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에서 생긴 일

W

패션위크 기간의 런던에서는 또 하나의 크리에이티브한 에너지가 넘실거린다. 올해로 9회째를 맞는 런던 디자인 페스티벌. 밀란 국제가구박람회보다 젊고 파리 메종 오브제보다 자유로운 그 축제의 열기 속으로.

런던 디자인 페스티벌이 열리는 동안, 런던 시내 전체는 갤러리가 되고 지역과 거리 곳곳은 전시실이 되었다. 오래된 건축물에는 새로운 방식으로 그 건물을 바라볼 수 있는 오브제가 설치되거나 신진 디자이너들의 팝업스토어가 문을 열었으며, 디자인 스튜디오들은 그들의 작업 과정을 지켜볼 수 있게 일반인에게 공간을 개방했다.

런던 디자인 페스티벌이 열리는 동안, 런던 시내 전체는 갤러리가 되고 지역과 거리 곳곳은 전시실이 되었다. 오래된 건축물에는 새로운 방식으로 그 건물을 바라볼 수 있는 오브제가 설치되거나 신진 디자이너들의 팝업스토어가 문을 열었으며, 디자인 스튜디오들은 그들의 작업 과정을 지켜볼 수 있게 일반인에게 공간을 개방했다.

런던의 9월은 여전히 뜨겁다. 런던 패션위크와 연이어 진행하는 런던 디자인 페스티벌로 일 년 중 가장 크리에이티브한 에너지가 넘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올해로 9회째를 맞는 런던 디자인 페스티벌은 밀란의 국제가구박람회처럼 대규모 상업적인 전시회라고 보긴 어렵다. 대신 ‘페스티벌’이라는 제목 그대로 디자이너들의 축제이자, 산업과 시장, 그리고 문화의 삼박자가 함께 어우러지는 행사다. 런던 곳곳에서 진행되는 크고 작은 280여 개의 이벤트를 디자이너들과 관객들이 함께 즐기는 것이다. 다른 세계적인 박람회가 공간 디자인이나 인테리어의 트렌드를 제시하고 디자인의 미래와 나아갈 바를 제안한다면, 런던 디자인 페스티벌은 더 자유로운 형식의 전시가 두드러진다. 세계 각지에서 온 디자이너들, 그리고 전시 자체를 즐기러 오는 사람들이 교류하고 소통하는 장으로 기능하는 것이다.

텐트 런던, 100% 디자인 등이 런던 디자인 페스티벌을 대표하는 전시다. 한두 군데의 전시장에 집결되기보다는, 런던 곳곳에 흩뿌려진 작품들을 찾아내고 만나는 것이 이 축제의 큰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 매년 디자인 페스티벌 기간 동안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선보이는 빅토리아&앨버트 뮤지엄에서는 영국의 미래주의 여성 건축가 겸 디자이너 아만다 레베트가 이끄는 AL_A의 설치 작품을 선보였다. 3층 높이의 오크나무 조형물을 뮤지엄 입구에 세워 2011 디자인 페스티벌의 시작을 축하한 것. 또 뮤지엄 내부의 라파엘 갤러리 안쪽의 한가운에는 길이 30m, 너비 8m의 대형 라운지 ‘텍스타일 필드(Textile Field)’가 펼쳐졌다. 프랑스 디자이너 로낭&에르완 부룰레크 형제와 덴마크의 텍스타일 기업 크바드라트(Kvadrat)에 의해 제작된 작품으로, 현대적인 색이 입혀진 부드러운 조형물에 누워 갤러리안 명화들을 감상할 수 있게 한 구조물이다. 미술관의 작품들을 딱딱하고 엄격한 분위기가 아니라 편안한 느낌으로 즐길 수 있게 조성한 이 설치물을 통해서 미술관을 즐기는 새로운 방식을 포착할 수 있었다. 디자인이란 것이 보기 좋은 포장일 뿐 아니라 넓은 의미에서 사람의 행동을 정의하는 방식이라는 점을 수긍하게 하는 전시였다.

