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알던 내가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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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어트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보는 내내 상금 1억원보다 부러웠던 건 앞자리가 ‘4’로 시작하는 그녀들의 체중이었습니다. 살을 빼는 개인기를 보여준 개그 우먼은 또 어떻고요. 온 국민이 몸 만들기에 혈안이 되어 있는 지금, <더블유>도 새로운 도전에 나섰습니다. 다이어트보다 건강하고, 웨이트 트레이닝보다 새로운 운동 세 가지. 새해니까, 모두들 다시 시작해볼까요?

CHALLENGE 1 : BOXING

세상에서 제일 긴 3분은 컵라면에 물을 부어놓고 기다리는 시간인 줄 알았다. 더 긴 3분이 있었다. 복싱 체육관에서 한 라운드를 뛰는 3분. 공이 울리면 30초를 쉬었다가, 공이 울리면 또 3분을 뛴다. 뛰는 사아아아아아아아암분은 그렇게 길 수가 없어서 온갖 잡념이 다 찾아드는데 쉬는 30초는 눈 한 번 감았다 뜨면 휙 지나간다. 그렇게 열다섯 번쯤 헉헉대다 숨돌리고, 죽었다 살아나면 한 시간이 간다. 길고 짧은 호흡, 치고 빠지기, 강약중강약… 복싱은 이런 그루브가 있는 운동이고, 음악은 없지만 계속 스텝을 밟아야 하는 리듬의 운동이다.

여자한테는 너무 과격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밀리언달러 베이비>에서 힐러리 스웽크의 등 근육이 제법 멋져 보였고, 이시영이 에너지 바를 씹는 광고를 보니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핫요가가 살 빼는 데는 최고라더라, 발레를 하면 자세가 우아해진다더라, 말들이 많았지만 나를 잘 아는 건 나다. 호기심은 강하지만 지루한 걸 못 견디며 승부욕이 강한 성격으로 꾸준히 운동을 다니려면 게임적인 요소가 필요했다. 순발력이 있고 순간적인 집중력은 좋지만 지구력은 떨어지는 B형 특유의 성격도 짧게 끊어가야하는 복싱 수업의 진행 방식과 잘 맞았다. 하지만 고비는 첫 수업, 주먹 한 번 미처 뻗어보기도 전에 찾아왔다. 줄넘기였다.

2단으로도 뛰고 엑스자로도 뛰던 초등학교 시절엔 몸이 솜털이었나, 고작 한 라운드 줄넘기에도 온 몸의 모공이 땀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생각만큼 쉽지 않죠? 줄넘기는 복싱의 기본이에요.” 권투 영화에서 엑스트라들은 죄다 줄넘기를 하고 있는 이유가 있었다. 더블에이치 멀티짐의 이수환 코치는 줄넘기가 몸을 풀어주고 기초 체력을 길러주며, 스피드와 집중력을 키워주는 기본 운동의 역할을 하기 때문에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지금 힘든 만큼 살이 빠질 거라는 자기 암시로 전신 거울을 뚫어져라 응시하며 간신히 3라운드를 버텼다. 다음은 스텝. 양 발을 어깨너비로 벌린 다음 45도로 각도로 틀고, 몸을 앞뒤로 왔다갔다 움직이며 폴짝 폴짝 뛰는 연습에 들어갔다. 이때 팔은 최대한 몸에 붙인 채로 주먹을 앞으로 뻗어 광대뼈 앞으로 갖다 댄다. 이게 바로 그 유명한 ‘가드 올려’. 이 자세로 뛰는 발 동작을 연습하니 대충 링 위에서 상대를 견제할 때의 복싱선수 자세가 나오는 것도 같았다. 복싱은 운전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우기 전에는 손으로 다하는 것 같았는데, 알고 보니 쉬지 않고 사용하는 건 발이었다.

