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도 안 감고 왔는데.” 기타리스트 이병우가 쑥스러운 듯 여섯 대의 기타가 걸려 있는 회색 벽에 기대 포즈를 취했다. 이곳은 그가 만들고, 연주하고, 함께 나누고자 하는 특별한 기타인 ‘기타바’를 만날 수 있는 삼성동의 ‘bw guitar shop’. 잠시 후 전화 벨이 울리자, 프레임에서 사라진 그가 수화기를 들고 손님과 기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며칠 전에 김광민, 윤상 씨와 함께 ‘Play With Us’ 공연을 마치셨잖아요. 단독 공연과는 또 달랐을 것 같은데 어떠셨어요?
좋아하는 선후배랑 편안히 즐겼어요. 처음 이 공연을 기획한 윤상에게 고맙게 생각해요. 그 덕에 요즘 대세라는 아이유와도 함께하고(웃음).

<어떤날> 1집을 발표했을 땐 지금의 아이유만큼은 아니지만 꽤 어리셨잖아요. 스무 살을 조금 넘긴 나이였으니까. 그때를 어떻게 기억하세요?
지금이랑 비슷한 것 같아요. 지금보다는 더 어두웠을 수도 있고요. 그때는 그런 나이잖아요. 괜히 다 불안한.

어린 나이에 <어떤날> 1, 2집과 솔로 1집을 발표했으니 좋은 기회였을 텐데, 직후 유학을 떠나서는 꽤 오랜 시간 타지에서 보내신 걸로 알아요. 불안했다면서 배우기만 하고 결과물이 나오지 않는 그 시간을 어떻게 견디셨어요?
물론 불안할 수밖에 없었죠. 세상이 내 생각대로 돌아가지도 않고, 자고 일어나면 만날 놀랄 일만 생기고 그랬으니까. 다만 난 그때 이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은 했어도, 이렇게 해서 성공하고 싶다는 생각은 없었던 것 같아요.

어떻게 살고 싶다고 생각하셨는데요?
만날 기타 치면서 살면 좋겠다고, 그렇게 생각했어요.

왜 그렇게 기타가 좋았는지 궁금해요.
열한 살 때 집에 있던 기타를 뚱땅거리면서 시작했는데, 기타는 자꾸 궁금증을 갖게 해요. 처음엔 쉽게 배울 수 있을 것 같아 보이지만, 사실은 상당히 어려운 악기거든요. 그래서 멋모르고 쉽게 들어갔다가 그 재미에 빠져들면 평생을 가는 거예요.

저도 중학생 때인가 통기타 배우겠다고 코드 몇 개 짚어보다가 포기했어요.
그랬어요? 아, 그때 나를 만났으면 같이 가출하고 그랬을 텐데, 통기타 메고.

가출도 하고 그러셨어요?
아뇨. 당시 우리 집에 엄청나게 큰 기타 앰프가 있었거든요. 그걸 갖고 나가기는 어려워서 가출을 못했어요.

왜 가출이 하고 싶었는데요?
그 당시엔 다 그렇잖아요. 괜히 떠나고 싶고.

지금 사용하시는 울림통이 없는 형태의 ‘기타바’는 언제부터 쓰신 건가요?
잘 기억은 안 나는데 꽤 됐어요. 기타를 계속 연주하다 보니 허리, 어깨, 목이 다 아팠거든요. 그래도 기타는 계속 쳐야 하잖아요. 모양이 특이한 기타는 다 써봤는데 내가 갖고 있는 문제를 해결한 게 바로 이 ‘기타바’예요. 기존에 울림통을 꽉 잡고 연주하던 사람들에겐 불편하거나 허전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허리와 어깨를 굽히거나 기타줄을 보기 위해 몸을 꺾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아프지 않은 자세로 연주할 수 있죠.

제작하는 데 4년 정도 걸렸다고 들었어요. 다른 사람들에게도 판매하겠다고 생각한 건 언젠가요?
작년 12월 즈음부터예요. 이 가게를 연 건 두 달 전 즈음이고요. 그전에도 몇 번 제작했는데 나온 물건이 마음에 안 들어서 폐기했어요. 생각보다 많은 분이 좋아하셔서 1차로 만든 모델은 모두 팔렸고, 지금 제작 중인 2차 모델은 8월 말이나 9월 초부터 만날 수 있을 것 같아요. 예약은 지금도 받고 있어요.

