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걸로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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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티시란 단어에 습관적으로 곁들여지는 아이템 중 3가지를 고를 것. 그리고 이 물건들이 언급되는 중독에 관한 엽편을 완성할 것. 이상의 메시지를 건네받은 2명의 여성 필자와 2명의 남자 필자가 아래와 같은 답장을 보내왔다. 타이, 화이트 셔츠, 스타킹, 스틸레토 힐 등은 야하거나 웃기거나 불길한 이야기의 퍼즐 조각이 되었다.

“다음의 남성용 아이템 중 3가지가 등장하는 픽션을 완성하세요” 타이, 흰 셔츠, 유니폼(흰 가운), 향수, 문신, 수학 문제집

하얀 연인들

갑자기 찾아와서 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 당신의 전화를 받고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어요. 당신이 나에게 그렇게 말할줄은 몰랐어요. 그게 당신을 그렇게 힘들게 할 줄은 정말 몰랐어요, 난. 그래도 그렇지 이제 두 번 다시 찾아오지 마라니요. 오늘 내가 다 설명할게요. 모든 걸 다 솔직하게 털어놓을게요. 그러니까 제발 들어줘요.

아… 나는, 당신도 아시다시피 나는 숫자를 공부하는 사람이에요. 학교 다닐 때에도 제일 싫어하는 과목이 수학이었던 제가 사람들에게 수를 가르치게 될 줄은 저도 몰랐어요. 사실 제가 이렇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고3 때였어요. 수학점수가 터무니없이 엉망이라 대학 진학이 어려울 지경에 이르자 부모님께서 제 의사도 묻지 않고 개인과외선생님을 구하시더군요. 집에서 걸어서 10분이면 도착하는 근처의 아파트였어요. S대에 다니는 똑똑한 학생이라고, 비싼 과외니까 열심히 배우라고 제 등을 떠미셨죠. 처음 그 오빠를 만나던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나요. 흰 셔츠. 깨끗한 흰 셔츠를 입은 긴 팔을 들어서 ‘아. 네가 수진이구나. 우리 열심히 공부해보자’라며 제 어깨를 두 번 두드려주었죠. 첫날 그 2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내가 ‘모르겠어요’라고 말하면 다음 순간, 단추가 하나 풀린 셔츠 사이로 목울대를 부드럽게 움직이면서 그는 내가 알겠다고 할 때까지 차근차근 설명해주었어요. 그가 설명해주는 것을 듣는 것도, 바라보는 것도 너무 좋았습니다. 알면서도 연신 잘 모르겠다고 난처한 얼굴로 고개를 저으면 그는 더 열심히 설명해주기 위해 셔츠를 걷어 올리고 그 남자다운 오른팔을 내 쪽으로 더 가까이한 채 수학 문제집에 이것저것을 써내려가며 더 긴 설명을 해주었답니다. 2시간 내내 나에게 집중한 채 설명해주는 그를 보면서 나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이상한 기분을 경험했습니다. 마치 목소리가 2시간 내내 나를 애무하는 것 같았고, 짐짓 경청하는 척 그를 바라보았지만 나도 모르게 머릿속으로 그의 속삭임을 간지럽게 들으며 그 하얀 셔츠의 단추를 하나씩 푸는 상상을 하고 있었던 겁니다. 수업을 마치고 나는 당돌하게도 앞으로 수업시간마다 하얀 셔츠를 입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왠지 더 집중이 잘 되는 것 같아서요. 박사님 같기도 하고.” 그는 하하하, 하고 웃더니 묘하게 설득력이 있는 이유라고 하더군요. 마침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셔츠라고. 알겠다고 했어요. 그 뒤로 일주일에 한 번씩, 일 년간 그는 정말 늘 하얀 셔츠를 입어주었습니다. 그 고3 한해 동안 저의 수학 실력은 부모님을 비롯해서 친구들과 선생님들도 깜짝 놀랄 만큼 좋아져서 문과였음에도 불구하고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하기에 이르렀지요. 아직도 제가 다닌 고등학교에서는 수학 선생님들이 학생들에게 전설처럼 얘기하곤 한다나 봐요. 너희들도 하면 된다면서요.

