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인의 직설, 혹은 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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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선 안에서 남의 목소리만 좇는 건 유아인에게는 맞지 않는 역할이다. 자신이 누군지 분명히 알고 있는 스물여섯 살 배우의 직설, 혹은 대담.

줄무늬 니트 톱은 Mihara Yasuhiro by Mue, 데님 셔츠는 Roen Jeans, 검정은색 팬츠는 Rick Owens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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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키색 톱은 08sircus by Boon the Shop, 검은색 트레이닝 팬츠는 Rick Owens, 가죽 스티커즈는 Converse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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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색 티셔츠는 Acne by Tomgreyhound, 체크무늬 셔츠는 Balman, by 10 Corso Como, 카키색 점퍼는 Rick Owens, 검은색 퍼 재킷은 Ann Demeulemeester, 데님 팬츠는 Dsquared by Boon the Shop, 워커는 Cesare Paciotti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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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해할 질문을 가로채 답하자면, 아니다. 유아인은 무례하지 않다. 다만 직설적인 건 사실이다. 오늘 촬영이 어땠느냐고 묻자 피식 웃으며 “하기 싫더라고요”라고 이야기하는 식이다. 하지만 이 배우의 직설은 상당히 공정해서 본인이라 한들 괜히 빗겨가거나 우회하지 않는다. “얼마 전 명동으로 이사했어요. 강남에서 멀어지고 싶었거든요. (잠시 생각하다) 그런데 가만 보면 그냥 ‘나는 강남보다 강북이 좋아. 왜 꼭 강남에서 살아야 해?’ 뭐 이런 이미지를 갖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해요.” 유아인은 빗장을 걸어둔 자신 안의 내밀한 방을 남들이 기웃거리는 건 용납하지 못한다고 했다. 하지만 허락한 영역이라면 저벅저벅 걸어 들어와 벽지의 얼룩을 지적한다 해도 개의치 않을 사람이다. 쇼 비즈니스에선 금지 품목일지 모를 ‘솔직함’을 그는 눈치 보지 않고 능숙하게 휘두르며 다닌다. “연예인은 기름진 일이에요. 수많은 시선을 상대하는데 어떻게 안 그럴 수 있겠어요. 가식도 떨고 착한 척도 해야죠. 그런데 그마저도 놀이인 듯 변태처럼 즐기면서 해야 해요.” 스물여섯 살의 배우는 자신이 변태 같다고 말했다. “변태란 뻔하고 재미없는 걸 못 참는 사람이잖아요.” 유아인이 궁금해지는 건 그래서다. 자동응답기처럼 똑같은 말을 반복하는 흐릿한 인형들보다 자신의 목소리와 생각을 가감 없이 뱉는 변태가 훨씬 흥미로우니까.

어느덧 스물여섯인데 새 영화 <완득이>에서 다시 교복을 입었다. 완성된 영화는 봤나? 어떻던가, 10대를 연기하는 본인 모습이?
너무 자연스럽던데(웃음). 일단 너무너무 완득이 같았다. 연기력에 대한 논의는 그다음 문제 같다. ‘쟤가 무슨 고등학생이야?’ 하는 불편함은 없지 않을까 싶다.

나이보다 훨씬 어려 보인다. 이번 작품에서는 그 덕을 봤지만 반대로 어려 보이는 외모가 불편했던 경험도 있을 것 같다.
늘 그렇다. 그런데 그건 다 뜯어 고치지 않는 이상 내가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니까. 그냥 내면과 겉모습이 다르다는 걸 굉장히 자연스럽고 재미있게 받아들인다. 어떤 선입견을 가지고 날 바라보던 사람들이, 나에 대해 알아가면서 스스로 그 선입견을 깨나가는 과정을 보는 일도 흥미롭다.

