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 앞과 가로수길은 빠르게 달려 나갔다. 그러는 사이 잊혀지지 말아야 할 것들이 잊혀지기도 했다. 과거를 지우지 않으며 걷는 속도를 조절할 줄 아는 동네, 이태원과 서촌이 궁금해진 건 그 때문이다.

서촌방향

기억해야 할 것들을 기억하는 동네.

11:30 키오스크
‘정말로’ 배화여대 정문 바로 앞에 위치한 토스트 가게인데도, 그냥 지나칠 뻔했다. 문 위에 ‘Kiosque’라고 작게 새긴 이름은 간판이라고 부르기엔 제 역할을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베이루트의 ‘March Of The Zapotec’ 음반이 벽걸이용 CD 플레이어에서 울려 퍼지는 이 작은 가게에 아직은 손님이 북적거리지는 않았다. 그래도 유난히 환하게 웃는 류길준 사장은 이곳이 너무 마음에 든다며 역시나 크게 웃었다. “여기서 자고 싶을 정도라니까요.” 사실 그는 얼마전 10년을 맞은 홍대 앞 ‘비하인드’ 카페에서 10년의 공력을 쌓았다. 그리고 그 시간은 어떻게든 티가 나는 법이라, 두텁고 까슬한 바게트로 만들어준 프렌치 토스트는 기막히게 따뜻하고 폭신했다. 덕분에 계절과 어울리지 않는 차가운 커피가 후루룩 먹혔다. 자신의 첫 가게를 열면서 바란 것이 있다면 그저 내 자신이 온전히 돌보고 살필 수 있는 작은 카페였으면 했다는 그의 소원처럼, 키오스크는 테이블 하나 놓여 있지 않은 작은 공간이다. 그래도 주인 눈치 보지 않고 오랫동안 머물다가도 좋은 몇 개의 자리가 있고, 사실은 앉아서 길 구경하기 좋은 높이로 신경 써서 만든 문 앞 계단도 있다. 아, 아직은 다들 몰라봐주기는 해도 벽돌로 괴어놓은 신문은 맘껏 가져다 읽어도 좋다. 이곳은 키오스크, 신문 가판대니까

12:00 트루 파이어 기타 랩
“곧 도착하신대요. 오늘 득녀하셨거든요.” 맞은편 키오스크 사장님이 알려준 대로, 기타리스트 박신원이 곧 벙글거리며 도착했다. ‘트루 파이어’가 무슨 뜻이냐는 질문에 “진짜 열정 그런 느낌이 오잖아요”라고 말할 때도, 기타를 잡고 한없이 고운 선율을 쏟아낼 때도 그의 표정은 변함없이 온화했다. 사실 이 교실은 가수들의 레코딩과 콘서트 세션을 맡고 있는 그가 개인 작업실 용도로 얻은 방이었다. 그러다 월세라도 벌어볼까 해서 기타 교습을 겸하기로 했다지만, 정말 돈을 벌고 싶었다면 역세권에 구했을 거라며 허허거리는 웃음소리가 꼭 좋은 음악 같았다. “요즘 사람들이 많이 날카로워진 것 같아요. 그런데 전 음악만 해도 전자 음악보다는 어쿠스틱한 게 좋아요” .그러니까 이 기타 교실에 온다면 진짜 열정으로 감성적인 음악을 일대일로 가르치는 따뜻한 선생님을 만날 수 있을 거다. 운 좋으면 날씨가 풀리는 봄 즈음에, 교실 옆 작은 주차장에서 열리는 작은 음악회 또한 관람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13:30 보안여관
보안여관의 시작이 확실치는 않다. 그저 1936년 시인 서정주가 친구였던 시인 함형수와 함께 이곳에서 <시인부락>이라는 동인지를 만들었다는 기록을 남긴 것으로 보아, 아마 그때쯤이 아닐까 추측할 뿐이다. 다만 마지막은 확실히 2004년이었다. 그리고 2007년, 보안여관은 여관으로서 산 80년의 세월을 뒤로하고 복합문화공간으로 그 짊어진 의무를 바꿨다. 다행히 쾌쾌한 흔적들은 고스란히 남았다. “어떤 사람의 손에 들어왔느냐에 따라, 이 공간의 운명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싶어요”라는 큐레이터 창파의 말처럼, 기억해야 할 장소들을 부수지 않은 주인을 만난 건 행운이었다. 그리고 한때 숙박계를 받는 방으로 사용되었던 그 행운의 창문 앞에 아티스트 이피가 들렀다. 며칠 전부터 그 창문 안에 세 들어 <이상의 혼장례>라는 제목의 ‘창문 전시’를 진행하고 있는 중이었다. 전시 의뢰를 받고이 굳보안여관의 사료들을 세세히 찾아본 건 아니라고 했다. 어차피 우리는 모두 이 땅이라는 큰 여관에 한 번 살다 가는 투숙객이고, 자신은 그런 세상에 낙서를 남기는 작가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대신 이 동네와 인연이 깊은 소설가 이상이 아마 하룻밤 정도는 이 여관에서 묵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에 그의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남편에게 수면제를 먹이고 몸을 파는 아내, 아내의 화장품 냄새를 맡는 것 외엔 그녀에게 다가갈 수 없는 남편의 모습이 그려진 그의 소설날 <개>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땐, 혼례가 곧 장례가 되는 비루하고 슬픈 이미지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이. 전에 상업 갤러리에서 전시를 할 땐, 어떻게 하면 컬렉터에게 어필할 수 있을까 고민했어요. 이번에는 그러지 않았어요. 그랬다면 작품에 뒤 스포트라이트를 화려하게 비쳤겠죠.” 하지만 보안여관 창문 전시에선 그러지 않아도 되었다. 굳이 그러지 않아도 보안여관에 불이 꺼지는 오늘 밤에도, 이 창문에만큼은 24시간 불이 켜질 터였다.