해를 거듭할수록 규모가 커지는 런던 디자인 페스티벌은, 올해 그 어느 때보다 많은 런던의 숨은 장소들을 보여주었다. 또한 단순한 디자인 상품의 나열이 아니라, 디자인과 건축, 그리고 예술이 조화를 이루는 인스톨레이션들이 도시 곳곳을 장식했다. 마치 런던의 어떤 동네가 한 갤러리의 방처럼 느껴지는 구성이랄까. 영국의 대표적인 미니멀리즘 건축가이자 산업디자이너인 존 포손(John Pawson)은스와로브스키의 크리스털과 함께 원근법이라는 타이틀의 컬래버레이션을 선보였다. 영국을 대표하는 건축물 중 하나인 세인트폴 대성당 내부에 크리스털 조형물을 설치한것. 1710년 르네상스 양식으로 지어진 웅장하고 고요한 성당의 내부는 스와로브스키의 크리스털을 통해 모던한 모습을 덧입었다. 세인트폴 성당 외에도 기존의 갤러리나 미술관을 벗어나 더 이상 사용되지 않은 건물과 공장 등이 축제에 문을 열었다. 또 평소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하던 디자인 스튜디오를 오픈해, 디자인 진행 과정을 소개하고 체험해볼 수 있는 프로그램도 다양하게 마련되었다.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디자인 상품의 탄생을 엿보고 더욱 깊이 이해 할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된 셈이다. 사우스켄싱턴에 위치한 런던 브롬튼 디자인 디스트릭트에서는 사람이 살지 않는 빅토리언 주택을 이용해 영국 왕립예술대학 졸업생과 신진 디자이너들의 팝업스토어도 선보였다. 영국이 자랑하는 디자이너 톰 딕슨의 쇼룸과 네덜란드의 슈퍼 디자이너 마르셀 반더스의 모오이 쇼룸이 위치한 포르토벨로 독에서는 실내외 공간이 창의적으로 활용되었다. 새로운 개념의 접이식 보트, 애슈턴 마틴의 신차 디자인 발표 등 다양한 디자인 제품을 전시해 시선을 끌었다.

흥미로웠던 것 중 하나는 이 축제에 관람객을 끌어들이는 인터랙티브한 방식이었다. 큐레이터 마리나 페스타나(Mariana Pestana)에의해 기획된 옥션룸에서는 스튜디오 801을 비롯 한 14명의 신진 디자이너들이 디자인한 멋진 오브젝트들을 경매에 부치는 옥션 이벤트가 진행되었다. 디자인 제품과 교환하는 대상은 화폐가 아니라, 방문자들 각자가 제공할 수 있는 능력과 서비스. 한 소방수는 불을 끄는 자신의 용맹한 직업을 평생 제공하겠다는 이야기로 옥션에 참가했으며, 저널리스트는 자신이 그 의자를 갖게되면 그 의자에 대한 글을 쓰거나 트위팅을 하겠다는 식의 제안을 했다. 디자인 오브제들이 단순히 제품으로 소비되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의 삶 속에서 그들의 스토리와 함께 어우러진다는 점에서, 이번 런던 디자인 페스티벌의 진정한 하이라이트라 할 만했다. 다음은 페스티벌에서 시선을 끌었던 9개의 포인트.

1. 디자인 메달을 수상한 론 아라드 2. 스웨덴의 브랜드와 디자이너들의 제품 전시는 주영 스웨덴 대사의 자택에서 열렸다. 그 가운데 프레데릭 페리의 의자. 3. 메달을 수상한 론 아라드의 커튼콜 전시 4. 스웨덴 디자이너 엠마 블랑슈의 조명. 5. 칼 라거펠트가 디자인한 샴페인 잔. 6. 스웨덴 디자인 스튜디오 요한슨 디자인의 의자. 7. 네덜란드 디자이너 페페 헤이쿱이 자투리 가죽을 이용해 만든 업사이클 디자인 조명인 스킨 컬렉션.

1. 디자인 메달을 수상한 론 아라드 2. 스웨덴의 브랜드와 디자이너들의 제품 전시는 주영 스웨덴 대사의 자택에서 열렸다. 그 가운데 프레데릭 페리의 의자. 3. 메달을 수상한 론 아라드의 커튼콜 전시 4. 스웨덴 디자이너 엠마 블랑슈의 조명. 5. 칼 라거펠트가 디자인한 샴페인 잔. 6. 스웨덴 디자인 스튜디오 요한슨 디자인의 의자. 7. 네덜란드 디자이너 페페 헤이쿱이 자투리 가죽을 이용해 만든 업사이클 디자인 조명인 스킨 컬렉션.