“종아리가 굵어지는 느낌이 들 수도 있지만, 그건 느낌이고 실제로는 탄력이 생기면서 빠질 거예요.” 코치의 경고처럼 1시간 내내 뒤꿈치를 들고 앞뒤로 뛰며 움직이면 운동 다음 날은 종아리가폭발할 것마냥 쑤셨다. 하지만 수업이 거듭될 수록 몸이 가벼워지면서 개운한 느낌이었다. 왼팔을 뻗는 ‘잽’, 왼손 오른손을 연속해서 뻗어 치는 ‘원투’…. 팔동작을 스텝에 믹스하니 점점 재미있어졌다. 턱을 당기고, 정면을 응시하면서 상대방 턱의 한 점을 향해 주먹을 뻗는다. 누군가와 링에서 맞붙은 것도 아니고 자세는 아직 어설프기 짝이 없겠지만, 가상의 적을 두고 집중하는 그 기분만은 비장하고 상쾌했다. 운동하지 않는 시간에도 우리는 대개 무언가와 싸우며 살고 있다. 일상 속의 그 싸움을 몸으로 표현하고 털어버리는 복싱은 푸닥거리 같기도 하고 씻김굿 같기도 해서, 왠지 정신까지 건강해지는 느낌이었다.

처음 글러브를 낀 순간은 무척 떨렸다. “잽!” “원투!” “원투쓰리!” 구령에 따라 쉬지 않고 움직이며 코치 손의 미트를 때린다. 팡,파팡! 파바방! 팽팽한 가죽끼리 부딪치는 근육질의 차진 소음이 체육관에 울려 퍼질 때마다 스트레스가 쑥쑥 내려갔다.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쏜다’는 어려웠다. 무거운 샌드백이 반동으로 돌아오니 자꾸 벌처럼 붕붕대며 날아서 나비처럼 피실피실 주먹을 꽂는 쪽. 하지만 그러다가 한두 번씩, 제대로 펀치가 맞을 때의 희열이란! <록키>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인생은 얼마나 성공하느냐가 아니라 내가 얼마나 치열하게 사느냐가 중요한 거야.” 그래, 운동도 얼마나 성공적으로 살을 빼느냐가 아니라 내가 얼마나 치열하게 뛰느냐가 중요한 거야.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살이 빠지건 정신력이 강해지건 이시영이 되건 하지 않을까? 분명한 건 끝나지 않을 것 같던 한 라운드 3분이 신기하게도 점점 짧아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글 | 황선우([W Korea] 피처 디렉터)

●복싱 핫 스폿

1. 더블에이치 멀티짐 전면이 유리로 된 넓고 쾌적한 실내 공간, 바나나·닭가슴살·삶은 계란 등을 판매하는 스낵바, 운동복 지급은 물론 편리한 발레파킹 서비스까지. 편의시설 면에서는 단연 으뜸. 오픈 당시부터 복싱의 대중화에 앞장선 복싱계의 김연아 같은 존재다. 복싱 외 PT, GX, MMA 등의 프로그램도 준비되어 있으니 마음껏 즐겨보도록. 운동하는 틈틈이 연예인을 발견할 수 있는 것도 이곳에서만 찾을 수 있는 묘미! 압구정 도산사거리 부근. 02-515-0900

2. 홍수환 스타 복싱 왕년의 복싱 영웅 홍수환 선수가 이름을 걸고 운영하는 곳. 배우 이시영이 다닌 도장으로 유명세를 탔다. 남녀의 비율은 6:4 정도. 다이어트 목적보다는 복싱의 정석을 경험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최적화되어 있다. 대치동 선릉역 부근. 02-568-7845

3. FUNGYM 다이어트와 호신술의 효과를 모두 누리고 싶은 여성들에게 최적화되어 있는 복싱 센터. 복싱과 무에타이, 웨이트 트레이닝을 접목한 다양한 운동 프로그램을 보유하고 있으며, 다이어트 코스는 일일 2회분의 식사도 함께 제공한다. 에어로빅처럼 경쾌한 음악과 함께 킥복싱&케틀벨 운동을 하는 펀킥 다이어트는 이곳만의 특장점. 신논현역 교보타워사거리 주변. 02-518-6668