당신, 우리가 처음 만나던 날 기억하죠? 두 달 전이었잖아요. 조심스레 문을 열었더니 당신이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죠. 이 깨끗한 하얀 가운을 입고 말이에요. 불면증 때문에 수면제를 처방받고 싶다고, 어떤 수면제를 복용하는 게 좋겠느냐고 내가 물었을 때 당신이 팔을 걷어 올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열심히 설명해주었죠. 나는 갑자기 고3 때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당신이 너무 약에 의존하는 것은 좋지 않아요, 라고 말하며 내 쪽으로 몸을 기울여 내 어깨를 두 번 두드려 주었을 때, 그때 나의 짧은 탄성을 당신도 들었나요? 난 확신했던 거예요. 이건 운명이에요. 그렇지 않나요? 물론 내가 그동안 가끔 당신을 힘들게 했다는 거 알아요. 올 때마다 계속 뭐든 설명해달라고 조르고, 처방해준 약의 복용법을 잊어버렸다며 다시 한 번 자세히 얘기해달라고 밤이고 새벽이고 전화하고, 약속된 스케줄을 무시하고 너무 자주 찾아왔던 것도 바쁜 당신에게 다
내가 너무했어요. 하지만 이제 당신도 이해가 가죠? 내가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우리가 인연이라는 게 이제 당신도 믿겨지죠? 뭐라구요? 자꾸 이러면… 신고? 지금 신고라고 했나요? 당신의 하나밖에 없는 인연을 신고한다고요? 당신을 세상에서 제일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한테 그런 잔인한 짓을 하겠다는 말씀이세요? 어떻게, 어떻게 나한테 그렇게 얘기할 수 있는 거죠?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느냐고요. 설명해보세요. 설명해보라구요. 1시간이고 2시간이고 내가 납득할 수 있을 때까지 그 하얀 가운을 입고 설명을 해달라구요, 설명을! – 요조(뮤지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수수께끼는 모두 풀렸어!” 소년 탐정이 벌떡 일어나며 외쳤다. “어이쿠야!” 뜨거운 녹차를 마시던 나카무라가 기겁했다. “나카무라 씨, 지금 당장 사람들을 한자리에 모아주세요.” 나카무라가 사타구니에 1도 화상을 입고 나뒹구는 것도 알아채지 못한 채 소년 탐정은 무언가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었다.

일본 최고의 도박사인 기무라의 별장. 도쿄에서 차로 5시간 떨어진 외딴 산 속의 이 별장에서, 어제 아침 10명의 손님 중 한 사람인 니시무라가 자신의 방에서 실크 넥타이에 목이 매달린 시체로 발견된 데 이어 오늘 아침엔 요시무라가 불에 탄 시체로 변해 장작더미 사이에 널브러져 있었다. ‘꼬마 인디언이다!’ 생존자들은 두 희생자가 살해당한 방식이 10명의 꼬마 인디언이 차례로 죽어가는 이 노래의 가사와 똑같다는 사실을 깨닫고 시시각각 조여오는 죽음의 공포에 몸을 떨었다.