론 아라드의 메달 수상
런던 디자인 페스티벌 2011 공식 행사 중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디자인 메달 시상식의 영광은 영국을 대표하는 프로덕트 디자이너 론 아라드(Ron Arad)가 차지했다. 토마스 헤더윅, 자하 하디드, 폴 스미스, 그리고 마크 뉴슨에 이어 다섯 번째 수상자인 론 아라드는 “현재를 잘 들여다보라. 미래가 뚜렷이 보일 것이다. 현재란 너무 환상적이라 멈출 수 없고, 미래에 대해 걱정할 틈이 없다”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지난 수십 년간의 커리어 동안 건축, 프로덕트, 가구 디자인 등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었던 그는, 단지 필요한 것을 디자인하는 디자이너가 아니라 예술적 견해를 피력하는 작가적 디자이너다.

기술적 진보
세계 최초의 탁상용 조명이자, 영국이 낳은 위대한 디자인 중 하나로 손꼽히는 ‘앵글포이즈(Anglepoise)’가 시리즈의 LED 버전인 Type C 램프를 선보이며 기술적 진보를 상징했다. 무엇보다도 3D 프린팅을 도입해 가구를 만드는 제작 과정이 등장해 화제를 모았다. 뉴욕의 큐레이터 머레이 모스(Murray Moss)에 의해 인더스티리얼 레볼루션 2.0(Industrial Revolution 2.0)이라는 이름으로 큐레이팅된 이 혁신적인 기술의 전시는 사람이 가구, 혹은 디자인 제품을 수작업을 통해 제작하는 것이 아니라, 혁신적인 3D 프린팅 기술을 이용해 제작한 탁자, 신발 등을 선보여 제품 디자인의 미래를 또 다른 방향에서 제시했다.

색채감의 강조
런던 전시장 곳곳에서 선보인 제품들에는 팔레트를 연상시키듯이 재미있는 원색적인 색상의 가구들이 보는 재미를 더한다. 런던을 기반으로 하는 퍼니처 브랜드 VERY GOOD & PROPER는 칸틴 유틸리티 의자(Canteen Utility Chair) 시리즈를 선보여 집 안 곳곳에 활력소를 줄 수 있는 가구를 선보였다. 또한 러그 디자이너 소냐 와이너(Sonya Winner)는 기하학적인 형태와 패턴이 눈에 띄는 형형색색의 러그 시리즈를 통해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았다.

스웨디시 디자인
스웨덴은 디자인 강국답게 이번 페스티벌에서도 가장 돋보였다. 좀처럼 공개되지 않는 대사관저를 전시 공간으로 사용해 스웨덴의 생활 속 디자인을 자신 있게 보여주었다. 스벤스크트 텐(Svensk Ten) 등 스웨덴의 유명 인테리어 디자인 회사들이 많이 참여했으며, 그중 스웨덴 최고의 유리공방으로 꼽히는 오레포스는 패션계의 아이콘 칼 라거펠트와의 첫 컬래버레이션을 진행했다. 칼 라거펠트가 그동안 제작하고 싶어 했던 유리잔 세트 등을 포함해 3가지 색상의 샴페인 글라스를 만들었는데, 흥미로운 것은 샴페인 잔을 만든 라거펠트 자신은 금주가라고.

디자인 정션의 데뷔
영국 디자인을 연결한다는 타이틀로 다양한 가구 및 조명을 전시하는 디자인 정션(Designjunction)이 올해 4월 2011 밀라노 국제가구박람회를 통해 성공적인 데뷔를 마친 후 다시 런던으로 돌아왔다. 올해 처음 열리는 이번 행사는 앵글포이즈(Anglepoise), 사이먼 존스(Simon Jones) 같은 영국 회사들로부터, 젊은 영국 디자이너들에게 기회를 주는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평을 받았다.

8. 첨단 LED 기술을 선보인 조명 전시. 9. 10. 11. 영국에서 활동하는 디자이너 세바스티안 베른이 덴마크 브랜드 레고와 손잡고 만든 플라스틱 온실을 비롯해 식물을 모티프로 테크놀로지와 결합한 복합적인 설치 작품이 많았다. 12. 13. 한국 디자이너 아무송의 전시가 런던에서 크게 주목받았다. 중앙의 퍼포머가 옷을 입고, 치맛자락에 관객들이 몸을 묻은 채 공연을 감상하는 인터랙티브한 아이디어의 레드 드레스.

