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사위원은 더블유 에디터들, 무엇이든 점수를 매깁니다. 이달에는 뭔가에 중독된 감독들의 연출작에서 공통 분모, 작품 속 반복되는 모티프를 놓고 평합니다.

1. <콜롬비아나> 뤽 베송의 여전사

5점/ 뤽 베송이 제작하고 시나리오를 쓴 <콜롬비아나>는 <레옹>의 마틸다가 살아남아서 <니키타>로 성장하는 이야기다. 필모그래피에 잔 다르크나 아웅산 수지 여사를 다룬 영화도 있을 정도인 뤽 베송이 종종 매료되듯이, 총을 든 여자는 총을 든 남자 보다 매력적이다. 하지만 약자로서 자신의 존재를 각성하고 복수의 과업을 이루어내는 과정을 얼마나 밀도 있게 그리는가는 별개의 문제다. -황선우
6점/ 대체로 뤽 베송의 여전사들이 무장한 어린아이에 가깝긴 했다. 그래도 <니키타>의 안느 파릴로는 겁먹어서 더 크짖게는 들개 마냥 정이 갔는데, (뤽 베송이 제작과 시나리오에 참여한) <콜롬비아나>의 주인공 카탈리아는 쌍권총을 찬 미운 일곱 살같다. 애꿎은 주변 사람들마저 위험으로 내모는 멍청하고 이기적인 복수극을 지켜보다 보면 계단 끝에서 발을 걸고 싶어진다. -정준화
6점/ ‘마틸다’와 ‘니키타’라는 캐릭터가 지닌 거친 입자에 반해 <콜롬비아나> ‘카탈리아’의 외모와 액션은 지나치게 매끈하고, 필요 이상으로 잘 빠졌다. 안타깝게도 그 분야에선 아무리 애를 쓰고 노력해봐도 아직은 앤젤리나 졸리를 넘어서기 어렵다. -김슬기

2. <북촌 방향> 홍상수의

9점/ 술 마시는 장면이 꼭 나온다. 영화 밖에서 배우들과 감독도 그런다고 알려져 있다. 게다가 관객들이 완성된 영화보를는 체험 자체가 음주의 과정과 흡사하다. 시간은 구깃하게 접히고, 군데군데 흐려진 정보는 저마다에게 다르게 기억되는 술자리와 닮은영화. 홍상수 영화의 내용과 형식과 주제의식을 정확하게 관통하는 아이템이라는 점에서 술은 알파요 오메가다. -황선우
8점/ 홍상수의 남자들에게서 술을 빼앗는다면 러닝타임 내내 어떤 사건도 일어나지 않을 거다. 알코올의 힘 없는이 귀엽게 얄팍한 위선을 벗지 못할 만큼 겁 많은 사람들이니까. 홍상수 영화의 술은 캐릭터이자 연료이며 이건 <북촌방향>에서도 마찬가지다. -정준화
10점/ 홍상수의 모든 영화에 단 하나의 부제를 붙인다면 ‘술 먹고 이성을 유혹해 키스하기 교본’쯤 될 것이다. 술이 들가어야만 섹시해질 수 있는 인간을 향한 감독의 애정을 바라보며, 그 술을 마시고도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할 때가 많은 시대를 한탄했다. -김슬기

3. <통증> 곽경택의 조폭

6점/ <친구>부터 <태풍> <똥개> <사랑>까지, 곽경택의 세계에는 마초들의 인구 밀도가 유독 높다. 태도는 과장되고, 삶의 방식은 위태로우며 폭력에 기대서 사는 인물들이다. 그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을 지켜보는 여성 관객으로서는 전쟁 같은 사랑에 잘 공감이 안된다. -황선우
7점/ 남의 이야기일 때는 해피 엔딩보다 비극이 더 로맨틱한 법이다. 그리고 극단적인 폭력에 일상적으로 노출되는 곽경택의 남자주인공들은 예정된 암울한 결말 이외에는 갈 곳이 없는 사람들이다. 뻔하지만 적어도 힘은 실린 이야기다. –정준화
6점/ 오직 직진으로 내달리는 거친 남자들의 로맨스를 남자들은 순정이라 여길지 몰라도 여자들은 힘에 부친다. 게다가 위한험 사랑을 꿈꾸기에, 이 세계엔 사랑 말고도 위험한 것들이 지나치게 많다. 아마 여자 관객들의 모성애와 판타지를 자극하는것 보다는, 거친 마초를 꿈꾸는 치기 어린 남자 중고등학생들을 타깃으로 삼는 것이 더욱 효과적이었을 것이다. -김슬기