4. 인 바디 스튜디오 이연희, 조여정, 소녀시대 유리, 고아라의 담당 트레이너로 활동한 전 복싱 국가대표 이윤빈 코치로부터 1:1 맞춤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퍼스널 트레이닝 스튜디오. 카이로프락틱이라 불리는 골반&척추 교정 프로그램을 도입해 보다 안전하고 정확하게 신체의 변화를 도모한다. 삭막함을 쏙 뺀 깔끔하고 모던한 인테리어도 인기 요인 중 하나. 02-552-9993

5. BB GYM (Brother Boxing GYM)
전 프로권투 한국 챔피언이자 대형 멀티짐 복싱팀장 출신 관장이 직접 1:1로 지도한다. 비교적 작은 규모로 친근하고 가족적인 분위기가 특징. 다른 도장에 비해 여성을 위한 다이어트 프로그램이 특화되어 있다. 간간이 ‘대세’ 개리를 비롯한 몇몇 남자 스타들의 모습도 눈에 띈다. 3호선 신사역 부근. 02-518-6557

CHALLENGE 2 : CROSS FIT

짧게나마 크로스핏 체험을 하게 됐다고 말하자 사람들은 내게 두 가지를 되물었다. “크로스핏이 뭐지?” 그리고 “왜 그걸 하려고 하는데?” 크로스핏을 고른 이유라면 간단하다. 크로스핏에 대해 잘 몰랐기 때문이다. ‘짧은 시간 안에 강도 높은 동작을 번갈아 수행함으로써 전신 체력을 향상시키는 스포츠.’ 인터넷에서 찾은 단정한 문장에서는 미처 불길한 기운을 읽어내지 못했다. 그저 영화 의 출연 배우들이 이 생소한 운동 덕에 6조각짜리 복근을 얻었다는 설명을 듣고 얇은 귀로 부채춤만 춰댔을 뿐이다. 강도가 상당하다는 경고 역시 당시에는 가볍게 흘렸다. 힘든 만큼 효과도 클 거라는 기대가 있었고, 지금껏 러닝머신 위에서 미드 몇 시즌을 해치우며 키워온 체력이 어느 정도는 뒷받침해줄 거라는 믿음도 있었다. 새해가 시작될 무렵의 들뜬 공기는 이렇듯 사람을 무모하게 만들곤 한다. 얼떨떨한 기분으로 강남역 인근에 위치한 리복 크로스핏 서울 박스 센터를 찾았다. 입문자답게 운동의 개요를 듣고 몇 가지 기본 동작을 익힐 수 있는 온램프 클래스부터 참여하기로 했다. 7~8명쯤 되는 인원이 교육을 담당할 이근형 트레이너 주위로 원을 그리며 모였다. 예비군 소집일처럼 남성들만 둘러선 풍경을 예상했는데 의외로 여성 회원도 2명이나 섞여 있었다. “크로스핏이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운동은 아닙니다.”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듯 트레이너가 말로 쿵쿵 못을 박았다. “시작하기도 전에 포기하는 분이 절반은 돼요. 일단 시작했더라도 그중 반은 첫 수업 이후 낙오되고요. 하지만 그 정도로 힘들기 때문에 하는 것만으로도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운동입니다. 일단 맛을 들이면 절대 그만두지 못할 정도로 중독적이기도 하죠.” 크로스핏 수업 중에는 덩치 큰 기구를 사용할 일이 거의 없다. 일상생활에서 취할 법한 동작을 응용하고 변형해 프로그램화 한다는 것이 이 운동의 가장 큰 특징이니까. 일반적인 웨이트 트레이닝이 <트랜스포머> 풍의 거창한 금속성 액션이라면 크로스핏은 몸을 알차게 활용하는 제이슨 본의 육탄전에 가깝다. 군더더기 없이 담백하며 신체에 직설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수백 종에 이른다는 크로스핏 운동법에서 가장 큰 뼈대를 이루는 건 스쿼트, 프레스, 그리고 리프트 등이다. 온램프 수업은 실내 노 젓기 및 각종 스쿼트를 배우는 정도로 진행됐다. 간단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준비되지 않은 몸에는 이것도 만만치 않았다. 엉덩이를 뒤로 깊게 빼며 절반쯤 앉았다 일어나는 에어 스쿼트 동작을 3분간(매 20초마다 10초씩 휴식), 최대 속도로 수행하는 게 이날의 마지막 과제였다. 3분이 결코 짧지 않은 시간임을 그날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갑작스러운 고생에 놀란 다리 근육들의 비명이 내 귀에 들릴 정도였다. 후들거리는 다리로 센터를 빠져나와 다급하게 택시를 잡았다. 스마트폰을 열자 크로스핏을 시작했다는 트윗 아래로 다음과 같은 멘션이 매달려 있었다. “웰컴 투 헬!” 아무래도 이 트위터 이웃은 나보다 앞서 스쿼트 지옥을 경험한 눈치였다. 이게 다 저녁은 지옥에서 먹자고 고래고래 외치던 제라드 버틀러의 식스팩 때문일까?