8. 첨단 LED 기술을 선보인 조명 전시. 9. 10. 11. 영국에서 활동하는 디자이너 세바스티안 베른이 덴마크 브랜드 레고와 손잡고 만든 플라스틱 온실을 비롯해 식물을 모티프로 테크놀로지와 결합한 복합적인 설치 작품이 많았다. 12. 13. 한국 디자이너 아무송의 전시가 런던에서 크게 주목받았다. 중앙의 퍼포머가 옷을 입고, 치맛자락에 관객들이 몸을 묻은 채 공연을 감상하는 인터랙티브한 아이디어의 레드 드레스.

새로운 개념의 업사이클링 가구
네덜란드 디자인 스튜디오 페페 헤이쿱(Pepe Heykoop)이 선보인 가죽 가구 시리즈 ‘스킨 컬렉션’은 업사이클링의 진수를 보여주는 가구다. 마치 예술 작품과 같은 이 가구는 일반 가죽 가구 제작 과정에서 버려진 자투리와 버려진 가구를 재활용해 제작되었다. 기계가 아닌 수작업으로 제작하기 때문에 각각의 가구는 패턴과 색상 그리고 소재가 다 달라 소장 가치도 뛰어나다.

식물의 에너지
현대의 다른 많은 분야에서 그러하듯이, 디자인에서도 환경과 자연은 꾸준히 재해석되는 모티프다. 덴마크의 슈퍼 브랜드 레고에서는 영국을 기반으로 하는 디자이너 세바스티안 베른과 함께 실물 크기의 ‘레고 온실’을 제작했다. 레고의 아이코닉한 플라스틱 조각을 이용하면서 상반되는 식물의 물성을 끌어들인, 흥미로운 인스톨레이션이었다. 또한 식물과 음악의 관계를 다루는 작업을 꾸준히 선보여온 아티스트 아쿠스마플로(Akousmaflore)는 천장에 걸려 있는 식물의 잎을 만지거나 가까이 하면, 각각의 식물이 각자의 감정을 이야기하듯 음악을 들려주는 작품을 설치했다. 관람객에게 손전등을 쥐여주고, 어두운 방 안에 있는 식물의 꽃을 찾아 비추면 빛에 반응하면서 음악 소리를 내는 재미를 창조한 아티스트 알소스(Alsos) 역시 자연과 과학을 흥미롭게 결합해 기술로 구현한 예를 보여주었다.

런던 속의 한국 디자인
이번 런던 디자인 페스티벌 기간에도 많은 한국 디자이너 단체 및 대학생들이 텐트 런던, 100% 디자인, 디자이너스 블록 등 큰 규모의 디자인 전시 파트에 참여해 눈길을 끌었다. 특히 디자이너스 블록에 참여한 한국 대학생들은 한국스러움을 키워드로 고유의 도장, 식기 등에 현재 기술과 젊은 감성을 접목한 작품을 선보였다. 코벤트 가든 아람 갤러리에서는 영국을 베이스로 하는 한국 디자이너 노일훈의 기하학적 구조의 가구와 조명 제품을 전시하기도 했다. 3년간의 수작업으로 완성한 ‘뉴 테이블(pneu table)’은 광섬유 강화 플라스틱과 탄소섬유 튜브를 활용해 제작되었으며, 풍선을 팽창시키는 실험으로 완성한 테이블의 위쪽 표면의 기하학적 패턴과 섬유를 잡아당기는 방법을 사용해 완성한 테이블의 외관이 인상적이었다. 이외에 쇼핑 칼럼니스트 배정현의 전시 <마이쇼핑백: 서울알레고리 2011 (My Shopping Bag: allegories of Seoul 2011)>이 이스트 런던의 라 스카톨라 갤러리에서 열렸다. 현재 한국의 일상생활에서 사용되는 생활 디자인 용품들을 통해 동시대 문화를 보여주는 대중적 감성의 전시였다.

세상에서 제일 큰 마법의 드레스
또 한 명의 한국인이 런던 디자인 페스티벌에서 주목 받았다. 핀란드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디자이너 아무송이 진행하는 레드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매회 매진을 기록할 정도로 큰 인기를 끈 이 인터랙티브한 인 스톨레이션은, 550미터에 달한 붉은색 울 원단이 바닥을 덮도록 제작되었다. 한 번에 최대 238명까지 들어갈 수 있는 이 거대한 드레스로 중앙에 위치한 원피스를 입고 있는 퍼포머의 공연을 모두 함께 즐길수 있었다. 공연과 전시, 예술과 디자인이 즐겁게 만난 접점이었다.

에디터
황선우
기타
글 | 안영주(런던 통신원)

SNS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