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로부터 온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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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을 찾아온 SFE의 아티스트들을 만나, 그들이 송출하는 전파를 해독하니 이런 메시지가 되었다. ‘사진의 시대는 가고 영상의 시대가 왔다.

1. 서울역 앞 서울 스퀘어 건물에서 SFE 영상을 상영하고 있다. 2. 왼쪽부터 패션 사진가 출신의 듀오 미디어 아티스트 제프 만제티 & 쥘리안 로즈, 그리고 SFE의 창립자이자 역시 영상 아티스트인 마르쿠스 크라이스.

1. 서울역 앞 서울 스퀘어 건물에서 SFE 영상을 상영하고 있다. 2. 왼쪽부터 패션 사진가 출신의 듀오 미디어 아티스트 제프 만제티 & 쥘리안 로즈, 그리고 SFE의 창립자이자 역시 영상 아티스트인 마르쿠스 크라이스.

우주를 유영하던 어떤 외계의 존재가 우연히 우리 별을 방문한다면, 그리고 지구에서 인상 적인 어떤 순간들을 채집해 간다면 이런 영상이 될지도 모르겠다. 실험적이지만 호감 가는 미디어 아트 작품들을 쉬지 않고 방영하는 케이블 채널 ‘수비니어 프롬 어스(Souvenirs from Earth, 이하 SFE)’. TV라는 가장 수동적인 매체를 통해 전복적인 예술을 시도하던 백남준의 정신을 이어받은 아티스트들의 이 시도가, 백남준의 나라인 한국 땅에 상륙했다. 마치 무심코 틀게 된 라디오에서 훌륭한 음악을 새로 알게 되는 것처럼, 우연히 채널에 접속한 사람들에게 실력 있는 영상 아티스트들을 소개해주는 DJ가 되어주는 게 2006년 처음 방송을 시작한 SFE의 설립 목적이다. 독일과 프랑스에서 24시간 케이블을 통해 방영 중. 서울에서는 거대한 서울스퀘어 건물 벽면이 영상의 스크린이 된다. 루이까또즈의 후원으로 내년 2월까지 만나볼 수있으며, http://www.souvenirsfromearth.tv/ 사이트에서 아카이빙되어 있는 작가들의 영상을 시청할 수 있다. 서울을 찾아온 SFE의 아티스트들을 만나, 그들이 송출하는 전파를 해독하니 이런 메시지가 되었다. ‘사진의 시대는 가고 영상의 시대가 왔다’.

Souvenirs from Earth 라는 채널의 이름이 굉장히 상상력을 자극한다. 창립자로서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소개해 달라.
MARCUS KREISS : 현재 지구에서는 아티스트의 입지 자체가 마치 외계인 같다. 대중들은 익숙하지 않은 눈으로 낯설고 신기하게 바라본다. 거리를 두고 떨어져서, 그러나 순수한 시각으로 아티스트들을 바라보게 하자는 입장이었다. 메인스트림에서 벗어난 영상 아티스트들을 소개하는 케이블 채널이다. 우주 여행을 하는 외계인이 마치 지구에서 어떤 기억과 추억을 수집해가는 느낌의 영상을 만날 수 있다.

비디오 아트를 24시간, 1주일 내내 상영하는 시스템인데 수익 구조 없이 어떻게 유지되는가?
파리에서는 미술관 같은 예술 기관, 또는 대기업에서 스폰서를 받고 있다. 인터넷 같은 경우엔 지금은 아니지만 곧 유료화할 것이다. 루이까또즈 덕분에 서울에 올 수 있었다.

youtube 나 vimeo 같은 웹사이트에서 영상을 접하기가 쉬워졌는데 케이블 TV라는 방식을 고수하는 것의 장점은 무엇인가? 우리도 웹사이트를 가지고 있고, 여기에 영상을 업로드한다. 인터넷보다 큰 TV 화면으로 보게 되기를 원한다. 그리고 가장 원하는 건 수동적인 채널이다. 현대인들은 하루 종일 인터넷을 한다. TV 앞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편하게 있는 시간에 마치 그림을 감상하듯이 화면을 응시할 수 있는 그런 영상이다. TV도 하나의 화폭처럼 심미적인 도구로 쓰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게 SFE의 기본 콘셉트다.

