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패션 이면에 끔찍한 고통이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지. 이제는 지구와 사람을 모두 생각하는, 윤리적 패션에 대해 진지하게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다.

패션에서 ‘윤리’를 논한다는 건 어쩐지 어색하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 이 순간 입고 있는 새하얀 면 티셔츠와 워싱이 멋진 청바지의 이면에 누군가의 눈물이 자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패션과 윤리의 상관성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될 것이다. 일례로 흰색 면 티셔츠의 원료인 면화를 기르는 동안 어마어마한 농약이 살포되고, 수확기에는 요즘 한창 화두에 오른 고엽제까지 사용된다. 이 때문에 인도에선 하루 8시간 이상 농약에 노출된 남성 면화 노동자의 91퍼센트가 염색체 이상, 세포 주기 지연 등의 장애를 겪고 있다. 어디 이뿐인가. 값싼 티셔츠를 생산하는 상당수의 공장은(주로 아프리카, 중앙아시아, 라틴아메리카의 저개발국에 위치한다) 조명과 환기 시설이 열악하고 귀청이 뜯어질 듯한 소음으로 꽉 차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 근무하는 노동자에게 주어지는 임금은 적게는 시간당 10~13센트에 불과하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일을 견디는 건 달리 먹고살 방도가 없기 때문이다). 끔찍하지 않나.

나의 기쁨을 위해 누군가이렇듯 어마어마한 고통을 겪어야 하다니. 다행히 이 같은 폐단을 없애기 위해 ‘윤리적 패션(Ethical Fashion)을 실천하는 브랜드들도 있다. 이는 단순히 환경을 보호하는 차원을 넘어서 생산자의 인권과 건강까지 고려한 패션을 말한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유투의 리드 싱어, 보노의 부인인 앨리 휴슨이 설립한 윤리적 패션 브랜드 에듄(Edun)과 영화 <해리 포터>의 헤로인 엠마 왓슨이 홍보대사 겸 모델로 나선 피플 트리를 들 수 있다. 이들은 저개발국 의류 노동자와 환경에 모두 이로운 방식으로, 심지어 아름답고 매력적인 패션을 선보인다. ‘윤리적 패션은 예쁘지 않다’는 편견을 보란 듯이 딛고서.

한편 청바지 브랜드에서도 윤리적 패션을 실천하는 브랜드가 급속도로 늘고 있다. 청바지의 워싱을 완성하는 가장 간편하고 효과적인 방법이지만 생산자에게는 규폐증을 안기는 가공법인 샌드 블라스팅 기법을 포기 하고 다른 대안을 마련하고 있는 것. 반(反) 샌드 블라스팅 운동에 동참한 브랜드는 리바이스를 비롯해 베르사체, H&M, 디젤, 지스타, 리플레이, 구찌 등이다. 신발 브랜드 중에서도 윤리적 패션에 관심을 기울이는 브랜드가 눈에 띈다. 스페인의 컬러풀한 스니커 브랜드인 빅토리아 슈즈는 소재부터 공정에 이르기까지 환경과 인체를 두루 보호하는 방법을 통해 100% 스페인에서 신발을 생산하는데 슈즈 공장은 외부 기관의 까다로운 심사를 거친 작업 환경을 갖추고 있다. 또 일대일 기부 공식으로 유명한 탐스 슈즈 역시 비동물성, 친환경 재료, 오가닉, 무농약 소재, 지속 가능한 소재를 사용한 신발을 선보이며 멀티숍 피플 오브 테이스트에서 판매하는 스니커 브랜드 트윈스 포 피스 또한 수익금 전부를 저개발국가에서 신발을 제작하는 데 투자하고 신발을 사지 못하는 가난한 나라의 아이들에게 기부한다. 역시 피플 오브 테이스트에서 만날 수 있는 사라스 백은 레바논의 수도인 베이루트의 재소자들이 만든 것으로 절망 속에 빠진 이들에게 희망을 주고 있다. 미국의 공정무역 가방 브랜드인 델라엘에이(DellaLA) 역시 가나의 여성들이 직접 제작한 에스닉한 프린트의 친환경 소재 가방을 선보이고 있으며, 파나마 햇으로 유명한 영국의 액세서리 브랜드 파차 꾸띠는 라틴아메리카의 안데스 지역 생산자들이 더 나은 삶을 꿈꿀 수 있도록 설립된 브랜드다.

그렇다면 소위 하이엔드 패션 브랜드의 상황은 어떤가. 물론 우리가 추앙하는 ‘고급품’ 대부분은 저개발 국가가 아닌 자국의 쾌적한 공장에서 장인들에 의해 생산되기에 윤리적 패션에 대한 의식은 전무한 편이다. 하지만 구찌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통감하고 2004년부터 근로자들의 건강과 인권 그리고 환경을 고려한 인증 과정을 시작, 가죽, 슈즈, 의류, 실크, 주얼리의 원자재 공급망까지 이를 적용하고 있다. 한편 우리나라 패션계의 경우엔 친환경을 단발성 마케팅 수단으로 이용하는 사례는 흔하지만 ‘윤리’를 논하기엔 아직 갈 길이 멀다. 그나마 다행인 건 국내 최초의 공정무역 패션 브랜드 그루와 오르그닷에서 희망의 씨앗을 발견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아직은 여느 패션 브랜드처럼 품목이 다양하진 않지만 앞으로 유명한 국내 디자이너와의 협업 등 다양한 프로젝트로 대중에게 다가설 계획이라고.

이듄의 설립자 앨리 휴슨은 윤리적 패션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6년 전 에듄을 처음 론칭한 당시만 해도 윤리적 패션을 고려하는 패션 관계자는 극히 드물었죠. 그들은 ‘윤리적’ 이면 좋지만 굳이 해야 하는지 의구심을 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점차 윤리와 패션이 공존할 수 있다는 생각이 널리 퍼지고 있어요.” 사실 패션은 거대한 산업이고, 산업은 이윤 창출을 위해 효용성을 극대화한다. 하지만 ‘윤리’ 없이 ‘효용’ 만을 좇으면 종국엔 제품만 남을 뿐, 사람과 환경은 황폐화 되리란 건 불 보듯 뻔한 일. 언뜻 ‘윤리적 패션’이 남을 돕기 위한 패션으로 여겨질 수도 있지만 결국엔 나를 포함한 ‘우리’를 위한 것이다. 너무 거창하다고? 생각해보면 ‘윤리적 패션’을 실천하는 건 매우 쉽다. ‘지속 가능한 패션’, 즉 쉽게 사고 버리는 패션이 아닌 오래도록 아끼고 입을 수 있는 패션을 선택하는 것.