“현재 도로는 눈사태로 막혔고 전화도 불통입니다.” 사람들이 모두 모이자 소년 탐정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즉, 우리는 완벽하게 고립된 겁니다.” “이봐, 지금 여기서 그걸 모르는 사람이 있나?” 오무라가 빈정거렸다. “오무라, 일단 들어나 보자고.” 초조한 기색이 역력한 경마 도박사 다케무라가 오무라를 말렸다. “그저께 폭설이 쏟아진 이후 이 별장은 아무도 들어오지도, 나가지도 못하는 거대한 밀실이 되었어요. 그렇다면 결론은 단 하나!” 방 안의 팽팽한 긴장감을 깨고 소년 탐정이 말을 이었다. “인터넷으로 ‘피자핫’을 주문합시다! CF를 보니까 주문만 하면 전국 어디든 30분 내로 배달한대요! 콤비네이션 피자 라지 사이즈로 주문하면 딱 여덟 조각이라 한 사람당 한 조각씩 공평하게 나눌 수 있….” “지금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 전화선이 끊겼는데 인터넷이 될 리가 없잖아!!” 격분한 오무라가 소년 탐정에게 달려들었지만, 다케무라가 겨우 뜯어말렸다. “아, 그렇습니까? 아쉽네요.” 소년 탐정이 뻔뻔하게 미소 지었다. “실은, 지금부터가 본론입니다. 먼저 니시무라 씨의 사건부터 볼까요.” 그 말에 ‘이거 놔! 내가 오늘 저 자식을 갈아마셔버릴 거야!’ 하던 오무라가 잠잠해졌다. “니시무라 씨는 자신의 방에서 넥타이로 목을 맨 채 발견되었습니다. 어제 아침, 아무리 문을 두드려도 대답이 없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 별장지기가 도끼로 문을 부술 때까진 니시무라 씨의 방은 완벽한 밀실이었죠. 게다가 기묘한 점은, 천장 까지의 높이가 무려 4미터나 되는데도 시체 주변에 딛고 올라설 가구 하나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완벽한 트릭의 밀실살인이다!’ 두려움에 질린 생존자들이 웅성거렸다. “또한 니시무라 씨의 방에서는 고가의 타이 열다섯 개와 흰 셔츠 열다섯 장, 최고급 향수 일곱병, 타액이 잔뜩 묻어 있는 놀이공원의 주차권 세 장이 발견됐습니다.” “니시무라는 쇼핑 중독이었지….” 기무라가 우울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신용카드 청구서가 날아올 때마다 내게 돈을 빌리러 와서는 조만간 경마로 크게 한 탕을 한다는 둥 허무맹랑한 소리만 떠들어댔어.” “사실 그 녀석, 여자관계도 복잡했어요.” 내내 잠자코 있던 이마무라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볼 때마다 가슴이 큰 미녀들과 있었는데, 매번 여자가 바뀌었죠. 그 여자들에게 들어간 돈도 상당한 액수였을 거야.” “바로 그겁니다!” 소년 탐정이 외치자 흠칫 놀란 생존자들의 시선이 일제히 소년 탐정을 향했다. “니시무라 씨는 아무리 후하게 봐도 결코 미남이라 할 수 없는 외모였어요. 하지만 그의 주변엔 미녀들이 끊이지 않았죠. 대체 이유가 뭘까요?” 소년 탐정은 생존자들의 얼굴로 천천히 시선을 옮겼다. “그렇습니다! 비밀은 바로 흰 셔츠와 넥타이였던 거예요!” 긴장한 이마무라가 마른 침을 삼키자 오무라의 눈빛이 불안하게 흔들렸다. “여자들은 화이트 셔츠와 넥타이라면 환장을 합니다. 인터넷에서 ‘여자들이 좋아하는 남자 스타일’을 검색하면 ‘미간을 찌푸리며 넥타이를 잡아 풀 때 그 미간에 끼어서 죽고 싶엌ㅋㅋㅋ’ ‘화이트 셔츠 단추 두개 풀고 한 손으로 폭풍후진ㅋㅋㅋ 주차권은 꼭 입에 물어줘야 함 하악하악’ 같은 여자들의 신앙간증이 쏟아지잖습니까? 그러니까 도 인기 있는 남자가 되려면 비싼 화이트 셔츠를….” “고작 그딴 소리나 하려고 나를 이 꼴로 만들었냐아아으어!!!” 순간 짐승의 울부짖음 같은 괴성이 들리더니 미처 말릴 틈도 없이 사타구니에 붕대를 감은 나카무라가 소년 탐정에게 달려들었다. 소년 탐정이 지르는 처량한 비명이 눈 덮인 골짜기에 가냘프게 울려 퍼졌지만, 매맞는 그를 구해주려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 신윤영(<인스타일> 피처 디렉터)

