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주르, 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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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더 천천히 맛을 음미하고 싶은 날 통째로 빌려오고 싶은, 마치 파리에서의 한때를 빌려온 듯한 프렌치 레스토랑 3곳.

르 그랑 꽁데

이태원의 좁은 뒷골목을 걸어 올라가다 보면, 마치 유럽에서 마주칠 법한 2층짜리 작은 집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곳엔 한국말보다 프랑스어가 익숙한 그레고와 셰프가 만들어내는 지극히 프랑스적인 요리들이 있다. 셰프가 지난 2년간 그 맞은편 ‘파티스리 미쇼’를 통해 선보인 빵이 그러하듯 재료가 원래 가진 맛을 해치지 않는 직선적인 요리법이 특징인데, 그래서인지 와인 한 방울 넣지 않고 오직 볶은 양파에서 우러나오는 단맛을 이용해 끓이는 양파 수프는 큰 숟가락으로 훌훌 떠먹어도 입안이 달지 않고 속이 개운해진다. 그 밖에 우리나라에선 쉽게 맛보기 어려운 토키 테린, 머스터드나 민트 등 자극적인 소스를 곁들이지 않아도 좋을 만큼 향이 깔끔한 6개월 이하의 어린 양고기로 만든 양갈비, 약한 불에서 24시간 익혀내는 오리 콩퓌 역시 조금 낯설더라도 한번 맛을 보면 자꾸 더 손이 가는 메뉴들이다. 가장 신기한 건 이 작은 2층집에 들어와 테이블에 앉는 순간부터 마음이 여유로워져 모든 재료의 맛을 하나하나 다 느끼게 된다는 점인데, 그래서인지 트러플을 넣은 푸아그라 테린을 맛볼 땐 그 위에 솔솔 뿌린 소금인 게랑드 소금의 딱 좋을 만큼 짭조름하고 달큰한 맛까지도 놓치지 않을 수 있다. 이태원 ‘오키친’ 골목으로 올라가다가 ‘파티스리 미쇼’ 맞은편.

르 파사주

프렌치 레스토랑의 문을 열고 들어갈 땐 왠지 떨린다. 사실 1920년대 파리 브라세리의 모습을 재현하기 위해 애썼다는 르 파사주의 문을 열고 들어갈 때도, 그 격식 차린 모습에 덜컥 겁이 날지도 모른다. 하지만 테이블 위로 와인보다는 맥주 한 잔에 더 어울릴 법한 투박하고 진한 음식들이 차례로 올라오면, 곧 긴장이 풀어질 테니 두려워하지 않아도 좋다. 맨 처음엔 소스 없이 구워낸 소고기에 무뚝뚝하게 허니 버터 한 조각을 올린 소등심 스테이크, 매콤하고 진하게 볶아 느끼할 틈이 없는 데다 고소한 참살 크로켓까지 올려 우아하기보다는 차라리 걸쭉한 맛이 나는 오일 파스타로 친근하게 시작한다. 그래서 입안이 프랑스의 맛과 조금 익숙해졌다는 자신감이 든다면 시금치 크림 소스나 버섯 향의 와인 소스 등 다채로운 소스를 곁들여 맛보는 프랑스식 달팽이 오븐구이, 오랜 시간 조리해 부드럽고 진한 소고기 스튜 또는 갑각류를 갈아 만들어 바다 내음이 물씬 끼치는 크림 수프에 도전해보는 것도 좋겠다. 아마 문을 열고 나가는 길에는프랑스의 맛과 친구가 되고 싶은 욕심이 불끈 솟아오를 것이다. 홍대 앞 놀이터를 지나 첫 번째 골목에서 우회전.

라 카테고리

몇 년 전 프렌치 레스토랑 ‘봉에보’에서 일했던 이형진 셰프는 이 새로운 레스토랑을 가리켜, 내후년에 준비하고 있는 큰 프로젝트를 위한 테스트 키친이라고 불렀다. 그러니까 이윤보다는 모든 종류의 음식과 디저트를 실험하면서 손님들과 나누는 연구실이라는 뜻이다. 당연히 레스토랑을 찾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하나의 코스를 지날 때마다, 좋은 재료와 새로운 요리법으로 무장한 메뉴를 다채롭게 맛볼 수 있는 기회다. 먼저 애피타이저로는 한 번 레어로 익힌 작고 두툼한 소고기를 차갑게 식힌 후 굴 아이스크림과 곁들여 먹는 비프 로얄이나, 계란흰자로 만든 폼이 가득 올라간 감자 수플레를 한 숟갈 뜬 후 바닷가재 껍질로 만든 소스를 끼얹은 바닷가재와 함께 먹는 메뉴에 도전해볼 만하다. 특히 라 카테고리에선 마치 프랑스 어느 집의 식사에 초대된 것처럼 큰 냄비에 담겨 나오는 요리를 나눠 먹는 재미를 느낄 수 있는데, 메인 요리로는 미역, 다시마, 홍합 그리고 농어를 쪄서 냄비째 내어오는 농어 요리를 추천한다. 여기에 흔히 보던 야채를 어떤 건 오븐에 굽고, 또 어떤 건 소금과 후추로만 간해 팬에 구우면서 총 6가지 채소의 서로 다른 맛을 느낄 수 있는 가니시를 곁들이면 좋다. 마지막으로 계란흰자로 스노 볼을 만든 후 그 안에 두유로 만든 크림을 넣고 녹차 가루, 초콜릿과 함께 먹는 스노 볼을 맛보면 자꾸 건드려보고 싶고 사진을 찍고 싶은 즐거운 식사 시간은 끝! 그런데도 계속 탐난다면 카트 가득 디저트가 담겨 나오는 평일 런치 타임이나 토요일을 노려봐도 괜찮겠다. 일요일과 월요일 휴무. 성수대교 남단에서 삼원가든 가는 방향, 제주항 옆건물 2층.

에디터
피처 에디터 / 김슬기
포토그래퍼
박종원, 김나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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