4. <코쿠리코 언덕에서> 미야자키 하야오의 소녀

7점/ 마녀 배달부든, 마루 밑의 소인이든, 온천장 종업원이든, 하야오 세계의 소녀들은 차돌로 조각한 병정처럼 매끈하고 단단하다. 하지만 그 반짝이는 매력이 제대로 발현되는 건 소녀를 둘러싼 세계의 신비로운 아노미가 탄탄하게 구축돼 있을 때라는 걸, <코쿠리코 언덕에서>의 결핍이 일깨워주었다. -황선우
8점/ <코쿠리코 언덕에서>는 감독인 미야자키 고로의 개성보다 기획과 시나리오를 맡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유산이 더욱 크 게보이는 작품이다. 독립적인 소녀 캐릭터를 선호해온 지브리 스튜디오는 이번에도 인상적일 만큼 씩씩한 주인공을 완성했다 . 하야오의 세계에서 소녀는 그 어떤 것보다도 우월하고 강한 종이다. -정준화
7점/ 미야자키 하야오의 소녀들은 언제나 쉬지 않고 일하고, 폭력적인 세계에 맞서 피를 흘린다. 연약하고 의존적인 기존의 여성상을 벗어났다고는 하지만, 오염된 세상을 매번 순수한 소녀가 깨끗하게 씻겨줄 거라는 반복적인 설정 또한 불편하긴 마찬지가다. -김슬기

5. <뿌리깊은 나무> 장태유의 이정명

8점/ 집현전 학사들의 연쇄 살인사건과 한글에 얽힌 권력 암투, 화가 신윤복이 여성이었다는 가정… 이정명 작가는 역사책의 행간에서 흥미로운 상상력의 씨앗을 심어 풍성하게 거두는 치밀한 작가다. 그리고 연출가 장태유는 젊은 화면 구성과 연출력을 <바람의 화원>에서 검증받았다. 드라마 호흡의 용두사미까지 전작을 닮으면 곤란하겠지만. -황선우
8점/ <쩐의 전쟁>은 방송국 직원이 무난하게 만든 미니 시리즈 같았다. 적어도 <바람의 화원>과 <뿌리깊은 나무>에서는 연출자의 달라진 의욕이 확실하게 읽힌다. 좋은 원작이 재능 있는 피디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북돋아주는지 말해주는 사례. -정준화
8점/ <뿌리깊은 나무>의 초반부만 본다면, 연출가 장태유의 쫀쫀한 연출력과 원작자 이정명의 상상력은 여전히 궁합이 좋다. 다만 그들의 궁합에만 주목하기에 아직은 <선덕여왕>과 <로열 패밀리>의 드라마 작가 콤비 김영현과 박상연 쪽으로 무게감이 기운다. -김슬기

6.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 김병욱의

9점/ 김병욱의 시트콤에서 점점 가난한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건 어떤 시대적 징후다. 누군가의 집에 얹혀사는 인물들이 태반이고, 그들은 각기 다른 이유로 숙면을 이루지 못하거나 쾌변을 보지 못한다. 졸리거나 변비인 채로 힘겹게 눈치 보며 살내아야 하는 신자유주의 시대의 인물 군상은 실컷 웃겨놓고 심란하게 만드는 김병욱의 주특기. -황선우
8점/ 빈부 격차와 그로 인한 계급 갈등은 김병욱의 시트콤을 움직이는 중요한 엔진이다.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을 보면 암담한 시대상에서 잔인한 웃음을 길어 올리는 그의 능력이 이제 지붕을 뚫은 듯 보인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계급 차이란 현실에서 절대 극복될 수 없다고 못 박았던 <지붕 뚫고 하이킥>의 암담한 엔딩이 떠올라서 웃음의 뒷맛이 내내 쓰다. -정준화
8점/ 부도 때문에 처남 집에 얹혀사는 가족, 선배 집에 빌붙어 사는 취업 준비생, 빚쟁이들을 피하려다 만난 이웃들. 김병욱의 시트콤엔 그렇게 돌고 도는 돈에 의해 결국 돌고 돌고 도는 건 사람인 현재의 풍경이, 사실은 현실보다 조금 덜 쓰게 담겼다. -김슬기

7. <시> 이창동의 교회

8점/ 목사의 야외 설교 장면에다 김추자의 ‘거짓말이야’를 틀었던 <밀양>이 노골적이었다면 <시>는 조금 에둘러서 결국같은 이야기를 한다. 구원이나 용서 같은 가치들은 교회에서 찾을 수 없으니 개인이 알아서 해결하라는, 무신론자를 위한 더없이 종교적인 영화 . -황선우
9점/ 기복적 성격이 강한 한국의 기독교는 초연함보다 욕망을, 신성보다 인성을 이야기할 때 더 요긴하게 활용될 소재다. 이창동이 영화 속에서 교회나 성당을 곧잘 등장시키는 건 인간의 나약함과 죄책감이 유독 잘 보이는 공간이라서가 아닐까? <밀양>과 <시>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정준화
9점/ <박하사탕>의 영호는 첫날밤 직전에도 기도를 올리는 아내에게 진절머리를 냈고, <밀양>의 전도연은 자신의 원수를 용서한 신에게 복수했다. <시>의 아네스 역시 자신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가해자들의 반성 없이 오직 신으로부터만 위로받았을 뿐이다. 이렇게 인간을 신을 버리고 신은 인간을 소외시키는데도 그 둘은 서로를 놓지 못하고, 이창동 감독은 그 모순적인 관계를 놓지 못한다. -김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