“다음의 여성용 아이템 중 3가지가 등장하는 픽션을 완성하세요” 가터벨트, 스타킹, 스틸레토 힐, 메이드복, 레드 립스틱, 가면

나의 새로운 아르바이트

졸업하고 반년을 집에서 빈둥거렸더니 엄마의 눈치가 장난이 아니다. 취직할 생각이 없으면 집안일이라도 하란다, 엄마가 대신 파출부나 나가게. 그래서 임시방편으로 아르바이트를 구하기로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상한 광고를 보게 되었다.

제목 | 메이드 구함
자격 요건 | 메이드복이 잘 어울리는 용모 단정한 여자
하는 일 | 소소한 잡무
급여 | 상의 후 결정

변태 오타쿠가 올렸나 싶었지만 재미 삼아 입사원서와 자기소개서를 넣었다. 다음 날 면접을 보러 오라는 전화가 왔다. 목소리가 온화한 중년 여자의 목소리라 안심했지만 맘이 놓일 정도는 아니었다. 강남 대로변의 고층 오피스텔의 1706호.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은 단 한명, 전화를 건 여자뿐이었다. 서른 평은 족히 되는 공간 한가운데에는 커다란 원목 책상과 의자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그 위에는 노트북 하나뿐. 여자는 커피를 한 잔 내왔다. 보라색 꽃이 그려진 고급스러운 찻잔이었다.

“다들 장난인 줄 알고 지원을 하지 않더군요. 약속을 잡아놓고도 어기는 사람도 많고. 자기소개서가 맘에 들었어요. 영문학과를 졸업한 것도 맘에 들고”. 여자의 머리카락은 허리까지 내려왔는데 염색을 하지 않아 흰 머리가 많이 보였다. “정확히 하는 일이 무엇이죠? ” “말 그대로, 소소한 잡무예요. 아침 9시에 출근해서 청소를 하고, 10시쯤 제가 오면 커피를 내주면 돼요. 가끔씩 걸려오는 전화를받고, 심부름도 하고…. 일은 2시쯤 마쳐요.” “이곳은 무얼 하는 곳이죠? ” “제 개인 작업실이에요. 소설을 쓴답니다.” 소설가? 여자의 이름을 물어보고 싶은데 어쩐지 실례가 될 것 같았다. “그런데… 왜 메이드복을 입어야 하는 거지요? ” 여자는 잠시 머뭇거렸다. 얼굴이 살짝 붉어지는 듯도 했다. “소설이 잘 써지지 않거든요. 누군가가 옆에서 일을 하고 있어야 잘 써지는 버릇이 있어서…. 작년까지는 어머니와 단둘이 살았는데, 늘 어머니가 옆에서 집안일을 하고 계셨지요. 방해가 될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글을 쓰는 데 가장 큰 도움이 된 것 같아요” . 나는 커피를 홀짝거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곳에서 메이드복을 입고 일을 하는 내가 상상이 되지 않았다.

“괜찮다면, 내일부터 일해주실 수 있나요? 지금 마감이 급한 원고가 있어서요.” 급여 조건은 편의점 알바보다 시간당 두 배 정도였다. 나쁘지 않다. 오케이. 다음 날 8시 30분에 오피스텔에 도착했다. 옷장을 여니 메이드복이 다섯 벌 걸려 있었다. 사이즈가 약간씩 달랐다. 깨끗하게 세탁을 해놓았지만 누군가가 입었던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55사이즈 정도로 되어 보이는 메이드복을 꺼냈다. 조금 작을 수도 있지만 어떻게든 되겠지. 흰색 레이스가 가슴과 앞치마 쪽에 달려 있고 치마는 생각보다 짧았다. 아래쪽의 서랍을 열어보았다. 이런, 스타킹과 가터벨트가 나온다. 안쪽 깊숙한 곳을 뒤지니 가죽 채찍까지있다. 잠시 혼란스러워졌다. 이 여자, 도대체 무슨 일을 도와주는 메이드를 구하고 있는 거야? 나는 거실 한가운데에 있는 테이블로 천천히 걸어갔다. 알아내는 방법은 단 하나, 그 여자의 노트북을 켜는 것이다. 무슨 글을 쓰고 있는지 알면 힌트를 얻을지도 모른다. 살짝 떨리는 손으로 전원 버튼을 눌렀다. 바로 그때, 현관의 벨이 울렸다. -서 진(소설가)