두 번째 수업을 위해선 이근형 트레이너를 1:1로 만났다. 간단한 인터뷰를 겸하기 위해 부득이 시간을 내긴 했지만 사실 퍼스널 트레이닝은 크로스핏에 적합한 방법론이 아니다. “체력 수준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그룹을 이루고 그 안에서 기록을 겨루는 운동이거든요. 격려와 자극을 동료들과 주고받는 게 훨씬 도움이 되죠.” 그는 해외의 경우, 크로스핏 인구의 절반 이상이 여성이라고도 덧붙였다. “강도 높은 프로그램일 경우, 약 15분간 900kcal를 소모시키니까요. 체중 감량이 목적이라면 이 이상을 찾기 어렵죠.” 마침내 녹음기를 멈추고 땀을 흘릴 시간이 됐다. 그래도 몸이 어느 정도 적응을 했는지 첫 수업에 비해 한결 동작이 수월하게 느껴졌…을 리가 없다. (준비 체조 삼아) 노를 젓고 푸시업을 한 뒤, 에어 스쿼트와 벤치 딥스를 4세트 반복하는 평이한 프로그램이었지만 끝내고 나자 지옥에 차려진 저녁 밥상의 환영이 눈앞에서 어른거릴 지경이었다. 크로스핏의 효과에 대해선 의심할 필요가 없을 거다. 수련에 가까운 운동을 일주일에 4~5회씩, 3개월간 지속했는데도 몸에 불필요한 지방이 남아 있다면 오히려 의아한 일일 테니까. 다만 본격적인 시작에 앞서 일정 수준 이상의 기초 체력을 쌓아둘 필요는 있겠다. 수업을 마친 뒤 매번 택시 뒷좌석에 쓰러지지 않으려면. 그리고 나처럼 단 2회 만에 크로스핏으로부터 멀어 지지 않으려면.
글 | 정준화( 피처 에디터)

● 크로스핏 핫 스폿

1. 리복 크로스핏 서울 박스 센터 크로스핏을 필두로 피트니스센터와
매장까지 겸비한 리복 최초의 콘셉트 스토어.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크로스핏 레벨 2 자격을 획득한 이근형 트레이너를 이곳에서 만나볼 수 있다. 처음 시작하는 회원들을 위해 매주 새로운 클래스가 열리기 때문에 언제든 합류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 운동복과 타월 등을 무료로 제공하며, 대형 센터 특유의 쾌적한 시설과 편리한 서비스를 자랑한다. 강남역 부근. 02-2052-0096

2. 크로스핏 강남 오직 크로스핏만을 위해 설계된 크로스핏 전문 클럽. 여성 코치가 두 명이나 상주하는 덕분에 타 센터에 비해 여성 회원의 비율이 높은 편이다. 프라이빗한 1:1 개인 레슨과 시간표에 맞춰 선택하는 단체 레슨 중 선택 가능. 신사역과 논현역 사이. 02-516-6744

