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알고 먹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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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나열하는 10개의 레스토랑 가운데 기업 소유의 외식 브랜드를 모두 고른다면? 1. 빕스 2. 부첼라 3. 블랙 스미스 4. 퀸즈파크 5. 잇푸도 6. 보나세라 7. 토니로마스 8. 마켓오 9. 터치 앤 스파이스 10. 사보텐. 고민할 필요는 없다. 정답은 ‘전부’ 또는 ‘모두’이기 때문이다.

일명 ‘대기업 빵집’이 골목 상권을 침해한다는 비판이 일어나면서, 제과 사업을 철수하겠다는 대기업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그런데 ‘아티제’, ‘블리스’, ‘오젠’ 등 사라지는 베이커리이자 카페 를 바라보면서, 옳고 그름을 떠나 이 생각부터 들지 모른다. ‘거기가 대기업 거였어?’ 아티제는 호텔신라의 자회사인 ‘보나비’가, 블리스는 롯데그룹 신격호 회장의 외손녀가, 그리고 오젠은 현대차그룹 계열사 ‘해비치호텔리조트’가 운영하는 구조이니 복잡할 만도 하다.

최근의 대기업 혹은 기업의 공격적인 외식 사업 진출은 굳이 통계자료가 필요하지 않을 만큼 우리의 눈이 증명하고 있다. 특히 CJ 푸드빌은 기존의 ‘빕스’, ‘투썸 플레이스’, ‘차이나 팩토리’ 외에도 최근 1~2년 사이 ‘비비고’, ‘로코 커리’, ‘제일제면소’ 등의 새로운 외식 브랜드를 선보였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지난 7월엔 17개 외식 브랜드를 한데 모은 플래그십 스토어 개념의 ‘CJ 푸드월드’까지 오픈했다. 작년에 애경그룹이 론칭한 일본의 라멘 브랜드 ‘잇푸도’는 론칭 첫 해에 2호점을 오픈할 만큼 반응이 좋았다. 식품 사업을 벌이고 있는 기업에 있어자체 외식 브랜드 론칭은 제품의 유통망을 확장할 뿐만 아니라 소비자에게 브랜드를 각인시킬 수 있는 가장 직접적인 수단이 된다. 식품과 연관이 적은 기업에게도 외식 사업은 진입 장벽이 비교적 낮고, 성공할 경우 기업에 현금을 안겨주는 사업으로 꼽히는 매력적인 분야다. 굳이 돈 때문이 아니더라도 식문화에 관심이 높아진 소비자에게 브랜드를 홍보하기 위한 더없이 효율적인 장치가 되어주기도 한다.

하지만 기업을 주인으로 두고 있는 빵집을 떠올렸을 때 ‘뚜레쥬르’나 ‘파리바게트’ 정도만 생각나는 것처럼, 기업의 외식 사업 진출이 점점 활발해지고 있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처음의 질문에 등장하는 10개 식당 모두를 기업이 소유하고 있다는 건 놀라울지도 모르겠다. 일반적으로 소비자들은 매장의 개수가 많은 레스토랑을 기업의 소유로 생각하는 경향이 짙기 때문이다. 지난해 3월 1호점 오픈 이후 8월엔 2호점 그리고 올 1월 3호점까지 성공적으로 론칭한 ‘붓처스컷’을 운영하는 SG 다인힐의 성상희 마케팅팀장은 지난 3호점 오픈을 앞두고 지나가던 고객들의 대화를 들었다. “여기도 대기업에서 하는 거야. 이 식당 다른 데에도 있어.” 삼원가든에서 출발한 외식 전문 기업인 SG 다인힐을 대기업이라고 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소비자가 ‘붓처스컷’을 기업이 운영하는 레스토랑이라 판단한 것은 ‘이 매장을 다른 곳에서도 봤기 때문’인 것이다.

그런데 현재 기업의 외식 사업 행태를 한 시대를 풍미한 ‘T.G.I.F’, ‘아웃백’, ‘베니건스’ 삼총사 시절과 똑같이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매일유업은 지난 2년간 ‘골든버거 리퍼블릭’, ‘타츠미 즈시’, ‘하카타 타츠미’ 등을 론칭했다. 대상그룹 역시 지난해에만 ‘터치 앤 스파이스’와 ‘라 카테고리’를 오픈했다. 하지만 모든 브랜드의 매장은 각각 하나뿐이다. 지나치게 매장을 확보해 희소성을 떨어뜨리는 것을 막는 동시에, 기업보다 레스토랑 브랜드 자체를 내세우는 똘똘한 전략일 수 있다(물론 이탤리언 레스토랑 ‘블랙스미스’를 론칭하면서 2012년 내 매장을 100개로 늘릴 것이라고 말한 카페베네처럼 다른 전략을 선택한 기업도 있다). 특별히 관심을 가지고 알아본 것이 아니라면, 기업이 운영하는 식당 식탁에 앉아 외식 사업에까지 손을 뻗치는 기업을 욕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물론 대기업의 무리한 사업 확장에 지친 우리 사회에서, 기업형 레스토랑의 급격한 증가는 외식 업계에 또 하나의 괴물이 탄생한 것이 아닌가 의심하게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기업의 외식 사업 진출을 무조건 비판적으로만 바라볼 수는 없다. 우리나라의 식문화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데 쏟은 그들의 공을 부정할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성상희 팀장은 대기업들이 해외의 좋은 레스토랑을 수입, 소개한 것이 국내 외식 시장을 풍부하게 만들었다고 말한다. “해외 레스토랑을 국내에 선보이려면 로열티 등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하기 때문에 대기업이 아니라면 어려운 측면이 있어요. 대기업은 단지 브랜드를 론칭해서 국내에 소개하는 것뿐만 아니라 자신이 가지고 있는 유통 사업 등에서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하겠죠. 최근엔 본점과 해외 지점의 퀄리티 차이가 많이 줄어들었고, 여기에 지역 특유의 식재료와 문화까지 녹아들어가 외식 시장을 재미있게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한식 퓨전 비스트로 ‘이스트 빌리지’의 오너 셰프인 권우중 셰프 또한 음식을 제외하면 경영, 인테리어, 서비스 수준 등에 있어 기업이 분명 식문화의 퀄리티를 높여주고 있는 것은 부정하지 않았다.