10대 팬도 많을 거다. 요즘 10대들 보면 벌써 세대 차이를 느끼나?
물론이다. 그런데 이해 못할 건 없다. 차이에서 오는 곤란함은 없지만 확실히 취향은 다른 것 같다. 왜 저 가수를 좋아하지? 왜 저기에 속아 넘어갈까? 이런 생각이 가끔 든다. 하지만 세대 차이가 됐든, 개인의 성격 차이가 됐든 편하게 받아들이는 편이다. 완전히 다른 사람을 봐도 아무 문제를 느끼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떤 것에 불편함을 느끼나?
나를 침범하는 것. 난 싸움이라는 걸 전혀 안 하고 사는 사람이다. 가끔 혼자 지랄은 하지만. 그런데 얼마 전 바로 그 문제 때문에 친구들과 길에서 말다툼을 했다. 뭔가가 내 영역을 비집고 들어오고, 나를 휘저어놓으려 들면 용납을 못한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중퇴를 했다. 당시 못했던 학교 생활을 영화 속에서 경험하는 기분이 묘하진 않던가?
특별할 건 없었다. 그냥 완득이의 특수성, 외로움에 대해서만 생각하며 촬영했다.

캐릭터가 본인에게 맞는 옷이란 생각은 들던가?
완성도뿐 아니라 타이밍도 작품 선택에는 큰 영향을 주는 것 같다. 이 영화나 드라마가 내 필모그래피에서 어떤 흐름을 만들까 생각해보는 일이 작품을 고르는 재미 요소 중 하나다. 그리고 시나리오를 읽을 때 거슬리는 요소가 없다는 정도만 해도 굉장히 감사할 때가 많다. 오그라들고 느끼하고 유치한 대목 없이 매끈하게 읽힌다는 건 출연을 결정할 만한 큰 이유가 된다.

완득이 나이 즈음의 유아인은 어땠나?
지금과 비슷했다. 굉장히 개인적이고 자기 세계가 뚜렷하지만 친구들과 어울리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내가 소극적이란 생각도 한다. 남들과 잘 섞이면서도 내 세계는 드러내 보이려 하지 않는다. 변태처럼 그걸 나 혼자 끌어안고 재미있어 하는, 그리고 고통스러워하는 그런 애였다.

그리고 학교는 싫어하는 애였을 테고?
맞다.

어떤 점이 그렇게 싫었나?
일단 아침에 일어나는 게 싫다(웃음). 뭐가 싫다기보다는 왜 학교에 가야 하는지를 몰랐다. 나는 선택한 적이 없는데 대체 누구의 의지 때문에 학교를 다니고 있느냐가 가장 큰 문제였다.

좋아하는 밴드로 꼽기도 했던 검정치마의 노래 ‘강아지’에는 이런 가사가 등장한다. ‘열아홉 살 때도 난 스무 살이 되고 싶지 않았어’. 본인은 어땠나?
맞다. 지금도 그렇고. 나이 드는 게 너무 싫다. 남자들은 대체로 빨리 나이 먹기를 원하지 않나? 일부러 나이 들어 보이게 꾸미고. 얼마 전 담배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봤는데 10대가 흡연을 시작하는 가장 큰 이유가 어른스러워 보이고 싶어서라고 한다. 그런데 나는 그게 너무 싫었고, 지금도 싫다. 어려서 무시를 당하든 술집에 못 가든 10대가 좋은 것 같다.

어떤 이유 때문인가?
그냥 그 깨끗한 상태가 좋다. 물론 나이 먹는 일을 자연스럽게, 그리고 영악하게 받아들이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늘 가장 깨끗한 채로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일종의 판타지다.