3. 익스트림 피트니스 클럽 전문 트레이너와 완벽하게 구비된 시설, 체계적인 커리큘럼으로 크로스핏 수업을 병행하는 멀티짐 가운데 최고로 손꼽히는 곳. ‘익스트림핏’이라는 이름의 크로스핏 수업 외에도 킥복싱과 무에타이, 케틀벨 등 각종 프로그램을 경험할 수 있다. 두 달 만에 10kg을 감량, 몸짱으로 거듭난 제국의아이들 멤버 김태헌과 김동준, 줄리엔강 등이 이곳을 다녀갔다. 상암동 CJ E&M센터 부근. 02-6052-5294

4. KB’s 크로스핏&잉글리시 잘 짜인 시간표대로 날마다 다른 운동을 하는 WOD(Workout of the Day) 프로그램으로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크로스핏을 흥미롭게 진행한다. 빠른 체중 감량을 원하는 여성들을 위한 주 5회 다이어트 코스와 영어 강사가 진행하는 크로스핏&잉글리시 클래스도 이곳에서만 만나볼 수 있다. 1호선 회룡역 부근. 070-8285-5284

5. 바디작(BODY 作) 퍼스널 트레이닝 스튜디오에서 열리는 크로스핏 클래스. <맨즈 잇 보디>의 저자이자 <놀라운 대회, 스타킹>에 ‘밧줄 보이즈’로 출연했던 스타 트레이너, 노현호 코치의 인기로 스튜디오를 찾는 이가 줄을 잇는다. 관심은 있으나 무턱대고 시작하기를 망설이는 사람들을 위한 크로스핏 오픈 클래스도 수시로 열리니 눈여겨보자. 분당로 본점, 서현점, 판교점 등 세 곳. 1666-9679

CHALLENGE 3 :PILATES

운동이 남자라면 난 꽤나 과거 있는 여자다. 첫 상대는 10여 년전. 국내 최초의 대형 피트니스 센터가 생겼을 무렵 무심코 구경 갔다 낚여서 PT를 시작했다. 3년 동안 매일 3시간 이상 운동을 했고, 센터를 바꿔가며 각종 GX프로그램도 섭렵했다. 불같은 시절이었다. 그러나 취업을 하면서 관계는 시들해졌고 지난 5년간은 수영을 비롯해 골프, 테니스, 무에타이, 발레를 거쳐 탱고, 스윙과 살사까지 두루 찔러보고 스쳐가는 짧은 만남을 반복했다. 가장 최근 비교적 깊은 관계를 맺은 건 핫요가. 간만에 1년이 넘도록 열정을 다한 운동이었지만, 원인 모를 피부 트러블과 체질 변화(밥만 먹어도 땀이 비 오듯 흘렀다)의 원인이 ‘핫’요가일 수있다는 의사의 진단을 받고 슬픈 이별을 막 치른 터였다. 그렇게 또다시 새로운 상대를 물색하던 어느 날, 운명처럼 필라테스 체험의 기회가 찾아왔다.