사실 국내에 처음 기업형 프랜차이즈 식당들이 소개되었을 때를 돌이켜보면, 문화적인 충격에 가까웠다. 알록달록한 유니폼을 맞춰 입은 직원들이 손을 흔들며 인사해주었고, 주문을 받을 땐 테이블 밑에 무릎을 꿇기도 했다. 강남 한복판이든 강북의 골목길이든 같은 메뉴에선 동일한 맛이 나니, 먹었을 때 크게 실패할 확률도 낮았다. 특색 있는 콘셉트, 수준 높은 서비스, 표준화된 맛 등은 기업의 외식 사업 진출이 우리의 식문화에 끼친 긍정적인 영향이다. 만약 자본력이 풍부한 기업들이 아니었다면 해외로부터 들여온 다양한 맛과 멋을 즐길 수 있는 기회가 지금보다 훨씬 더 늦게 찾아왔을 것이다.

문제는 그로 인해 소비자들의 눈과 입의 수준은 점점 높아져가는데, 기업의 발전 속도는 그에 따라가지 못하고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특히 권우중 셰프는 자체 브랜드를 개발하기보다 해외 브랜드를 수입하는 데에만 집중하는 기업의 현재를 비판한다. “레스토랑은 단순히 먹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문화입니다. 단순히 현금 흐름이 좋다거나 외연적인 확장이 빠르다는 것만 보고 뛰어들면, 식문화에 대한 나름의 기준을 세울 수 없죠. 우리나라 고객들이 아직 해외의 레스토랑 브랜드라면 호감을 가지는 만큼, 이렇게 해외 브랜드에 기준이 맞춰지면서 우리나라에 특화된 식문화가 대중적으로 확산되는 것 또한 어려워집니다.” 게다가 기업의 레스토랑 론칭이 언제나 성공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성상희 팀장은 외식 시장이 밖에서 보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고 말한다. “과거에 비해 고객들의 외식 사업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고 문화적으로도 발전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 수요를 만족시킬 수 있을 만큼 식재료를 공수하거나 창의적인 요리사를 구할 수 있는 여건 또한 좋아졌고요. 그래서 밖에서 보면 꽤나 매력적인 시장으로 보일 겁니다. 하지만 실제로 들어와보면 수익률이 사람들이 예상하는 것보다 굉장히 낮은 편이고, 시장의 변화가 커서 위험 부담도 크죠.”

기업이 외식 시장에 급속도로 밀고 들어오는 것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은 오너 셰프 레스토랑을 그 대안으로 제시하곤 한다. 그런데 아직 소비자들의 오너 셰프 레스토랑에 대한 지식과 반응은 그에 대한 막연한 호감에 미치지 못한다. 여기서 다시 한 번 퀴즈. ‘스타 셰프가 있는 식당은 모두 오너 셰프 레스토랑일까?’ 답은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다. 오너 셰프 레스토랑이란 주방에서 음식을 만드는 셰프가 식당의 경영도 총괄하는 것을 가리킨다. 흔히 알려진 스타 셰프가 오너 셰프인 경우도 물론 있다. 하지만 TV에 자주 등장하는 셰프 가운데는 기업에서 고용한 월급쟁이 셰프가 꽤 많다. 기업이 아니더라도 타인 혹은 특정 단체로부터 투자금을 받아 레스토랑을 운영하기도 한다. 그러니까 TV에서 봤던 스타 셰프를 기대하며 식당에 갔을 때, 셰프는 다른 레스토랑으로 떠나버렸을 수도 있단 이야기다. 블로그마다 오너 셰프 레스토랑에 대한 긍정적인 시선이 넘쳐나는 데 비해, 실제로 오너 셰프 레스토랑 대다수가 경영상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또한 현실이다. 오너 셰프 레스토랑은 대체로 규모가 작다. 기업이나 투자자의 지원 없이 개인이 식당을 차려야 하는 만큼 자본금 문제도 있겠지만, 셰프가 주방과 경영을 모두 책임져야 하니 규모를 키우기 어렵다. 그런데 음식의 차별성을 추구하는 경향이 큰 오너 셰프들은 비용의 상당 부분을 식재료에 쏟을 때가 많아 당연히 음식 가격이 일반적인 시각에서는 비싼 편에 속할 수밖에 없다. “레스토랑 비즈니스가 대중화된 것처럼 느껴지지만 사실은 아닙니다. 대부분의 소비자가 생각하는 기본적인 외식의 가격은 일반 프랜차이즈 식당 수준인 1인당 1만~2만원이죠. 이에 반해 보통의 오너 셰프 레스토랑의 메뉴는 대부분 3만~4만원대로 이루어져 있고요. 우리나라에선 좋은 옷과 좋은 자동차만큼이나, 좋은 음식을 만드는 데도 시간과 노력과 비용이 든다는 걸 아직 인정하지 않는 것 같아요.” 권우중 셰프의 이야기는 어떤 오너 셰프 레스토랑은 빚이 몇억대에 이른다더라는 소문이 심심치 않게 들리는 작금의 현실을 가늠케 한다.