4:30 프로젝트 29
프로젝트 29에 들어서자 노트북에 와이파이 신호가 떴다. 자리마다 콘센트가 설치되어 있어 배터리 충전도 서둘러 해두었다. 원래 이곳은 건축 디자이너였던 남혜영 대표의 작업실이었지만, 작업 공간이 필요한 사람들이 시간 제약 없이 편히 일하다 갔으면 하는 마음으로 간단히 커피머신 하나 정도만 들여놓고 나누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난 9월엔 간단한 마실거리와 요깃거리를 더 준비해 다시 문을 열었다. 아예 월 단위로 계약하고 사용하는 손님들을 위해선 우편물을 대신 받아주기도 하고, 근처에 사는 손님들은 밥을 먹고 다시 올 때도 많다. 그렇게 카페는 개인의 오피스가 되는 셈이다. 스물아홉 그리고 서른 살 즈음, 남혜영 대표는 바로 이런 모습을 그리며 그동안 번 돈을 다 쏟아부어 이 공간을 꾸렸다. 이래서야 장사 되겠냐고 묻는 사람이 많지만, 수익이 많지 않아도 충분히 기쁘다. 막연했던 그녀의 바람 위에 사람들이 하나 둘 자리를 채우면서 만드는 분위기가 얹혀져, 맨처음 자신이 원했던 방향으로 느리지만 꾸준히 나아가고 있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16:00 서촌 연구소
“그런데 서촌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말하는 거예요, 정확히?” 질문이 끝나기 무섭게 부동산에서나 볼 법한 동네 지도가 ‘촤르르’ 내려왔다. 최근 관심 받고 있는 동네는 통의동, 효자동 쪽이지만 그 외에도 누하동, 청운동 등이 있다고 줄줄 읊는 설재우 대표는 바로 이곳 서촌에서 자랐다. 아직은 인터넷 검색창에 ‘서촌’이라고 치면 연관 검색어로 ‘서촌 맛집’이라고만 뜨지만, 이 오래된 동네가 숨겨놓은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고 했다. 그러다 보니 처음엔 내가 사는 동네를 취재하는 블로그로 작게 시작했는데, 다음엔 서촌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는 ‘서촌 라이프’라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열게 됐고, 일종의 동네 소식지인 <서촌 라이프>를 펴내기도 했다. 지금은 동네 주민이 만들어가는 인포메이션 센터인 서촌 연구소를 꿈꾸며 통의동 시장에 대한 이야기가 담긴 <통의 통신>이나 ‘커피 공방’에서 만든 카페 지도처럼 자발적으로 만들어졌다가 곧 사라지는 기록들을 모으고, 지나가다 들러 읽을 수 있을 만한 책도 구비해두고, 큐알 코드를 찍으면 서촌에 대한 정보를 읽을 수 있는 서촌의 모형도 만들고, 집집마다 찾아 다니며 서촌의 옛모습이 담겨 있는 사진을 모아 동네 사진전도 준비하고 있다. 그렇게 해서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옛모습을 잃을까 걱정되지는 않을까. “그 모든 게 다 이 동네를 구성하는 거잖아요. 무조건 배척하기보다는 새로운 것과 낡은 것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졌으면 해요

