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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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이거나, 성적이 오르거나, 아무튼 좋은 날이면 경양식집에 갔었다. 팔판동 작은 골목에 위치한 경양식당 ‘그릴 데미그라스’에 갔던 날은 이유도 없이 좋았다.

데미그라스 소스를 곁들인 함박스테이크와 새우프라이

데미그라스 소스를 곁들인 함박스테이크와 새우프라이

그릇의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숟가락질을 해서 수프를 후루룩 먹고, 일명 ‘모닝빵’ 안에 마요네즈에 버무린 사라다를 넣어 먹었다. 그러다 도톰한 함박스테이크가 나왔을 땐 왼손엔 포크, 오른손엔 나이프를 들고 먹기 좋은 크기로 조각조각 썰고 나서야 먹었다. 그 사이사이 자꾸 싱글거렸다. 음식에 뭐 특별한 재료를 넣었나? 하지만 보들보들한 함박스테이크는 ‘비법 같은 건 없이’, 그저 6:4 비율의 소고기와 돼지고기, 소금, 후추, 넛맥가루, 빵가루, 달걀, 볶은 양파로 만들었다고 했다. 샐러드라고 부르기엔 왠지 아쉬운 사라다와 통통한 새우프라이 역시 눈에 보이고 혀에 감기는 재료가 전부다. 요즈음엔 그 이름마저 아득한 비후까스에 뿌리는 진한 우스타 소스는 요리사가 아니더라도 마음만 먹으면 구할 수 있는 제품이라 들었다. 그렇다면 구운 닭뼈, 셀러리, 양파, 당근, 밀가루, 버터, 와인 그 모든 재료를 다 넣고 오래오래 끓이는 데미그라스 소스를 만들고, 매일매일 손에 힘을 꼭꼭 주어 함박스테이크 패티를 빚는 정성 때문일까? 정답은 알수 없지만 셰프의 바람처럼 ‘맛있게, 배불리 먹고 행복했으니’ 되었다. 삼청동 ‘진선 북카페’와 검문소 사이 오른쪽 골목으로 들어가, ‘어반 플라워’ 마당 안쪽.

에디터
피처 에디터 / 김슬기
포토그래퍼
김범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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