서울역 앞 서울스퀘어 건물에서 SFE 영상을 상영하게 되는데.
그런 큰 캔버스가 아주 어울린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서을스퀘어는 마치 공항 라운지 같다. 우리는 집처럼 아늑하게 머무르며 그림처럼 TV를 감상하는 그런 공간을 원한다.

한국에서는 스마트TV를 통한 VOD가 보편화되고 있다. 이런 테크놀로지의 변화에 어떻게 적응하고 있나?
우리도 한국에 와서 이 분야 전문가를 만나 긍정적인 시각을 갖게 됐다. 하지만 중요한 건 대중들이 미리 알고 있는 걸 보는 게 아니라, 모르는 상태에서 새로운 아티스트를 소개받는 것이다. 깜짝 선물을 받듯이 서프라이즈한 경험이 되어야 한다.

두 사람은 패션 사진가 출신으로 영상을 찍고 있다. 한국에서도 사진가들, 그리고 패션 잡지들이 지면의 한계를 벗어나려는 여러 가지 시도를 모색하고 있다. 사진을 찍다가 영상으로 전환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JEFF MANZETTI & JULIANNE ROSE : 25년 동안 프랑스 <마리끌레르>, <보그> 등의 매체, 그리고 디올 등의 브랜드와 함께 일했다. 세계 어느 나라 사진가들이나 지금 마찬가지 도전에 직면해 있다. 사진 자체가 시간과 공간에 한계가 많은 예술이다. 앞도 뒤도 아닌 바로 한 순간만 보여줄 수 있고, 프린트나 화면 디스플레이에서 공간의 제약을 받는다. 그런데 테크놀로지가 발달하면서 영상을 통해 아티스트들의 상상의 세계를 시각적으로 보여줄 수 있게 됐다. 이건 놓칠 수 없는 기회다.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PC 등 미디어 환경의 변화가 영상의 수요를 증폭하고 있는데 이런 것들이 삶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다고 생각하나.
우리는 ‘모션 포토그래퍼’다. 매체의 변화는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모델을 놓고 사진을 찍을 때 옷 한 벌의 아름다움을 보여줄 수 있었다면, 영상은 움직임을 통해 그 아름다움을 극대화해서 보여준다. 패션 디자이너가 옷을 만들 때는 살아 있는 사람을 위해서 움직이고 숨 쉬게 만든다. 영상으로 그걸 보여주는게 디자이너의 의도를 제대로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누구도 가만히 세워놓으려고 옷을 만들지는 않으니까. 거기에 음향까지 첨가함으로써 실제 존재하는 세상에 좀 더 가까워질 수 있다. 영상은 1초에 25개의 사진으로 이루어진다. 어떤 옷의 형태, 주름, 소재, 디테일을 더 자세히 보여줄 수 있으며, 또한 움직이는 영상은 작가의 창작성을 더 풍부하게 해주기도 한다. 360도로 살아 있고 소리도 들리는 사진이며, 화면을 통한 인터랙션도 가능하다. 결국 더 풍부한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게 해주는 수단이다.

그렇다면 영상은 패션 사진의 확장이라고 생각하나? 혹은 전혀 새로운 작업인가.
사진이 뉴턴의 물리학이라면 영상은 아인슈타인의 물리학이다.

시간과 공간까지는 알겠는데 뉴턴과 아인슈타인이라니, 너무 어려운 이야기 아닌가?
더블유 독자들의 수준이라면 이 정도는 이해할 것이다(웃음).

에디터
황선우
포토그래퍼
엄삼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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