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바논의 수도를 가져와서 정한 이름만큼이나 독특한 음악을 들려주는 원맨 밴드 베이루트의 리더 잭 콘돈. 궁금해서 1월 25일 첫 서울 공연까지 도저히 기다릴 수 없는 질문들만 먼저 물어보았다.

<The Flying Club Cup> 앨범과 <The Rip Tide> 앨범 사이에 음악적으로 어떤 변화와 성장이 있었다고 생각하나?
17세부터 늘 여행가방과 함께 살아왔기 때문에 슬슬 그것이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난 (뉴욕에)정착했고, 그것이 새 앨범에 변화를 가져다줬을 것이다.

많은 리스너들이 당신의 앨범이 발칸 반도에서 영향 받았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 그 지역의 음악에 대한 어떤 경험을 했나?
데뷔 때부터 따라다니기 시작한 발칸에 대한 꼬리표는 쉽게 떠나지 않는 것 같다. 내가 19살에 발표한 데뷔 앨범의 곡들은 대부분 18세 때 쓴 것이고 난 그때 전형적인 미국 록보다는 다른 음악을 하고 싶어 했다. 나는 발칸 지역에 관한 영화들을 봤었고, 브라스에 매료되었다. 게으른 서구의 저널리즘이 여전히 집시 뮤직의 진기함에만 사로잡혀있기 때문에 우리의 음악도 늘 그렇게 분류되겠지만 솔직히얘기하자면 이 음악들은 그냥 독창적인 것이다. 독창적이고자 끊임없이 노력하기도 했고.

베이루트의 음악을 들으면 ‘쇠락한 동유럽 서커스단이 떠오른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이미지 연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내 10대 시절의 많은 부분을 유럽 영화를 틀어주는 아트하우스 극장에서 보냈다. 나는 거기서 팝콘을 팔기도 하고, 오후 시간 내내 프랑스나 이태리 영화들을 보면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나는 기본적으로 공상 속에서 살았던 것 같다. 내 음악에서 어떤 이미지를 느낀다면 그 영향이 있을 것이다.

15세 때부터 작곡을 했고, 학교를 그만두고 동유럽으로 여행을 떠났다고 알려졌다. 당신은 어떤 틴에이저였나?
학교는 내 시간을 빼앗고 상상력을 빼앗아가는 곳 같았다(물론 교육 시스템 안에 들어가 있는 이들을 비판하려는 이야기는 아니다). 아버지에게 그렇게 말씀드렸고, 보통의 부모님들 처럼 아버지는 학교를 그만두는 걸 지지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반대가 극심하지도 않았다. 나는 학교를 그만두고 그림의 액자를 손으로 만들거나 오래된 그림을 복원하는 일을 했고, 이게 산타페에선 꽤 괜찮은 직업이었다. 그 돈으로 뉴욕과 파리로 갈 수 있었다.

어릴 때 당신의 집 거실 혹은 부모님의 카 스테레오에서 들려오던 음악은 어떤 것들이었나?
아버지의 영향으로 많은 모타운 음악을 들었다. 비치 보이스, 밴 모리슨도 끼어 있었다. 어머니는 클래식을 많이 들었는데 아버지를 통해 들은 음악만큼 매력적이지는 않았다.

언제 처음 뮤지션이 될 거라고 결심했나?
15세 때 비밀스러운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첫 앨범이 나올 때까지 그 누구에게도 이 결심을 말하지 않았다.

음악가로서뿐 아니라 보컬리스트로서도 개성이 강하다. 스스로의 목소리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열네 살 때까지는 내가 노래를 부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악기로 주로 곡을 쓰고 집에서 작업을 했는데, 노래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몹시 기뻤다. 사실 누구로부터 배운 노래가 아니어서 그저 잘할 수 있도록 노력할 뿐이다.

악기를 여러 개 연주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그 악기 중에 만약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나는 트럼펫을 연주하며 성장했다. 10대 시절에 피아노와 아코디언에 빠졌고. 그리고 성인이 되면서 다른 악기를 연주하기 시작했는데 우쿨렐레는 꽤 진지하게 연습을 했다. 평생 연주할 악기를 하나 골라야 한다면 그건 피아노가 될 것 같다. 가장 다양한 쓰임새를 지니고 있으니까. 혼자 피아노를 연주할 때 이 악기는 마치 사운드의 담요처럼 온몸에 울려 퍼진다.

첫 번째 공연을 기억하는가?
어렸을 때였다. 당시 데이트를 하고 있는 여자친구가 무대에 올라가기를 원했기에 반강제로 무대에 섰다. 난 그때 이미 집에서 백 곡이 넘게 녹음을 했었고, 내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그걸 좋아했지만 정작 무대에서 뭘 해야 할지는 몰랐기 때문에 그저 직감적으로 그 상황을 해결해야 했다. 난 그때 아이팟과 마이크, 그리고 트럼펫을 들고 올라갔다.

베이루트는 솔로 프로젝트였지만 지금은 밴드가 되었다. 그 과정은?
심적으로는 아직 솔로 같은 부분이 있다. 여전히 모든 곡을 내가 쓰는 부분에 있어서는. 하지만 천천히 다른 멤버들이 편곡과 다른 아이디어로 곡에 참여할 수 있게 하는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아케이드 파이어와 엄청나게 큰 무대에서 공연을 했다. 큰 무대가 공연에 어떤 변화를 주나?
물론 무대에 적응을 해야 하고 그에 맞춰 준비를 해야 한다. 아케이드 파이어와 런던에서 공연을 할 때에는 6만 명의 관객이 있었는데 그런 무대는 쉽게 경험하기도 어렵지만 공연하는 것 역시 쉽지만은 않다.

한국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있나?
뉴욕에 있는 가까운 친구들 중 많은 이들이 한국인이다. 서울에서 온 친구들은 여름마다 불고기를 만들고 애피타이저로 김치전을 요리했다.

베이루트의 공연을 처음 접하게 될 한국 관객들에게, 당신의 콘서트를 더 즐기기 위한 방식을 몇 가지 알려준다면?
“노래하는 걸 두려워하지 마세요. 우리는 이 공연을 몹시 고대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