특히나 20대는 한 해 한 해 자신의 변화가 뚜렷하게 느껴지는 시기다.
난 안 달라지는 것 같다. 사회에 최적화되어가고 있다는 느낌은 있지만. 그런데 최근 굉장히 감사하다는 생각을 했다. 현명하고 계산적이 되어갈수록 사랑에 할당할 수 있는 순수함이나 마음의 크기는 작아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내 경우, 점점 영악해지고 있는데도 사랑을 위한 마음의 크기는 변치 않는 것 같다. 그래서 더 때를 묻히지 않고도 더 현명하게 살아갈 수 있다고 할까?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일은 아니고 의식적으로 노력했기 때문에 그럴 수 있었다고 본다. 배우라는 사실도 도움이 됐다. 다른 직업보다는 시간이 남아도는 편이니까. 게다가 그 남아도는 시간마저도 내 일에 도움이 된다고 우길 수 있는 직업이다. ‘잘 사는 것도 내 일이야. 삶을 잘 살아야 연기를 더 잘할 수 있어’ 이런 합리화가 가능하다.

배우라는 직업에 굉장히 만족하는 모양이다.
완전히 만족하는 건 아니다. 좋지만 안 하면 죽을 것 같은 기분은 없다. 그 밖에 하고 싶은 일도 많다. 글을 쓰고 싶기도 하고, 사업 생각도 종종 한다. 나이 어린 아티스트 친구들이 많으니까 모아서 뭔가를 꾸미면 재미있지 않을까? 김치 사업 같은 것 말고.

본인에게 사업가 기질이 있는 것 같나?
추진력 좋고 결단력 빠르고 남들이 미안해서 못하는 말도 칼같이 잘한다.

글을 쓰고 싶다는 이야기도 했다.
‘하고 싶어요’ 보다 ‘할 거예요’에 가깝다. 다만 배우 이름 빌려서 책 같지 않은 책을 내는 건 싫다. 글이 오래 쌓이고, 내공도 차면 작업을 해보고 싶은 생각이 있다. 지금은 수련 기간인 셈이다

책을 내자는 제안도 이미 많을 것 같다.
생각보다 많다. 그런데 아직 내 글이 책으로 묶어 내보일 만큼은 아니라서. 시간이 좀 더 지나면 꼭 해보고 싶은 일이다.

한때는 트위터를 비롯 웹에 글을 많이 썼는데 언젠가부터 그 횟수가 급격히 줄었다.
트위터의 경우, 언젠가부터 다른 사람들 이야기가 그냥 보기 싫어졌다. 너무 쏟아져 나오고 너무 시끄러우니까. 정말 쉽게 내뱉을 수 있는 세상인데 나까지 숟가락을 얹진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한편으로는 글에 대한 욕심이 생기면서 다른 방향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아주 개인적인, 그리고 남을 의식하지 않는 글을 써보고 싶어졌다. 난 의식을 하며 글 쓴다는 게 뭔지 누구보다 잘 안다. 어떤 식으로 쓸 때 어떻게 보여진다는 걸 엄청나게 느끼며 써왔던 사람이라 그런 계산을 걷어낸 글을 연습하려고 한다. 아무튼 글에 대한 욕심과 계획이 있는 건 맞다.

꺼내 보이진 않지만 꾸준히 글을 쓰고 있나 보다.
전보다 훨씬 더 많이 쓴다.

시간 내기가 쉽지 않을 텐데?
시간은 너무너무 많다. 연예인들이 바빠 죽는다고 하는데 뭐가 그렇게 바쁜지 모르겠다. 직장인들보다 훨씬 시간이 남아 도는데 그 시간을 어떻게 쓰는지가 정말 중요하다. 내가 이 시간을 잘 쓰면 얼마나 좋고 멋진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곧잘 생각한다.

음악을 들을 때도 가사를 중요하게 살필 것 같다. 최근 들은 것 중 특히 와 닿은 노랫말이 있나?
몽구스 멤버 중 한 명이 친구라서 앨범 추천사도 써줬다. 어떤 노래에 아주 현실적인 가사가 있더라. ‘밤새 춤을 추고 있지만 왠지 모르게 슬퍼.’ 내가 그렇게 사니까 너무 와 닿았다(웃음).

에디터
피처 에디터 / 정준화
포토그래퍼
박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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