17:00 갓. 러브. 디자인.
어떻게 시계 부품으로 주얼리 만들 생각을 했느냐는 뻔한 질문을 던지고 자책하던 중이었다. 그런데 주얼리 디자이너 윤세영이 울컥한 얼굴로 옛이야기를 꺼냈다. 2007년 즈음, 지금의 아내와 함께 무언가 시작해보려고 했지만 가지고 있던 전기 기타를 팔아 얻은 월세 사무실엔 전기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땐 무언가 새로운 것이 그들을 구원해줄 것이라 믿었다. 그리고 황학동 풍물시장이 다른 곳으로 이사 가던 날, 그렇게 수십 년 동안 누군가가 살아오던 터전이 하루아침에 사라진 자리에서 시계를 주웠다. 그 시계를 가지고 돌아와서는 마치 숙제 같아 한참을 쳐다보다가 뜯기 시작했다. “200여 개의 부속품 하나하나가 너무 아름다웠어요”. 그렇게 시계에서 나오는 부품으로 반지, 목걸이, 팔찌와 같은 주얼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처음엔 신사동에 있는 쇼룸에서 판매를 시작했지만, 그 복잡한 곳에서 하루를 보낸다는 게 너무 힘들었다. 그래서 슈퍼에서 물건 하나를 사더라도 요즘 일은 잘 되시느냐고 물어봐줄 것만 같은 이곳으로 이사 와 뒤편은 집으로 꾸미고 여기엔 공방을 차렸다. 사실 아직은 손님이 뜨문뜨문해 심심할 때가 더 많다. 그래도 클래식을 틀어놓은 날이면 한옥을 수리하느라 스쿠터를 타고 이 앞을 지나다니시던 아저씨가 “그래, 이 동네에는 그런 음악이 흘러야지”라고 말해주는 이 동네 덕분에 힘이 난다. 오래되고 낡은 것들이 버려지지 않는 동네. 오래되고 낡은 것들로 다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공방. 그리고 바람이 있다면 그저 자신이 만든 주얼리를 사간 사람들이 평생 사랑하고 간직해주었으면 좋겠다는 디자이너. 그 셋이 참 많이 닮았다.

18:00 퍼블릭
밥 대신 술로 저녁을 때우기로 하고 퍼블릭으로 향했다. 선캡을 쓴 두 명의 동네 아주머니가 맥주 한 잔씩을 앞에 두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냉장고엔 영화 <티끌모아 로맨스> 포스터가 큼지막하게 붙어 있었다. 그 영화를 제작한 구정아 프로듀서가 바로 이 펍의 사장님이기 때문이다. 맨 처음 퍼블릭을 탄생시킨 건 기다림이었다. 영화 하나가 탄생하기까지는 수많은 기다림의 시간을 넘어야 했고, 그 시간에 뭐라도 해보자 하는 마음으로 이곳에 터를 잡았다. 오래되고 낡은 것들이 많은, 언덕이 없어서 자전거 타고 다니기 좋은 이 동네를 좋아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9시, 10시만 돼도 개미 한 마리 없는’ 이 동네에서 장사를 한다는 게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그래서 오늘 이 순간도 걱정이라는 그녀는 밥벌이를 위해 요리를 글로 배웠고, 그렇게 만든 칠리가 웨지 감자와 함께 테이블로 배달됐다. 깔끔 떨지 않고 숟가락으로 그 칠리를 퍽퍽 퍼먹었다. 함께 마신 포토그래퍼가 한 입 마신 후 “진짜 맥주다”라고 내뱉게 만든 앨리켓 생맥주도 꿀떡꿀떡 넘어갔다

20:00 누하 우동 초밥
들어갈 땐 조덕배의 ‘그대 내 맘에 들어오면은’이 흘렀다. 미리 말하자면 나올 땐 에릭 클랩튼의 ‘Let it grow’가 흘렀다. 방 안엔 비틀스 넴버 네 명을 그린 그림이 벽 한 면을 가득 채웠다. 그리 늦은 시간이 아닌데도 20대 로 보이는 여자 손님 세 명의 얼굴은 벌써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혹시 더블유 잡지 봐요? 거기서 취재 왔어요.” 셰프의 말을 못 들은 척 벽에 걸려 있는 메뉴판을 계속 들여다봤다. 배가 부르다고 해놓고는 방어회, 주인장 마음로대 골라주는 초밥 5개, 생선살 치즈구이, 연어 초밥을 차례로 시켜서 먹었다. 내가 먹을거리에 집중하는 사이 옆자리 손님들의 이야기는 직업, 인간관계, 연애로 진하게 넘나들었고, 그러다 자신들이 먹던 귤을 이 심야식당의 무뚝뚝한 마스터에게 건네주기도 했다. 크지 않은 식당이지만 혼자 주방을 책임지느라 쉬지 않고 일하던 셰프가 담배 를 피우러 나온 사이 쫓아가 물었다. “사람이 많네요?” “오늘은 적은 거예요.” “그런데 식당이 작아서 꽉꽉 들어차도 돈 많이 버시긴 힘들겠어요.” “돈 벌려고 하면 못하죠. 그냥 손님들이랑 이렇게 지내는 게 좋아요.” 그때 마을버스 9번이 식당 앞을 지나쳤다. 그 버스를 놓친 탓에, 꾸불꾸불 계획적이지 못한 이 누하동 골목에서 택시를 잡기까지 한참을 정말 한참을 걸어 나와야 했다. 그런데 그 불편함이 결코 싫지 않았다. 아까 마신 따뜻한 사케의 취기가늦 뒤게 올라와서인지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