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분야의 전문가들, 그들만의 리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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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는 선수를 알아본다. 파트너, 크루, 동료, 협업자… 뭐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새로운 분야에서 또렷하게 눈에 띄는 전문가들, 그리고 그들이 존중하고 힘을 빌려오는 또 다른 전문가들을 함께 만났다. 주 특별하고 흥미진진한, 그들만의 리그.

왼쪽부터 | JOH의 미디어 디렉터 최태혁 대표 조수용, 브랜딩 디렉터 김형우, 건축 디렉터 박상준.

왼쪽부터 | JOH의 미디어 디렉터 최태혁 대표 조수용, 브랜딩 디렉터 김형우, 건축 디렉터 박상준.

브랜드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브랜딩 전문가 JOH 조수용 대표
“그 기업은 왜 태어났나, 그 제품은 왜 세상에 나왔나를 명확하게 해주는 것이 브랜딩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 건축 디렉터 박상준 “건물도 브랜드가 담기는 공간의 개념으로 접근합니다. 공간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기분과 분위기를 먼저 상상하고 함께 만들어나가는 거죠. 결국 의자, 가구, 식기까지 라이프스타일을 아우르는 호텔 같은 것이 궁극의 예가 될 수 있겠네요.”
+ 미디어 디렉터 최태혁 “매거진 <B>는 과월호가 쌓일수록 의미 있는 잡지가 될 거예요. 12권이 쌓이면, 브랜딩에 대해 내부적으로는 철학을 정리하고, 독자들은 참고할 수 있는 소중한 자료가 될 수 있을 겁니다. ”
+ 브랜딩 디렉터 김형우 “브랜드는 내 것이 아니면 끝까지 찍을 수가 없어요. 그래서 우리의 생각과 접점이 있는 브랜드에 대해서 내 것처럼 여기고 온 힘을 다 해서 그 일을 하죠. 많은 일을 할 수가 없는 구조예요.”

20세기에 미디어가 메시지였다면, 21세기에는 브랜드가 메시지다. 유니클로와 애플, 나이키와 H&M … 브랜드는 이제 욕망의 분명한 대상이자 국경을 뛰어넘는 강력한 힘이며 누군가의 라이프스타일을 단숨에 설명하는 방식, 우리의 일상을 구성하는 편안한 대기가 되었다. 또한 특수한 동시에 보편적이고 복합적이어서, 브랜드 전문가는 스페셜리스트인 동시에 제너럴리스트이기도 하다.

JOH의 조수용 대표를 예로 들면 이해가 쉽겠다. 혜택을 숫자로 표기한 삼성카드의 넘버 시리즈와 대림산업의 다양한 건축 프로젝트 등 다른 브랜드에게 크리에이티브를 제공하는 일을 그와 동료들은 하고 있다. 하나의 슬로건을 내세우거나 기업의 로고를 다듬어주는 개선에 그치지 않는, 넓은 의미의 브랜딩이다.