그렇다고 수익 창출을 위해 오너 셰프 레스토랑이 기업형 레스토랑을 따라 할 수는 없다. 자신의 식당을 열기 전 썬앳푸드에서 레스토랑 브랜드의 메뉴를 개발했던 권우중 셰프는 기업에 소속된 요리사였을 때와 지금은 확실히 목표가 다르다고 말한다. 이전의 가장 큰 목표가 이윤 추구였다면, 지금은 어찌 되었든 자신이 만들고 싶은 음식을 만들겠다는 욕심이 더 크다는 이야기다. 현실적으로도 작은 규모의 식당이 기업과 같은 자본과 시스템을 가지는 것 또한 불가능하다. 반대로 기업에게 모두 오너 셰프의 마인드를 가지라고 고집할 필요도 없다. 성상희 팀장은 마케팅 측면에서 레스토랑 론칭 시 고려하는 가장 큰 요소는 ‘시장성’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했다. “가끔 너무 좋은 콘셉트와 아이디어, 트렌드를 가지고 있지만 너무 앞서갔다는 생각이 드는 식당이 있어요. 수준 높은 식문화를 많이 경험하신 분들의 경우 초기 비용을 많이 들여서 좋은 레스토랑을 만들려고 하지만, 아무리 좋아도 수요층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요. 개인이 아니라 기업인 이상, 사업적인 부분을 생각할 수밖에 없어요. 실패하면 그것을 회복하고 다시 시도하는 데 어려움이 따르니까요. 그래서 원하는 것과 고객의 니즈 사이에서 조율하고 타협할 필요가 있습니다.” 작년 3월 오픈한 붓처스컷이 1년도 안 된 지금 3호점을 오픈할 수 있었던 이유 역시 국내에 없던 식문화를 선도적으로 소개했기 때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보다는 한국 시장에 소개되었으나 가격이 높아 대중화되기 어려웠던 드라이에이징 스테이크를 조금 더 대중적으로 접근한 것이 좋은 반응을 얻었다는 분석이다.

기업의 외식 사업 자체를 삐딱하게 바라볼 필요는 없다. 대기업 빵집이 골목 상권을 침해하는 건 큰 문제지만, 이미 철수를 결정한 그 빵집들이 정말 작은 빵집을 위협했는지는 생각해봐야한다. 근본적인 해결책 없이 무조건 철수부터 시키고 보는 건, 소비자의 선택지를 빼앗는 일일 수도 있다. 기업의 자본 없이는 불가능한 분야도 있다. 최근 오픈한 프렌치 레스토랑 ‘라 카테고리’는 대상그룹이 만든 일종의 테스트 키친이다. 같은 요리사도 그러한 음식을 해당 가격에 제공하는 게 가능한지 궁금하다고 할 만큼, 어느 정도의 손해비용을 감수하면서도 새로운 메뉴를 개발하려는 기업의 시도다. 더욱이 오너 셰프라고 무조건 좋은 실력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중요한 건 기업형 레스토랑과 오너 셰프 레스토랑 중 무엇이 옳은가가 아니라 편한 분위기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대중적인 음식을 맛보고 싶은 날에도, 익숙하지는 않지만 창의적이고 특색 있는 음식이 당기는 날에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이다. 그리고 자신의 선택지를 점점 늘일 수 있는 건 결국 우리다. 혹시 맛과 식문화에 대한 고민 없이 그저 기업의 확장에만 골몰하는 기업이 괴물처럼 크고 있지는 않은지, 그 사이에 진정으로 외식 문화를 고민하는 작은 기업들의 입지가 좁아지지는 않은지, 무엇보다 음식에 대한 열정과 자부심만으로 어려운 경영 상황을 헤쳐나가고 있는 작은 식당들이 하나 둘 사라지고 있지는 않은지 고민해봐야 한다. 물론 음식이란 그저 배를 채우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마저도 의무는 아니지만 말이다.

에디터
피처 에디터 / 김슬기
아트 디자이너
일러스트레이션/허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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