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으로 여성복 컬렉션에서 디자이너가 말하고 싶은 모든 것이 함축된 첫 룩은 대부분 스커트의 몫이었다.
그런데 이번 시즌만큼은 팬츠와 스커트가 반반씩 포진하고 있다. 팬츠파, 아니면 스커트파. 당신은 어느 무리에 동참할 것인가?

FORMAL TROUSERS

‘프라다 쇼를 보기 전에는 함부로 트렌드를 거론하지 말라’는 암묵적인 동의가 있을 정도로 트렌드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미우치아 프라다. 가늘고 긴 재킷에 발목에서 커팅된 검은색 모직 팬츠가 프라다 쇼의 첫 룩으로 등장한 순간, 모두가 깨달았다. 이번 시즌의 핵심 아이템은 바로 팬츠라는 것을.

일반적으로 가을/겨울 시즌의 주요 아이템은 아우터로 귀결되지만 이번 시즌만큼은 팬츠가 아우터만큼이나 스타일링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승마 룩, 귀족적인 고딕 룩, 밀리터리 룩, 오버사이즈 룩 등 이번 시즌 주요 트렌드를 부각시키기 위한 스타일에는 모두 팬츠가 사용되었다. 앞서 말한 프라다를 비롯해 미우미우, 이브 생 로랑, 다이앤 폰 퍼스텐버그, 아크네 등에서는 길고 짧은 재킷과 함께 연출한 팬츠 수트 룩이 부각된 것이 공통점이다. 복사뼈 즈음에서 잘리는 길이는 70년대의 느낌을 주고, 그보다 좀 더 긴 길이는 90년대의 파워수트 룩을 연상시킨다.

한편, 배기팬츠의 시대가 지면서 새롭게 부상한 차세대 주자는 바로 구두를 다 덮을 정도로 통이 넓은 와이드 팬츠다. 클로에, 스텔라 매카트니, 프로엔자 스쿨러, 셀린, 에르메스 등 주요 브랜드들이 앞다투어 큼직한 팬츠를 내놓았는데, 이들의 포인트는 큼직한 형태의 상의를 매치하여 풍성한 실루엣을 완성했다는 것. 또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스키니 팬츠만큼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엠브로이더리 장식을 넣어 럭셔리한 섹시함을 부가한 발맹, 쿨 걸들의 스타일 교과서인 이자벨 마랑 등이 스키니 팬츠를 고수한 대표적인 브랜드들이다.

SMART SKIRTS

이번 시즌 상대적으로 팬츠가 부각되긴 했지만 여전히 스커트는 도시를 불문하고 고른 분포를 보이고 있는데, 눈에 띄는 현상은 원피스 드레스가 줄어들면서 스커트가 상의와 슈즈를 연결하는 ‘스타일링의 고리’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크게 보면 작년부터 이어진 미디 스커트 열풍이 이번 시즌에도 이어지는 분위기다.

간결한 테일러드 재킷에 실크와 울 등 다양한 소재로 정숙한 미디 스커트를 연출한 질 샌더를 비롯해, 도톰한 모직 소재에 앞부분에만 주름을 잡은 A라인 스커트를 선보인 마르니, 레이스와 메탈릭한 소재의 스커트를 캐주얼한 상의와 스타일링한 멀버리, 팬시한 페플럼 톱에 정석과도 같은 검은색 펜슬 스커트를 매치한 랑방, 언더웨어가 비칠 정도로 얇은 오간자 스커트를 내놓은 NO.21, 뉴 룩을 연상시키는 근사한 플레어 스커트로 성숙함을 강조한 디올 등에서 무릎에서 종아리에 이르는 성숙한 느낌의 스커트를 주요 아이템으로 활용했다. 실루엣은 하이더 애커만처럼 극도로 가늘고 긴 것에서 드라마틱하게 풍성한 알렉산더 매퀸의 플레어 스커트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는데, 그중 활용도가 가장 높을 것으로 기대되는 두 가지 스커트를 소개한다. 먼저 A라인 볼륨 스커트는 상의와의 조합에 따라 발렌시아가처럼 스트리트 느낌으로도, 가죽 소재로 형태감을 잡은 캘빈 클라인이나 로에베처럼 정숙하게도 표현될 수 있다. 그리고 겐조, 사카이, 지암바티스타 발리처럼 주름과 주름 사이에 다른 소재를 덧댄 플리츠 스커트 역시 봄이 되어도 입을 수 있는 훌륭한 멀티 플레이어가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