조수용 대표에게 올해의 가장 큰 변화는 알파벳 세 글자에서 알파벳 세 글자로였다. 앞의 세 글자는 대한민국 사람이면 누구나 이름을다 아는 회사 NHN이었고, 뒤의 세 글자는 자신의 이름을 딴 회사 JOH다. 네이버에서 디자인과 마케팅을 총괄하는 본부, 400명이 넘는 조직을 이끌었던 조수용은 넓고 안정적인 울타리를 버리고 나와 자기 회사를 만들었다. 혼자는 아니었다. 건축, 편집, 디자인과 마케팅전문가인 디렉터들이 그와 손을 잡았다. 조수용 대표가 프리챌 등 포털 사이트에서 거쳤던 업무가 ‘UX(User Experience)’였으며, 네이버에서 마지막으로 했던 프로젝트 또한 사옥 짓기였다는 점은 흥미롭다. 한 브랜드의 끝이 결국 ‘공간’이기 때문에 그가 JOH에서 하는 일은 결국 건축과 장소까지를 아우르는 것이다. 성공 브랜드의 신화는 흔히 제품력과 마케팅의 승리로 여겨진다. 하지만 건축이나 디자인 같은 요소가 브랜드에서 중요한 이유는 분명하다. 사용자에게 최종적으로 정의내려지는 브랜드는, 분야와 영역을 뛰어넘어 총체적인 ‘경험’으로 인상을 남기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비즈니스 경쟁력을 가지려면 판촉을 잘 하거나 세상에 없는 기술을 지녀야 했어요. 요즘은 브랜드에 대한 정확한 생각이 중요하다고 봐요. 그게 진짜 크리에이티브와 만나면 멋지게 성공할 수 있는 거고, 그걸 믿는 사람을 브랜드 전문가라고 부르는 게 맞겠죠.” 조수용 대표의 얘기다. JOH가 단순한 ‘컨설팅 펌’으로 그치지 않는 것은 JOH 자체 브랜드의 결과물들을 기획하고 만들어내는 구상까지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 하나로 한 권에 하나의 브랜드만 깊이 파는 매거진 <B>가 세상에 나왔다. 1호의 프라이탁, 2호의 뉴발란스, 편집 중인 3호의 캠핑 브랜드 스노우피크처럼 ‘아름답고 실용적이고 합리적인 가격에 의식이 있는’ 브랜드를 이야기한다. 건축 디자인과 인테리어, 식기며 음식까지 어우러지는 다이닝 프로젝트가 JOH의 2012년의 목표 가운데 하나이며, ‘폼 잡지 않는 생활 속의 제품들’을 만들어가려는 구상을 갖고 있다. 브랜드라는 깃발을 꽂을 영토는 너무나 넓어서, 세상은 지금 이들에게 기회의 땅이다. 에디터 | 황선우

왼쪽부터 | 패션 칼럼니스트 홍석우, 디자인 컨설턴트 김세일, DJ 소울스케이프.

왼쪽부터 | 패션 칼럼니스트 홍석우, 디자인 컨설턴트 김세일, DJ 소울스케이프.

취향의 커뮤니티

디자인 컨설턴트 김세일 “컨설팅의 트레이닝을 받은 사람들과 다르게 디자인 필드에서 경험을 쌓은 것이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원래 구체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내 봤기 때문에 실행력을 가진 거죠. 페이퍼테이너 뮤지엄 프로젝트를 하면서 작가와 기업,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일에 대한 흥미와 적성을 확인했어요.”
+DJ 소울스케이프 “백화점 매장에서 본격적으로 음악을 디제잉하는 시도는 버그도프 굿맨에서나 할 수 있는 거였어요. 이제 서울에서도 패션, 사진, 책, 음악, 그래픽, 디자인… 다른 영역에서 만난 사람들이 서로의 경계를 넘으며 그걸 즐기는 시기가 온 것 같아요. 셀렉트 숍이라는 테두리보다 그 안의 콘텐츠가 중요한 거죠.”
+ 패션 칼럼니스트 홍석우 “이런 저널이, 서로 다른 필드에 있으면서 라이프스타일에서는 접점을 가지는 스페셜리스트들끼리 뭔가를 공유하고 함께 기획할 수 있는 허브가 된 것 같아요. 단순하게 클라이언트에게 결과물을 만들어주는 일이라면 굳이 이런 사람들이 여기에 모일 필요가 없겠죠.”

김세일의 이름을 여러 사람에게 동시다발적으로 들었다. 누군가는 자뎅 드 슈에뜨의 부엉이를 디자인한 사람으로, 어떤 이는 CJ 원카드 로고 프로젝트의 진행자로, 다른 이는 아이폰 케이스 브랜드 인케이스의 디자인 및 계간지 <스펙트럼>의 디렉터로, 또 신세계 강남점의 남성복 편집매장 ‘맨온더분(이하 MOTB)’에서 펴내는 저널의 퍼블리싱 디렉터로 그를 소개했다. ‘디자인’이라는 큰 울타리 안에서 그가 하는 일은 패션부터 브랜드, 출판과 라이프스타일에 걸쳐 넓게 스며들어 있었다. 그건 그렇다 치고, 업계에서 흔한 호칭인 ‘실장’ 말고도 ‘감독’이라고 불리는 까닭이 궁금했다. “디자인하우스에서 CDO(최고 디자인 책임자)로 있을 때 이사라는 직함으로 불리기는 싫어서 스스로 정한 호칭이에요. 일단 감독이라는 낱말이 좋아요. 감시하고 독려한다는 포지션이 말이죠. 컨설턴트의 일이 결국은 누군가를 지켜보고, 문제에 대해 고민해주고, 해결을 돕는 거니까요.”