필라테스? 기억을 더듬어보니 예전에 참여했던 GX프로그램 가운데에도 필라테스 수업이 몇 번인가 있었다. 요가보다 조금 덜한 스트레칭 효과와 여타 근력 운동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근력 단련. 좋게 보자면 장점이겠지만 이미 땀맛 좀 본 내게는 그저 ‘결격 사유도 매력도 없는 보통의 착한 운동’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오전엔 에어로빅, 오후엔 요가를 가르치는 1인다역 강사가 아닌 전문 필라테스 인스트럭터에게 1:1로 배우는 맞춤형 트레이닝 수업. 나는 신사역 사거리에 있는 오필라테스 김예린 원장에게 직접 트레이닝을 받았는데, 과거 GX프로그램을 이미 경험해본 나로서는 이 개인 트레이닝 시스템이 필라테스를 배우는데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었다. 일단 숨 쉬기부터 달랐다. GX에서 엉덩이와 배를 조이고 가슴으로 숨을 쉬라고 배웠다. 틀리진 않지만, 이번에는 세부적으로 신체를 사용하는 법을 체득했다. 앉을 때 바닥에 닿는 엉덩이 뼈를 모으고, 배꼽을 괄약근부터 당겨 아랫배를 단단히 조인 다음 흉곽을 척추 뒤와 옆으로 늘려 호흡한다. 내쉴 때에도 배를 바싹 조이고 갈비뼈가 완전히 닫힐때까지 내쉰다. 그렇게 호흡하면 들숨에는 척추 뒤가 늘어나 공간이 생겼다가 날숨에는 경추까지 긴장이 풀리며 어깨에 힘이 풀리면서 편안해진다. 첫 수업 후 생각 날 때마다 이 호흡법을 이용했더니 머리가 맑아지고 식욕이 줄었다. 게다가 호흡을 지속하면 흉곽을 조이는 안쪽 근육들이 발달하여 몸통 사이즈도 줄어든다고 한다. 숨쉬기 하나로 이렇게 달라지나 감탄했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좌절도 물론 있었다. 나는 비교적 근력과 유연성이 뛰어나고 운동 감각도 좋은 편. 그런데 이 자부심이 간단한 브리지 동작에서 와르르 무너져버리고 말았다. 브리지 동작은 바닥에 누워 하늘을 보고 무릎을 세워서 허리와 엉덩이를 드는 동작. 이 동작이라면 요가와 발레에서 수십 번 했고, 더 나아가 팔을 머리위로 짚고 뒤꿈치까지 든 업 브리지 동작까지 거뜬히 해내는 나였다. 그런데 웬걸, 인스트럭터의 지시를 따르는데, 허벅지가 덜덜 떨리는 것이 아닌가. ‘진주알을 하나하나 들어 올리듯’ 척추 마디를 분리시켜 올리면서 배와 골반은 지속적으로 조여야 했다. 필라테스에서 코어라 불리는 곳이 바로 이 배와 골반이다. 허벅지가 민망하게 떨렸던 이유는 내가 그동안 이 코어를 쓸 줄 몰랐기 때문이었다. 소위 겉근육으로 동작을 했던 것이다. 같은 동작도 코어를 제대로 쓰면 운동 강도는 몇 배가 된다. 코어를 훈련하는 방법으로 서클링이라는 탄성 있는 동그란 고리를 무릎 사이에 두고 누워서 무릎을 조이는 동작이 있다. 동작만 따라 하면 너무 쉬워서 운동이라 할 수 없었다. 하지만 힘을 보내야 하는 부위를 트레이너의 손가락으로 콕콕 찔려가며 몸을 잡아서 코어를 제대로 사용하니, 3cm만 움직여도 안간힘을 쓰게 되었다. “골반도 들리고 자세도 비뚤어졌네요.” 코어를 바로 잡는 과정에서 김예린 원장이 몸의 밸런스를 교정해주는데, 마치 핵심만 집어주는 족집게 선생님을 만난 것처럼 속이 ‘뻥’ 뚫린 기분이었다. 이래서 필라테스는 대충 모양새만 따라 해서는 절대로 효과를 볼 수 없다고 하는 거다. 한동작 한 동작 제대로 배워야 비로소 속근육을 태우는 필라테스의 깊은 맛을 음미할 수 있다. 게다가 또 얼마나 스마트한 운동인지! 필라테스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리포머라는 기구를 예를 들어볼까? 리포머는 레일을 따라 오르내리는 판이 달린 기구다. 지시받은 대로 누워서 운동을 하는데, 이건 다름 아닌 스쿼트 동작을 누워서 하는 거였다(필라테스에서는 ‘풋워크(Footwork)’라 부른다). 스쿼트. 이름만 들어도 목 뒤에서 신물이 올라오는 동작이다. 스쿼트 몇 세트에 흘린 눈물이 얼마던가. 하지만 서서 하는 동작과 달리 체중이 실리지 않았다. 자연히 허리, 무릎 등 관절의 부담도 줄었고, 발의 위치와 모양을 바꿔 원하는 부위만 집중적으로 가꿀 수도 있었다. 이렇게 효율적으로 운동하는 방법이 있었다니! 그간 내가 참 운동을 허투루했구나 싶다. 종합해보자면 필라테스는 나의 몸에 대한 새로운 발견이다. 몸을 예쁘게 만들기 위해 발전시키고 균형을 찾아야 하는 부위를 알았고, 도전 의식도 생겼다. 센터의 다양한 기구들을 보며 수백 가지의 동작을 그려보는데 당분간 질릴 일은 없어 보인다. 지난 일주일간 숨 쉬는 법만으로 활기가 넘친 일상을 생각하면 간만에 열애에 빠진 사람마냥 두근두근 가슴이 떨린다. 힘겹게 찾은 사랑 소중하게 지켜가야지!