게임의 변칙

“거기 백에 들어 있는 거를 신으시면 돼요. ” “아, 네.” “둘 중에 어떤 게 맘에 드세요? ” “글쎄요, 아무거나. 빨간 거 좋아하세요? ” “아뇨. 글쎄, 검은색이 더 어울릴 거 같아요”. “굽이 높네요.” “다른 건 가져오신다 했지요? ” “네, 실은 입고 왔어요. 맘에 안 들까 봐 걱정이에요.” “그거 하나만 준비한 거예요? ” “네, 앞에서 갈아입을까요?” “흐흐흐. 아뇨, 거기 거울 뒤에서 갈아입으세요. ” “네에.” “잘 안 벗겨져요?” “바지가 타이트해서. 원래 이런 스타킹을 신고 바지를 입지는 않을 테니까.” “나와보세요. 얼른 보고 싶어요.” “막상 창피하네요. 이런 대낮에.” “아녜요.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이 좋아요. 거울 앞에 서보세요.” “생각보다 레이스가 화려하네요.” “그런 거밖에 없더라구요.” “가터벨트 왼쪽은 풀어보세요. 절 보지 말고 뒤 돌아서 거울을 보세요.” “맘에 드세요?” “그쪽 맘에 들어야죠. 볼 만은 하네요.” “레이스 라인이 힙이랑 잘 맞아요.” “거울로 그쪽이 잘 안 보여요.” “허리를 앞쪽으로 숙여보세요. 다리는 구부리지 말고요.” “다리가 길고 선이 좋아서 더 넓은 그물도 어울릴 거 같아요.” “네. 구하고 싶은데 쉽지 않았어요.” “아, 흥분돼요. 귀여워 죽겠어요.” “그래요. 나도 흥분되니까.”

그녀는 소파에서 일어나 거울 앞으로 다가갔다. 그는 고개를 들어 다가오는 그녀를 보고는 허리를 폈다. 그녀는 그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는 그의 손목시계를 만지작거렸다. 그와 그녀는 거울로 그의 몸을 감상했다. 커튼 사이 직광으로 들어오는 햇볕이 거울의 윗부분을 비췄기 때문에 둘은 서로의 얼굴을 볼 수는 없었지만 그래서 더 그의 몸에 집중할 수 있었다. 목 부분이 살아있는 하얀색 셔츠가 잘 어울리는 다부진 상체의 남자는 이질적인 하체의 룩 때문에 기이해 보였다. 반인반수의 몸처럼 야성이 번들거렸고 인어 공주의 몸처럼 미완이기에 도달할 수 없는 성적 매력이 있었다. 군살 없는 근육질의 유연한 다리는 깔끔하게 제모한 상태라 타이트한 팬티와 가터벨트가 잘 어울렸다. 스틸레토 힐의 좁은 앞코 역시 남성성을 가려주고 있었다. 그모든 차림이 남자에게 더 어울리게 만들어진 것같았다. 여자가 말했다.

“완벽하지 않아요? 정말로요.” “팬티가 좀 불편해지긴 하는데. 맘에 들어요. ” “우린 어제 진실게임에 진실했으니까 서로에게 주는 상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이름이 뭐라 그랬어요?” – 김종관(영화감독)

에디터
피처 에디터 / 정준화
포토그래퍼
김기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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