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한번 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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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간격으로 내한한 미술계의 스타, 제프 쿤스와 제니 홀저가 남기고 간 말들.

“제가 여행 가이드 역할을 해드리죠.” 국제갤러리 신관에서 만난 제니 홀저가 서글서글한 미소를 띤 채 말했다. 화가가 붓을 쓰듯 텍스트를 활용하는 베니스 비엔날레 황금사자상 수상 경력의 작가와 함께 걷는 건 과연 속성 세계 여행에 비견할 만한 경험이었다. 전시장 1층이 뉴욕, 베니스, 런던 등 여러 도시에서 선보인 특유의 라이트 프로젝션 작업을 촬영한 사진들로 채워져 있었으니까. 제니 홀저 본인이 쓴, 혹은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알랜 긴스버그 같은 문인들의 글에서 빌려온 문장이 눈에 익은 건물 위로 고요하게 드리워진 풍경들이었다. 물론 텍스트와 공간은 아티스트의 의도에 따라 섬세하게 짝 지워진 것이다. 예를 들어 “평생에 걸쳐 쌓아온 모든 지식을 이제 나는 포기한다”라는 이스라엘 시인 예후다 아미차이의 문장은 런던의 서머싯하우스와 포개졌다. 16세기에 세워진 이곳은 오늘날 영국 문화의 주요한 상징이 됐다. 홀저가 능숙하게 구사하는 아이러니는 감상자들을 액자, 전광판, 혹은 대리석 풋 스툴 앞에 한참 동안 붙들어두곤 한다.

제니 홀저의 작업 방식을 결정지은 건 어쩌면 꽤 오래전의 경험이었는지도 모른다. “5~6살 무렵, TV에서 타임스퀘어의 전광판을 봤어요. 굉장히 인상적이더군요. 그 문장들이 아주 간단하면서도 강렬했어요. 그리고 그 이미지 자체가 굉장히 아름다웠고요.” 철저히 기능적인 광고판의 형식을 빌려오긴 했지만 홀저의 작품에는 늘 서정과 온기가 깃든다. “프로젝션의 따뜻한 느낌이 마음에 듭니다. 그 앞에서 사람들의 말소리가 천천히 잦아드는 순간을 좋아해요.” 작가는 텍스트에 대해 이런 생각을 밝히기도 했다. “모든 것일 수도 있고, 아무것도 아닐 수 있죠. 육체적, 감각적인 경험과는 완전히 다른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수단이고요.” 하지만 홀저가 빛으로 쓴 글들은 확실히 단순한 독해의 대상 이상이다. 아티스트를 투과한 텍스트는 논리와 감각을 동시에 자극하는 특별한 무엇이 된다.

예술의 정의를 고민하는 건 예술가 혹은 평론가의 몫이다. 하지만 반짝이는 스테인리스 스틸로 만들어진 거대한 강아지나 하트 모양의 풍선을 만날 때면 관객 또한 혼란스러워진다. 과연 이 작품을 예술이라 불러도 좋을까 하고.

송은 아트스페이스에서 지난 9월 3일부터 오는 11월 19일까지 열리는 <프랑소아 피노 컬렉션 : 고뇌와 환희&gt 참여 작가로 한국을 찾은 제프 쿤스는 그 오래된 질문에 대한 답을 관객에게로 돌렸다. “예술은 작품 자체에 있는 게 아니라 그 대상을 바라보는 모든 개개인에게 존재합니다. 그러니까 이 방 안에 있는 모두가 예술 작품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어요.” 그가 스테인리스 스틸을 이용해 만든 거울 작품인 ‘올리브 오일(Olive Oyl)’에 자신의 얼굴을 비추며 말했다. 어린 시절 인테리어 장식업에 종사한 아버지의 쇼룸에서, 가장 흥미를 가지고 관찰한 대상이 바로 거울이었다. 그리고 그 거울은 지금 전시장에 모여든 관객을 비추고 있다. “이 거울은 앞에 선 관람객에게 존재하기를 요구합니다. 그러다 관객이 거울을 떠나는 순간, 모든 것은 존재하지 않게 되어버려요. 관객이 떠나는 순간, 예술도 끝나는 거죠.”

관객과의 소통을 향한 제프 쿤스의 열망과 집착이 어디서부터 비롯되었는지는 또 다른 작품 ‘더치 커플(Dutch Couple)’의 배경을 가득 메운 색점에서 확인할 수 있다. “레드 제플린 멤버들의 사진을 아주 큰 사이즈로 확대한 거예요. 왼편에 로버트 플랜트가 있고, 그 반대편에 아마 지미 페이지가 있을 거예요. 나는 어렸을 때부터 미술 교육을 받아왔습니다. 하지만 예술을 통해 사람들과 교감하는 즐거움, 예술을 진짜로 느끼는 방법을 가르쳐준 건 사실 레드 제플린이었어요”. 작업실에 처박혀 내면의 고통을 끄집어내는 예술가가 아니라, 무대 아래 관객들과 끊임없이 숨을 나누는 록스타. 제프 쿤스가 익힌 예술의 본질은 그렇게 우리가 기대했던 혹은 세뇌 당했던 것보다, 쉽고 명쾌했다.

에디터
피처 에디터 / 정준화, 피처 에디터 / 김슬기
포토그래퍼
김범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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