많은 분야에서 그러하듯이 김세일이 찾는 솔루션은 대부분 사람에게서 온다. 그 자리에 꼭 맞는 전문가를 찾는 일이 문제의 해결이자 그 이상의 도약을 이루어내는 것이다. 흥미롭고 새로운 일을 하는 크리에이터를 물색하고 곁에 두는 김세일의 촉은, 마치 책에서 얻는 아이디어 뱅크처럼 사람이 적립된 은행 구좌를 구축해주었다. “디자인하우스에서 페이퍼테이너 뮤지엄 프로젝트를 하면서 처음 느꼈어요. 시게루 반이라는 대단한 건축가와 함께 일하고 필드에 있는 작가와 기업들을 연결하고… 이런 작업은 이 사람과 저 회사가 함께하면 새롭고 재밌는 결과물이 나오겠구나 구상하고 실행하는 쾌감을 주었죠. 그게 지금 하는 일의 계기가 되었고요.”

패션 관련 글을 쓰는 홍석우는, 김세일이 ‘감시하고 독려하는’ 사람 가운데 한 명이다. 두 사람은 종종 한 짝이 되어서 콘텐츠를 만드는 파트너인데, 김세일이 판을 짜고 틀을 만들면 홍석우는 내용을 채우는 에디터 역할을 하면서 두 사람은 <스펙트럼>과 <MOTB 저널>을 함께 펴내고 있다. 비주얼과 텍스트, 디자인과 글이라는 다른 영역을 서로 채워주면서 둘의 크리에이티브가 온전해지는 것이다. “유어보이후드라는 자신의 사이트를 운영하고 데일리 프로젝트 바잉 MD로 일할 때부터 홍석우를 눈여겨봤어요. 딱히 뭘 같
이 하겠다는 목적의식이 있어서라기보다, 신선하고 재미있는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군지 알아둬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요.” 김세일은 ‘객관과 주관을 섞어가며 사람들에게 무엇을 이야기해야 할지 정확하게 아는’ 홍석우를 포섭했고, 홍석우는 김세일의 ‘고정관념 없이 유연한 감각과 경험에서 오는 노련한 직관’을 주고받으며 둘의 상호 보완 관계가 이루어졌다.

이런 느슨하지만 견고한 파트너십은 음악감독인 DJ 소울스케이프와도 마찬가지로 유지된다. 그는 책과 잡지, CD와 전자제품까지를 아우르는 MOTB 매장에 음반 셀렉션을 추천하고 공급한다. 소울스케이프가 속한 360사운즈의 DJ들이 토요일마다 신세계 강남점 남성복 매장인 6층에서 디제잉을 하기도 한다. 이미 여러 매체와 일하며 필력을 발휘한 소울스케이프는 <스펙트럼>이나 <MOTB 저널>에 음악 칼럼을 기고하기도 한다. “뉴욕이나 LA에 음악을 플레이하러 가봐도 늘 만나는 그룹이 있어요. 그래픽 디자이너, 브랜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디자이너… 그런 사람들이 취향을 공유하면서 지역의 어떤 문화 신을 만들어가죠.” 소울스케이프의 말에 따르면 서울처럼 작은 도시에서 세사람이 서로의 존재를 알게 되고, 만나고, 테이스트를 공유하면서 같이 즐기다가 급기야 일을 해나가는 지금의 모습은 매우 당연하게 벌어진 일처럼 여겨진다. 이 세 사람이 꼭짓점이 되어 그리는 몇 개의 선과 몇 개의 삼각형은 여러 겹으로 포개지며 자유로운 도형을 만들어내고 있다. 서울의 남성 패션과 라이프스타일을 둘러싸고 세 사람이 움직여가는 이 궤적에 새로운 장소, 브랜드와 프로젝트, 그리고 김세일이 데려오는 또다른 인물이 결합하면서 그림은 더 재미있어질 것이다. 에디터 | 황선우

에디터
황선우, 피처 에디터 / 정준화
포토그래퍼
김범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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