 음악을 접할 수 있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달콤한 음악이 지겨워질 때 찾아가면귀가 개운해진다.

한남동 ‘길종상가’
일명 ‘박가공’ 박길종이 운영하는 길종상가는 일반적인 가구 숍과 달리 소비자와 디자이너가 밀접하게 교류하며 가구를 제작한다. 길종상가에서 올해 출간한 책 <길종상가 2011>의 목차가 가구를 구입한 업체나 개인의 이름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동안 개인 작업실만 꾸려왔지만 얼마 전 한남동에 오프라인 숍을 열었는데, 비단 가구뿐만 아니라 박가공이 손수 제작한 온갖 물건을 모아놓은 만물상 같아 구석구석 찾아보는 재미가 있다.

동교동 ‘메타복스’
되도록 음악은 MP3보다 CD나 LP로 듣는 걸 선호해서 한 달에 한두 번씩은 음반 매장에 들러 새로 나온 음반이나 중고 음반을 뒤적이는 게 취미다. ‘향뮤직’이나 ‘퍼플 레코드’, 회현동 지하상가 모두 매력적이지만 넓은 매장에서 여유롭게 음반을 구경하기에는 동교동 메타복스가 적절하다. 굳게 닫힌 철문이 부담스러울 수도 있지만, 용기를 내 들어가보면 아름다운 음반들이 얼어붙은 당신의 마음을 활짝 열어줄 것이다.

이해영 영화감독
누하동 ‘pubb’
건축을 전공한 주인이 한옥을 미니멀하게 개조한 조그만 펍이다. 테이블은 6개 정도나 될까, 작은 창문은 열 수도 없다. 두 종류의 생맥주도, 감자 튀김도, 매일 나오는 건 아니지만 얼려서 작은 컵애 내주는 포도와 베리류도 다 맛있다. 작은 마당엔 나무가 서 있는데, 비 오는 날 마루에 서서 담배를 피우면 얼마나 운치 있는지 모른다.

누하동 ‘완장’
점심엔 식당이다가 저녁에는 실내 포장마차처럼 바뀌는 작은 식당. 점심엔 닭육수를 베이스로 토마토를 크게 썰어 넣어 국물을 내고 칼국수면으로 완성한 토마토 국수를 먹을 것. 파스타와 칼국수의 중간 즈음 되는 맛인데, 기가 막히게 맛있다. 저녁이라면 두부에 삶은 채소를 곁들여 소스를 뿌려 먹는 두부숙회를 추천. 중국 혁명 시대의 소품이 많아 분위기 또한 묘해서, 친구들이 서촌에 놀러 오면 꼭 데려가는 곳이다.

DJ CONAN ‘유니온 라운지’ 대표
명동 ‘일번지 곱창 대창’
난 곱창이라면 아주 환장하는 놈이다. 여러 곱창 맛집을 찾아다녀봤지만, 한방 소스를 발라 구운 ‘일번지 곱창 대창’의 곱창 맛은 정말이지 특별하다. 게다가 인테리어가 깔끔하고 위생적이며, 꽤나 훤칠하고 친절한 직원들 또한 기억에 남는다.

경리단길 ‘서울 살롱’
B 잡지의 에디터 ‘에’모 씨와 수려한 외모를 자랑하는 꽃미남 ‘X정현’이 운영하는 유니크한 바. 재미있는 사람들이 집단 거주하고 있는 경리단길에 위치한 만큼 늘 재미있는 분위기다. 재료가 남아있을 때만 먹을 수 있는 등심짜파게티의 매력이란.

이강훈 일러스트레이터
상수동 ‘BAR 상수리’
홍대 앞 노땅들의 아지트 ‘bar다’를 운영했던 사장님이 작년에 새로 문을 연 가게다. 몇 해 전 ‘bar다’의 사장이 바뀐 이후로는 점점 단골 연령층이 낮아져 원년 멤버들은 자리를 잃어갔다. 그러던 차에 상수리가 문을 열어 환영받았다. 강남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진짜 ‘바’를 경험하고 싶다면 당연히 상수리다. 레몬 하나를 통째로 쓰는 소주 칵테일을 추천한다.

합정동 ‘두부공’
자전거 점포야 무수히 많지만 두부공은 남다르다. 자전거 공방이라는 이름답게 자기만의 맞춤 자전거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기성 제품의 구입이나 수리도 가능하다. 미국의 자전거 장인에게 직접 기술을 전수하고 돌아온 젊은 주인장은 솜씨뿐 아니라 사람도 좋아 동네 주민들 사이에서도 평판이 좋다. 이곳이 왜 강북다운 장소인지는 직접 방문해보면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