기타에 ‘bw’라고 이니셜이 새겨져 있던데, 세계적인 기타리스트들이 갖고 있다는 오직 자신만을 위한 기타, 그런 게 떠올랐어요.
그거야 유명한 기타 브랜드에서 그 연주자가 좋아하는 사양에 맞춰서 제작한 후 사인을 새긴 거니까 이것과 다르죠. 이 기타를 만든 까닭은 무엇보다 기타 치면서 아프지 말아야 한다는 점 때문이었어요. 그리고 사람들이 대부분 기타를 어느 정도까지만 하다 포기하잖아요. 물론 그렇게만 해도 좋지만, 그보다 더 나가기 위해서는 조금씩이라도 자주 연습해야 해요. 그래서 몸에 지니고 다닐 수 있는, 휴대하기 편한 기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어느 단계를 뛰어넘으려면 노력이 필요하거든요. 하지만 책이든 무엇이든 그 방법을 얘기 안 해주는 것 같아요. 내가 보기엔 기타 교본에 흔히 나와 있는 바른 자세는 절대 바른 자세가 아니었으니까요. 그래서 조금 다른 교본을 만들 계획도 갖고 있어요. 그런데 기타를 편하게 치라고 이 기타를 만들었는데, 어떤 사람들은 일반적인 기타에 익숙해서 불편해하더라고요. 그러니까 이곳에 와보고, 절실히 필요한 사람들이 샀으면 해요.

1년에 한 번씩 단독 공연을 열고 계시잖아요. 작년엔 처음으로 <어떤날>의 음악들을 직접 연주하고 부르셨어요.
감개무량했어요. <어떤날>의 노래를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극장에서 공식적으로 연주할 수 있다는 게 감격스러웠어요. 한편으론 같이 그 음반을 만들었던 조동익 형이랑 같이 못한 게 너무 아쉬웠고요. 그래도 자꾸 미루면 <어떤날> 음악을 아무도 실제로는 들어보지 못할 것 같아서, 이렇게 하는 게 그 음악을 사랑해주신 분들께 도리인 것 같았어요. 올해 10월 공연은 기타 연주 위주로 꾸미려고 계획하고 있어요.

<어떤날>은 어떤 의미를 지니나요?
항상 말하지만 내 20대의 사진이에요. 빛바랜 사진.

그런데 왜 요즘은 노래 안 하세요?
노래를 못해서 안 하는 거예요. <어떤날> 때는 동익이 형이 “돈은 같이 받고 왜 나만 노래해! 너도 해!” 해서 한 거고요. 형이 나보다 다섯 살 위라 ‘알았어요’ 그런 거죠.

오랫동안 영화음악에 집중해오셨잖아요. 솔로 음반을 낼 생각은 없으세요?
계획은 항상 있어요. 그런데 다른 일이 너무 많아요. 예술가라면 내 음반만 만들어야겠지만, 난 예술가가 아니라서 그런가 봐요.

얼마 전엔 <놀러와>에도 출연하셨더라고요.
나를 왜 불렀는지 모르겠어요. 윤상이 나가자고 해서 나간 거예요. 내가 좋아하는 후배고, 믿으니까. 나는 내가 제일 웃긴 줄 알았는데 막상 가니까 안 되겠더라고요. 이하늘과 길에게 눌려서 명함도 못 내밀고 왔어요.

요즘 노래를 소재로 하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많아 졌어요.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세요?
나는 일단 무슨 시도건, 시도하는 건 다 좋다고 생각해요. 글쎄 나쁜 점이 있나. 난 다 좋은 것 같은데. 가끔 요즘 아이돌 그룹의 음악이 너무 댄스 음악 위주로만 돌아간다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잖아요. 그런데 언제는 아니었나요? 어느 시대건 언제나 댄스 음악이 중심이었죠. 그렇게 얘기하는 분들도 사실 틈만 나면 디스코텍 가서 신나게 흔들어댔을 거면서 그래요.

기타를 손에 들고 있지 않은 모습을 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그럼요. 이걸로 먹고사는데요. 기타는 나에게 살아가는 방법이고, 삶의 도구예요.

‘플레이 위드 어스’ 공연과 관련된 기사를 읽다가 김광민, 이병우, 윤상 씨 세 분의 나이를 보고 새삼 시간이 많이 흘렀구나 싶어 깜짝 놀랐어요.
인터넷이 잘못된 거예요. 우리 다 30대예요. 믿지 마요, 그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