● 필라테스 핫 스폿

1. 오필라테스 오픈한 지 1년이 채 되지 않아 무척이나 깨끗한 실내가 눈에 띈다. 사방을 둘러싼 유리창으로 강남 일대를 내려다보며 운동하는 기분은 이곳이 아니면 느끼기 힘들 터. 엑소체어를 비롯, 독일 현지에서 구입한 각종 필라테스 기구가 준비되어 있으며, 척추 교정 재활 운동인 ‘스콜리오 테스’ 프로그램을 국내 최초로 선보이기도 했다. 그 밖에 단계별 다이어트 프로그램과 성장에 도움을 주는 키즈&청소년 필라테스 등 다양한 커리큘럼도 눈여겨볼 것. 필라테스 센터로는 드물게 개인라커와 샤워실, 주차시설까지 완비되어 있다. 신사역 사거리. 02-513-9990

2. DNG 필라테스 미국 네바다 대학과 연계해 개발한 독자적인 필라테스 프로그램이 특징. 국가대표 선수들이 재활을 위해 많이 찾는다. 산소 발생 시설을 마련해 여럿이서 운동을 해도 늘 쾌적한 환경을 유지하는 하늘점과 오직 한 사람만을 위한 프라이빗 센터인 나무점, 두 곳에서 운영 중이다. 02-545-3369

3. 문지숙 필라테스 손예진, 공효진, 진재영 등 유명 연예인들의 방문이 끊이지 않는 곳. 임산부를 위한 수업이 별도로 마련되어 있으며, 필라테스 외에도 파위플레이트와 TRX(미국 해병대의 훈련에서 유래된 줄을 이용한 서스펜션 트레이닝 운동) 등의 프로그램도 인기다. 신사동 가로수길. 02-518-3032

4. 케어 필라테스 올바르고 체계적인 필라테스 교육을 위해 다양한 검사 시스템을 도입, 정형외과와 연계하여 필요에 따라 병원 치료를 병행한다. ‘스타일리시 보디’ 전혜빈도 이곳에서 지도를 받은 것으로 알려져있다. 양재 본원을 필두로 서초 교대, 분당 정자, 송파 잠실 등 10개의 지점이 있다. 02-575-9670

5. 샤샤 필라테스 지난 연말 다이어트로 화제가 되었던 고현정의 담당 트레이너가 바로 이곳의 샤샤 정 강사. <신데렐라 만들기><다이어트 워, 시즌1> <기분좋은날, 미스코리아 원혜정 편> 등의 프로그램에서 메인 트레이너를 맡았을 만큼 필라테스 다이어트에는 일가견이 있다. 신사동 압구정역 부근. 02-517-4405

6. 아트 필라테스 한국에 최초로 필라테스를 보급한 전홍조 교수가 이끄는 곳. 오전 7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운영하며, 개인용 프라이빗 룸을 비롯한 넓은 실내 공간과 다수의 강사진 확보로 시간 선택이 자유로운 것이 최대 장점이다. 압구정 로데오거리 입구. 02-511-1127

에디터
뷰티 에디터 / 김희진
포토그래퍼
김범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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